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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강의 제철 플랜트, 광양 5고로 신화창조

코렉스 공장 착공식

코렉스 공장 착공식

포스코건설 탄생의 원동력은 제철 플랜트였다.

비록 신생기업이지만 1970년 4월 제철보국의 사명을 안고 영일만 허허벌판에 첫 삽을 뜨면서 포스코건설 제철 플랜트의 역사가 시작됐고, 1992년 10월 광양제철소 4기가 종합 준공되면서 그 경쟁력은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단계로 올라섰다.

포항과 광양제철소에 모두 8기의 고로가 들어서기까지 신화창조의 숨은 주역으로는 포스코 건설본부와 엔지니어링본부가 있었다.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들 조직은 엔지니어링, 설계, 시공 및 기자재 관리 등 제철소 건설과 관련된 업무를 직접 수행했다. 그뿐 아니라 포스코는 어렵게 확보한 제철소 건설과 엔지니어링 역량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거양개발과 PEC를 설립했다.

포스코 건설본부와 엔지니어링본부, 패밀리사인 거양개발과 PEC 같은 조직들에 의해 회사가 탄생했으니 비록 신생기업이지만 포스코건설을 제철 플랜트 분야 최고 강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출범 초기 제철 플랜트 분야에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고, 회사의 성장도 이 분야가 견인했다. 설립 초기 포스코건설은 코렉스(COREX)공장, 포항 2STS 제강연주, 광양 1미니밀, 광양 4냉연 신설, 광양 5고로 신설 등의 주요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제철 플랜트를 중심으로 힘차게 출발했다.

1995년 11월 28일 준공된 코렉스 공장은 차세대 혁신 제철기술로 불리는 용융환원 제철법을 적용한 연산 60만톤 규모였다. 코렉스 공장으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제철소의 30만톤 설비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기록이었다. 특히 포스코의 코렉스 공장은 경제성을 갖춘 대형 상업화 설비로는 세계 최초라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 철강업계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포항 No.2 STS 공사 전경

포항 No.2 STS 공사 전경

코렉스 공장이 거양개발 시절인 1993년에 착공된 반면 포항 2STS 제강연주공사는 포스코건설이 출범하고 최초로 수행한 대형 플랜트 공사였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22개월이라는 짧은 공기, STS 공장 건설 경험의 부족, 설비의 오제작으로 인한 공정 차질 등 숱한 난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돌관작업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1996년 8월 연산 42만톤 규모의 STS 증강공사를 완료했다.

이에 힘입어 포스코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연산 84만톤급 스테인리스 일관생산체제를 갖출 수 있었다. 1995년 9월 착공, 1997년 8월 준공한 광양 4냉연공장은 연산 180만톤 규모였다. 단일공장으로서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수주 금액도 당시 철강 플랜트로서는 최대 규모인 6280억 원에 달했다.

무엇보다 설립 초기 포스코건설의 최대 성과는 광양 5고로 건설이었다. 포스코건설은 설계에서 기자재 조달, 시공, 성능보장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자체 기술로 완벽히 수행해 착공 29개월만인 1999년 3월 말 성공적으로 준공했다.

광양 5고로 신설공사 외에도 신설과 다름없는 기술을 필요로 하는 포항 2고로 2차 개수 같은 사업도 수행함으로써 포스코건설은 제철 플랜트 해외진출 기반을 더욱 다질 수 있었다.

광양 5고로 전경

광양 5고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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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중국과 베트남으로 제철플랜트 진출

베트남 비나파이프 공장 전경

베트남 비나파이프 공장 전경

설립 초기 토목과 건축 분야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렀지만, 제철 플랜트의 수준 높은 경쟁력은 해외시장에서도 통했다. 그 시작은 베트남과 중국이었다.

포스코건설이 출범하던 시절 국내 건설업계는 해외건설의 침체 속에 베트남과 중국 개방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포스코건설의 전신인 거양개발과 PEC 역시 중국과 베트남 진출을 적극 모색했다.

거양개발의 첫 해외 프로젝트는 베트남의 비나파이프 건설공사였다. 하이퐁시 안하이 지구에 위치한 비나파이프 공장은 상수도용 아연도금처리 강관인 백관과 하수도용 흑관을 연 3만톤 생산하는 베트남 최초의 강관 제조공장이었다. 1993년 7월 착공, 1994년 7월 준공했다.

PEC는 1994년 2월 베트남에서 VPS 압연공장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이 공사는 PEC가 1년 여의 자료 준비와 축적된 철강 플랜트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와 우리나라의 유명 설비제작 업체와의 치열한 경합 끝에 수주한 것이어서 의미가 깊었다.

베트남 VPS 설비 전경

베트남 VPS 설비 전경

PEC는 이 공사 수주 후 설비 공급사로서 설비공급과 설계, 시운전, 감리를 맡았으며, 시공은 거양개발에 발주했다. 1994년 4월 착공에 들어가 PEC, 거양개발 통합 후에는 포스코건설이 직접 프로젝트를 수행해서 1995년 9월 성공적으로 준공했다. 포스코건설로서는 최초의 해외사업이었다.

포스코건설은 출범 직후 베트남 건설성 산하 리라마사와 철강 합작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경제성장으로 철골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날 것을 예측하고 직접 베트남 철강시장에 뛰어든 것이었다. 포스코건설은 1995년 10월 포스리라마(POSLILAMA)를 설립하고 곧바로 착공에 들어가 1996년 10월 철골공장을 준공했다.

베트남에 이어 중국시장 진출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당시 포스코는 광양제철소 준공 이후 증강된 생산능력을 소화할 만한 시장으로서 중국 시장을 선택했다. 포스코건설도 포스코를 쫓아 중국 철강시장에 진출했다. 포스코의 중국 현지법인이 발주하는 철강 플랜트를 수주해 공사를 수행했다.

다롄 CGL 공장 전경

다롄 CGL 공장 전경

그 첫 프로젝트가 중국 다롄(大連) CGL 설비공급이었다. 1995년 11월 착공, 1997년 9월 준공한 다롄 CGL은 포스코건설이 철강 플랜트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처음으로 CGL 플랜트를 외국에 공급했다는 점과 표면처리 부분에서는 처음으로 자력 엔지니어링을 문제 없이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첫 프로젝트 성공 이후 포스코건설은 랴오닝성(遼寧省) 다롄에 이어 장쑤성(江蘇省) 장자강(張家港)에 진출했다. 장자강에서 CGL과 STS 플랜트를 수행했다.

1996년 8월 착공한 장자강 CGL은 연산 10만톤 규모로, 포스코건설이 설비공급을 맡아 기본설계와 기계·전기 분야의 상세설계에서부터 관련설비의 공급과 시운전, 감리에 이르기까지 사업 전반을 담당했다. 1998년 5월 준공한 이 프로젝트는 포스코건설이 최초로 국제 경쟁입찰에 의해 수주한 것이어서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1996년 11월 수주한 장자강 STS 프로젝트는 연간 11만톤의 STS 냉연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였다. 치열한 국제경쟁을 뚫고 포스코건설은 설비 공급을 위한 엔지니어링, 설치 슈퍼바이징(Supervising)과 시운전은 물론 토건설계 및 시공감독을 포함해서 일괄 수주했다. 1997년 4월 착공, 1999년 1월 준공한 이 프로젝트는 21개월의 짧은 공기에 중국 최대의 STS 냉연공장을 건설함으로써 자체 기술력 향상은 물론 국내외에 다시 한 번 기술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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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플랜트 해외사업, 이집트와 남미로 확대

제철 플랜트 해외사업은 베트남, 중국 진출에 이어 중동 인근의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미의 베네수엘라와 브라질로 확대됐다.

이집트 프로젝트는 1995년 4월 한-이집트 국교 수교 이후 국내업체로는 처음으로 대형 플랜트 수주에 성공한 케이스였다. 프로젝트의 발단은 1993년 4월 아르코스틸(ARCO Steel)의 설립이었다. 이집트 국내기업과 해외 다국적기업 등 11개 합작으로 탄생한 아르코스틸은 출범과 함께 특수강공장 건설을 서둘렀다.

사전에 입찰 정보를 입수한 포스코건설의 전신인 PEC는 일괄수주 방식인 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컨소시엄 파트너를 물색했다. PEC가 설계에서 설비공급, 시운전, 현장교육 등을 담당하고, 삼미특수강은 조업 노하우를, ㈜대우는 수출 및 금융 부문을 담당하기로 하고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이집트 특수강공장 계약 서명식

이집트 특수강공장 계약 서명식

수주전에는 이탈리아의 다니엘리, 독일의 티센 데마그, SMS, 오스트리아의 VAI 등 세계 유수의 제철설비 전문 엔지니어링 및 설비 제작업체들이 참여했다. 포스코건설 출범 직후 낙찰을 위한 숨가쁜 일정이 전개됐는데, 1995년 2월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이 최저입찰자로 확인되면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그러나 프로젝트 컨설턴트인 일본 NKK가 해외실적 전무, 기술력 부족 등의 이유를 들어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을 최종 협상에서 제외시키고 제강 부문에는 VAI를, 압연 부문에는 다니엘리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추천하면서 사태는 반전됐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포스코건설은 사전 입찰 자격심사에서 이미 기술 능력을 인정했는데도 불구하고 기술적인 사유로 탈락시키는 것은 국제 관례와 입찰안내서에 비추어 부당함을 주장했으며, 우리정부도 외교 채널을 동원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무바라크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사건이 원점으로 돌아왔고, 포스코건설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았다. 프로젝트 컨설턴트가 인도의 다스트루(Dastur)로 바뀐 것도 다행이었다.

재입찰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최저입찰자로 결정됐으며, 다스트루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추천했다. 1995년 11월 마침내 아르코 이사회가 포스코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공표했다. 이처럼 포스코건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도전정신으로 1년에 걸친 노력 끝에 전기로를 포함한 일관제철 공정으로 구성된 중동 최대의 특수강공장을 턴키로 수주하는 놀라운 능력을 선보였다.

베네수엘라 포스벤 합작투자 계약 서명식

베네수엘라 포스벤 합작투자 계약 서명식

북아프리카 이집트에 이어 포스코건설은 지구 반대편 남미의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에서도 해외사업을 펼쳤다. 베네수엘라 포스벤(POSVEN) 프로젝트는 미국 방산업체 레이시온의 러브콜에서 시작됐다. 레이시온은 베네수엘라에 연산 150만톤 규모의 HBI 공장 건설 프로젝트 개발 과정에서 PEC에 공동추진을 제안해왔다.

마침 포스코는 미니밀 원료인 HBI의 안정적인 조달방안을 강구하고 있었다. 이에 PEC가 포스코에 베네수엘라 HBI 사업제안서를 제출했고, 포스코의 긍정적인 반응에 따라 포스코건설 출범 후 레이시온과 합작투자를 위한 MOU가 체결됐다.

사업성 검토 과정에서는 과도한 투자에 대한 우려로 포스코가 주저하면서 사업추진이 잠시 지지부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HBI 원료 확보의 필요성에 따라 1997년 1월 결국 포스코를 최대주주로 하는 다국적 합작법인 베네수엘라 포스벤이 탄생했다. 포스벤 탄생에 산파 역할을 담당했던 포스코건설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포스벤 설립과 동시에 레이시온과 공동으로 HBI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었다.

브라질 코브라스코 설립

브라질 코브라스코 설립

브라질 코브라스코(KOBRASCO) 프로젝트는 광양 5고로 조업용 펠릿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펠릿공장 건설공사였다. 포스코는 브라질 현지 국영 철광석 공급사인 CVRD와 합작계약을 체결하고 1996년 3월 코브라스코를 설립했다.

포스코건설은 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1995년 6월 사업계획을 수립해 포스코와 CVRD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수주활동을 펼쳤으며, 1996년 7월 발주처와 상세설계 계약을 체결하고 이어 11월에는 설비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 펠릿공장은 착공 27개월만인 1998년 11월 16일 준공됐다. 포스코건설은 펠릿공장 설계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외국 엔지니어링사의 설계감리 없이 상세설계를 독자적으로 수행함으로써 펠릿공장 자력설계 기술확보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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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련의 제철 플랜트, 해외사업마저 고전

광양 4GCL 공사 전경

광양 4GCL 공사 전경

IMF 위기는 포스코건설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제철 플랜트 분야에 가장 큰 타격을 입혔다. 1조 5165억 원이던 수주액이 1998년에 2572억 원으로 뚝 떨어졌다. 포스코가 신규 설비투자를 미루거나 기존에 추진하던 사업을 중단함에 따라 포스코건설은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1997년 9월 착공한 광양 2미니밀 사업의 중단이 가장 아쉬웠다. 광양 2미니밀은 연산 200만 톤 규모의 프로젝트로, 수주금액이 설비와 공사를 합쳐 5767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공사가 진행되던 1998년 4월 포스코로부터 사업 중단을 통보 받았고, 결국 그 해 말 사업 중단에 대한 정산을 하고 공사를 마무리해야만 했다.

시련은 1999년까지 이어졌다. 수주금액이 5726억 원으로 증가했지만, 1997년과 비교해서 3분의 1 수준이었다. 포스코는 여전히 신규 투자를 자제하고 있었다. 수주금액이 1000억 원 이상인 프로젝트가 2년 동안 광양 4CGL 단 한 건에 불과했다. 광양 4냉연, 광양 5고로 등 설립 초기 3년 만에 10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었다.

1998년 9월 착공, 2000년 5월 준공된 광양 4CGL은 자동차용 표면처리 강판 중 용융아연도금 강판의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된 프로젝트였다. 포스코건설은 외자설비 공급분을 제외한 내자설비 공급과 토목, 건축설계, 시공을 일괄 수행했다.

이 시기 제철 플랜트는 해외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당시 해외에서는 이집트 아르코 특수강 프로젝트, 베네수엘라 포스벤 프로젝트, 인도네시아 미니밀 프로젝트 등이 추진되고 있었다.

이집트 아르코 특수강 프로젝트는 1997년 4월 착공, 2000년 6월 설비 테스트를 완료했다. 그러나 아르코는 공기 지연과 설비 성능을 문제 삼으며 준공 확인을 해주지 않았다. 결국 쌍방의 이해관계가 좁혀지지 않아 국제분쟁으로 번졌다. 당시 아르코의 상황을 살펴보면 판매부진과 조업기술 부족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 자금부족으로 인한 경영압박 등의 내부 문제를 포스코건설에게 전가하려는 다분히 의도적인 측면이 있었다.

이후 2년간의 분쟁에서 쌍방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결론이 나지 않자 2002년 10월 양측은 더 이상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재협상에 나섰다. 이후로도 기나긴 줄다리기 끝에 2003년 5월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최종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우여곡절로 점철됐던 10년간의 아르코 프로젝트가 종료됐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포스코건설은 엄청난 시간 소모와 체력 낭비에 이어 막대한 자금손실을 보았다.

미니밀의 원료인 HBI를 생산하기 위한 베네수엘라 포스벤 프로젝트도 포스코건설에게 상처를 주었다. 1997년 5월 착공된 이 프로젝트는 의욕적인 출발에도 불구하고 진행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공기가 무려 20개월이나 지연되면서 2001년 1월에서야 시운전이 완료됐다. 이 문제로 발주처인 포스벤과 건설을 책임진 레이시온 간 갈등이 해소되지 않아 국제분쟁에 휘말렸다.

더욱이 IMF 여파로 준공 후에 포스코가 미니밀 사업을 중단함에 따라 청산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포스코건설은 지분 참여한 자본금과 대위변제금 등 큰 손실을 보았다.

인도네시아 미니밀  사업 착공식

인도네시아 미니밀 사업 착공식

인도네시아 미니밀 사업은 크라카타우스틸이 포스코에 합작을 제안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포스코는 열연코일 연산 100만 톤 규모의 미니밀 사업을 위해 40%의 지분으로 인도네시아 국영제철소 크라카타우스틸과 합작계약을 체결하고 1997년 10월부터 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공장 건설에 앞서 포스코건설은 1996년 2월부터 5월까지 포스코로부터 타당성 조사 용역을 받아 수행했으며, 발주처의 컨설턴트로서 발주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대행한 후 엔지니어링과 부대설비 공급, 시공에 이르기까지 턴키로 수주했다.

그러나 가설공사를 완료하고, 기본설계뿐만 아니라 일부 설비가 제작 발주된 상황에서 이 프로젝트는 된서리를 맞았다. IMF 위기로 경영난을 겪게 된 크라카타우스틸이 향후 수익성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사업 철수를 선언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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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철 플랜트 중국 확대와 이란에 고로 수출

IMF 위기극복 이후 제철 플랜트 해외사업도 크게 되살아났다. 특히 중국시장이 활활 달아올랐다. 여러 차례 포스코 발주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민간기업 물량까지 수주하는 능력을 키워나갔다.

중국 광둥성 순더시 MCL 프로젝트 수주계약

중국 광둥성 순더시 MCL 프로젝트 수주계약

설립 초기 중국 다롄 CGL, 장자강 CGL과 STS 플랜트 등을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포스코건설은 포스코 발주 프로젝트를 더욱 공략해나갔다. 먼저 2001년 10월 광둥성(廣東省) 순덕시(順德市) MCL을 수주하고 2003년 1월 준공했다. 연간 전기강판 10만 톤, 칼라강판 5만 톤 생산 능력의 순덕 MCL 프로젝트에서 포스코건설은 설계와 설비공급을 담당했다.

순더 MCL에 이어 2002년 12월 연산 15만톤 규모의 칭다오 STS 냉연 플랜트를 수주했다. 포스코건설은 이 프로젝트에서 엔지니어링 업무와 CM용역 업무를 담당했다. 2003년 1월 착공, 2004년 12월 준공한 칭다오 STS에서는 장자강 2STS의 개선 사례를 적용한 최적의 엔지니어링으로 완벽한 설비를 구현해냈다.

칭다오 STS의 소중한 경험은 장자강 STS 상공정(上工程) 프로젝트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먼저 포스코건설은 장자강 STS 상공정 수주를 위해 2003년 1월에 장자강시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장자강 법인의 설립은 포스코의 대규모 투자가 예상되고 있던 장자강 STS 상공정 수주에 일차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포스코가 발주하는 국내 제철소 설비들의 가격을 낮춰서 중국에서 아웃소싱을 주도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또 포스코의 중국 투자에 대한 효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2004년 4월 장자강 법인과 함께 국제입찰을 통해 수주한 장자강 STS 상공정은 연산 80만 톤 규모의 스테인리스 공장을 짓는 사업으로, 포스코건설은 이 프로젝트에서 전기로에서 제강공장, 연주공장, 열연공장, 소둔산세 라인까지 맡았다.

다롄, 장자강, 순덕 등 포스코 발주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수행은 중국 제철산업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포스코건설은 이 같은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민간기업들이 발주하는 제철 플랜트 수주전에 적극 나섰다.

장자강 STS 상공정 프로젝트 수주계약

장자강 STS 상공정 프로젝트 수주계약

첫 성공작은 중국 최대 가전업체 하이얼의 연산 7만톤 규모의 CCL 프로젝트였다. 2000년 9월 포스코건설은 이 프로젝트의 국제입찰에서 일본, 캐나다, 프랑스 등 전문 엔지니어링 및 설비 공급업체들과 치열한 경합 끝에 수주에 성공했다.

2000년 9월 착공, 2001년 9월 준공한 하이얼 CCL은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허페이(合肥)의 하이얼사 제3공장 지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포스코건설은 주설비의 설계와 설비공급을 담당했다.

하이얼 CCL의 성공적인 수행은 한단강철 수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02년 12월 포스코건설은 일본과 미국 등 제철 전문 엔지니어링 업체와의 국제경쟁을 통해 허베이성(河北省)에 소재한 한단강철의 연산 12만 톤 규모 CCL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포스코건설은 주설비의 설계와 설비공급을 담당해 2003년 4월 착공, 2004년 6월 준공했다.

한단강철에 이어 포스코건설은 일본과 유럽의 엔지니어링 업체와 국제경쟁을 통해 윈난성(雲南省)에 소재한 곤명강철의 연산 15만 톤 규모의 CGL과 10만 톤 규모의 CCL 설비공급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주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2003년 1월 착공, 2004년 8월 준공한 곤명강철 프로젝트에서 포스코건설은 핵심 기술과 주요 설비를 공급하고, 발주처가 직접 발주하는 중국 현지 제작분에 대해서도 제작관리 및 기술지도를 제공했으며, 아울러 시운전과 조업 교육까지 담당했다.

대만 프로스페리티사와 CGL 설비공급 계약 체결

대만 프로스페리티사와 CGL 설비공급 계약 체결

곤명강철에 이어 포스코건설은 2004년 2월 대만 철강회사 프로스페리티사와 CGL 설비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 프로젝트는 그 동안 일본과 유럽 공급사들이 주도해온 대만시장에 포스코건설이 최초로 진출한 사업이어서 그 의의가 더욱 남달랐다. 2005년 9월 준공된 연산 20만 톤 규모의 CGL 1기 공급 프로젝트에서 포스코건설은 설계와 설비기자재 공급을 수행했다.

이 시기 제철 한류 열풍은 중국뿐 아니라 저 멀리 열사의 나라 중동 이란까지 퍼져나갔다. 1999년 12월 포스코건설은 이란의 국영 철강사인 니스코가 발주한 2억 3300만 달러 규모의 에스파한 제철소 제선설비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수주전에는 일본, 영국, 독일 등 세계적 철강전문 엔지니어링 제작사들도 참여했다.

포스코건설은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우리나라 제철소 건설 30년 역사상 최초로 이란에 고로와 소결, 부대설비 등 연산 140만 톤 규모의 제선설비 일체를 수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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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철 분야 신기술 확보와 마이다스 벤처 성공

파이넥스 데모 플랜트 준공

파이넥스 데모 플랜트 준공

제철 플랜트 분야가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까지의 과정에는 포스코건설의 기술경영 의지가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IMF 위기 때 포스코건설은 제철 플랜트에서 고로, 노외정련, 연주, 표면처리, 파이넥스를 5대 핵심사업으로 선정하고 이 분야의 기술개발에 주력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파이넥스, 시험연주기 설비, 포스트립(poStrip) 데모 플랜트, 광양 CGL 파일럿 플랜트 등에서 많은 가능성을 열었다.

파이넥스 프로세스는 코렉스보다 한 단계 발전된 제철기술이며, 소결이나 코크스 제조공정이 필요 없다. 특히 분광석을 직접 사용해 쇳물을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포스코는 1990년대 초부터 파이넥스 기술개발에 착수했으며, RIST와 오스트리아 푀스트알피네가 기술개발 전반을 주도했다.

파이넥스 파일럿 플랜트에 참여했던 포스코건설도 후속사업인 파이넥스의 상업화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데모 플랜트 건설에 참여하면서 파이넥스추진반을 발족시키는 등 포스코, 푀스트알피네와 공동으로 직접 투자에 나섰다.

2001년 1월 착공, 2003년 6월 준공한 파이넥스 데모 플랜트 건설은 업무 분담에 따라 푀스트알피네가 기본설계를 수행했으며, 포스코건설이 상세설계, 설비조달 및 설치공사를 담당했다. 그러나 데모 플랜트를 구성하는 설비 중의 하나인 성형탄 제조설비에 대해서는 포스코건설이 기본설계를 포함해 개발 및 건설에 필요한 모든 업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했다.

포스코건설은 연속주조 설비 국산화에도 참여했다. 1998년부터 산업자원부 지원으로 추진된 이 프로젝트에는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포스코, 포스콘, 로템 등 총 11개 기업과 연구소, 대학 등으로 구성된 연구 인력이 참여했다.

포스코건설은 1998년 10월부터 2000년 9월까지 핵심설비 설계기술 개발에 참여했으며, 2000년 10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개발된 설계기술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연주기 건설공사를 수행했다. 마침내 2003년 5월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 제작된 연속주조 파일럿 설비가 준공됐으며, 이로써 우리나라는 연속주조 설비의 설계·제작 국산화에 성공했다.

마이다스 패밀리 프로그램 발표

마이다스 패밀리 프로그램 발표

연주설비와 열연설비를 한 공장에 통합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인 스트립 캐스팅 기술개발에도 참여했다. 포스트립 데모 플랜트라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2004년 6월 착공해 2006년 6월 준공했다. 이후 포스코와 포스코건설은 상업화를 위한 조업 테스트를 시행하면서 생산제품의 상용화를 실현해나갔다.

RIST가 추진 중이던 광양 CGL 파일럿 플랜트 신설에도 참여했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IMF 위기를 맞아 포스코가 투자를 축소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건설은 구성설비 중 일부 전문 품목을 제외하고 모든 설비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 같은 국산화를 통해 확보된 핵심설비에 대한 기반기술은 이후 표면처리 분야 CGL 설비의 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한편 2000년 8월부터 포스코건설은 사내벤처 제도를 운영했다. 사내벤처의 성공작으로는 마이다스가 있었다. 구조물 설계 업무의 전 과정을 자동화하기 위해 PEC 시절이던 1989년부터 꾸준한 연구개발과 보완작업을 거듭해 1996년 11월 마침내 포스코건설은 마이다스 패밀리 프로그램 상용화에 성공했다. 시판에 들어간 마이다스는 선진 외국업체가 개발한 상용 소프트웨어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나 판매가 급증했다.

포스마이다스 창립기념식

포스마이다스 창립기념식

포스코건설은 마이다스가 상업화에 성공하자 사내벤처의 모범사례로서 분사를 추진했으며, 2000년 9월 구조해석용 설계 프로그램인 마이다스의 개발 및 판매 등 관련업무 일체를 담당할 독립법인인 주식회사 포스마이다스가 탄생했다.

포스마이다스는 설립 이후 첨단 구조해석 컨설팅 사업, 3D CAD 사업,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솔루션 사업 등 사업영역을 확대했으며, 전략적 제휴를 통해 미국시장 진출에도 성공했다. 2001년 ㈜마이다스아이티로 상호를 변경한 후에도 중국과 미국에 법인을 설립하고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 등에 대리점을 개설하면서 벤처 성공신화를 지속해나갔다.

cfinex

6. 파이넥스 2공장 준공과 플랜트 EPC 기술력 강화

파이넥스 공장 준공식

파이넥스 공장 준공식

주택사업에서 주부자문단이 출범하는 등 고객마케팅 활동을 강화할 즈음 제철 플랜트에서는 독보적인 기술력의 친환경 파이넥스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2004년 8월 착공, 2007년 4월 준공된 파이넥스 2공장은 60만 톤의 데모 플랜트보다 그 용량이 150만톤으로 커졌고, 데모 플랜트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을 개선해 설계, 제작, 시공에서의 오류를 최소화했다.

준공 과정에서는 오스트리아 푀스트알피네사가 기본설계를 맡았고, 포스코건설이 상세설계와 제작, 시공을 담당했다. 플랜트 단일공사로는 공사비용 6610억 원으로, 당시로는 최대 규모였으며, 시공 물량만도 기계공사 8만 6000톤으로, 300만 톤 고로 2기를 동시에 건설하는 것과 맞먹는 대규모 공사였다.

파이넥스 외에도 이 시기 제철 플랜트는 제선과 제강 분야에서 EPC 기술력을 강화했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고로 개수에서는 대표적으로 광양 2고로 1차, 포항 3고로 2차, 광양 3고로 1차 개수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특히 포항 신제강, 광양 5코코스 등 대규모 신설사업을 수행하면서 새롭게 기술력을 다져나갔다. 포스코 발주 외 대외사업으로는 유니온스틸 CGL(2007.12-2009.6)을 수행하기도 했다.

광양 3고로 1차 개수 화입식

광양 3고로 1차 개수 화입식

고로 개수에서는 광양 2고로 1차 개수(2005) 때 처음으로 1000톤 크레인을 투입, 당시로서는 최단기간인 66일 만에 과업을 완료했다. 광양 2고로 1차 개수에서 세운 최단기간 기록은 포항 3고로 2차 개수(2006)에서 다시 갱신됐다. 세계 최초로 대블록 3개를 적용해 58일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광양 3고로 1차 개수(2007)에서 또 다시 깨졌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중블록 8개를 적용한 것이 기록 갱신의 주요 요인이었다.

포항 신제강 신설사업(2007.12-2011.3)은 제강 프로젝트로는 초대형급이었다. 신제강 신설사업을 위해 51개의 프로젝트가 단계별로 추진됐으며, 투자비용만 1조 500억 원에 달했다. 그 중 순수하게 신제강 신설 단독 프로젝트에만 전체 사업비의 53% 수준인 5300억 원이 투자됐다.

사업추진 과정에서는 예기치 못한 공기연장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첫 번째 공기연장은 2009년도 상반기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5개월간 공사가 중단됐으며, 환차손에 의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손실이 발생했다. 하지만 포스코가 인도적 차원에서 소재비 보전을 추진함으로써 모든 협력업체와 고통을 분담했다.

두 번째 공사 중단은 2010년도 하반기로, 기간은 5개월이었다. 포항시의 건축 인허가 오류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고도제한에 대한 사전 검토가 미흡했다. 이로 인해 일부 협력업체에서 부도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포항 신제강은 준공 후 트러블 없이 조기 조업을 달성했다. EPC 통합 운영과 공사 중단에도 프로젝트 요원들이 쉬지 않고 기술검토와 수정을 반복한 결과였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포항 신제강 신설을 통해 처음으로 제강 분야 EPC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광양 5코크스 신설사업을 통해서도 처음으로 이 분야 EPC 기술력을 확보했다. 이 사업은 오븐, 화성 설비, CDQ 설비, 선탄 설비 등 4가지 패키지로 구성된 대규모 프로젝트로, 여기에 투입되는 사업비만도 5593억 원에 이르렀다. 포스코건설이 전체 EPC를 맡았으며, 오븐과 화성 설비의 설계는 독일의 우데사가 담당했다.

광양 5코크스 계약식

광양 5코크스 계약식

1단계(2008.11-2010.11)와 2단계(2009.12-2011.11)로 나눠 추진된 광양 5코크스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움이 많았다. 토목공사에서는 공사현장 부지가 제철소에서 나오는 폐기물 매립장이었던 관계로, 폐기물을 처리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에 공기 만회를 위해 설계와 시공이 동시에 추진하는 패스트 트랙 공법이 추진되기도 했다.

이 같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준공 이후 광양 5코크스는 동양 최초의 자동화설비 구축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등 최신예 제철소라는 명성을 얻었다. 특히 이 시기 포항 신제강과 광양 5코크스에서 확보한 기술력은 이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대형 해외 프로젝트 현장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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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플랜트 최초 일본 진출, 아시아특수강 준공

아시아특수제강 준공식

아시아특수제강 준공식

독보적인 기술력의 친환경 파이넥스가 세계 최초 상용화에 성공하고, 포항 신제강과 광양 5코크스 신설로 EPC 기술력을 확대해나가던 이 시기에 해외사업에서는 2009년 10월 일본 아시아특수제강의 성공적 준공으로 플랜트 역수출의 기술력을 과시했다.

이 시기 제철 플랜트 해외사업에서는 아시아특수제강 외에 포스코-베트남 냉연, 포스코-멕시코 CGL(2007.10-2009.6), 사우디아라비아 하디드사 CCL(2005.4-2007.8), 인도 이스코사 고로(2007.10-2010.3)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08년 8월 착공, 2009년 10월 준공된 일본 아시아특수제강 신설사업은 총 사업비가 약 180억 엔이며, 60톤 규모의 전기로 제강공장, 연간 생산용량 12만 톤의 조괴공장 시공 및 설비공급을 핵심으로 하고 있었다. 포스코P&S와 일본 특수강용 블룸 전문 제조회사인 고토부키공업이 설립한 합작회사로서, 키타규슈 히비키나다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일본 첫 진출과 전기로시장 개척 외에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1968년 포항 영일만에 제철소를 건설할 때 들어간 기술 대부분이 일본 작품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근 40년 만에 플랜트 역수출의 성과를 달성한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일본관청의 까다로운 인허가 과정, 영어가 아닌 일본어 소통의 난관, 발주처의 완벽한 기술력 요구 등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꼼꼼하고 세심한 노력, 적극적인 기술지원과 설득을 통해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베트남 냉연공장은 포스코가 동남아시아 시장 고급 철강 수요를 겨냥해 이 지역 최대 규모로 계획한 프로젝트였다. 연산 120만 톤 규모의 PL/TCM 1기, 연산 70만 톤 규모의 CAL 1기, RCL/CPL 각 2기와 유틸리티 설비를 신설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호치민에서 남쪽으로 125km 떨어진 붕따우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사업비는 약 2억 2465만 달러 규모였다.

2007년 8월 착공, 2009년 9월 준공된 이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토건공사에서는 부지가 연약지반이라 급히 설계를 변경했고, 그 과정에서 1개월의 공기지연이 발생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24시간 철야작업에 들어갔으며, 주요 공사에는 국내 기술진을 투입했다.

베트남 냉연공장 착공식

베트남 냉연공장 착공식

기전공사에서는 베트남 현지의 건설 인프라 취약으로 품질확보의 어려움이 예상됐다. 이에 주요 설비는 국내업체에게 맡기고, 현지인력에 대한 기능교육을 강화함으로써 기전공사의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그러나 수전공사에서 또 다시 1개월의 공기지연이 발생했다. 베트남에서는 유럽이나 일본 기업이라도 기후와 지역 특성상 1년 정도의 공기지연이 기본이었다. 그러다 보니 베트남 전력청은 수전을 요청해오면 6개월 늦게 넣어주는 것을 관례로 여겼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스코건설은 전력청 간부들을 현장으로 초청했고, 현장을 둘러본 전력청 인사들은 빠른 진행 속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전력청 인사의 현장 초청을 통해 남들보다 빨리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었지만, 1개월의 공기지연은 막지 못했다. 지연된 공기는 이후 철야작업으로 만회했다.

베트남 냉연 프로젝트는 초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기를 준수하고 경제적 운영으로 수익성마저 확보하는 등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성과로는 해외 최초 단독 EPC 기술력 확보가 있으며, 특히 CAL 핵심설비의 자력설계와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냉연공장 EPC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과시했다.

베트남 냉연공장 준공식

베트남 냉연공장 준공식

cbrazil

3. 제철·에너지 중남미 활약,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 수주

에너지 분야 해외사업은 칠레에 이어 페루에서 선전했다. 칠레에서는 벤타나스 성공신화를 바탕으로 캄피체, 앙가모스에 이어 산타마리아Ⅱ, 코크런, 카스틸라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공사를 연속으로 수주했다. 페루에서는 칼파에 이어 칠카우노 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10.03.30 산타마리아2 발전소 계약식

2010.03.30 산타마리아2 발전소 계약식

2010년 3월 수주한 산타마리아Ⅱ는 사업비 7억 달러 규모의 발전용량 400MW급 석탄화력발전소였다. 발주처는 칠레 2위의 전력생산업체인 콜번사이며, 발전소의 위치는 산티아고에서 남서쪽으로 약 450km 떨어진 항구도시 코로넬이었다.

2011년 11월 칠레 발전사업자 코크런으로부터 수주한 코크런 발전소는 앙가모스 옆 부지에 266MW급 석탄화력 발전설비 2기를 신설하는 EPC 턴키 프로젝트였다. 총 사업비는 9억 달러 규모였다.

산타마리아Ⅱ와 코크런에 이어 2012년 6월 포스코건설은 브라질계 다국적 전력회사인 MPX사로부터 카스틸라 발전소를 수주했다. 사업비는 15억 달러 규모이며, 350MW 석탄화력 발전설비 2기를 신설하는 EPC 턴키 프로젝트였다.

한편 앙가모스 프로젝트는 지진과 노조파업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조기 준공은 물론, 500만 시간 무재해 기록을 세워 발주처로부터 약 70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았다.

칠레 성공을 기반으로 포스코건설은 국내 건설사로서는 처음으로 페루 에너지시장에 진출했다. 2009년 9월 세계 유수의 경쟁사인 아벤고아, 지멘스 등을 제치고 사업비 3억 5000만 달러 규모, 발전용량 830MW급의 칼파 LNG 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이 프로젝트는 페루 리마에서 약 62km 떨어진 칠카에 위치한 기존의 발전시설을 복합발전시설로 개조하는 사업이었다.

칼파에 이어 포스코건설은 칠카우노 복합화력발전소 수주에도 성공했다. 프랑스 GDF 수에즈사의 페루 현지법인 에네루수르사가 발주한 이 프로젝트는 사업비 2억 9000만 달러 규모, 발전용량 810MW급의 LNG 복합화력 건설사업이었다.

칠카우노 복합화력발전소 전경

칠카우노 복합화력발전소 전경

중남미 프로젝트가 계속 늘어나면서 포스코건설은 사업의 성공적 수행과 영업활성화를 위해 현지화를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2011년 에콰도르 EPC 중견기업 산토스CMI를 인수했다.

현지업체 인수 이후 포스코건설은 해외사업에서 산토스CMI를 적극 활용했다. 상호 협력을 통한 대표적 수주 성공 프로젝트로는 페루 노도 발전플랜트가 있었다.

페루 현지 발전회사인 싸마이사가 리마에서 약 1055km 떨어진 남부지방 모옌도에 사업비 3억 달러 규모, 발전용량 720MW급의 노도 가스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자 포스코건설은 산토시CMI와 공동으로 이 프로젝트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독일의 지멘스, 스페인의 아벤고아, 테크니카스 레우니다스 등과 치열한 경합을 펼친 결과, 2014년 1월말 포스코건설은 노도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하며 중남미 에너지 플랜트 시장의 강자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제철 분야는 중남미에서 크게 활약했다. 이 시기 제철 플랜트의 무대는 멕시코와 브라질이었다. 특히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의 수주는 포스코건설 해외사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최대 성과로, 그야말로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화룡점정이었다.

2011년 12월 중순 EPC 일괄 턴키 계약을 체결한 CSP 일관제철소 프로젝트는 대한민국 해외 수주사상 단일 제철 플랜트로는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였다.

CSP는 브라질 최대 철광석 공급사인 발레가 50%. 동국제강이 30%, 포스코가 20% 지분을 투자해 설립한 합작법인이었다. 사업비 43억 4000만 달러 규모의 CSP 일관제철소는 브라질 북동부 세아라주 뻬셍 산업단지 내 위치하고 있었다.

1단계에서 연산 300만톤의 슬래브를 생산하는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고, 이어서 2단계에서 누계 600만톤 규모로 완공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1단계의 규모는 원료 및 소결, 코크스 설비, 고로, 제강, 연주, 발전 및 부대설비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브라질 CSP 수주를 계기로 포스코건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관제철소 EPC 기술력을 가진 건설사로서의 위상을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었다.

CSP에 이어 2013년 11월 포스코건설은 브라질 CSS사로부터 사업비 6억 달러 규모의 하공정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열연 20만톤, 냉연 60만톤 등 총 80만톤 규모의 판재류를 생산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주요 공급설비는 열간 압연기, 냉간 압연기, 부대설비 및 설치공사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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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CSP 일관제철소 공사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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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첫 일관제철소 크라카타우포스코 준공

제철 분야는 중남미 외에도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왕성하게 해외사업을 펼쳤다.

인도에서는 포스코-마하라슈트라 CGL과 냉연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CGL공장(2009.12-2012.5)은 사업비 1억 9000만 달러, 연산 45만톤 규모였으며, 냉연공장(2011.5-2013.12)은 사업비 3억 달러, 연산 180만톤 규모였다.

베트남 하띤 일관제철소 프로젝트 공사현장 전경

베트남 하띤 일관제철소 프로젝트 공사현장 전경

베트남에서는 대만 포머사의 하띤 일관제철소 프로젝트 중에서 원료처리설비, 열연공장, 화성공장 수주에 성공했다.

당시 포스코건설은 중국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맞서 막강한 사업수행 체계를 구성했다. 본사, 베트남법인, 중국법인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연합작전을 펼쳤다. 본사는 총괄관리와 핵심부품 공급을, 베트남법인은 시공을, 중국법인은 자재공급을 맡았다. 베트남법인의 철구공장 역시 철구 공급에 참여했다.

그 결과 2012년 말부터 2013년 중반까지 원료처리설비, 열연공장, 화성공장 시공 계약권을 잇따라 따냈다. 원료처리설비 공사는 사업비 4억 달러, 연산 700만톤 규모였으며, 열연공장 시공은 사업비 3억 달러, 연산 530만톤 규모였다. 화성공장은 사업비 7400만 달러로, 시간당 150만 N㎥의 가스를 처리할 수 있는 규모였다.

포머사 프로젝트에 이어 2013년 12월초 동티모르 시멘트 플랜트 수주에도 성공했다. 동티모르 TL시멘트사가 발주한 3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북동부 바우카우 지역에 연산 150만톤 규모의 시멘트공장 건설이 주목적이었으며, 특히 신생국가 동티모르 내 최대 규모의 민간투자사업이란 점에서 현지 사회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 시기 제철 분야 해외사업에서 가장 큰 성과는 크라카타우포스코 일관제철소 준공이었다. 포스코건설 역사상 첫 일관제철소 준공이었던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포스코는 포스코 70%, 국영 철강사 크라카타우스틸 30% 지분의 합작법인이었으며, 위치는 자카르타에서 서쪽으로 100km 떨어진 반텐주 찔레곤이었다.

건설계획은 브리질 CSP 일관제철소와 마찬가지로 1단계에서 조강 300만톤급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고 이어서 2단계에서 누계 600만톤 규모로 완성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1단계의 규모는 고로, 소결, 코크스, 제강, 연주, 후판 등 6개의 주설비로 이루어졌으며, 그 외 15개의 부대설비로 구성돼 있었다.

총 사업비 30억 달러 규모의 1단계 일관제철소 건설에서 포스코건설은 EPC 일괄 턴키를 맡아 16억 8000만 달러를 수주했다. 포스코패밀리도 동반 진출해 포스코에너지가 200MW급의 발전소 건설을 맡았으며, 포스코ICT는 IT통합운영시스템 구축을 담당했다. 포스코엠텍은 알루미늄 탈산제 생산시스템 구축을 맡았다. 그 외 284개나 되는 중소기업이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동반성장의 모델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포스코 일관제철소 전경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포스코 일관제철소 전경

크라카타우포스코는 2010년 10월말 전체 규모 370헥타르에 대한 부지조성을 시작으로, 2011년 7월초 착공에 들어감으로써 일관제철소 건설이 본격화됐다. 그리고 2013년 12월 23일, 마침내 크라카타우포스코 1단계 사업이 성공적으로 준공됐다. 이를 계기로 포스코는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를 연결하는 철강벨트를 완성함으로써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철강사로 한 단계 도약했다.

무엇보다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경험은 브라질 CSP 성공 가능성을 높였다. 브라질 CSP의 최고경영층 등 많은 인사들이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를 산 교육장으로 삼았으며, 그들은 인도네시아 프로젝트 성공을 목격하고 포스코건설의 기술력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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