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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환경사업 분야 정상에 올라

흥해 하수종말처리장

흥해 하수종말처리장

항만, 부지조성과 마찬가지로 환경사업 분야도 포스코 환경관련 공사 경험을 바탕으로 대외사업에 진출했다. 특히 이 분야는 지속적인 기술축적으로 업계 최정상에 올라 그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

사실 설립 초기 환경 분야는 포스코 물량에만 집중했다. 광양 3배수 종말처리장 등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1997년을 기점으로 포스코의 조강증산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환경관련 공사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결국 환경 분야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바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포스코건설은 대외사업 진출에 앞서 먼저 제철산업에 국한돼 있던 환경사업을 범용성 있는 공공부문 사업으로 확대하기 위해 1997년 말부터 기술축적에 나섰다. R&D의 방향은 하수 고도처리 기술의 도입이었다. 그 이유는 환경사업의 70%를 차지하는 하수종말처리장 건설이 고도처리 방식으로 패턴이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1998년 7월 포스코건설은 BIO SAC-BNR이라는 하수 고도처리 기술도입을 완료했다.

그러나 경쟁업체들의 견제가 만만치 않았다. 그 동안 포스코 사업 독식에 대한 질투가 있었으며, 자기 밥그릇을 챙기려는 보호본능도 강했다. 포스코건설은 1998년 하반기부터 공공영업에 본격적으로 나섰으나, 한산지방산업단지 폐수종말처리장에 이어 3곳의 하수종말처리장 턴키공사 수주에 연이어 실패했다.

그럴수록 포스코건설은 더욱 고삐를 죄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1999년 하반기에 울진 하수종말처리장 수주에 성공했다. 이 사업은 포스코건설이 환경 분야에서 최초로 수주한 턴키 프로젝트였다. 곧이어 포항 흥해하수종말처리장도 수주하는 등 2000년대 접어들면서 포스코건설은 환경 분야 빅3 업체(삼성물산 건설부문, 태영, 포스코건설)로 성장했다.

더욱이 2003년부터는 적극적인 수주전을 펼쳐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1000억 원 가까운 수주 체계를 구축해나갔다. 2003년 한 해 동안 입찰에 참여한 하수처리시설 9건 중 회원사로 참여한 2건을 포함해 7건을 수주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2004년에 들어와 포스코건설은 더욱 독보적인 행보를 보였다. 중랑천 하수종말처리장 고도처리 시설공사를 비롯해 음성 대소 하수종말처리장, 파주 LCD단지 하수종말처리장 공사를 잇달아 수주하면서 마침내 업계 정상에 올라섰다.

하수종말처리장에 이어 포스코건설은 사회적 이슈인 생활쓰레기 처리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고 기술개발에 들어갔다. 쓰레기 소각 기술로는 신일본제철의 용융식 소각로 기술에 주목했다. 이 기술은 일본 내에서 30기 이상 쓰레기 소각로 적용에 성공한 기술이었다. 특히 용융기술 분야는 제철소 건설 경험을 통해 이미 포스코건설도 어느 정도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양산 자원회수처리시설 조감도

양산 자원회수처리시설 조감도

결국 포스코건설은 용융식 소각로 방식이 향후 청정기술로 사업전망이 밝다고 예견하고 2002년에 신일본제철로부터 이 기술을 도입했다. 포스코건설의 예상대로 2003년 말 양산시는 새로운 방식의 자원회수시설 건설사업에 대한 입찰공고를 발표했다.

턴키 방식으로 진행된 이 입찰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활 쓰레기의 처리 방식을 연소 방식 대신 용융소각 방식을 채택해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포스코건설은 이 입찰에서 경쟁자들과 치열한 경합을 펼친 결과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주에 성공했다. 국내 최초의 용융소각로인 양산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함에 따라 포스코건설은 쓰레기 소각 분야에서도 선두주자로 올라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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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환경 분야 선전과 김포하수처리장 착공

김포 하수처리장 기공식

김포 하수처리장 기공식

이 시기 환경 분야 대표적 프로젝트로는 민자사업이었던 김포시 하수처리장이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김포하수처리장에 4만 톤을 증설하고, 통진과 고촌지역에 각각 4만 톤과 1만 톤 규모의 하수처리장을 신설하는 사업이었다. 총 공사비 2048억 원 규모의 이 사업에서 포스코건설은 30%의 지분을 갖고 GS건설, 대림산업 등 8개사와 공동으로 2009년 7월부터 시공에 들어갔다.

그 외 수처리 분야의 대표적 프로젝트로는 파주 LCD산업단지 폐수종말처리시설 2단계(2005.12-2007.10), 인천 학익 하수종말처리시설(2005.8-2008.8) 등이 있었다. 파주 프로젝트는 GS건설이 석권하던 지역에 타 건설사로는 유일하게 교두보를 확보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인천 학익 프로젝트는 하수처리장 사업비 규모로는 당시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수처리 분야는 하수처리장에 이어 관로 오염방지와 수질 향상을 위한 하수관거 정비사업까지 더해져 더욱 활성화됐다. 포스코건설은 이 분야에서도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하수처리장에 이어 하수관거 정비사업에서 업계 정상을 달렸다.

자원재이용 분야에서는 용융 소각로 기술로 양산시 프로젝트에 이어 고양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하수슬러지 연료화 기술로는 수원시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쓰레기 자동집하시설인 자동크린넷시설로는 용인 흥덕지구, 인천 청라지구, 파주 운정지구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고양시 환경에너지시설 전경

고양시 환경에너지시설 전경

2006년 1월 포스코건설은 환경관리공단에서 발주한 ‘고양시 환경에너지시설 신기술 대체사업’ 수주에 성공했다. 이 사업에서 포스코건설은 기존 소각장과 달리 다이옥신 소각재에 의한 2차 오염 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신기술인 열분해가스화 용융방식을 적용했다. 2006년 2월 착공에 들어가 2010년 12월 150톤 규모의 열분해가스화 용융시설 2기와 50톤 규모의 재활용시설 1기를 준공했다.

자동크린넷과 하수슬리지 분야는 새롭게 개척한 사업분야였다. 청라지구 자동크린넷 시설공사(2008.4-2013.12)는 쓰레기 집하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포스코건설은 높은 수익률보다는 미래 경험치에 무게를 두고 전략적으로 접근해 이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하수슬러지 분야는 기술개발에 의해 개척한 분야였다. 2000년대 초 포스코건설은 폐자원인 유기성 슬러지를 이용해 혼합, 성형, 건조 공정을 거쳐 고품질·친환경 슬러지 연료탄을 생산하는 하수슬러지 연료화 기술을 개발해냈다.

이 기술은 2003년 환경신기술 인증을 받았고, 이어서 수원시 하수슬러지 처리시설에 적용됐다. 2007년 6월 착공, 2009년 12월 준공된 1일 450톤 처리규모의 수원시 하수슬러지 처리시설은 단위 규모로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환경 분야는 이처럼 기존의 하수 고도처리 기술과 용융 소각로 기술에다 하수슬러지 연료화 기술을 추가하며 업계 정상을 계속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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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토목환경 분야 수주 2조 원 시대 열어

2004년 시작과 함께토목환경사업본부는 수주 1조 원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때 도로 분야는 목표 달성을 위해 턴키시장에서 최저가 출혈을 감수하면서 실적을 쌓아갔고, 한편으로는 민자제안을 통한 SOC사업에 주력했다. 그 결과 2006년도에 수주 1조 원을 달성했고, 이어서 목표를 상향 조정해서 2009년도에 수주액 2조 원을 돌파했다.

도로 분야는 턴키시장에서 분전했다. 초창기 저가 출혈의 고통도 있었으나, 차곡차곡 실적을 쌓아나가 선발업체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이 시기 착공에 들어간 도로공사로는 고속도로 확장에서 88고속도로 담양-성산 구간, 남해고속도로 냉정-부산 구간 등이 있었다. 신설 고속도로는 동서고속도로 동홍천-양양 구간, 울산-포항 고속도로, 전주-광양 고속도로 등이 있었다.

그 외 도계-신기 도로확장, 광암-마산 도로확장, 영덕-오산 광역도로, 행정도시 대전-유성간 도로, 행정도시 우회도로, 교동연육교, 인천대교 연결도로, 여수산단 진입도로 등의 프로젝트가 있었다.

88고속도로 확장공사는 144km의 담양-동고령 구간의 왕복 4차선 확장 및 직선화 공사였다. 포스코건설은 이 사업에서 담양-성산간 도로 확장 3공구와 13공구(2008.11-2012.12)를 맡았다.

전주-광양간 고속도로 8공구 건설현장

전주-광양간 고속도로 8공구 건설현장

117.8km의 순천완주고속도로에서는 전주-광양간 8공구(2005.3-2011.12)를 맡았는데, 회사로서는 최초의 호남지역 고속도로 현장이었다. 특히 ILM 교량공법의 장대교 5개소, 소교량 7개소, 총 4개의 터널공사 등 당시로서는 도로공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공정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준공 이후 남원JCT교는 2012년에 대한토목학회가 주최한 올해의 토목구조물상 시상에서 은상을 수상했다.①

울산-포항간 고속도로 신설 10공구(2009.6-2014.12)에는 245km의 장대터널 시공이 포함돼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터널 시공 과정에서 현장 여건에 맞게 설계변경을 단행함으로써 원가절감과 실행이익률을 개선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 외에도 많은 도로공사를 수행했는데, 그 중 영덕-오산간 광역도로 1공구(2006.10-2009.8)는 포스코건설이 처음으로 턴키공사 주간사를 맡은 프로젝트였다. 특히 최초 사장교 시공의 경험을 축적한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영덕-오산간 광역도로 1공구 공사 전경

영덕-오산간 광역도로 1공구 공사 전경

도계-신기 확장공사(2007.2-2014.12)는 하천부의 가시설 형식을 철구조에서 복합형으로 변경해 차수 효과와 시공성을 향상시켰으며, 보강 작업을 통해서도 터널의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여수산단 진입도로 개설공사 4공구(2007.11-2013.4)는 세계에서 3번째로 긴 현수교인 이순신대교를 연결하는 해상교량 공사였다. 포스코건설은 2004년 완공한 첫 해상교량 프로젝트였던 길호대교 수행 이후 오랜만에 해상교량 사업을 수행해 1075m의 해상교량 실적을 확보했다.

세종시-대전유성 확장공사(2008.8-2012.5)는 도로 중앙 자전거길이 특징이었고, 세종시 국도 1호선 우회도로 1공구(2008.6-2013.3)는 포스코건설이 처음으로 시공한 개착식 지하차도였다. 인천 교동연륙교(2008.10-2014.6)는 해상교량 실적 확보 차원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해 310m의 콘크리트 사장교를 시공했으며, 광암-마산간 도로 확포장공사(2009.6-2014.9)는 경기도 지자체 사업으로 2km 이상급 장대터널이 특징이었다.

민자제안을 통한 SOC사업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했다. 2005년 최초 제안한 산성터널 만자사업이 사업추진 성공까지 이어졌으며,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김포 구간에서는 최초 제안 건설사의 워크아웃 판정으로 민자사업 사상 처음으로 주간사의 지위를 확보했다.

산성터널에 이어 포스코건설은 2007년 7월에 과천-송파간 도로, 2008년 5월에 검단-장수간 도로 사업계획을 제안함으로써 대도시권 사업발굴 역량을 한층 다졌으며, 민자사업에서의 위상도 정상급으로 올라섰다. 그밖에 홍대 지하주차장 민자사업은 마포구청이 시설사업기본계획에 따라 발주한 프로젝트였다. 2008년 11월 포스코건설은 이 사업의 입찰에 참여해 사업자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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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국내 최초 폴란드 소각플랜트 수주

이 시기 환경 분야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담수플랜트,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하수처리장, 폴란드 소각플랜트, 중남미 하수도개선 마스터플랜, 베트남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10년 8월말 수주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담수 프로젝트는 미르파 담수 배관망으로부터 잉여담수를 받아 하루 3만톤씩 최대 2700만톤을 사막 지하 85m 대수층에 저장하는 사업으로, 이는 아부다비 시민 44만 명에게 90일간 식수를 제공할 수 있는 양이었다. 현지 건설사인 ACC와 공동으로 수주했으며, 사업비는 1억 9750만 달러 규모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포스코건설은 담수저장소 3개소와 펌프장 4개소, 길이 161km의 배관망 등의 신설공사를 맡았다.

아부다비 담수에 이어 2011년 2월 포스코건설은 한라산업개발과 함께 사업비 8500만 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하수처리장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이 프로젝트는 사우디 제다항 북쪽 350㎞ 지점에 있는 홍해연안 얀부 산업단지 내 하수처리장(처리용량 2만 7000㎥/일)을 확장해 하루 4만 7000㎥의 하수를 처리할 수 있도록 개조, 증설하는 건설공사였다.

폴란드 소각플랜트 조감도

폴란드 소각플랜트 조감도

이 시기 환경 분야 해외사업 최대의 성과는 동유럽 첫 진출작인 폴란드 소각플랜트 수주였다. 2012년 11월 포스코건설은 폴란드 크라쿠프시가 발주한 2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생활폐기물 에너지화 발전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이 사업은 소각로 2기와 열병합 발전설비가 들어가는 프로젝트로, 하루 약 680톤, 연간 약 22만톤의 생활폐기물을 처리하게 되며, 처리된 폐기물은 에너지로 재활용돼 연간 약 9만 5000MW의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이 프로젝트의 추진배경은 동유럽의 환경인프라 개선이었다. 당시 EU는 동유럽의 환경개선을 위해 환경인프라 지원펀드를 만들어 대규모 소각플랜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는 매립 방식의 동유럽 폐기물을 소각으로 전환하는 사업이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1차 펀드에 이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2차 펀드에 대한 사업자 모집이 2011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포스코건설은 동유럽 국가 중 폴란드를 주목했으며, 지원금 유치에 나선 슈체진, 코닌, 비알리스톡, 크라쿠프 등 5개 지자체 중에서도 사업 규모가 가장 컸던 크라쿠프시에 역량을 집중했다.

2011년 1월경 포스코건설은 폴란드 내 네트워크가 탄탄한 삼성물산을 에이전시로 확보하고 본격적으로 사업 참여에 나섰다. 설계 및 기자재공급 파트너로는 독일업체 렌트제스(Lentjes)를 선택했다.

2011년 9월 제안서가 PQ를 통과했으며, 입찰경쟁에는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4개 업체가 뛰어들었다. 대부분 폴란드업체가 유럽과 일본의 쟁쟁한 기술선들과 연대했다. 이후 7개월간의 준비작업 끝에 2012년 4월 최종 경쟁입찰이 실시됐다. 결과는 모스토스탈-히타치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폴란드만의 독특한 절차적 합리주의인 어필링 프로셔(appealing procedure) 과정이 남아 있었다.

어필링 프로셔는 낙찰자의 제안이나 기술에 문제가 있을 경우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였다. 이때 반론의 진실여부를 판단하는 조직이 중재위원회이며, 중재위원회에 의해 반론이 인정되면 낙찰자는 자격을 잃었다. 바로 이 어필링 프로셔를 통해 2012년 11월 마침내 포스코건설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동유럽에 이어 중남미 진출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환경부의 하수도개선 마스터플랜 수립 지원사업에 참여했다.

2012년 환경부 공모에서는 GS건설, 대림건설, SK건설, 롯데건설 등과 경합을 펼쳐 페루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수주 성공요인은 페루에 지사가 있는 등 경쟁사들보다 중남미에 대한 경험이 풍부했고, 제안서의 내용 역시 경쟁사들에 비해 탄탄했다. 2013년 환경부 공모에서는 멕시코를 수주하고 하수도개선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담수,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하수처리장, 중남미 하수도개선 마스터플립 수립 등의 수행 경험을 기반으로 포스코건설은 베트남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호치민시의 2단계 사업이었던 이 프로젝트는 기존 1일 처리용량 14만 1000톤을 1일 32만 8000톤으로 증설하는 사업이었다.

수주에 앞서 포스코건설은 프랑스, 일본 대표 수처리업체와 글로벌 드림팀을 구성했다. 프랑스의 오티브이는 수처리를 비롯해 해수담수화, 물재이용 분야에서 많은 경험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일본의 히타치 역시 하수와 폐수처리 분야에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막강한 드림팀 구성 결과, 2014년 1월 포스코건설은 1억 2000만 달러 규모의 베트남 호치민 하수처리장 2단계 건설공사 수주에 성공했다. 이 사업에서 포스코건설은 토목과 건축 시공을, 오티브이는 수처리 기자재 조달 및 설치를, 히타치는 슬러지 기자재 조달과 설치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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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국내 토목·환경, 턴키 분야 1위 등극

국내 토목사업은 SOC 민자사업과 턴키시장에서 꾸준히 실력을 쌓아 정상급 경쟁자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특히 도로는 오랜 기술개발과 도전 끝에 장대교량 분야에서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3년 토목·환경은 턴키 분야 수주 1위를 달성하며 마침내 정상에 등극했다.

이 시기 SOC 민자 도로로는 제2영동고속도로 서울-원주간, 수도권 서부고속도로 수원-광명간 도로, 서울-포천간 도로, 제2경인 연결 안양-성남간, 부산신항 제2배후도로, 제2외곽순환 인천-김포간, 부산 산성터널 프로젝트 등이 있었다.

그 외 대표적인 턴키 프로젝트로는 여수산단 마동IC, 완도군 노화-구도간 연도교, 영덕-오산 연속화 도로, 광양 태인2교 신설 구조물 설치공사, 송산그린시티 개발사업 국도77호선, 지도-임자 장대교량 등이 있었다.

포스코건설이 주간사를 맡은 인천-김포간 제2외곽순환도로는 2공구와 3-1공구에서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012년 3월 착공, 2017년 3월 준공 예정인 2공구는 인천 송현동과 원창동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장 3.6km 왕복 6차로에 사업비는 2763억 원 규모였다. 3-1공구는 청라 경제자유지구 통과 지역으로, 사업비 869억 원, 연장 3.7km 왕복 6차로 규모이며, 1.65km에 이르는 지하차도가 특징이었다.

2013년 8월 착공, 2018년 2월 준공 예정인 부산 산성터널 역시 포스코건설이 주간사를 맡은 프로젝트로, 북구 화명동과 금정구 장전동 일대에 위치해 있으며, 사업비 1891억 원 규모였다. 총 연장 5.62km에 도심지 터널 연장만 4.87km에 이르는 대규모 터널 프로젝트였다.

2010년 12월 착공, 2013년 4월 준공된 사업비 396억 원 규모의 여수산단 진입도로 마동IC 개설공사는 본선 550m, 접속교량 485m 등 총 1.035km의 해상교량 건설 프로젝트였다. 2007년 착공한 여수산단 진입도로 4공구와 연결되는 공사로, 포스코건설은 인력과 장비를 공용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2011년 12월 착공, 2016년 5월 준공 예정인 완도군 노화-구도간 연도교 가설공사는 완도군 노화읍 동천리와 소안면 구도리를 연결하는 프로젝트이며, 해상교량 790m가 포함된 총 연장 1.905km 2차로 건설공사였다. 건설 과정에서는 경관과 상징성을 강조한 신공법인 엑스트라도즈드교를 적용했다.

2012년 8월 착공, 2015년 12월 준공 예정인 광양 태인2교는 포스코건설 교량 건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엑스트라도즈드교이며, 포스코패밀리의 연구성과물이 현장에 적용된 대표적 성공사례였다.

이 시기 도로 분야에서 가장 큰 성과는 지도-임자 장대교량의 수주였다. 사업비 1408억 원 규모의 이 사업은 총 연장 4.99km에 1.92km의 사장교 2개소가 포함돼 있었다.

지도-임자 프로젝트 수주 성공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턴키 분야 첫 장대교량 수주 성과 외에도 교량 건설에 포스코의 고강도 강재를 반영함으로써 패밀리사 시너지 창출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새만금 신항만 방파제 1단계 2공구 축소공사 전경

새만금 신항만 방파제 1단계 2공구 축소공사 전경

한편 항만 분야에서는 신양항 정비공사, 새만금 신항만 방파제 1단계 2공구 축소공사, 군산항 유연탄 전용부두 축조공사, 울릉도 사동항 2단계 동방파제 축조공사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울릉도 사동항 2단계 동방파제 축조공사는 2013년 피날레를 장식하며 포스코건설을 토목환경 턴키 분야 1위로 올려놓은 프로젝트였다. 2013년 12월말 포스코건설은 치열한 경쟁 끝에 해양수산부 포항지방해양항만청이 발주한 이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2014년 2월 착공, 2017년 1월 준공 예정인 이 프로젝트는 동방파제 640m 축조공사와 해수소통구 1식, 부대시설 1식 건설공사가 주요 과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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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국내 최강 환경 분야, 해수담수화에 역량 집중

국내 토목·환경 턴키 1위를 견인했던 환경 분야는 오랫동안 강자의 위치에 있었다. 매번 축배를 든 것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끈기와 패기로 환경 분야 턴키 및 SOC사업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김포 레코파크

김포 레코파크

대표적인 SOC사업으로는 공원개념을 도입한 친환경 휴식공간인 ‘김포레코파크’가 있었다. 김포시 생활하수처리시설 민간투자사업(BTO)의 성공적인 준공과 운영 개시로 포스코건설은 환경사업에서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이 시설은 시간당 465kW의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광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산책로, 축구장, 풋살장, 테니스장 등은 주민들의 여가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턴키 분야로는 2010년 송도 5, 7공구 자동집하시설을 시작으로 충남도청 자동집하시설, 태백권 상수관망 최적관리시스템사업을 수주했으며, 아울러 미래 주요 발주 형태인 SOC 분야의 몰입도를 높여 하수관거 분야(BTL) 3건의 과업도 성공으로 완수했다.

그 외 포스코건설의 비즈니스 모델인 PEPCOM의 완성을 위해 환경 분야가 O&M사업을 성공적으로 시작함으로써 안정적인 고수익 상품 확보에 일조했다. 주요 사업으로는 천안 BTL, 김포 BTO/BTL, 수원슬러지 BTO 등이 있었다.

이후 2011년 턴키에서는 강화된 방류수 수질 기준에 따라 개척된 총인처리시설 시장에서 서부하수처리장 외 1개소의 총인처리시설을 수주했다.

같은 해에 SOC에서도 강세를 보이며 BTL 1건, BTO 1건, 운영사업 2건을 수주했다. 하수관거사업은 포스코건설의 본점 소재지인 포항에서 성공을 거두며 관거 44.8km, 유지관리모니터링시스템 1식을 성공적으로 수행 중에 있다. 천안시와 파주시의 하수관거사업은 준공 이후 성공적으로 운영에 들어갔다.

2010년과 2011년 각각 4400억 원과 3000억 원의 수주를 이끌며 승승장구 하던 환경사업은 2012년에 발주물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었다.

비록 턴키 실적은 전무했지만 SOC에서 파주시 하수관거(BTL) 외 4건을 성공으로 수주하며 960억 원으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파주시 하수관거시설은 117.3km의 신규 관거와 3.7km의 교체관거, 배수설비 4223개소를 구축하는 사업이었다. 회원사로 참여했던 1일 하수처리 6만 8000톤 규모의 시흥시 방산하수도시설(BTO)은 대림산업과 함께 수행했다.

2012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2013년에는 1일 하수처리 25만 톤 규모의 안양시 박달하수처리장 지하화사업을 턴키시장에서 수주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 사업은 내로라하는 대우, 현대, SK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더욱이 그해 11월 광주시 가연성폐기물 연료화사업(BTO) 수주에 성공하며 마침내 포스코건설은 2013년도 환경 분야 국내 수주 1위에 등극했다.

한편 2010년 7월 포스코건설은 포스코의 물산업 육성 미래 전략에 따라 물환경본부를 신설하고 다양한 사업을 시도했다. 물사업 운영관리(O&M) 전문기업으로 블루오앤엠을 설립했으며, 물사업 중에서는 해수담수화 사업에 집중했다.

광양 해수담수화 시설

광양 해수담수화 시설

해수담수화 사업으로는 이 시기 광양 동호안 해수담수화 용수공급사업과 여수산단 해수담수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2012년 12월 착공, 2014년 7월 완료된 광양 동호안 해수담수화 용수공급사업은 국내 최초로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를 이용한 해수담수화 사업이었다. 담수화 시설 인근의 SK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를 담수화해 공업용수로 다시 제철소에 공급하는 시스템이며, 1일 용량 3만톤 규모였다. 담수화 시설 준공 후 30년간의 운영관리는 블루오앤엠이 맡았다.

광양 해수담수 프로젝트 자력 설계능력과 운영기반을 바탕으로 포스코건설은 국토교통부에 ‘여수산단 해수담수 활용 맞춤형 공업용수공급 민자투자사업’을 제안했다.

2017년경 여수산단의 물 부족을 예측한 정부는 대책마련에 부심했다. 통상 댐 건설을 통해 용수를 확보해야 하나, 예산부족과 환경단체 반발이 딜레마였다. 이런 차에 포스코건설이 대안을 내놓자 국토교통부가 크게 반색했다. 이에 수자원공사와 공동 출자를 통한 제3섹터 개발방식의 사업추진이 시도되고 있다.

3-3

Story3. 토목·환경 “천덕꾸러기 설움 딛고 정상을 향해 나아가다”        

# 도로분야 실적한계, 민자제안으로 넘는다

“오늘 아주 즐겁고 좋은 날 이 자리에 함께하게 돼 기쁘다. 이 자리는 여기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모여 목표를 달성한 것을 자축하기 위한 자리이다. 후발업체로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는 선발업체들이 거쳐온 과정을 연구해서 열정과 투지로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왔다.” (한수양 전 사장)

2006년 12월 27일. 토목환경사업본부의 특별한 송년회가 펼쳐졌다. 마침내 수주 1조 원 시대를 연 자축연이었다.

그 동안 토목·환경은 설움이 많았다. 회사의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따가운 눈총을 받아왔다. 이런 평가에 환경 분야는 억울해 했다. 토목과 묶여 도매금으로 넘겨졌지만, 환경 분야는 줄곧 빅3로 정상을 달려왔다.

토목이라고 다 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건 철도에서 하는 말이다. 지금까지 꾸준히 실적을 쌓아왔고, 김해경전철 수주를 계기로 그 자부심이 한층 높아졌다. 그렇다면 누가 역적일까? 모든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바로 도로 분야였다. 도로는 절치부심, 열정과 투지를 불살랐지만, 실적이 부족해 선발업체의 높은 장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2004년 시작과 함께 토목환경사업본부는 수주 1조원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그리고 3년 만에 그들은 목표를 달성했다. 그 이면에는 환경과 철도의 선전도 무시할 수 없지만, 도로 분야의 눈물겨운 도전이 있었다.

도로 분야는 목표 달성을 위해 턴키시장에서 최저가 출혈을 감수하면서 실적을 쌓아갔으며, 한편으로는 민자제안을 통한 SOC사업에 주력했다.

용인~서울간 고속도로

용인~서울간 고속도로

포스코건설의 SOC 민자투자사업은 인천공항고속도로와 인천공항철도로 출발했으며, 이어서 2002년부터 집중적으로 SOC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제2영동고속도로, 창원~부산간 도로, 용인~서울간 도로, 제2경인연결(안양~성남) 도로, 부산항 제2배후도로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들은 회원사 자격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후발업체로서 처음에 회원사 자격으로 경험을 쌓았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사업제안에 나섰다. 그 첫 프로젝트가 학의~고기간 도로였다.

학의~고기간 도로 이야기는 2002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포스코건설은 경기도에 석수~분당간 도로 사업계획을, 롯데건설은 국토부에 제2경인연결(안양~성남) 도로 사업계획을 제안했다. 두 계획에서 중복구간이 발생하자 조정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중복구간을 롯데건설에 넘기고 자신의 구간을 학의~고기간 도로로 조정했다. 그 대신 제2경인연결(안양~성남) 도로에 회원사로 참여했다.

그런데 학의~고기간 도로는 2008년 8월 입찰 과정에서 RTB코리아의 저가 투찰로 최초제안자인 포스코건설이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이후 이 사업은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RTB코리아가 금융권 투자유치에 실패함에 따라 사업권이 다시 포스코건설로 넘어왔다. 그러나 그 사이 사업계획이 많이 변해 있었다. 이대로는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한 포스코건설은 결국 사업추진을 포기했다.

 

# 민자제안 7, SOC 만자투자사업 정상에 올라

학의~고기에 이어 2005년 11월 포스코건설은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부산시에 산성터널 민자사업을 제안했다. 산성터널 제안에 부산시는 화명~기장 연결도로를 끼워 넣었다. 사업성 검토결과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한 포스코건설은 부산시에 수용 불가를 통보했으며, 이에 2007년경 부산시는 대림산업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림산업 역시 사업성 검토결과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 사업에서 발을 뺐다. 결국 부산시는 화명~기장 연결도로를 포기하고 포스코건설을 다시 찾아왔으며, 2010년 10월 최초제안대로 산성터널 민자사업이 재추진됐다. 이 사업은 최초제안에 사업추진까지 성공한 첫 사례로, 포스코건설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학의~고기, 산성터널에 이어 포스코건설은 2007년 7월에 과천~송파간 도로, 2008년 5월에 검단~장수간 도로 사업계획을 제안함으로써 대도시권 사업발굴 역량을 한층 다졌으며, 민자사업에서의 위상도 정상급으로 올라섰다.

과천~송파간 도로는 수도권 도로사업의 포화로 인해 사업 발굴이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창의성을 발휘한 우수제안으로 평가받았다. 검단~장수간 도로는 검단신도시 개발에 따른 광역도로의 개설 필요성과 교통정체 해소를 위해 인천시에 제안한 것이었다.

독특한 사업으로는 홍대 지하주차장 민간투자사업이 있었다. 이 사업은 민간 제안이 아닌 마포구청이 시설사업기본계획에 따라 발주한 프로젝트였다. 2008년 11월 포스코건설은 이 사업 입찰에 참여해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 프로젝트는 규모는 작지만, 지하공간 민간투자사업 준비를 위한 시범사업 성격이어서 향후 대규모 본사업 추진이 기대되는 사업이었다.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김포 구간은 우연한 행운으로 주간사의 지위를 확보한 사업이었다. 최초 제안은 2002년이었다. 당시 포스코건설은 송도~파주 구간을, 금호산업은 인천 송현동과 불로동 구간을 제안했다. 이후 두 회사는 2005년 6월 두 구간을 인천 신흥동과 김포시 양촌면으로 통합 제안하면서 금호산업이 주간사를 맡고, 포스코건설은 2위 회원사를 맡았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김포 구간은 2010년 4월 금호산업이 워크아웃 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포스코건설이 주간사를 승계했고, 이후 금융약정을 거쳐 2012년 3월 착공에 들어갔다. 결국 이 사업은 포스코건설이 주간사로서 착공에 들어간 최초의 민간투자사업이었다.

절치부심 15년. 2002년을 기준으로 이전까지 포스코건설은 7년 동안 선발업체들을 쫓아다니며 회원사로서 경험을 쌓았으며, 2002년 이후 7년 동안은 적극적으로 사업제안에 나서 SOC 민간투자사업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했다. 5개 프로젝트에서 주간사의 지위를 확보, 명실공히 토목 분야 정상급 건설사로 도약했다.

이 시기(2005~2009) 포스코건설이 참여한 민자 도로 중 착공에 들어간 프로젝트는 용인~서울간 도로, 창원~부산간 도로 등이 있었다.

대우건설이 주간사를 맡은 용인~서울간 고속도로(2005.10~2009.7)는 수도권 남부지역의 교통량 분산을 위해 사업이 추진됐으며, 민자 5700억 원을 포함해 총 1조 4932억 원이 동원된 대형 프로젝트였다.

포스코건설은 2007년 7월 성지건설과 함께 가장 늦게 합류해 총 6개 공구 중 5공구를 맡았다. 해당 구간에는 영업소 1개, 교량 3개, 터널 2개가 지어졌다. 5공구는 다시 2개로 쪼개졌는데, 포스코건설이 경부고속도로를 횡단하는 금토3교 강교가설이 포함된 가장 까다로운 5-2공구를 맡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한국도로공사는 횡단공사를 위해 경부고속도로를 전면 차단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단 10분을 차단해도 10km에 걸쳐 교통체증이 발생하다 보니, 빗발치는 민원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1년여 동안 설득 끝에 야간에 공사를 진행한다는 조건으로 10분간 전면 차단을 허락받아 무사히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특히 5공구는 다른 공구보다 2년이나 늦게 착공에 들어가 5공구만 공기를 못 맞추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우리는 열정과 패기로 뒤처진 공기를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이동규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 저가 출혈 딛고 턴키시장 정상급에 오르다
전주~광양 고속도로

전주~광양 고속도로

인천대교 연결도로

인천대교 연결도로

민자투자사업 못지않게 토목 분야는 턴키시장에서도 분전했다. 초창기 저가 출혈의 고통도 있었으나, 차곡차곡 실적을 쌓아나가 선발업체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이 시기 착공에 들어간 도로공사로는 고속도로 확장에서 88고속도로 담양~성산 구간, 남해고속도로 냉정~부산 구간 등이 있었다. 신설 고속도로는 동서고속도로 동홍천~양양 구간, 울산~포항 고속도로, 전주~광양 고속도로 등이 있었다.

그 외 도계~신기 도로확장, 광암~마산 도로확장,영덕~오산 광역도로, 행정도시 대전~유성간 도로, 행정도시 우회도로, 교동연육교, 인천대교 연결도로, 여수산단 진입도로 등의 프로젝트가 있었다.

88고속도로는 1984년 5공화국 시절 영호남 화합의 상징으로 개통됐으나, 왕복 2차선의 열악한 교통환경으로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이 같은 교통여건을 개선하고자 추진된 사업이 바로 144km의 담양~동고령 구간의 왕복 4차선 확장 및 직선화 공사였다.

포스코건설은 이 사업에서 담양~성산간 도로 확장 3공구와 13공구(2008.11~2012.12)를 맡았다. 3공구의 경우 고속도로 확장공사 실적 확보 차원에서 저가 출혈의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출혈은 곧이어 남해고속도로 냉정~부산간 8공구(2009.2~2014.3)를 수주하는데 큰 힘이 됐으며, 포스코건설은 이 프로젝트에서 적정 수익성을 확보했다.

신설 고속도로인 117.8km의 순천~완주고속도로는 2003년 호남지역에서 장거리 수송 수요를 효율적으로 충족하기 위해 추진된 사업이었다. 포스코건설은 그 중에서 전주~광양 구간인 8공구(2005.3~2011.12)를 맡았는데, 회사로서는 최초의 호남지역 고속도로 현장이었다. 특히 ILM 교량공법의 장대교 5개소, 소교량 7개소, 총 4개의 터널공사 등 당시로서는 도로공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공정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준공 이후 남원JCT교는 2012년에 대한토목학회가 주최한 올해의 토목구조물상 시상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높이 70m의 교량공사에 적용된 ILM 압출공법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공법이었다. 기존 공법과는 달리 거푸집 선이 보이지 않아 미관상 보기에 좋았고, 품질관리가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쉬지 않고 콘크리트를 쳐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이남일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동서고속도로는 국토의 균형발전과 미래 교통수요 대처를 위해 추진됐다. 2004년부터 추진된 서울~양양간 동서고속도로 공사에서 포스코건설은 마지막 구간인 동홍천~양양노선에 참여했다. 동홍천~양양 15공구는 2009년 3월 착공, 2015년 12월 준공 예정이다.

“연장 450m의 PCT거더교가 110m 지간에 67m 높이의 FCM공법으로 설치될 예정이다. PCT거더교는 가설장비가 간편하고 공기를 단축할 수 있는 데다 외관이 화려한 신공법이다. 아직 국내 시공사례는 없지만, 최근 신설 고속도로에 많이 적용되고 있다. PCT거더교가 마지막 구간인 만큼 화룡점정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정광호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울산~포항간 고속도로 신설 10공구(2009.6~2014.12)는 포스코건설에게는 2.45km의 장대터널을 시공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특히 현장 여건에 맞게 터널 시공에 앞서 설계변경을 단행함으로써 원가절감과 실행이익률을 개선할 수 있었다.

영덕~오산 광역도로 공사 현장

영덕~오산 광역도로 공사 현장

고속도로 외에도 많은 도로공사를 수행했는데, 그 중 영덕~오산간 광역도로 1공구(2006.10~2009.8)는 포스코건설이 처음으로 턴키공사 주간사를 맡은 프로젝트였다. 특히 최초 사장교 시공의 경험을 축적한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총 연장 2.32km, 폭 20m 규모에 교량 9개소, 터널 3개소, 교차로 1개소 등을 시공했다.

도계~신기 확장도로는 태백~도계~신기~미로 38번 국도 확장공사 중 중간 구간이었다. 강원 내륙지역에 위치한 38번 국도의 4차선 확장을 통해 강원 산악지역의 열악한 교통환경을 개선하고, 국토의 균형발전과 지역주민의 편의성을 개선하는 것이 건설사업의 주요 목적이었다. 도계~신기 확장공사(2007.2~2014.12)는 수주와 시공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의 역량이 빛을 발했던 성공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건교부 국토관리청 발주공사로는 처음으로 대표사를 맡았던 이 프로젝트는 최저가 입찰방식의 변경으로 먼저 저가사유서를 작성하고, 심사 대상업체로 선정된 후, 심의위원회 심사를 통과해야만 낙찰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실적이 적어 저가사유서 작성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 요원들은 타사와의 활발한 교류로 필요한 정보를 입수해 저가사유사의 경쟁력을 높였고, 결국 공격적인 저가사유서를 제출해 1순위 업체로 선정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최종 조달청 심사에서 9명의 위원 중 7명 이상에게 A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조달청마저 지금까지 과반수 이상이 A등급을 준 적이 없으므로 통과가 힘들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모든 임직원이 적극적으로 홍보에 열의를 보였고, 심의 당일에도 임원들이 심의장에 찾아와 회사의 공사 수주 의지를 위원들에게 각인시켰다. 그 결과 심의위원 전원으로부터 A등급을 받았는데, 이는 조달청 심의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홍재문 상무, 당시 현장소장)

7.8km 4차로 확장공사인 도계~신기 구간은 난공사 구간이었다. 산악지대를 횡단하는 구간으로, 전 노선의 70%가 산을 통과하는 터널과 교량 등의 구조물 작업으로 구성돼 있었다. 특히 영동선 철도를 횡단하는 차구교와 2-Arch 터널 2개소는 가장 어려운 공정으로 철저한 사전계획 수립이 필요했다. 이 같은 어려움에 불구하고 하천부의 가시설 형식을 철구조에서 복합형으로 변경해 차수 효과와 시공성을 향상시키고, 보강 작업을 통해 터널의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킴에 따라 공사비 증액에 크게 기여했다.

여수산단 진입도로 개설공사 4공구(2007.11~2013.4)는 세계에서 3번째로 긴 현수교인 이순신대교를 연결하는 해상교량 공사였다. 포스코건설은 광안대교와 길호대교 프로젝트 성공 이후,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의욕적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어 1075m의 해상교량 실적을 확보했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높은 교각, 급한 종단경사, 총 연장 등을 고려해 신개념의 분리형 MSS공법을 채택했다. 포스코건설은 중앙 박스부를 MSS 장비로 1차 시공한 후, 외측 슬래브를 이동식 거푸집차(Form Traveller)로 2차 시공해 장비가 대형화되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원가절감과 공기단축이라는 소중한 성과를 얻었다.

세종시~대전유성 확장공사(2008.8~2012.5)는 도로 중앙 자전거길이 특징이었으며, 세종시 국도 1호선 우회도로 1공구(2008.6~2013.3)는 포스코건설이 처음으로 시공한 개착식 지하차도였다. 인천 교동연륙교(2008.10~2014.6)는 해상교량 실적 확보 차원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해 310m의 콘크리트 사장교를 시공했으며, 광암~마산간 도로 확포장공사(2009.6~2014.9)는 경기도 지자체 사업으로 2km 이상급 장대터널이 특징이었다.

“세종시-대전유성 프로젝트에서 개통한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최초로 중앙선에 만든 자전거도로였다. 보통은 교차로가 있으면 건널목을 건너는 불편함도 있는데, 이 도로는 중간에 길이 끊어지는 일이 없이 8.78km를 끝까지 달릴 수 있다. 또 자전거 도로 상에 한국서부발전에서 태양광 발전시설도 지었다. 이것도 국내 최초로 시도된 것이었다.” (안병수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 경전철 기술력을 바탕으로 철도 분야 강자로 부상

도로 분야가 민자제안과 턴키공사 저가 출혈을 감내하고 절치부심 끝에 정상에 올랐다면, 철도 분야는 김해경전철이라는 신교통 분야를 선점함으로써 정상에 우뚝 섰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시장 선점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 분야 정상을 유지했다.

경전철 노선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운행 시뮬레이션 기술이다. 신규 노선에 필요한 운전 데이터를 얻으려면 수많은 실험을 수행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안전문제와 함께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운행 시뮬레이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포스코건설은 김해경전철 수행 과정에서 국내 최초로 운행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인 ‘스마트(Smart) LRT’를 개발했다. 스마트 LRT는 노선선정, 교통수요, 운전계획의 핵심요소를 최상위 수준으로 설정한다. 이를 통해 경전철 용량, 표정속도, 운전시격, 운행시각표, 전력사용량 등의 주요 운전 데이터를 생성한다. 생성된 운행 시뮬레이션은 신규 노선의 QoS(Quality of Service)를 예측하고 최적의 목표를 설정해 설계, 건설, 운영 시 적용이 가능하다.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부각된 신교통 경전철 사업에서 포스코건설은 김해경전철과 의정부경전철, 서울시 사업으로는 우이~신설 등 동북권 사업에 주력했다.

김해~부산간 경량전철 노선도

김해-부산간 경량전철 노선도

김해~부산간 경량전철 민간투자사업 건설공사 현장

김해~부산간 경량전철 민간투자사업 건설공사 현장

2006년 4월 착공에 들어간 ‘김해~부산간 경량전철 민간투자사업 건설공사’는 2011년 4월 준공 이후 우수 유입에 따른 보완, 소음저감시설 설치, 시스템 장애 보완 등을 마무리하고 9월 9일 마침내 개통됐다. 경전철 구간은 총 21개 역으로 구성돼 있으며, 평균 시속 38㎞로 부산 사상역에서 김해 삼계동까지의 소요 시간은 약 37분이었다.

김해경전철은 우리나라 최초로 전 구간 지상 무인 자동방식으로 운행되는 도시철도로서, 중전철이나 지하철에 비해 건설비와 인건비가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었다. 특히 전 구간이 지상 약 10m 지점에서 운행돼 낙동강 등 수려한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으며, 또 김해국제공항의 접근성 개선과 부산지하철 2, 3호선과 연결되는 환승체계를 구축해 지역주민들의 생활에 큰 편의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부산지하철 2호선 사상역에서 김해 삼계동 차량기지까지 23km 구간의 김해경전철 건설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12km의 3, 4공구의 시공을 맡았으며, 아울러 이 사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5공구 차량기지의 무인 운행 최첨단 시스템이자 차량, 신호, 전기, 통신, 기계 등 소프트웨어 작업인 E&M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노선이 김해시 주 도로인 국도 14호선을 따라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가 밀집지역을 통과하다 보니 이런저런 민원이 많았다. 2008년 8월쯤인가는 가시설 공사 중 상수도관이 터져서 김해시 일부 지역이 단수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이때 현장 직원들이 직접 시청에 가서 빗발치는 민원을 응대하고, 단수문제도 2~3일간 밤샘작업을 통해 완벽하게 해결했다. 그 밖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슬기롭게 극복하고 무사히 프로젝트를 마쳐 보람을 느낀다.” (최창용 전 Sr.Manager, 당시 현장소장)

2000년대 들어 김해경전철을 필두로 경기도 용인과 의정부 등에서도 경전철 건설이 추진되는 가운데 2001년에 서울시도 7개 노선에 대한 경전철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시의 ‘도시철도 중장기 기본계획안’에 따라 포스코건설은 우이~신설 구간에 역량을 집중하고 컨소시엄을 구성해 2003년에 지하경전철을 골자로 하는 최초제안을 서울시에 제출했다. 우이~신설 지하경전철 제안은 국토연구원의 심의를 거쳐 2006년 말 사업계획이 확정됐으며, 2007년 초 서울시의 사업자 모집공고에 그해 5월 말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이 제안서를 단독 제출, 결국 사업자로 선정됐다.

2008.10.31 우이신설 경전철 기공식

2008.10.31 우이신설 경전철 기공식

사업자 선정 후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은 대우건설, 두산건설 등 건설사들을 비롯해 17개사로 구성된㈜우이트랜스를 설립했다. 이어 2008년 11월 기공식과 함께 서울시 최초의 경전철사업이 본격화됐다.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된 이 사업에는 총 7554억 원이 투입됐으며, 사업비용은 정부 12%, 서울시가 28%, ㈜우이트랜스가 60%를 부담했다.

2009년 9월 착공한 우이~신설 경전철은 총 연장 10.72km에 13개역을 경유하며, 전 구간 소요시간은 22분이다. 노선은 우이동 유원지를 출발해 수유, 정릉, 미아동을 지나 성심여대입구역, 보문동역, 종착역인 신설동역 등 지하철 1, 4, 6호선과 연결되는 경제구간이다. 특히 우이~신설 경전철은 서울 강남북의 균형발전과 강북지역 교통난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포스코건설은 이 사업에서 전체 4개 공구 중 지분율 75.88%를 확보한 4공구의 시공을 맡았다. 아울러 김해경전철에서 확보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한 스마트 LRT를 적용했으며, 가장 중요한 E&M 작업을 진두지휘함으로써 앞선 기술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2014년 9월 준공 예정이었던 우이~신설 경전철은 토지보상과 공사에 따른 민원 등으로 공기가 지연되면서 2016년 11월로 준공 일정이 연기됐다.

 

# 국내 최초 철도 분야 BTL 민자사업에 참여하다

포스코건설은 경전철 외 민간투자사업으로는 신분당선 도시철도, 전라선 익산~신리 구간과 경전선 함안~진주 철도 BTL 등에 참여했다. 대부분의 철도공사에서는 노반공사를 많이 했으며, 경부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 노반공사에도 참여했다. 도시철도에서는 대구지하철, 인천지하철, 서울지하철 7, 9호선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06년 10월말 건설교통부에서 주관한 ‘경전선 함안~진주간’과 ‘전라선 익산~신리간’ 복선전철 민간투자사업에서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특히 전라선 익산~신리간 복선전철 공사(2007.7~2012.4)는 국내 최초 철도 BTL 민간투자사업이었다. BTO와 BTL의 구분은 정부나 지자체가 소유권을 갖고, 민간이 일정기간 운영권을 갖는 방식은 같으나, BTL의 경우 수익이 취약한 사업에 적정 수익률을 보장해주기 위해 정부가 임대해서 운영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포스코건설은 총 연장 34.39km의 익산~신리간 복선전철 공사에서 3개 공구 중 가장 긴 3공구를 맡았다. 그러나 시작부터 시련의 연속이었다. 2007년 7월 착공에 들어갔으나 토지보상 행정이 늦어져 공사부지 확보를 비롯해 지장물 이설에 장장 11개월이란 시간이 기약 없이 흘러갔다. 설상가상으로 공사부지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한 마음에 공정추진이 가능한 터널구간 작업에 착수하자 인근마을에서 장비통행으로 인한 피해를 주장하며 현장에 난입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현장 요원들은 소통과 협력으로 복잡하게 꼬인 민원의 실타래를 끈기 있게 풀어나갔고, 공사 정상화와 함께 놓친 공기를 만회하느라 밤낮 없이 자신이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완수함으로써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익산~신리간 복선전철의 성공적 개통으로 서울과 여수까지 무려 5시간 13분이나 걸리던 시간이 새마을호 기준 1시간 55분이나 짧아졌다. 향후 호남고속철도까지 개통되면 그 시간은 더욱 짧아질 전망이다.

“우리 회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철도 BTL에 대한 다양한 수행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다. 1.845km의 터널실적도 추가로 확보했으며, 운행선 근접시공 경험까지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양재문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턴키 분야에서는 대표적으로 경의선 용산~문산간 복선전철과 동해선 포항~삼척간 노반 건설공사에 참여했다. 46.4km의 경의선 용산~문산간 복선전철화 사업은 서울 도심구간인 서울역~신촌~가좌구간 대신 화물노선으로만 이용되는 용산~효창~서강~가좌 구간을 지하철도화 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 사업에서 포스코건설은 도심지 지하철도 구간인 1-2b공구(2005.3~2014.12)를 맡았다. 1-2b공구는 마포구 일대 1.5km에 이르는 까다로운 개착터널 구간으로, 포스코건설은 서강역과 홍대입구역을 신설했으며, 터널 시공과정에서는 TRcM, NTR 및 F/J 등 특수공법을 시도했다.

2009년 4월 포스코건설은 동해선 포항~삼척간 철도건설 3, 4공구와 울산~포항간 복선전철 6공구를 동시에 수주했는데, 포항~삼척간 3공구의 경우 포스코건설 최초의 턴키입찰 주관사 철도 현장이었다. 포항~삼척간 3, 4공구(2009.4~2014.4)는 각각 9.13km와 9.5km의 철도노반 신설공사였으며, 울산~포항 6공구(2009.4~2014.4)는 9.78km 구간의 단선철도를 복선 전철화하는 사업이었다.

새만금산업단지 신항만 방파제 2공구 조감도

새만금산업단지 신항만 방파제 2공구 조감도

항만 분야에서는 영일만 신항 민간투자사업, 아야진항 건설공사, ⑫새만금산업단지 1-1공구 준설토 매립공사, 인천신항 진입도로 및 호안축조공사 2공구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 중 인천신항 진입도로 및 호안축조공사 2공구(2009.11~2013.4)는 포스코건설 두 번째 사장교 시공 현장이란 의미가 있으며, 5.9km의 진입도로와 810m의 호안축조와 함께 사장교 431m의 실적을 확보했다.

부지조성 분야에서는 인천 청라지구, 파주 운정지구, 고양 삼송지구, 남양주 별내지구 등 많은 택지개발에 참여했으며, 충주기업도시, 광주산업단지 등의 조성공사에도 참여했다.

충주기업도시 기반시설 조성사업(2008.6~2012.8)은 토목 분야 대표적 개발사업이었다. 포스코건설이 주간사로서 컨소시엄에는 충주시, LH공사, 임광토건, 엠코, 포스코ICT, 동화약품, 농협중앙회 등이 참여했다. 충주시 주덕읍과 이류면, 가금면 일대 약 693만 ㎡의 부지에 국비 221억 원, 지방비 149억 원, 민간자본 5285억 원 등 총 5655억 원 규모의 사업비가 투자됐다.

“충주기업도시는 전국 6개 기업도시 중 가장 먼저 개발된 성공모델이었다. 과거의 산업단지들은 생산기능에 치중해 개발됐지만, 충주기업도시는 산업적인 입지와 함께 주거, 교육, 문화 등 종합적인 정주환경을 고루 갖춘 복합자족도시로 거듭났다. 앞으로도 충주기업도시는 지역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중부내륙권의 성장거점 도시로 더욱 발전해나갈 것이다.” (김대현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 환경 분야, 수처리 이어 하수관거 정비사업 정상 달려

환경 분야는 기존의 하수 고도처리 기술과 용융 소각로 기술에 하수슬러지 연료화 기술을 추가하며 업계 정상을 계속 유지했다.

수처리 분야에서는 인천 학익, 파주 LCD, 김포, 포항, 경산등 전국의 하수종말처리장을 대상으로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전국적으로 하수처리장 사업이 한창인 가운데 2000년대 중반 이후 관로 오염방지와 수질 향상을 위해 하수관거 정비사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 사업은 정부나 지자체가 예산부족으로 대부분 민자사업으로 추진했으며, 민자방식은 사업자의 적정 수익성 보장을 위해 임대형 민자사업(BTL)으로 추진했다.

포스코건설은 이 분야에서도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하수처리장에 이어 하수관거 정비사업에서 업계 정상을 달렸다. 상주시 하수관거정비사업(2006.6-2010.11)을 시작으로 주간사 10개, 회원사 14개 등 도합 24개 2조 2000억 원 규모의 하수관거 정비사업(포스코건설 지분 7000억 원 규모)을 수주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국내 하수관거 BTL 최대 실적 보유사의 업적을 달성했다. 특히 BTL사업 중 최대 규모(1140억 원)였던 천안시 하수관거정비 사업(2008.4~2012.8)을 대우건설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수주에 성공하면서 환경 분야 탑 클래스의 진면목을 과시했다.

자원재이용 분야에서는 용융 소각로 기술로 양산시 자원회수시설(2004.10-2008.1)에 이어 고양시 환경에너지시설 신기술 대체사업(2006.5-2010.8)에 참여했다. 하수슬러지 연료화 기술로는 수원시 하수슬러지처리시설(2007.6-2011.11)와 양산시 하수슬러지처리시설(2008.2-2009.12)를 수행했으며, 쓰레기자동집하시설로는 용인흥덕 자동크린넷시설((2006.9-2009.3), 인천청라 자동크린넷시설(2008.4-2011.6), 파주운정 쓰레기자동집하시설(2007.9-2012.8)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파주 LCD산업단지 폐수종말처리시설

파주 LCD산업단지 폐수종말처리시설

인천 학익 하수종말처리시설

인천 학익 하수종말처리시설

수처리 분야의 대표적 프로젝트로는 파주 LCD산업단지 폐수종말처리시설 2단계(2005.12~2007.10), 인천 학익 하수종말처리시설(2005.8~2008.8), 김포시 하수도시설 민자사업(2009.7~2012.10) 등이 있었다.

파주 프로젝트는 GS건설이 석권하던 지역에 타 건설사로는 유일하게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으며, 1단계의 성공적 준공에 힘입어 2단계까지 맡아 포스코건설의 고도처리 기술을 과시했던 프로젝트였다.

“1단계 공사에 이어 파주 LCD단지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안전하게 처리해 만우천으로 방류할 수 있도록 처리량 하루 7만 ㎥의 고도처리시설을 설치하는 공사였다. 1단계와 같이 짧은 공사기간으로 인해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진행하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 방식을 채택했으며, 1단계 공사와의 중복으로 인한 시공상 간섭이 발생해 공정을 더욱 촉박하게 진행해야 했다.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모든 현장 직원이 하나로 뭉쳐 고품질 무사고 시공을 달성했다.” (김일동 전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인천 학익 프로젝트는 하수처리장 사업비 규모로는 당시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대규모였던 만큼 내로라하는 환경 분야 정상급 업체가 모두 참여했으며, 포스코건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학익 하수종말처리장의 특징은 친환경이었다. 설계 단계부터 시민공원의 역할을 최대한 반영했다. 나들공원, 테마공원, 환경놀이터 등 아름다운 조경시설은 물론이고, 학이 나는 모습을 형상화한 ‘환경정보센터’가 환경학습의 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시설 작업으로 인한 땅울림과 교통문제가 발생하는 차집관로 공사에 땅을 개복하지 않고 지하에서 굴진해서 밀어내는 세미쉴드(Semi-shield) 공법을 적용했다. 지반이 약한 지역이나 도심지에 효과적이었고, 소음이나 분진 피해도 줄어들었다. 땅 위에서 굴착하면 상하수도나 가스관 등이 걸리기 마련인데, 이런 방해 요소를 피할 수 있어 작업속도가 빨라졌다. 특히 민원이 줄고 품질수준도 크게 향상됐다.” (이운옥 상무, 당시 현장소장)

 

# 신뢰와 통큰 이미지 남긴 김포시 하수처리장 민자사업

BTO방식의 민자사업이었던 김포시 프로젝트의 출발 시점은 2005년 중순이었다. 당시 계획 인구 15만 명에 1000만 ㎡ 규모의 김포 한강신도시 개발이 시작되고 있었다. 기존 인구 5만 명을 합치면 향후 20만 김포시민을 위한 인프라구축이 최우선 과제였지만, 김포시는 사업경험이 부족했다.

하수처리와 관련해서는 4만 톤 처리용량의 김포하수처리장이 유일했다. 이에 김포시는 기존 김포하수처리장의 4만 톤 증설과 통진과 고촌지역에 각각 4만 톤과 1만 톤 규모의 하수처리장 신설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제정 부족에다 하수도 행정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마침내 김포시가 사업추진에 한계를 드러냈다.

사건의 발단은 섣부른 설계용역 발주였다. 김포시가 상수도정비 기본계획도 없이 설계용역 발주를 내버린 것이었다. 정식 절차대로라면 환경부 승인을 거쳐야 했다. 결국 담당공무원이 징계위기에 몰렸다. 이런 사전정보를 가지고 포스코건설이 김포시와 접촉하기 시작했다.

먼저 포스코건설은 김포시가 안고 있던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제정 부족문제에 대해서는 민자사업을 제안하고, 기존 설계용역의 발주 취소를 권고했다. 하수도 행정에 대해서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환경부를 대상으로는 담당공무원의 징계가 없도록 진정도 넣었다. 이렇게 6개월의 시간이 지나면서 실무진과 담당공무원 사이에 탄탄한 신뢰가 쌓이면서 김포시 프로젝트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후의 일정이 탄탄대로를 달린 건 아니었다.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경쟁사인 GS건설이 최고경영층 인맥을 배경으로 로비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담당공무원이 당당하게 버텼다. 그는 지금까지 쌓아온 포스코건설과의 신뢰를 저버릴 수 없었다. 많은 시간과 인내가 요구되는 민자사업 추진에서 상호 신뢰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었다.

포스코건설도 지혜롭게 처신했다. 혼자 독식하기보다는 GS건설을 설득해 컨소시엄의 회원사로 끌어들였다. GS건설을 해결하고 나니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될성싶은 사업에 손님이 들끓기 마련이듯, 최초제안에 이어 마지막 제안경쟁에서 대림산업이 등장했다.

한국환경공단의 제안서 평가에서 포스코건설이 승리는 했지만, 포스코건설은 경쟁하기보다 상호 협력을 통한 동반 성장을 추구했다. 포스코건설이 대림산업마저 안고 컨소시엄을 꾸리자 안팎으로 ‘통큰 회사’란 칭찬이 자자하게 퍼져나갔다.

2009년 7월 착공과 함께 ‘김포시 하수도시설 민자사업’이 본 궤도에 올랐다. BTO방식의 민자사업으로,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이 시설물을 짓고 소유권을 김포시에 이전한 후 20년간 운영권을 갖는 조건이었다. 총 공사비 2048억 원 규모의 이 사업에서 포스코건설은 30%의 지분을 갖고 GS건설, 대림산업 등 8개사와 공동으로 시공에 들어갔다.

프로젝트명은 ‘하수를 깨끗한 물로 재생해 환경을 아름답게 하는 휴식공원’이란 의미를 담아 레코파크로 정했다. 레코파크 프로젝트는 2012년 12월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김포레코파크에는 기존 4만 톤 규모의 하수처리시설 옆에 같은 규모의 시설이 지하에 추가됐으며, 지상에는 축구장이 들어섰다. 통진레코파크 역시 4만톤 규모의 처리장과 함께 지상에 축구장, 농구장, 게이트볼장 등 다양한 체육시설이 조성됐으며, 고촌레코파크에는 1만톤 규모의 하수처리시설 외에 아름다운 녹지공원이 꾸며졌다.

특히 기존 김포하수처리장은 김포시에서 배출되는 하수의 50% 정도만 처리했지만, 신설 하수처리장은 김포와 통진, 고촌 등 3곳에 하수처리시설이 가동되면서 한강신도시에 입주할 20만 명을 포함해 김포시 하수를 100% 정화할 수 있게 됐다.

“김포시 프로젝트는 2011년도 전사 우수프로젝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초제안의 내용도 좋았고, 실행이익률도 좋았다. 후속 프로젝트인 하수관거 정비사업도 수행할 수 있었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우리회사 최초의 O&M(Operation & Maintenance) 회사인 블루O&M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블루O&M의 효율적인 운영으로 매년 상당한 수준의 운영수익이 발생하고 있다.” (박하진 Sr.Manager)

 

# 하수슬러지 및 자동크린넷 자원재이용 사업개발

자원재이용 분야에서는 자원회수시설, 하수슬러지 처리시설, 자동크린넷시설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경험과 기술을 축적했다.

용융식 소각로 기술 확보와 함께 양산시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한 저력을 바탕으로 2006년 1월 포스코건설은 환경관리공단에서 발주한 ‘고양시 환경에너지시설 신기술 대체사업’수주에도 성공했다. 턴키방식으로 추진된 이 사업의 입찰경쟁에서 수주 성공요인은 기존 소각장과 달리 다이옥신 소각재에 의한 2차 오염 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신기술인 열분해가스화 용융방식의 적용이었다. 2006년 2월 착공에 들어가 2010년 12월 150톤 규모의 열분해가스화 용융시설 2기와 50톤 규모의 재활용시설 1기를 준공했다.

자동크린넷과 하수슬리지 분야는 새롭게 개척한 사업 분야였다. 인천 청라지구 자동크린넷의 경우 용인 흥덕지구와 파주 운정지구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포스코건설 최초로 주간사로서 추진했던 프로젝트였다. 포스코건설은 높은 수익률보다는 미래 경험치에 무게를 두고 전략적으로 접근해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청라지구 자동크린넷 시설공사(2008.4~2013.12)는 첫 시도였던 만큼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내부에서 참고할 자료가 많지 않아 하나부터 열까지 자력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게다가 ‘세계 최대’라는 만만찮은 규모가 심적 압박을 가중시켰다. 약 1700만 ㎡라는 거대한 면적을 아울러야 하는 데다 다루는 분야가 복잡다단한 복합공정이었다.

“하나의 지구 내에 있는 시설 규모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곳이 청라지구 자동크린넷시설이었다. 집하장 숫자가 다섯 군데나 되는 것도 최초였고, 넓은 범위에 관로가 거미줄처럼 뻗어 있어 몇 배의 공력이 들어갔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다시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모든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 (정봉진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이전까지 새롭게 구축된 신도시들이 첨단 폐기물 처리시스템을 도입하기는 했지만, 초기에 발생하는 시행착오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타 도시에서 제기됐던 문제점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국내와 해외에서 최다 실적을 갖고 있던 기술공급사와 협력하며 기술적인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그 결과 성공적 준공과 함께 이 프로젝트는 송도 5, 7공구 자동집하시설과 충남도청 이전 자동집하시설 등의 프로젝트 수주에 크게 기여했다.

송도국제도시 5, 7공구 생활폐기물 자동집하처리시설(2010.8-2013.3)은 5공구의 경우 규모가 관로 7.1km에 1일 폐기물 수거량이 19톤이었으며, 7공구는 관로 8.1km에 1일 폐기물 수거량이 27톤이었다. 2010년 10월 착공, 2015년 10월 준공 예정인 충남도청 내포신도시 자동집하시설 건설공사는 집하장 2개소, 관로 약 27km, 투입구 160개 규모였다.

하수슬러지 분야는 지속적인 기술개발에서 출발했다. 2000년대 들어 포스코건설은 고유가 극복과 원유 대체를 위한 신재생에너지 확보 차원에서 폐기물 에너지화 기술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폐자원인 유기성 슬러지를 이용해 혼합, 성형, 건조 공정을 거쳐 고품질·친환경 슬러지 연료탄을 생산하는 하수슬러지 연료화 기술을 개발해냈다.

이 기술은 2003년 환경신기술 인증과 함께 2006년에 국가 100대 우수과제에 선정됐으며, 2007년에는 제8회 환경기술상인 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2007년과 2008년에 신재생에너지 부문에서 친환경대상을 2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하수슬러지 연료화 기술이 주목을 받는 가운데 2004년 12월 수원시는 하수슬러지 처리시설 민간투자사업 기본계획을 고시했다. 총 사업비의 50%를 정부, 25%를 경기도가 지원하고 나머지 25%는 사업자가 지원 후 향후 15년간 사용료로 수원시로부터 상환받는 BTO방식의 민자사업이었다.

이 경쟁에서 포스코건설은 현대건설, 두산산업개발과 경합해 2005년 5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며, 2006년 9월 수원시로부터 최종 사업자로 지정받았다. 2007년 6월 착공, 2009년 12월 준공된 1일 450톤 처리규모의 수원시 하수슬러지 처리시설은 단위 규모로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한편 2009년 연말 서울 역삼동 사옥 인근에서 토목환경사업본부의 호프데이가 열렸다. 2006년 1조 달성에 이어 마침내 토목환경 분야가 수주 2조원 시대를 열었다.

“모두 단합해 타사와 경쟁의 경쟁을 거듭하고 얻은 값진 수주들로 목표달성을 일궈낸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에 호랑이의 기상, 그리고 불굴의 의지로 토목시장에서 최고의 강자가 되기를 바란다.” (정동화 전 부회장)

늘 회사의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토목환경사업본부. 그 동안 도로 분야는 저가 출혈을 감내하고 턴키시장에서 정상급으로 성장했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민간제안 사업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철도 역시 경전철 경쟁력을 기반으로 업계 정상에 올라섰으며, 환경 분야는 기술력을 더욱 다져 업계 정상을 계속 유지했다. 그 같은 도전과 열정으로 이제 토모환경사업본부는 천덕꾸러기의 설움을 딛고 회사 균형 발전에 꼭 필요한 사업조직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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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6. 해외사업, “기회와 희망 찾아 베트남·중남미로 달려가다”        

# ‘제철소 건설사’ 꼬리표를 떼라!

시공능력 7위, 수주액 4조 원 돌파. 10년 전과 비교하면 국내에서 포스코건설의 위상은 몰라보게 높아졌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어떨까? 한 마디로 초라한 실적이었다.

해외사업은 전체 수주액에서 기여도가 채 10%를 넘지 못했고, 그나마 제철 플랜트만의 전유물이었다. 그 외 실적은 건축 분야의 상하이 포스플라자, 호치민 다이아몬드플라자, 그리고 하와이 콘도사업 정도가 고작이었다.

제철 플랜트의 향후 전망도 어두웠다. 포스코를 등에 업고 성공적으로 중국시장 진출에 성공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최저가로 공습해오는 중국 현지업체들의 인해전술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제철소 건설사’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이었다.

출범 당시 포스코건설은 ‘제철소 일만 하는 건설사’라는 놀림을 받았다. 그러나 그런 말은 IMF 위기 이후 쏙 들어갔다. 주택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면서 더샵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고, 모두가 주저할 때 과감하게 송도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제 해외사업에서도 그런 딱지를 뗄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특명에 건축과 토목, 그리고 에너지가 첨병으로 나섰다. 건축과 토목은 기회를 쫓아 베트남으로 달려갔고, 에너지는 희망을 찾아 중남미 개척에 나섰다. 중국에서 설 땅을 잃은 제철 플랜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가능성을 타진했다.

먼저 건축과 토목의 베트남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외형상으로는 장밋빛이었다. 국내기업으로는 드물게 신도시 건설에 성공했으며, 천년 고도 하노이시의 미래 설계를 맡길 만큼 베트남 정부로부터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토목 분야마저 3개의 고속도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포스코건설은 한류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스플랜도라 신도시가 착공하기까지, 토목 분야가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에서 성공하기까지 그 과정은 가시밭길이었다.

출발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포스코건설은 떠이호떠이와 북안카잉을 놓고 고민했다. 떠이호떠이는 대우건설이 오래 공들인 신도시 개발사업으로, 많은 건설사들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위치는 하노이 시청에서 5km 떨어진 변두리였고, 규모는 208만 ㎡ 정도였다. 대우건설은 이곳에다 한국형 신도시 건설을 꿈꾸고 있었다.

북안카잉 신도시 개발사업의 정보는 70여개의 계열사를 이끌고 있던 베트남 최대 건설 공기업인 비나코넥스로부터 제공받았다. 북안카잉은 하노이시 경계 지점이자 APEC회의 장소이기도 했던 하노이 컨벤션센터에서 5km 떨어져 있어 향후 신시가지로서 전망이 밝았고, 규모는 떠이호떠이보다 조금 큰 264만 ㎡ 정도였다. 비나코넥스는 호치민시의 랜드마크인 다이아몬드플라자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이 있었고, 이에 포스코건설에게 북안카잉 신도시 공동개발을 제안했다.

포스코건설은 두 건을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북안카잉을 선택했다. 떠이호떠이는 도심 변두리여서 인허가, 이주보상 등 향후 사업추진 과정이 쉽지 않으리라 전망했고, 무엇보다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것보다 현지 국영기업을 끼고 주도적으로 신도시 개발을 추진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정식 명칭이 스타레이크시티와 스플랜도라로 바뀐 신도시 개발사업에서 포스코건설의 스플랜도라가 대우건설의 스타레이크시티보다 착공이 훨씬 빨랐다. 떠이호떠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컨소시엄도 다 떨어져나가 대우건설만이 고군분투했다.

 

# 베트남서 두 번의 실패 딛고 다시 일어나

스플랜도라는 광채를 의미하는 영어 ‘스플랜도(splendor)’와 금을 나타내는 ‘오흐(Or)’의 합성어로 부귀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 사업은 1, 2단계로 나눠 2020년까지 총 2조 6530억 원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포스코건설은 스플랜도라를 선택하면서 첫 번째 단추를 잘 채웠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2005년부터 시작된 물밑 접촉에 이어, 2006년 들어서는 양사간 기본협약을 체결하고 베트남 정부로부터도 승인을 받아 투자허가서까지 받아냈다. 그러나 곧 착공에 들어갈 것 같았던 스플랜도라는 이후 사업추진 과정에 시간이 걸렸다.

랑~호아락 고속도로가 발목을 잡았다. 포스코건설이 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비나코넥스, 베트남 정부와 맺은 주요 계약조건은 이랬다. 하노이의 랑과 하노이 인접 하떠이성의 호아락을 연결하는 27.8km의 고속도로를 건설해 주고, 그 대가로 베트남 정부로부터 부지를 제공받는 조건이었다.

이 조건을 포스코건설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오히려 고마운 계약조건이었다. 건축과 토목의 동반 진출도 의미가 있었지만, 토목 분야 최초의 베트남 진출이기도 했다. 또 랑~호아락 고속도로는 베트남 최초의 현대식 고속도로이자, 자동차와 이륜차를 분리한 최초의 고속도로라는 의미도 있었다.

그러나 사업경험 부족의 현실은 냉혹했다. 토목 분야는 해외사업에 미숙했고, 현지 사정에도 어두웠다. 2006년 7월부터 파트너인 비나코넥스를 따라 고속도로 건설공사에 뛰어들었으나, 아무리 노력해도 경제성은 나오지 않고 리스크만 커져갔다. 결국 포스코건설은 리스크를 털어내기 위해 랑~호아락 고속도로에서 탈출했고, 대신 스플랜도라는 직접 투자방식으로 사업구조를 바꾸었다.

카이멥 국제항만터미널 건설 전 부지 전경

카이멥 국제항만터미널 건설 전 부지 전경

랑~호아락에서 호되게 신고식을 치른 건축과 토목 분야는 전열을 재정비하고 베트남 시장 안착을 위해 새로운 사업개발에 골몰했다. 그 결과 2008년에 토목과 건축 양 전선에서 각각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토목 분야는 카이멥 국제항만공사 프로젝트를 수주했으며, 건축은 베트남 천년 수도 하노이시 마스터플랜 수주에 성공했다.

카이멥 국제항만터미널(2008.3-2011.3)은배후부지 48만 ㎡에 안벽 600m를 건설해야 하는 항만공사로, 연간 컨테이너 115만 TEU를 처리할 수 있는 규모였다. 수주금액은 1억 1200만 달러였다. 현장은 호치민에서 남쪽으로 125km 가량 떨어진 붕따우에 위치하고 있으며, 베트남 정부는 이 붕따우 지역에 전체 공단의 절반 가량이 위치한 남부 집중경제구역(SFEA)의 물동량 증가에 대비해 이 사업을 추진했다. 발주처는 세계 1위 해운선사인 덴마크 몰러 머스크(A.P.Moller-Maersk)의 합작법인 CMIT였으며, 포스코건설은 삼환기업과 조인트벤처 형태로 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그러나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건축 분야는 웃었고, 토목은 또 다시 눈물을 삼켰다. 철저한 사전대비에도 불구하고 토목 분야는 이번에도 미숙함을 들어냈다. 불리한 조건에서 계약을 한 데다 외주공사 발주 과정에서 전기설계 용량을 놓치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했다. 결국 사업성 확보에 실패하고 적자운영의 전철을 반복했다.

 

카이멥 국제항만터미널 전경

카이멥 국제항만터미널 전경

# 천년 고도 하노이의 2050년을 설계하다

“2050년이면 총면적 3300㎢에 인구 1000만 명이 살게 될 베트남의 천년 수도 하노이! 그 하노이광역시의 미래 설계를 당신들에게 맡긴다.”

2008년 9월 23일 베트남총리실에서 날아온 낭보였다. 수주 최종 통보에 2주간의 합숙훈련도 마다하지 않았던 프로젝트 실무진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이 사업은 당시 921㎢인 수도 하노이의 면적을 이보다 3배 이상 확대해 3300㎢로 설계하는 도시개발 프로젝트였다. 이는 서울 총 면적의 5배를 초과하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규모였다.

베트남 정부는 2010년 하노이 천도 1000주년을 맞아 수도로서의 위상을 제고하고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의욕적으로 이 사업을 추진했다. 2008년 5월말 베트남 국회 역시 하노이시를 명실상부한 베트남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하노이시 광역도시계획 수립’을 최종 의결했다. 이로써 전 세계 유명 건설사들의 발길이 하노이시로 속속 몰려들기 시작했다.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 600년 전 삼봉 정도전이 한양천도 계획을 세우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 수주는 도시계획 분야의 우수한 기술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뿐 아니라, 향후 하노이시의 폭넓은 도시 인프라 건설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김병호 전 전무)

하노이 마스터플랜은 그만큼 매력적인 프로젝트였다. 확장된 도시조성을 위한 신도시 개발, 도로, 상하수도, 전력, 하천정비, 철도, 정보통신 등 많은 프로젝트를 양산해내야 할 로드맵을 그리는 작업이었다. 그러니 수주액이 불과 640만 달러밖에 안 되는데도 미국과 일본, 독일, 프랑스, 호주, 싱가포르 등 8개국 12개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특히 일본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고, 포스코건설 역시 당시 이구택 포스코 회장과 한수양 사장 등 최고경영층이 수차례 베트남을 방문해 고위층 인사들을 만나는 등 포스코패밀리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포스코건설의 입찰 참여는 베트남 고위층의 요청에서 시작됐다. 당시 포스코건설은 스플랜도라와 카이멥 국제항만터미널 외에도 포스코-베트남 냉연공장 등 3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으며, 이전에도 다이아몬드플라자를 비롯해 여러 제철 플랜트를 수행하면서 우호적인 인사를 많이 확보하고 있었다.

2008.12.26 하노이 마스터플랜 계약식

2008.12.26 하노이 마스터플랜 계약식

마스터플랜 수립사업의 국회 통과와 함께 본격화된 수주 경쟁에서는 4차례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2008년 7월 말 한국, 일본, 미국 등 3개국의 대표 기업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포스코건설은 뉴욕에 본사를 둔 미국의 글로벌 도시설계 회사인 퍼킨스 이스트만, 그리고 한국의 도시설계 전문회사인 진아건축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입찰경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최종 제안서 제출 보름을 앞두고 저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 개발에 골몰했다. 포스코건설은 2주간 합숙훈련에 돌입, 실무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고 또 짜냈다. 결국 2008년 8월 3일 최종 설명회 당일 포스코건설은 기발한 옵션 하나를 제시했다. 하노이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대형 모형과 그 모형을 전시할 전시관을 지어 기증하겠다는 옵션이었다.

“우리의 제안에 일본은 우리보다 더 큰 모형과 전시관을 만들어주겠다고 한발 더 나갔고, 심지어 아예 마스터플랜 자제를 공짜로 해주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만큼 일본의 수주 의지도 우리만큼 강했다.” (김창묵 Director)

그러나 2008년 9월 23일 운명의 여신은 일본의 프로포즈를 외면하고 포스코건설의 손을 들어주었다. 포스코건설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제안서의 내용이 좋았다. 개발과 보존을 고려한 생태학적 자연환경 보존계획, 도시의 난개발 방지를 위한 그린벨트 설정, 환경문제를 고려한 적정밀도 계획 등 우수한 마스터플랜이 발주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또 하나 더, 동영상 프리젠테이션이 관심을 증폭시켰다. 제안서 작성에도 버거운 짧은 기간에 포스코건설만이 유일하게 야근과 철야를 반복해서 동영상을 완성했다. 더구나 파트너십도 빛났다. 설명회 당일 동영상 프리젠테이션에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퍼킨스 이스트만 회장이 직접 사회자로 나서자 장내는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였다.

 

# 스플랜도라 착공과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수주

스플랜도라 개발사업은 랑~호아락 고속도로의 리스크를 덜어내고 2006년 12월 비나코넥스와 함께 합작법인 ‘안카잉JVC’를 설립하면서 순항하기 시작했다.

총 6단계로 나눠 2020년에 완공될 예정인 스플랜도라 신도시에는 빌라와 테라스하우스 외에도 아파트 4481세대, 주상복합형 건물 2605세대 등 모두 8593세대의 주거단지가 들어서고, 아울러 호텔, 사무실 용도의 75층 규모의 랜드마크 빌딩이 계획돼 있었다. 또 입주민들의 편익을 위해 관공서, 공원 등도 예정돼 있었다.

그 가운데 1단계 사업이 2009년부터 본격화됐다. 포스코건설은 16~22층 아파트 496가구, 3층 단독빌라 317가구, 4층 테라스하우스 236가구 등 모두 1049가구를 짓는 1단계 사업의 분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2009년 12월부터 착공에 들어갔다.

“분양 과정에서는 한 채에 한국 돈으로 15억 원이나 하는 고급 빌라인데도 물량이 없어 팔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베트남 정부 한 고위층 인사가 ‘왜 내가 이걸 못 사느냐’고 항의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희도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2009.4.25 베트남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착공식

2009.4.25 베트남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착공식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공사 현장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공사 현장

두 번의 수업료를 치른 토목 분야는 베트남 현지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아픈 만큼 좀더 성숙해졌다. 카이멥 항만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수주에 총력을 기울였다.

포스코건설은 두 번의 실패 이후 여기서도 실패하면 해외사업에서 토목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 스플랜도라 파트너인 비나코넥스까지 참가한 결코 쉽지 않은 국제경쟁이었다.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역점사업인 ‘메콩유역 개발사업’(GMS)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사업이었다. 하노이와 중국 운남성 쿤밍을 잇는 연결 고속도로로, 하노이 국제공항에 위치한 노이바이에서 출발, 국경지역인 라오까이까지 총 연장 264km에 8개 공구로 구성됐으며, 전체 사업비는 12억 5000만 달러 규모였다.

특히 이 고속도로는 베트남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었다. 베트남 정부는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가 수도 하노이와 하이퐁, 쿤밍시 사이의 운송 기간을 하루 이내로 단축시킴으로써 중국과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과 같은 인접국과의 무역을 활성화할 것으로 크게 기대했다.

하노이 노이바이 첫 구간인 1공구는 27km 길이의 4차선 고속도로로 약 1억 5000만 달러 규모였다. 2009년 3월 입찰에서는 중국, 베트남 등 총 9개 건설사가 참여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결과는 최후 각오를 다지면서 배수진을 쳤던 포스코건설이 수주에 성공하면서 최대 경쟁자였던 비나코넥스를 놀라게 했다.

1공구 수주의 여세를 몰아 포스코건설은 2009년 10월과 11월 입찰에서도 2공구와 3공구를 연속으로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2공구는 22.12km의 4차선 아스팔트 포장공사와 19개의 교량을 건설하는 도로공사였으며, 포스코건설은 1~3공구 수주를 통해 총 81km의 시공물량을 확보했다. 더욱이 8개 공구 중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우리나라 건설사가 6개 구간을 석권함으로써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 토목의 기술력을 과시했다.

 

# 지구 끝 중남미에서 찾은 블루오션, 석탄화력발전

건축과 토목 분야가 베트남에서 성공드라마를 써나가는 사이, 신생조직 에너지 분야는 지구 끝 중남미에서 블루오션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새로운 경험의 석탄화력발전이었다.

“동남아나 중동에 뒤늦게 뛰어들어서 같이 피 흘리는 것보다 중남미나 CIS 국가 등 우리나라 기업들이 잘 들어가지 않는 지역에서 블루오션을 찾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칠레가 바로 그렇게 해서 찾아낸 블루오션이었다.” (김대호 전 부사장)

2004년 7월, 에너지 조직을 재정비한포스코건설은 에너지사업에 대한 연륜은 짧았지만, 의욕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다. 일찌감치 국내시장을 레드오션으로 파악하고 해외로 눈을 돌렸다.

먼저 중남미시장에 대해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운명적으로 AES와 인연을 맺었다.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에 본사를 두고 있던 AES사는 전 세계 27개국에 15개의 전력회사와 124개의 발전소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2005년 당시 110억 달러의 매출과 297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글로벌 전력회사였다.

AES와 관계가 시작된 건 2005년 9월이었다. 중남미 현지조사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칠레의 석탄화력발전 프로젝트와 민간발전사업자인 AES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다.

칠레는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 국가인데다 전체 산업의 50%를 차지하는 광산산업에서 막대한 전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환경규제가 심해 원자력발전은 엄두도 못 내고, 볼리비아에서 아르헨티나를 거쳐 공급되는 가스발전에 근근이 연명하고 있었다. 설상가상, 폭설로 가스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결국 칠레 정부는 발전능력 확충을 위해 민간발전사업자(IPP) 모집에 나섰고, 포스코건설은 지난 30년간 칠레에 전력을 공급해오면서 전체 발전량의 20%를 점유하고 있던 AES를 가장 매력적인 민간발전사업자로 보았다. 무엇보다 칠레는 앞으로 계속 대규모 발전 프로젝트가 쏟아질 블루오션이었다.

사업정보 입수 직후 포스코건설은 2006년도 발주 예정인 여러 프로젝트 중에서 AES의 벤타나스 석탄화력발전소를 선택하고 역량을 집중했다. AES를 수차례 방문해 적극적으로 기술력을 홍보하는 등 총력전을 펼친 결과, 2006년 2월 입찰참가자격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수주 경쟁은 치열했다. 프랑스의 알스톰, 캐나다 SNC-라발린, 일본의 미쓰비시 등 세계적 EPC업체 10개사가 경쟁에 참여했다. 그해 5월 제안서 제출 후에는 최종 경쟁에서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미쓰비시, 알스톰 등 3개 업체가 남았다.

막판 수주전은 더욱 치열했다. 포스코건설의 투지도 더욱 달아올랐다. 발주처인 AES의 요구사항은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않고 철저히 반영했고, 지구 끝 정반대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한밤중에도 메일이 오면 곧바로 답장을 보내주었다. 그런 성실함에 AES가 차츰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포스코건설은 더욱 자신들의 기술력을 알리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심지어 AES측 책임자를 한국으로 초청해 포항제철소 코크스공장의 석탄 설비, 용광로 미분탄 설비, 자가발전 설비 등을 견학시켜 주기도 했다. 당시 견학에 대한 AES측의 만족도는 폭발적이었다. 결국 2006년 9월 AES는 벤타나스 석탄화력발전소의 EPC 턴키 사업자로 포스코건설을 선택했다.

“석탄보일러 중 우리가 제안했던 PC보일러(미분탄연소)가 수주 성공에 기여한 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나머지 업체들은 CFBC보일러(순환유동층)를 제안했는데, 우리는 그들과 다르게 PC보일러를 채택해 가격경쟁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김원석 상무)

9.E-D-132-00

2007.10.17 칠레 벤타나스 4호기 계약식

10..E-A-A-109-03

2007.6.11 칠레석탄화력발전소 착공식

 

# 돈 다 날려도 좋으니, 공기·품질향상 지켜라!

포스코건설이 수주한 누에바-벤타나스 석탄화력발전소는 수도 산티아고에서 북서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칠레의 유력 산업도시 벤타나스에 위치하고 있으며, 발전용량 240MW에 사업규모는 3억 7000억 달러였다.

벤타나스 석탄화력발전소의 수주는 한국 건설계는 물론, 포스코건설 해외진출 역사에서도 많은 의미를 남겼다. 국내 건설사 중 최초의 중남미 진출이었으며,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EPC 턴키로도 국내 최초라는 기록을 남겼다.

특히 포스코건설 조직에 큰 변화가 있었다. 갑작스럽게 초대형 해외사업을 수주함에 따라 인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09년까지 경력직만 매년 100명씩 뽑으면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에너지 전문가들을 포스코건설이 싹쓸이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이는 한국 건설계로서도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그 동안 불황으로 구조조정 당했던 에너지 전문인력들이 되살아나면서 묵혀있던 기술들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벤타나스 수주는 일개 팀 조직을 사업본부로 격상시키는 힘을 발휘했다. 벤타나스 수주에 힘입어 2006년 12월 에너지사업본부가 출범했다. 국내에서 본부급의 에너지 조직은 당시 포스코건설이 유일했다. 이는 최고경영층의 의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으로, 당시 한수양 사장은 틈만 나면 지구 끝 칠레로 날아가서 직원들에게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처음이니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비를 다 날리는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회사가 끝까지 지원할 테니 반드시 공기준수와 품질확보의 과업을 완수해주기 바란다.” (한수양 전 사장)

2008.8.27 칠레 앙가모스 석탄화력발전소 착공

2008.8.27 칠레 앙가모스 석탄화력발전소 착공

칠레 앙가모스 석탄화력발전소 공사현장

칠레 앙가모스 석탄화력발전소 공사현장

최고경영층의 예상대로 2006년 12월 착공 이후 추진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현지 협력업체 확보였다. 당시 현지업체들은 자국에 처음 진출한 포스코건설의 능력을 의심했다. 그들은 벤타나스 프로젝트를 외면하고 산타마리아나 앙가모스 등 다른 프로젝트를 찾아 다녔다. 그러다 보니 포스코건설의 하도급 입찰장은 텅 비었고, 현장 책임자들은 현지업체들을 직접 찾아가 사정사정해서 모셔와야만 했다.

그러나 그런 무시와 천대를 극복하는 데는 단 6개월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포스코건설이 아무 문제없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반면, 당시 같이 출발했던 다른 프로젝트들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칠레 사회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포스코건설의 실력을 인정하면서 부르지 않아도 같이 일하고 싶다는 현지업체들이 길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발주처 AES의 신뢰도 고무적이었다. 칠레 지역에서 믿고 맡길만한 회사가 포스코건설밖에 없다고 판단한 AES는 벤타나스 이후 모든 프로젝트를 몰아주면서 계약방식도 수의계약으로 변경했다. 그렇게 해서 포스코건설은 캄피체 석탄화력발전소(2007.10-2011.2)와 앙가모스 석탄화력발전소(2007.10-2011.8)등을 연이어 수주할 수 있었다.

캄피체는 누에바-벤타나스와 같은 벤타나스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발전용량 270MW에 사업비는 4억 4000만 달러 규모였다. 앙가모스는 캄피체보다 2배의 규모였다. 산티아고에서 북쪽으로 약 1300km 떨어진 칠레의 북부 항구도시 안토파가스타에 위치하고 있으며, 발전용량 520MW(260MW, 2기)에 사업비도 8억 7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처럼 포스코건설은 벤타나스 효과로 단 1년 만에 에너지 분야에서 무려 13억 1000만 달러를 수주하는 놀라운 실적을 달성했다.

 

# 벤타나스, 공기단축·성능향상·동반성장 세 마리 토끼를 잡다
칠레 벤타나스 석탄화력발전소 Boiler Package

칠레 벤타나스 석탄화력발전소 Boiler Package

“벤타나스 석탄화력발전소의 성공적 준공은 칠레 국가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만성적인 전력난에 허덕이던 칠레 산업에 숨통을 틔워준 데다, 같이 출발했던 다른 프로젝트들보다 먼저 준공해서 칠레 사회에서 포스코건설에 대한 신뢰가 더욱 높아졌다. 앙가모스는 아예 시작도 못했으며, 나머지 두 곳은 기술적인 문제로 준공을 2년이나 연기하면서 우리 회사에 대한 인지도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를 앞질렀다.” (김호섭 전 부사장)

2009년 12월 마침내 벤타나스 석탄화력발전소가 발전을 시작했다. 벤타나스의 성공적 준공을 통해 포스코건설은 많은 성과를 달성했다. 가장 큰 성과는 공기단축이었다. 프로젝트 수행 전부터 공기준수는 회사의 특명이었다. 해외 EPC가 처음인 만큼 적기 공기준수는 향후 해외사업의 지속성이 걸린 중대한 임무였다.

공기준수 특명을 받은 책임요원들은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모든 자재를 완성품으로 제작해 대형장비로 설치함으로써 작업시간을 최소화했다. 시급한 작업에는 숙달된 국내 전문가를 투입했으며, 현지 근로자에게도 작업표준서를 만들어 지도하는 등 현장 오류를 최대한 막았다. 특히 지반공사부터 24시간 철야 교대근무를 실시했다. 그 결과 공기준수라는 지상과제를 달성할 수 있었고, 덤으로 공기단축의 영광도 얻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지상과제는 품질확보, 즉 성능향상이었다. 먼저 포스코건설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진에 대비해 규모 7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는 내진설계를 적용했으며, 유럽만큼 까다로운 칠레 정부의 인허가 기준을 만족시킴으로써 설계·시공 능력은 물론 친환경 기술력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성능향상 과정에서는 최저의 비용으로 각 부문의 품질, 공사기간, 안정성 등의 요구조건을 달성하기 위한 VE(Value Engineering) 혁신활동이 큰 힘이 됐다. VE 활동 결과 최종 성능시험에서 계약보증 조건보다 4% 이상 향상된 252.2MW의 발전출력을 달성했으며, 열소비율도 당초 계약보다 크게 향상시켰다.

국내 기자재 적용도 의미 있는 성과였다. 벤타나스 프로젝트에는 90% 이상 국내 기자재와 설비를 적용했고, 인력관리에서도 대부분 국내 협력업체를 활용했다. 그 결과 국산 기자재의 우수성을 입증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국내 협력업체 동반 해외진출 등 포스코건설이 추구하는 동반성장경영을 실현할 수 있었다.

 

# 제철 플랜트, 전 세계에서 가능성을 타진하다

건축과 토목, 에너지 분야가 베트남, 칠레에서 선전하면서 ‘해외사업도 제철소 건설사’라는 딱지를 떼어낸 반면, 전통적으로 해외사업 강자였던 제철 플랜트 분야는 거대 중국시장에서 쫓겨난 이후 향후 전략 마련에 부심했다.

그러나 명예회복을 위한 이들의 의지는 이 시기 어느 때보다 강했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지구촌 곳곳을 누비면서 그들의 신발 밑창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시기 제철 플랜트는 어느 때보다 가장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업가능성을 타진했다.

극동·동남아 지역에서는 일본과 베트남을 넘나들었고, 인도와 함께 중동 지역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포스코를 따라 저 멀리 중남미 멕시코까지 날아가기도 했다.

이 시기 2005년에서 2009년까지대표적으로 7건의 프로젝트 수행 결과 3건에서 수익을 창출하며 43% 정도의 승률을 올렸다. 고무적인 사실은 포스코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포스코 물량 2건을 빼고 나머지 5건이 대외사업이었고, 가장 큰 성과는 일본 아시아특수제강 프로젝트의 성공적 수행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냉연과 멕시코 CGL 등 포스코 물량 2건 모두가 100% 수익 창출에 성공한 반면, 대외 물량 중 아시아특수강을 빼고 나머지 4건의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아쉬움을 남긴 프로젝트는 인도와 중동 지역에 집중됐다. 먼저 중동 지역 사우디아라비아부터 출발했다. 2005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 최대 철강사인 하디드사로부터 연산 12만톤 규모의 칼라강판(CCL) 수주에 성공했다. 제철 플랜트의 사우디아라비아 CCL 수주는 창립 10주년 이후 새롭게 각오를 다질 때라, 첫 출발치고는 산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우디 하디드 CCL공장 전경

사우디 하디드 CCL공장 전경

특히 하디드 CCL(2005.4~2007.8)은 비록 수주금액이 350억 원 수준이었지만, 유럽의 철강설비 공급사들이 독점해오던 사우디아라비아에 첫 진출했다는 의미가 있었다. 국제입찰에서는 오스트리아의 푀스트알피네, 이탈리아의 다니엘리 등 세계적 기업을 제쳐 그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

그러나 너무 산뜻한 출발에 함정이 숨어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사전준비가 부족했다. 먼저 중동 지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특히 유럽적인 사고로 절차와 규격을 중시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문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계약서의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승리에 도취돼 유럽의 쟁쟁한 경쟁자들이 갑자기 왜 발을 뺐는지 의심하지 않았다. 결국 포스코건설은 절차와 규격을 중시하는 그들의 문화와 계약 구조상의 문제로 인해 적잖은 손실을 보았다.

승인절차가 까다롭다는 사실만 사전에 파악했더라면 유럽 방식대로 상세설계를 만들어 사전에 잡음을 차단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해 프로젝트 내내 발주처의 수많은 요구사항에 시달려야만 했다. 규격 역시 독일 규격인 DIM이 표준이란 사실을 모르고 KS나 JIS를 내밀었다가 된통 곤혹을 치렀다. 계약에서는 시공에 대한 책임보증이 문제였다. 현지 시공업체의 잘못을 다 떠안고 말았다.

2007.10.16 인도 이스코 고로프로젝트 계약 서명식

2007.10.16 인도 이스코 고로프로젝트 계약 서명식

사우디 첫 진출에 이어 2007년 9월 포스코건설은 인도에 첫 진출했다. 제철 플랜트 중 인도에서 활약한 분야는 제선공정의 핵심 고로였다. 이미 광양 5고로 신설의 기술력을 확보한 포스코건설은 해외사업에서 이 기술의 적용을 의욕적으로 시도했지만, 이란 타바존 이후 별다른 실적이 없었다. 당시 인도와 대만 등에서 고로 물량이 간간이 나왔지만, 강력한 경쟁자인 룩셈부르크 폴워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07년과 2008년에 연속적으로 이변이 발생하는데, 포스코건설이 폴워스를 누르고 인도 이스코 고로와 세일사 고로를 수주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세일사 고로는 중간에 중단됐으며, 이스코사 고로(2007.10~2010.3)는 추진과정이 길어지면서 적잖은 손실이 발생했다.

가격이 문제였다. 세일사는 사업자를 선정하고도 가격을 더 깎으려고 현지업체와 양다리를 걸쳤으며, 이스코의 계약 내용은 불량했다. 계약조건에 선수금이 빠져 있었다. 그러니 폴워스 같은 유럽의 경쟁자들이 입찰경쟁에서 등을 돌린 것이었다. 포스코건설은 최초 인도 진출과 실적에 급급해 덥석 고기를 물었지만, 적잖은 손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 기술이전 받던 나라에 플랜트 역수출, 일본 아시아특수강
2007.12.27 일본 아시아특수제강 사업 계약식

2007.12.27 일본 아시아특수제강 사업 계약식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실패사례에 이어 수익을 올렸던 일본과 베트남, 멕시코에서도 아쉬움은 있었다. 그나마 일본은 성공 프로젝트라 할 수 있었다.

2007년 12월 포스코건설은 일본 아시아특수제강 신설사업 수주에 성공했다. 이 프로젝트는 총 사업비가 약 180억 엔, 한화로는 2347억 원으로, 60톤 규모의 전기로 제강공장, 연간 생산용량 12만 톤의 조괴공장 시공 및 설비공급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신설사업의 위치는 키타규슈 히비키나다 지역이며, 아시아특수제강이란 회사는 포스코P&S와 일본 특수강용 블룸 전문제조회사인 고토부키공업이 설립한 합작회사였다. 엄밀히 따지면 이 역시 포스코패밀리 물량인 셈이었다.

어쨌든 이 프로젝트는 포스코건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먼저 일본 첫 진출이자 전기로시장 개척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다. 1968년 포항 영일만에 제철소를 건설할 당시 들어간 기술 대부분이 일본 작품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근 40년 만에 포스코건설이 플랜트 역수출의 가슴 벅찬 성과를 이룩한 것이었다.

그러나 쉬운 일은 없었다. 유럽의 선진 엔지니어링사들도 쉽게 진출하기 힘든 곳이 일본이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짧은 공기와 일본관청의 까다로운 인허가 과정이었다. 모든 문서와 의사소통이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 진행해야 하는 것도 해외사업에서는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기술적인 장벽도 높았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의 볼트도 망치로 두드려 풀림을 확인할 정도로 발주처는 완벽한 기술력을 요구했다.

“우리는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열정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갔다. 발주처와의 약속과 신뢰를 지키기 위해 꼼꼼하고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적극적인 기술지원과 설득을 통해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끌어나갔다.” (심재향 Director, 당시 PM)

수주 이후 8개월만인 2008년 8월경 늦게 착공에 들어간 아시아특수제강 프로젝트는 짧은 공기에도 불구하고 까다로운 시운전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2009년 10월 준공을 맞았다. 그간의 노력과 공로에 대해 발주처로부터 감사패를 수상하기도 했다.

멕시코 알타미라 포스코 CGL공장 전경

멕시코 알타미라 포스코 CGL공장 전경

포스코-멕시코 CGL 프로젝트(2007.10~2009.6) 추진 과정에도 시련이 많았다. 포스코와 포스코건설 모두 실수를 범해 어려움을 자처하기도 했으나, 포스코 특유의 정신을 발휘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2007년이었다. 당시 세계 최고의 자동차강판 공급사였던 포스코는 꾸준히 그 영역을 전 세계로 확대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2000년대 중반 멕시코가 북미지역 신흥 자동차생산기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GM과 닛산, 현대, 벤츠 등 글로벌 자동차사들이 대규모 생산라인을 갖추면서 멕시코는 220여만 대의 자동차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특히 멕시코는 미국 남동부 지역과 가까워 최적의 자동차강판 공급기지란 매력이 있었다. 포스코로서는 저렴한 노동력도 구미를 당겼다.

포스코-멕시코 CGL은 멕시코 알타미라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업비 2억 6000만 달러, 연산 40만톤 규모의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였다. 포스코는 비용절감 차원에서 분할 발주를 추진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토목과 건축을 제외하고 설계와 설비공급, 기계·전기공사를 수행했다. 결과적으로 포스코가 사업경험이 없다 보니 토목과 건축이 늦어져 공기가 지연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포스코건설이 토목과 건축을 다시 수행했으며, 돌관공사로 무사히 공기를 준수했다.

포스코건설 측에서도 실수가 있었다. 수주금액이 적어 사업비 규모를 맞추는 과정에서 중국으로 많은 설비를 발주했다. 그 결과 품질문제가 발생해 시운전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자초했다.

 

# 베트남 냉연, 해외 최초 단독 EPC 수행
포스코 베트남 냉연공장 전경

포스코 베트남 냉연공장 전경

포스코-베트남냉연공장은 일본 아시아특수제강이나 멕시코 CGL과 비슷한 시기에 착공·준공된 프로젝트로,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앞서 두 프로젝트보다 베트남 냉연공장이 좀 더 드라마틱하고 의미도 남달랐다.

베트남 냉연공장은 포스코가 동남아 고급 철강 수요를 겨냥해 동남아 최대 규모로 계획한 프로젝트였다. 연산 120만 톤 규모의 PL/TCM 1기, 연산 70만 톤 규모의 CAL 1기, RCL/CPL 각 2기와 유틸리티 설비를 신설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호치민에서 남쪽으로 125km 떨어진 붕따우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사업비는 약 2억 2465만 달러 규모였다.

2007년 8월 착공, 2009년 9월 준공된 이 프로젝트는 착공부터 난관이 많았다. 우기를 맞아 빗물과 사투를 벌였으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부지가 초 연약지반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포항과 광양에서 겪어보지 못한 난관으로, 냉연공장이 위치한 강변 맹그로브 숲 늪지의 부지는 갯벌보다도 더 안 좋다는 강벌이었다.

이대로는 결코 공기를 맞출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정밀조사에 착수했다. 정밀조사 결과 포항, 광양과 같은 지하구조물 시공으로는 공기, 비용, 안전성 측면에서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추가 경비를 감수하고 지하구조물 설계를 변경했다. 구조물 레벨을 4~5m 상향으로 설계 변경하고, 가설토류벽 없이 오픈 굴착공법을 적용했다. 최초로 시도된 지하구조물의 상향으로 압연기(TCM), 산세(PL), 소둔(CAL) 설비 등의 구조물이 지상에 떠 있는 형태가 됐다.

구조물 레벨의 상향으로 핵심 리스크는 해결책이 나왔으나, 막상 굴착에 착수하고 보니 파일 변이로 인한 전도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연속 시공이 불가능했다. 이 역시 원인은 연약지반에 있었다. 설계 검토 끝에 부지 레벨을 1m 상향해 굴착 레벨 깊이를 1m 줄임으로써 파일 변이를 막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설계 변경으로 연약지반 문제를 해결했지만, 1개월의 공기연장이 발생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24시간 철야작업에 들어갔으며, 주요 공사에는 국내 기술진을 투입했다. 이 같은 노력 덕에 잃어버린 1개월의 시간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사전준비가 미흡했다. 현지조사를 통해 연약지반을 미리 확인했더라면 설계 변경이라는 이중고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초기에 글로벌 프로젝트 조직을 갖추지 못한 점도 아쉬움이었다. 이런 문제들로 발주처와 갈등을 빚으면서 결국 현장소장이 교체돼 내가 후임으로 왔다.” (임재신 상무)

토건공사에서 리스크가 우기와 연약지반이었다면 기전공사에서는 정밀시공과 품질관리가 리스크였다. 베트남 현지의 건설 인프라 취약으로 품질확보의 어려움이 예상됐다. 현지 시공업체의 제철설비 경험이 전무했으며, 플랜트 시공에 경험 있는 기능인력도 부족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스코건설은 주요 설비를 국내업체에게 맡기고, 현지 인력에 대한 기능교육을 강화함으로써 기전공사의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기전공사에서 위기를 넘기나 싶었으나, 수전공사에서 1개월의 공기연장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정도면 베트남에서는 매우 선방한 것이었다. 통상 베트남에서는 유럽이나 일본 기업이라도 기후와 지역 특성상 1년 정도의 공기지연이 기본이었다. 베트남 전력청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수전을 요청해오면 6개월 늦게 넣어주는 것이 관례처럼 자리 잡았다.

이 같은 관행을 막고자 포스코건설은 수전공사를 앞두고 전력청 간부들을 현장으로 초청해 설명회를 개최했다. 현장 실무진들은 전력청 간부들에게 포스코건설의 전통이 철저한 공기준수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장을 둘러본 전력청 인사들은 빠른 진행 속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를 계기로 포스코건설은 그 동안의 관례를 깨고 빨리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특히 공기준수 전통이 알려지면서 베트남 사회에서 포스코건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1개월 정도의 공기연장은 이후 철야작업으로 거뜬히 만회했다. 2009년 9월 마침내 초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최초의 공기 준수에 성공하고 경제적 운영으로 수익성을 확보하는 등 포스코-베트남 냉연공장 신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베트남 냉연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성과는 당시로서는 해외 최초 단독 EPC 수행이었다. 더구나 포스코건설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CAL 핵심설비의 자력설계와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냉연공장 EPC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과시했다.

2009.7.23 이란 타바존 화입식 초도 출선

2009.7.23 이란 타바존 화입식 초도 출선

한편 1999년 국내 최초 제철 플랜트 수출로 관심을 모았던 이란 타바존 프로젝트가 이후 10년만인 29.2009년 7월 고로에서 첫 쇳물을 생산하면서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공기지연의 원인은 발주처의 자금 부족이었다. 당시 포스코건설은 EP를 맡아 시공이 끝날 때까지 끈기를 가지고 계속 기다렸다. 반면 시공을 맡은 현지업체는 공사대금이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며 공기를 지연시켰다.

타바존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성과는 신뢰구축이었다. EP 중에서도 포스코건설은 고로와 소결을 맡았고, 코크스는 우크라이나가 맡았다. 그리고 중국이 발전을 담당했다. 이 세 외국기업 중 중국과 우크라이나는 자금조달이 늦어지자 미련 없이 이란에서 철수했다. 오직 포스코건설만이 고로에서 쇳물이 솟아질 때까지 남아 책임을 완수했다.

그 결과 이란 사회가 크게 감동하며 포스코건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었다. 아쉬운 점은 이런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2006년경 3억 3000만 달러 규모의 이란 철강플랜트 수주에 성공했으나,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제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향후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그들의 신뢰가 변치 않는 한 미국과의 긴장이 사라지고 새롭게 봄이 오면 이란의 제철 플랜트시장은 가장 먼저 포스코건설을 초대할 것이다.

 

 

<생각하는 페이지>
건축 분야 부산 불패신화에 대한 오판과 교훈

주택사업 성공에 힘입어 2000년대 들어서며 건축 분야가 포스코건설의 성장을 주도했다. 건축 분야는 어떤 사업 분야보다도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괄목할 만한 성과들도 많이 도출해냈다. 그러나 눈에 드러나는 성과 이면에는 수행 프로젝트 가지 수가 많았던 만큼 실패나 실수도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산 지역이었다. 포스코건설은 부산 주택시장에서 센텀파크를 시작으로 아델리스, 센텀스타 등으로 불패신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서면 피에스타와 아이온시티에서 뼈아픈 실패를 경험했다.

두 프로젝트 모두 시행사 운이 없었다. 미분양에 이은 시행사 부도로 포스코건설이 건물을 떠안아야 했으며, 미분양 해소와 건물 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

이 두 사건의 교훈은 치밀한 사업성 분석의 중요성이었다. 사전에 시행사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해볼 필요가 있었고, 부산지역 상업시설에 대한 시장조사도 선행돼야 했다. 당시 부산지역 상권은 불황이 심해 분양의 무덤으로 불릴 만큼 상업시설 투자 여건이 좋지 않았다.

경기도 오포아파트 역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실패사례였다. 2003년 토지를 매입하고 사업추진에 나섰으나, 첫 시작부터 인허가 과정이 쉽지 않았다. 2005년경 인허가 로비 의혹으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으며, 2009년에는 성급하게 사업승인을 예측하고 분양에 나섰다가 손실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토지매입 7년 만에 사업계획 승인이 났으나, 개발사업의 장기간 정체로 사업추진 여건이 악화됐다. 그 동안의 금융비용을 감안한다면 고분양가 책정이 불가피했으나, 부동산 침체로 미분양이 우려됐다.

결국 포스코건설은 사업구조를 변경하는 등 사업정리 수순을 밟았으나, 2012년 함께 사업을 추진했던 정우건설의 법정관리와 자금보충 약정에 덜미가 잡혀 또 한 번 손실을 보았다. 이 사건에서는 복잡한 사업추진 과정에서 진작 결단을 내리고 신속히 부실을 털어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었다.

플랜트 분야는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사우디아라비아 하디드사 CCL, 인도 세일사 및 이스코사 고로 프로젝트 등이 주요 실패사례로 꼽혔다. 이들 프로젝트에서는 현지 국가 문화 분석의 중요성이 소중한 교훈이었으며, 해외 실적에 대한 성급한 판단이 뼈를 깎는 반성 요인이었다.

토목환경 분야는 본문에서 언급했던 베트남 랑~호아락 고속도로, 카이맵 국제항만공사 외에 나이지리아 철도, 고양시 환경플랜트 등도 속을 많이 썩였던 프로젝트였다.

2006년경 포스코건설은 나이지리아 철도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철저한 사전준비와 함께 신속히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많은 공을 들였다. 정부에서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이지리아를 방문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수주계약 직전까지 갔던 이 프로젝트는 중간에 중국기업이 끼어들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차관 30억 달러에 눈이 먼 나이지리아 정부가 포스코건설과의 계약을 뒤집어버렸다. 포스코건설은 2단계 사업이라도 건지고 싶어 재차 협상을 시도했지만, 한번 공짜 맛을 본 나이지리아 정부는 중국의 차관 제공을 예로 들며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결국 포스코건설은 눈물을 머금고 나이지리아에서 철수했다.

고양시 환경플랜트는 설비품질이 문제였다. 준공 후 성능 미달로 개보수를 실시했으나, 그래도 당초 약속했던 성능이 나오지 않았다. 이를 두고 시공을 맡았던 포스코건설과 운영을 담당했던 한국환경공단 간 공방이 벌어졌다.

한국환경공단은 설비의 성능 미달을 주장했으며, 포스코건설은 운영미숙과 쓰레기 질의 불량이 성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한 가운데 준공 2년이 지나도록 고양시는 공사비 지급을 거부했고, 이는 법정 소송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이 사건의 교훈은 신공법 도입 때의 사전 철저한 검증 작업의 중요성이었다. 마땅히 그랬어야 할 이 같은 과정을 소홀히 해 포스코건설은 엄청난 사후 관리비용을 물어야 했다.

4-2

Story2. 건축과 토목환경, 베트남 성공 기반으로 해외사업 영토를 확장하다

# 해외사업 총동원령, 배수진의 각오로 임하라!

2009년 창립 15년을 맞은 포스코건설의 해외사업 분야는 앞선 5년간 크게 성장했다. 이전 10년과 비교해 봐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눈부시게 발전했다.

사실 회사 출범 이전인 거양개발과 PEC 시절부터 의욕적으로 해외사업에 나섰으나, 내용이 별로 좋지 않았다. 든든한 포스코를 따라 베트남과 중국 진출에는 성공하지만, 포스코가 빠지고 독자적으로 수행한 해외사업에서는 시련이 많았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제철 플랜트 중심이었다. 제철 플랜트 외 해외사업이 중국 포스플라자, 베트남 다이아몬드플라자, 하와이 콘드 등 3건의 자체 개발사업에 그쳐 ‘제철소 건설사’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5년은 달랐다. 건축과 토목 분야가 베트남에서 맹활약했고, 에너지 분야는 중남미 발전시장에서 성공신화를 써나갔다. 관록의 제철 플랜트 역시 중동과 인도, 일본과 베트남, 심지어 중남미 멕시코까지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력이었다. 안 되면 포기하고 막히면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포스코건설은 초심을 버리지 않았다. 글로벌 E&C의 꿈을 잊지 않았다.

특히 해외사업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건설경기가 침체기를 맞으면서 위기감이 고조됐고, 한정된 국내시장에 그 파이마저 계속 줄어드니 재도약을 위해서는 글로벌 확장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신사업 발굴도 쉽지 않았다. 해외 발전에너지만 선전할 뿐, 화공 분야 진출의 장벽은 너무 높았고, 그린에너지 역시 성장동력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해외사업만이 살 길이었다. 싱크포워드 비전 수립 이후 포스코건설은 해외사업 총동원령을 내렸고, 모든 사업부서가 배수진의 각오로 해외사업을 추진했다.

캄보디아 직원훈련원 전경

캄보디아 직원훈련원 전경

바타낙 캐피탈 타워 조감도

바타낙 캐피탈 타워 조감도

건축 분야는 베트남에 한국형 신도시 수출에 이어 캄보디아 건축시장 진출에 성공하면서 첫 포문을 열었다. 2010년 3월말 캄보디아 부동산 개발회사인 바타낙 프로퍼티사가 발주한 바타낙 캐피탈 타워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국제협력 사업인 캄보디아 직업훈련원(2003.6~2005.5) 프로젝트 수행이후 민간 발주사업으로는 최초의 실적이었다.

수도 프놈펜 중심부에 위치한 바타낙 캐피탈 타워(2010.3~2012.12)는 사업비 6600만 달러가 투자된 지하 4층, 지상 38층 규모의 인텔리전트빌딩이었다. 인천국제공항 설계로 유명한 영국의 테리 파렐 파트너십사(TFP-Terry Farrell Partnerships)가 설계를 맡았으며, 행운과 건강을 상징하는 용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준공 이후 바타낙 캐피탈 타워에는 캄보디아 최초의 증권거래소와 바타낙 은행 등이 입주함에 따라 캄보디아 금융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거듭났다.

캄보디아 금융빌딩 수주를 시작으로 이 시기 포스코건설의 건축 분야는 베트남을 정점으로 동남아시아에서 크게 활동했다. 하노이시 마스터플랜의 성공적 완수에 이어 스플랜도라 신도시 1단계 사업을 무사히 완료하면서 베트남 건설한류의 중심에 섰고, 대우인터내셔널과 동반 협력으로 미얀마 호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동남아시아 외에도 카자흐스탄 신도시 개발사업에 참여함에 따라 중앙아시아에 첫 진출했으며, 이어서 영역을 오세아니아로 확대해 호주 호텔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 하노이 플랜 성공적 완수, 뜨거운 베트남의 가슴을 움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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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 광역도시 마스터플랜 조감도

베트남 하노이시, 2011년 7월 29일 오후 2시. 응웬떤중 베트남 총리를 비롯해 국가 고위급 인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하노이 국가 도시계획 전시관’ 개관 행사장이었다. 1, 2층이 오픈된 전시관은 2층에서 관람이 시작되는 구조였다. 2층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3개로 이루어진 도시 모형이 시선을 압도했다.

첫 번째 모형은 근대 이전 하노이의 모습이었고, 두 번째가 현재의 하노이, 그리고 마지막 모형은 포스코건설이 설계한 20년 후 미래의 하노이 전경이었다. 경이로운 광경에 관람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 이 날은 포스코건설의 역작 하노이 마스터플랜이 완성된 기념비적인 날이기도 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하노이 마스터플랜 사업의 성공적인 완수를 기념하고, 베트남 정부가 하노이의 미래 발전상을 홍보하는 데 기여할 목적으로 280만 달러 상당의 ‘초대형 하노이시 모형’을 기증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스터플랜 수립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초 1년 6개월의 일정이 1년이나 더 연장됐다. 하노이시와 주변 5개 위성도시를 연결하는 대단위 개발계획이다 보니 많은 기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무려 750가지나 되는 개발계획이 이해관계에 따라 쏟아져 나왔는데, 이를 조정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 (김창묵 Director)

베트남 정부가 이 사업을 자국 내 전문가들에게 맡기지 않고 국제입찰에 부친 이유도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었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선진 기법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베트남 정부는 천년 수도 하노이시의 웅장한 미래 모습을 설계해주길 원했다.

설계를 맡은 포스코건설은 조정과 정리 과정에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정보를 공개했고,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논리적인 설득을 통해 최대한 협력을 이끌어냈다. 그러자니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750가지나 되던 개발계획을 40%로 줄여 난개발을 방지할 수 있었다. 특히 하노이 중심부와 주변 5개 위성도시를 효율적으로 연결하면서 그 중간 지점에만 신도시 계획을 세웠고, 나머지는 생태학적 자연환경 보존 차원에서 그린 코리더로 지정함으로써 40%의 녹지축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미래지향적이고 지속 발전이 가능한 친환경 생태도시로 웅장한 하노이시의 미래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다. 그린 코리더(Green Corridor)는 풍부한 대도시의 생태계를 위해 강기슭이나 도로 등을 녹화하고, 다양한 생물을 도입하는 녹지계획이었다.

베트남 호치민시 중심부에 위치한 다이아몬드플라자

베트남 호치민시 중심부에 위치한 다이아몬드플라자

하노이시 설계에서 보여준 포스코건설의 성심은 베트남 사회에 또 한 번의 우호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포스코건설은 1990년대 중반 철강 프로젝트로 첫 인연을 맺은 이후 호치민시 중심부에 랜드마크 다이아몬드플라자를 건설함으로써 베트남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신도시, 고속도로 등 대규모 국책사업을 수행하면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포스코건설이 펼친 사회공헌활동은 베트남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 같은 베트남 사회의 우호적인 관심이 2011년 11월경 베트남 제1국영방송인 VTV에 고스란히 담겼다.

당시 포스코건설 특집방송은 베트남 현지는 물론, VTV가 운영하는 국제방송 채널을 통해 미국, 호주, 유럽 등에도 방영됐으며, VTV는 1시간 내내 베트남의 경제발전과 지역사회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긍정적 평가와 함께 VTV는 성공적으로 완수한 하노이시 마스터플랜을 비롯해 스플랜도라 신도시 개발사업,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건설공사 등 자국의 대규모 국책사업에서 펼친 포스코건설의 역동적인 활동을 소개했다. 특히 VTV는 송도국제도시 개발 등 한국에서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베트남 국책사업 참여의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동화 사장과의 인터뷰에서는 글로벌 전략과 베트남에서의 활동 방향에 대해 질의했다. 이에 정동화 사장은 “모든 활동에서 진심으로 베트남의 미래건설에 일조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고, 이어 “우리 회사가 한-베트남 양국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가교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 한국형 신도시 스플랜도라 1단계 준공과 베트남 우정휘장 수상

저녁 8시 식사를 마친 베트남 사람들이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베트남 국영TV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VTV3 채널에 한류 스타 장동건이 등장했다. 그는 포스코건설 기업 이미지 광고의 모델이었다.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 이제 베트남까지 이어집니다. 세계는 내일의 베트남을 송강의 기적이라 부를 것입니다. 더 큰 베트남을 기대합니다.”

스플랜도라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한류를 이끌었다. 시청률이 높은 방송 시간대에 한류 스타 장동건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데 이어 포스코건설 입간판에도 출연시켰다.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오는 고속도로 길목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장동건의 입간판이 하노이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먼저 맞이했다.

이런 적극적인 마케팅 덕에 베트남 내에서 포스코건설의 글로벌 이미지는 삼성과 LG 못지않게 높아졌으며, 더욱이 한국형 아파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스플랜도라 신도시 1단계 주거지역

스플랜도라 신도시 1단계 주거지역

2013년 9월 스플랜도라 신도시 1단계 건설공사가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스플랜도라가 큰 인기를 모은 비결은 완벽한 주거 인프라 구축이었다. 그 외 한국형과 현지형 아파트의 현명한 접목도 베트남 사람들로부터 많은 호감을 얻었다.

스플렌도라 신도시는 뛰어난 주거품질 외에도 국제학교, 대형 할인마트, 종합병원 등 생활편의시설과 하수종말처리장, 가스저장보급소, 첨단 수도공급시설 등 각종 주거 인프라를 완벽하게 갖추었다. 더구나 한국형 커뮤니티시설, 단지 내에 가로지르는 개천, 개인 풀장, 어린이 놀이터 등은 현지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형 신도시의 장점 외에도 현지 정서를 알맞게 살렸다. 대표적으로 아파트 벽을 현지 시공방법인 조적식으로 시공했다. 집안 내부 벽과 바닥 공사도 기후가 워낙 습해 한국식의 도배나 장판을 배제하고 페인트나 타일 시공으로 마감했다.

“아파트 벽식 시공을 놓고 처음에 고민이 많았다. 한국식 월(wall)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어서 시공이 간편했지만, 그럴 경우 열대성 기후로 벽이 울퉁불퉁해져 미장을 다시 해야 할지 모른다는 기술진단에 따라 과감하게 조적을 선택했다. 그 결과 자재비와 인건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박희도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1단계 사업의 성공적 준공에 이어 2012년 6월부터 포스코건설은 2단계 착공에 들어갔다. 2단계 사업에서는 스플랜도라 전체 사업부지(264만㎡) 중 75만 8천㎡ 규모 부지에 아파트, 빌라, 테라스하우스, 중앙공원 등을 개발하게 된다.

아파트는 2800여세대가 조성된다. 아파트 지하층은 주차공간 및 기계시스템, 1층은 공공서비스, 기타 다른 층은 주거용으로 건설되며, 아파트 건물 사이에는 주차장, 공원, 수영장 및 커뮤니티 시설이 조성된다.

빌라는 3층 규모, 412세대가 8가지 타입으로 구성되며, 건폐율 37.5%에 2층짜리 커뮤니티시설 2개동으로 개발된다. 테라스하우스는 4층 규모, 466세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폐율 59.7%로 2층 규모의 커뮤니티시설 1개 동을 포함하고 있다.

약 16만㎡ 규모의 중앙공원에는 호수, 녹지공간, 관리사무소, 보안구역, 상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2단계 사업의 디자인은 하노이시 마스터플랜을 함께 작업했던 미국의 세계적 설계사인 퍼킨스 이스트만이 맡았다.

국영TV 특집방송에 이어 2012년 10월경 포스코건설은 또 다시 베트남 사회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하노이시 마스터플랜의 성공적인 수행과 베트남 건설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우정휘장을 수상했다. 베트남 우정휘장은 베트남 경제, 사회, 정치, 외교, 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와 협력을 거둔 외국기관 및 개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포상이었다.

 

# 중앙아시아·오세아니아 건축시장 진출하다

베트남 우정휘장 수상의 영광에 이어 2012년 10월말 포스코건설은 중앙아시아에 첫 진출했다. 카자흐스탄 굴지의 기업인 카스피안 그룹과 공사비 7000억 원 규모의 코얀쿠스 주택건설사업에 대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당시 카자흐스탄은 사업기간 15년 계획 하에 전체 공사금액이 50조 원에 이르는 ‘G4 신도시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 사업은 카자흐스탄의 경제수도인 알마티에서 캅차가이 호수까지 79km의 구간에, 이니셜 ‘G’로 시작하는 4개의 신도시를 민관이 합동으로 건설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4개 신도시의 이름은 알마티에서 가까운 순으로 각각 게이트시티, 골든시티, 그로잉시티, 그린시티였다.

포스코건설이 맡은코얀쿠스 주택사업은 G4 신도시 개발사업의 1단계 프로젝트였다. 알마티의 북측 경계로부터 1.5km 떨어져 있는 게이트시티 내에 8000여 세대에 이르는 뉴타운을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공사기간은 설계기간을 포함해 총 69개월, 공사비는 6억 4000만 달러 규모였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투자나 파이낸싱 없이 해외 개발사업을 수주함에 따라 사업 리스크가 없는 안정적인 공사계약 성과를 달성했다. 또 설계와 조달, 시공을 일괄 수행하는 디자인 빌드(design build) 방식으로 수주함으로써 신도시 건설에 대한 종합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더욱이 당시 카자흐스탄 진출은 베트남에 이어 두 번째 한국형 신도시 수출이란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중앙아시아 진출에 이어 이즈음 포스코건설은 미얀마 진출을 시도했다. 미얀마 진출은 포스코 패밀리사인 대우인터내셔널과의 협력이 돋보였다.

미얀마는 2000년대 말부터 개혁개방이 가속화되면서 해외 투자자들의 발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우인터내셔널도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미얀마 가스전 개발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대우인터내셔널은 몰려드는 해외 투자자들에 비해 호텔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부동산 개발을 병행했다.

우선 대우인터내셔널은 미얀마 정부와의 오랜 유대관계를 기반으로 최대 상업도시인 양곤의 인야 호수 주변의 정부 소유 토지를 장기 임대하는데 성공했다. 이어서 포스코건설, 롯데호텔 등과 컨소시엄을 결성하고 현지 대기업인 IGE그룹과 부동산 개발사업을 위한 합작사를 설립했다.

총 2억 달러가 투자되는 양곤 부동산 개발은 모두 2개동으로 2016년 완공 예정이며, 1개 동은 호텔로 이용되고 다른 건물은 호텔식 서비스의 주거시설인 레지던스 형태로 운영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롯데호텔은 호텔의 운영을 맡았으며, 포스코건설은 시공을 맡아 2014년 2월부터 본격적인 건설공사에 들어갔다.

미얀마 첫 진출에 이어 포스코건설은 호주 건축시장에 첫 진출했다. 호주 진출은 전략적 파트너사인 서호주 최대 주택건설업체인 BGC사와의 협력이 돋보였다.

BGC사와 협력해 수주한 건축 프로젝트는 일명 페사(FESA)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서호주 정부가 호텔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퍼스 시내에 위치한 소방방재청을 사업부지로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따라서 페사 프로젝트는 소방방재청 이전 조건으로 그 부지 위에 14층 높이, 330실 규모의 호텔과 22층 높이의 오피스를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사업 구조는 서호주 정부가 개발사업 제안을 공모하고, 선정된 시행사가 부지 매입과 함께 사업권을 획득하는 방식이었다. 사업제안에 앞서 BGC사는 포스코건설에 협력을 요청했고, 포스코건설은 그 동안 쌓은 풍부한 개발사업 제안 노하우를 기반으로 BGC사의 페사 프로젝트 사업권 획득을 지원했다.

그 과정에서 2013년 7월 포스코건설과 BGC는 합작법인 BPI를 설립했다.포스코건설 지분은 49%였다. 이어서 BGC가 페사 프로젝트를 위해 설립한 페사480사가 마침내 사업권 획득에 성공했으며, 2013년 12월말 포스코건설의 합작법인 BPI가 페사480사로부터 약 1200억 원 규모의 페사 프로젝트 시공권을 수주하기에 이르렀다.

“페사 프로젝트 수주는 포스코건설이 그간 국내외에서 수행한 초고층 건물 시공 실적과 설계 기술력을 호주시장에서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계기로 향후 선진 건축시장 진출이 가속화될 것이다.” (이용일 전무, 호주사업단장)

 

# 공기준수와 최고 품질로 베트남 고속도로 석권하다
성공적으로 수행한 베트남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성공적으로 수행한 베트남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토목 분야도 건축 분야 못지않게 베트남에서 크게 선전했다.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공사에서 3개 공구를 수행하는 가운데 호치민~저우자이 고속도로에서 2개 공구 수주에 성공했으며, 빈폭성~메린 고속도로 수주에도 성공했다.이로써 총 6개의 고속도로 공사를 수행하게 되는데, 이는 베트남에서 외국기업으로는 최다 실적이었다.

첫 사업이었던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에서는 전체 8개 공구 중 포스코건설이 가장 많은 3개 공구를 수행했다. 3개 공구의 총 연장이 81km에 이르는 대규모 공사였다. 따라서 성토량과 보드 파일의 수가 엄청났다. 3개 현장 공사에 필요한 흙을 쌓은 양인 성토량은 잭니클라우스 골프장 10개 규모와 맞먹는 1300㎥이었으며, 교량공사를 지지하기 위한 보드 파일의 길이도 63빌딩을 264개나 쌓을 높이였다.

3개 공구 중 A1공구(2009.7-2014.10)는 교량 19개소, 643m의 지하차도가 포함돼 있었으며, A2공구(2010.1-2014.10)는 교량 19개소에 FCM 교량 1개소가 포함돼 있었다. A3공구(2010.1-2014.12)에는 교량 18개소와 FCM 교량 1개소가 포함돼 있었다.

첫 경험이었던 만큼 프로젝트 수행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우선 환경이 열악했다. 공사 현장이 있던 빈폭성은 1년에 3분의 2가 폭우가 쏟아지는 강우 지역이었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점은 지역주민과의 토지 보상이었다.

“준공 4개월을 앞두고 겨우 보상 문제가 해결됐다. 우리나라 개발식으로 접근해서는 베트남 사업에서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베트남은 인민의 나라라는 인식이 강해 정부도 함부로 못한다.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공사 현장에 바나나 나무를 심거나, 벼를 말리는 등 지속적으로 공사 진행을 방해했다.” (주인식 Sr.Manager, 당시 A2공구 현장소장)

발주처가 요구하는 품질이 까다롭고 관리절차 기준이 복잡한 점도 큰 난관이었다. 이는 발주처의 간섭이 심하다는 의미로써, 심지어 하도급 선정도 승인절차를 밟아야 할 정도였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포스코건설은 주민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보상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기후문제도 철저한 준비와 관리로 적절하게 대응했다. 발주처 문제는 공기준수와 최고 품질로 신뢰를 얻어 극복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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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4.20 호치민~저우자이 고속도로 3공구 착공식

2011.10.17 베트남 빈푹성~메린 도로공사 착공식

2011.10.17 베트남 빈푹성~메린 도로공사 착공식

노이바이~라오까이의 성공적 수행에 힘입어 2010년 4월 포스코건설은 베트남 도로공사가 발주한 전체 노선 51km의호치민~저우자이 고속도로 중 호치민 인근에 위치한 9.8Km의 3공구(2010.5-2013.12) 수주에 성공했다.총 사업비 1억 45만 달러 규모의 왕복 4차선 아스팔트 포장공사로, 5개의 교량공사가 포함돼 있었다.

3공구의 성공적 준공에 이어 2013년 12월 포스코건설은 호치민~저우자이 고속도로 중 5공구 수주에 성공했다. 이 사업은 사업비 4869만 달러 규모로, 공사 구간은 13.9km였다.

호치민~저우자이 외에도 2011년 7월 포스코건설은 빈폭성~메린 고속도로 건설공사(2011.9-2014.3)를 수주했다. 이 프로젝트는 메린 신도시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사업으로, 총 연장 15km의 4차선 도로 건설공사였다. 사업구간에는 교량 4개소도 예정돼 있었다.

한편 2013년 8월 포스코건설은 베트남 하노이 광역철도 관리위원회와 7296만 달러 규모의 베트남 하노이에 최초로 건설되는 경전철의 지상역사 공사계약을 체결했다. 이 프로젝트는 하노이 농 역에서 킴마 역사까지 8.5km 구간 내에 있는 총 8개의 지상역사와 토목구조물을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특히 이 사업의 수주는 베트남 하노이에 확대 도입 예정인 전철공사의 첫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

베트남에서 외국기업으로 최다 실적을 보유한 토목 분야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철저한 사업관리가 큰 몫을 했다. 첫 사업이었던 노이바이~라오까이의 경우 저가 수주여서 프로젝트 시작부터 적자가 예상됐다. 스플랜도라 파트너이자 도로공사 수주에서 경쟁자였던 비나코넥스 역시 포스코건설의 저가 수주를 우려할 정도였다.

실제로 노이바이~라오까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국의 K사와 D사는 저가 수주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후속 프로젝트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은 철저한 사업관리로 적자 폭을 최대한 줄이고, 이후 후속 사업에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베트남법인의 현지화도 성공요인이었다. 법인은 베트남에서 오랜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기업과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강한 체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발주처와의 신뢰도 성공가도에 큰 보탬이 됐다. 이 같은 신뢰는 철저한 공기준수와 최고 품질로 얻어낸 소중한 자산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성심을 다하는 사회공헌활동으로 베트남 사회로부터 우호적인 관심과 좋은 기업이미지를 이끌어냈는데, 이 역시 성공요인이었다.

운도 따랐다. 노이바이~라오까이 수행 당시 베트남은 부동산 경기 과열로 현지 건설사들이 도로공사보다 건축사업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외국기업이 비집고 들어갈 빈틈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성공요인은 사람이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게 열정, 그 열정으로 포스코건설은 숱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 베트남 성공에 이어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건설에 나서다

베트남 사업에서 자신감을 얻은 토목 분야는 영역 확대를 시도했다. 때마침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대한 고속도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었다. 일명 카렉(CAREC) A380이라고 불리던 중앙아시아 경제협력(CAREC, Central Asia Regional Economic Cooperation) 프로젝트였다.

2007년부터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10개국이 추진 중인 이 프로젝트는 현대판 실크로드 재건사업이었다. 중국에서 서유럽을 연결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인 만큼 지속적인 사업 발주가 예상됐고, 이에 포스코건설이 이 사업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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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렉 A380도로 전경

첫 도전은 우즈베키스탄 재정경제부 산하 로드펀드가 발주한 카렉 A380도로(2010.7-2013.12) 메샤클에서 투르쿨까지의 연장 91km 구간이었다. 총 사업비가 1억 3215만 달러 규모로, 4차선 콘크리트 포장공사와 부대시설 건설이 주요 내용이었다.

“중앙아시아 첫 진출이었던 만큼 어려움이 많았다. 현지 건설시장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대사관과 은행, 소규모 건설회사, 엔지니어링사 등을 일일이 방문한 끝에 신뢰성 있는 견적을 확보할 수 있었고, 한국 포장전문업체와 견적을 비교하는 등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입찰에 참가했다.” (김익희 전 부사장)

약 두 달간의 기술서류 심사기간에도 예상치 못한 추가 작업들이 발생했다. 발주처는 입찰보증 서류에 대해 은행 재확인을 요청했으며, 실적 서류의 재보완과 지난 10년 동안 포스코건설이 수행해온 모든 프로젝트에 대한 콘크리트 포설 물량 증명까지 요구했다.

포스코건설은 발주처에 신뢰와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그들이 요구하는 항목들을 꼼꼼히 챙겨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그 결과 중국,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등 저임금으로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던 국가들을 물리치고 2010년 4월 마침내 수주에 성공했다.

두 번째 도전은 카자흐스탄이었다. 카자흐스탄 교통통신부가 발주한 사업비 약 1200억 원 규모, 48km의 쉽켄트~투르키스탄 구간의 카자흐스탄 남서고속도로 4공구(2011.3-2014.10)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이 경쟁에서 포스코건설은 한국 건설사는 물론, 중국, 이탈리아, 터키 등 외국 건설사까지 제치고 2010년 8월 수주에 성공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도 그렇고, 카자흐스탄도 그렇고 중앙아시아 첫 진출 작품이라 프로젝트 수행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현지 기후, 관습, 시장 여건, 제도 등 낯선 환경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공사 물량에 비해 부족한 공사 기간 때문에 공기 준수를 위해 야간작업과 돌관공사를 병행해야만 했다.

“CIS 국가 특유의 권위주의적 책임 회피성 업무처리로 공사 진행이 쉽지 않았다. 그보다 국제 계약공사 경험이 부족해 적자를 보았으며, 대형 프로젝트 수행 능력 부족도 큰 아쉬움이었다.” (박상훈 Director, 현장소장)

비록 적잖은 수업료를 치렀지만, 학습효과와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공기를 준수함으로써 발주처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가장 큰 성과는 공사 품질력을 알린 것이며, 이로 인해 우즈베키스탄 내에서 경쟁력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 프로젝트에서는 건설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인데다 공사현장이 오지에 위치해 인력확보에 어려움이 많았다. 우즈베키스탄과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시행착오도 많았다. 일례로 계약보다는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무리한 보상요구와 작업중지 지시 등의 공사 방해로 많은 곤혹을 치렀다.

“다소 공사가 지연되긴 했으나, 품질에 대해서는 발주처와 감리단으로부터 크게 인정받은 점은 큰 성과였다. 더욱이 혹한기에 대처할 수 있는 경험의 확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됐다.” (박찬호 Director, 현장소장)

실패를 극복하고 이룩한 그간의 성과에 힘입어 2013년 12월말 포스코건설은 카렉 A380 프로젝트의 추가 수주에 성공했다. 유럽, 중국, 터키 등 13개 건설사와 열띤 경합을 펼쳐 사업비 1억 7500만 달러 규모의 우즈베키스탄 키실락 지역부터 가질 지역까지 약 85km 구간의 실크로드 공사를 수주했다.

 

# 환경 분야 해외진출, 매운 중동 모래바람에 고전

해외사업 총동원령에 환경 분야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2010년 포스코건설은 물환경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의욕적으로 해외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첫 경험은 아픈 법이다. 수업료가 많이 들었다. 강한 의욕을 가지고 가장 먼저 중동으로 달려갔지만, 매서운 모래바람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아부다비 담수저장 및 회수설비 프로젝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하수처리장 프로젝트가 그랬다.

2010년 8월말 수주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프로젝트는 미르파 담수 배관망으로부터 잉여담수를 받아 하루 3만 톤씩 최대 2700만 톤을 사막 지하 85m 대수층에 저장하는 사업으로, 이는 아부다비 시민 44만 명에게 90일간 식수를 제공할 수 있는 양이었다. 현지 건설사인 ACC와 공동으로 수주했으며, 사업비는 1억 9750만 달러 규모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포스코건설은 담수저장소 3개소와 펌프장 4개소, 길이 161km의 배관망 등을 신설하는 공사를 수행했다.

수주 당시만 하더라도 독일의 린덴버그를 비롯해 7개의 세계적인 기업과 경합을 펼쳐 승리를 쟁취한 만큼 회사 내부적으로 상당히 고무돼 있었다. 그러나 이후 프로젝트 수행 과정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설계 부실이었다. 주간사인 ACC의 경우 EPC 경험이 부족해 프로젝트 진행을 원활하게 이끌어가지 못했다. 발주처인 아랍에미리트 수전력청 아드위아는 설계변경에 따른 추가공사가 필요한데도 이에 따른 추가비용과 공기연장을 인정하지 않아 프로젝트 진행이 답보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포스코건설 역시 실패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사전준비가 부족해 리스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특히 물량과 단가를 정확히 계산해내지 못했다. 결국 첫 성과에 눈이 먼 성급한 판단이 화를 자초했다.

아부다비 프로젝트에 이어 2011년 2월 한라산업개발과 함께 수주한 사업비 8500만 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하수처리장 건설사업 역시 시련의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사우디 제다항 북쪽 350㎞ 지점에 있는 홍해연안 얀부 산업단지 내 하수처리장의 하루 처리용량을 2배 확장해 하루 4만 7000톤의 하수를 처리할 수 있도록 개조, 증설하는 건설공사였다.

한라산업개발의 참여 요청으로 이 프로젝트에 발을 들여 논 포스코건설은 아부다비 담수와 마찬가지로 수주 성과에만 연연했다. 수주 당시부터 적자가 빤히 보였지만, 한라산업개발이 제시한 매출이익 1% 보장 조건만 믿고 덜컥 미끼를 물었다.

설상가상으로 한라산업개발이 개인회생 절차를 밟으면서 이 프로젝트는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었고, 법원마저 계약무효를 선언함에 따라 손실의 폭이 커져갔다. 심지어 포스코건설은 거덜난 사업을 떠안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우리가 주간사가 돼 공사를 재개하는 과정에서 설계 오류, 부실시공 등을 바로잡는 작업이 쉽지 않았고, 발주처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마라픽과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데도 많은 공력이 들었다. 비록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의 대외 신인도를 지키기 위해 성공적 사업수행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박근 전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 동유럽 첫 진출, 국내 최초 폴란드 소각플랜트 수주

두 번의 실패는 큰 고통이었으나, 한편으론 좋은 보약이었다. 환경 분야는 실패를 교훈 삼아 해외시장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웠으며,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치밀한 전략으로 해외사업에 임하는 태도를 몸에 익혔다.

그 결과 폴란드 소각플랜트를 수주하며 동유럽 첫 진출에 성공했고, 중남미 하수도개선 마스터플랜 수립 지원사업에 참여해 시장탐색과 사업발굴을 병행했다. 베트남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수주 역시 철저한 사전준비와 치밀한 전략의 결과였다.

2012년 11월 포스코건설은 폴란드 크라쿠프시가 발주한 2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생활폐기물 에너지화 발전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이 사업은 소각로 2기와 열병합 발전설비가 들어가는 프로젝트로, 하루 약 680톤, 연간 약 22만 톤의 생활폐기물을 처리하게 되며, 처리된 폐기물은 에너지로 재활용돼 연간 약 9만 5000MWh의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폴란드 소각플랜트는 원래 에너지사업본부가 발굴해낸 사업이었다. 2008년경부터 에너지사업본부는 동유럽의 소각플랜트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 EU는 동유럽의 환경개선을 위해 환경 인프라 지원펀드를 만들어 대규모 소각플랜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는 매립 방식의 동유럽 폐기물을 소각으로 전환하는 사업이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1차 펀드가 동유럽에 지원됐는데,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은 나라가 지원펀드에서 46%나 확보한 폴란드였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의 동유럽 소각플랜트 사업 참여는 쉽지 않았다. 이 시장은 유럽과 일본업체들이 양분하고 있었고, 원천기술의 대부분도 유럽업체들이 보유하고 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에너지사업본부는 이 사업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1년경 2차 펀드에 대한 사업자 모집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에너지사업본부는 동유럽 국가 중 폴란드에 집중했고, 지원금 유치에 나선 슈체진, 코닌, 비알리스톡, 크라쿠프 등 5개 지자체 중에서도 사업 규모가 가장 컸던 크라쿠프시를 선택했다.

사업 규모가 큰 만큼 이익률도 좋았다. 그러나 그만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기도 했다. 첫 사업에 대한 리스크 우려로 사업참여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갈등의 순간, 폴란드 네트워크가 탄탄한 삼성물산이 손을 내밀었다. 절호의 찬스이긴 했으나, 그들이 내민 손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까지는 좀 더 고민이 필요했다. ‘자기네도 건설조직이 있는데, 왜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별 이득이 없으니 버린 카드가 아닐까?’ 하는 식의 조직 내부의 의혹부터 풀어나가야 했다.

“사실 그들은 실리를 따져 우리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룹차원에서 대승적으로 협력할 수도 있지만, 한 푼이라도 수익을 더 내야 하는 비정한 경쟁체제에서 그들은 자기네 건설조직보다 우리와 협력하는 것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박재영 Sr.Manager, 해외영업그룹 근무)

2011년 1월경 든든한 에이전시를 확보하고 본격적인 사업참여에 시동을 걸었지만, 가장 중요한 기술선 확보가 쉽지 않았다.

유럽이나 일본의 메이저 기술선들은 경험 없는 포스코건설을 외면했다. 어쩌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도 가장 중요한 가격협상에서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메이저 기술선들은 100% 기자재공급을 요구했고, 포스코건설은 핵심기술만을 원했다.

포스코건설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술축적이 필요했고, 또 기자재공급 범위를 줄여야 입찰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같은 태도는 사우디아라비아 얀부나 아부다비 담수 프로젝트 때와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성급하게 첫 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고민하고, 다음 프로젝트까지 준비하는 치밀한 태도로 변모한 것이었다.

결국 포스코건설은 메이저 카드를 버리고 마이너 카드를 집어 들었다. 독일업체 렌트제스(Lentjes)를 기술선으로 선택했다. 회사 규모가 작았던 렌트제스는 리스크를 우려해 기자재공급 범위 확대를 오히려 부담스러워 했다. 포스코건설로서는 이상적인 기술선이었다.

비록 마이너와 마이너끼리의 만남이었지만, 두 회사의 열정만큼은 메이저 기업을 압도했다. 렌트제스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도 포스코건설의 입찰준비를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이는 유럽기업 정서상 드문 사례였다.

2011년 9월 포스코건설의 제안서가 PQ를 통과하면서 이 프로젝트의 업무가 환경부서로 이관됐다. 이후 본격적인 입찰경쟁에는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4개 업체가 뛰어들었다. 대부분 폴란드 업체가 유럽과 일본의 쟁쟁한 기술선들과 연대했다.

특히 모스토스탈(Mostostal)과 일본의 기술선 히타치, PBG와 프랑스 기술선 CNIM의 조합은 결코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느껴졌다. 모스코스탈과 PBG는 폴란드 내에서 우리나라 삼성그룹과 비슷한 거대기업으로 알려져 있었다. 포스코건설로서는 그나마 폴란드업체 버디멕스(Budimex)와 벨기에 기술선 괴펠(Keppel)이 팀을 이룬 그룹만이 해볼 만한 경쟁자로 느껴졌다.

이후 7개월간의 준비작업 끝에 2012년 4월 최종 경쟁입찰이 실시됐다. 결과는 모스토스탈-히타치의 승리였다. 포스코건설은 최하위 4위를 기록했다.

초라한 성적에 고개를 떨구고 발길을 돌리려던 그 순간, 행운의 여신이 포스코건설 앞에 강림했다. 행운의 여신이란 폴란드만의 독특한 절차적 합리주의인 어필링 프로셔(appealing procedure)였다.

“어필링 프로셔는 입찰이 끝나도 낙찰자의 제안이나 기술에 문제가 있다면 나머지 경쟁자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때 반론의 진실여부를 판단하는 조직이 중재위원회이며, 중재위원회에 의해 반론이 인정되면 낙찰자는 자격을 잃고 재입찰이 실시된다.” (구기욱 전 상무)

이 과정이 무려 3차례에 걸쳐 6개월이나 이어졌다. 첫 반론에서 모스토스탈-히타치가 탈락했고, 두 번째 반론에서 PBG-CNIM이 탈락했다. 심지어 세 번째 반론에서 버디멕스-괴펠까지 탈락해 포스코건설만이 남았다.

그 사이 폴란드 정부나 크라쿠프시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다른 지역은 벌써 사업자를 선정하고 사업추진 준비를 마쳤지만, 가장 규모가 큰 크라쿠프 프로젝트만이 어필링 프로셔에 발목이 잡힌 것이었다. 결국 크라쿠프시는 더 이상의 재입찰을 포기하고 포스코건설을 최종 사업자로 선정했다.

폴란드 소각플랜트의 수주 승리는 능력 있는 에이전시의 만남, 열정적인 기술선의 확보도 주요 성공요인이었으나, 공공조달 최고 전문가 집단의 로펌을 파트너로 유치한 것 역시 주효했다. 이들은 어필링 프로셔 기간에 포스코건설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유리한 상황들을 조성해나갔다. 그밖에 다급해진 폴란드 정부가 사업자 선정을 서두르는 등 전반적으로 운이 좋았고, 경영진의 적극적인 지원도 큰 힘이 됐다.

그보다 가장 큰 성공요인은 해외사업에 대한 실무진들의 태도 변화였다. 그들은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았고, 철저한 준비작업과 치밀한 전략으로 프로젝트 수주를 성공으로 이끌어갔다.

2013년 7월 착공, 2015년 12월 준공 예정인 폴란드 소각플랜트는 2014년 7월 말 발전시설의 핵심설비인 보일러드럼 상량식과 함께 60%의 공정률을 보이면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 중남미 하수도사업 진출, 신규사업 발굴을 모색하다

중남미 하수도개선 마스터플랜 수립 지원사업은 환경부 지원의 개도국 원조사업이며, 포스코건설로서는 사업발굴과 시장탐색을 위한 장기적 안목의 전략사업이었다. 포스코건설은 환경부가 발주한 세계 각지의 지원사업 중 중남미 지역을 선택했다.

중남미를 선택한 이유는 에너지사업본부가 이 지역 발전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하는 등 사업수행에 필요한 충분한 네트워크를 갖추기 때문이었다.

2012년 환경부 공모에서는 페루를 선택하고 입찰경쟁에 나섰다. GS건설, 대림건설, SK건설, 롯데건설 등과 경합을 펼쳤으나, 포스코건설이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수주에 성공했다. 수주 성공요인은 페루에 지사가 있는 등 경쟁사들보다 중남미에 대한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이며, 제안서의 내용 역시 경쟁사들보다 뛰어났다.

사업추진 과정에서는 많은 후속 사업들이 발굴됐지만, 개발자금 확보가 여의치 않아 실제 사업화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됐다. 그럼에도 포스코건설은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지역밀착에 의미를 두고 향후 투자 여건 개선을 기대했다.

2013년 환경부 공모에서는 멕시코, 콜롬비아, 미얀마, 라오스 등의 프로젝트들이 나왔다. 이 중에서 포스코건설은 멕시코를 선택했다.멕시코의 선택도 페루와 마찬가지로 제철 플랜트의 거점이 이곳에 있어 사업수행이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제철 플랜트는 이 지역에서 포스코의 CGL공장을 건설하고 있었다.

특히 멕시코는 수주 실패의 아픔을 겪었던 지역이기도 했다. 2008년경 포스코건설은 멕시코 하수처리장 경쟁입찰에 뛰어들었으나,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스페인 업체에게 패배를 당했다. 실패 원인은 운영관리 능력의 부족이었다.

포스코건설이 EPC 역량만 갖추고 있었던 반면, 경쟁사인 스페인 업체는 운영관리 능력을 갖춰 운영권까지 확보함으로써 건설공사에서의 적자를 만회할 수 있었다. 이 사업 실패를 통해 포스코건설은 운영관리 능력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으며, 멕시코 하수도개선 마스터플랜 수립 지원사업을 통해 이 지역에서의 사업재기를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베트남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베트남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베트남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수주는 글로벌 기업 간 협력이 빚어낸 걸작이었다.

포스코건설은 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프랑스, 일본 대표 수처리 업체와 글로벌 드림팀을 구성했다. 프랑스 업체는 세계적 수처리 기업인 베올리아 자회사인 오티브이로, 수처리를 비롯해 해수담수화, 물재이용 분야에서 많은 경험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 업체인 히타치는 하수 및 산업폐수 처리 분야에 강점을 지닌 기업이었다. 각 사별 지분은 포스코건설 57%, 오티브이 32%, 히타치 11%였다.

글로벌 드림팀의 파워를 바탕으로 2014년 1월 포스코건설은 1억 2000만 달러 규모의 베트남 호치민 하수처리장 2단계 건설공사 수주에 성공했다.

호치민 하수처리장 2단계 공사는 기존 1일 처리용량 14만 1000톤을 1일 32만 8000톤으로 증설하는 사업이었다. 이 사업에서 포스코건설은 토목과 건축 시공을, 오티브이는 수처리 기자재 조달 및 설치를, 히타치는 슬러지 기자재 조달과 설치를 수행했다.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수주는 시장규모가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환경시장보다는 많은 먹거리가 있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 대규모 사업을 발굴해 수주에 성공했다는 의미가 있었다. 앞으로도 우리 토목환경사업본부는 이 사업 수주 성과를 기반으로 베트남을 비롯한 세계 각국 수처리사업에 적극 도전할 계획이다.” (최용석 토목환경사업본부장)

 

# 중국사업단과 동남아사업단의 활동과 현지화 성공

중국과 동남아에서도 한국본사의 해외사업 못지않게 눈부신 활약상을 펼쳤다. 중국사업단에서는 중국건설법인을 주축으로 다롄 포스코IT센터, 베이징 포스코센터, 훈춘 포스코현대국제물류단지 등의 개발사업을 수행했다. 동남아사업단에는 베트남에서 베트남법인, IBC법인, 안카잉법인, 하노이사무소 등이 활동하고 있으며, 캄보디아에서도 캄보디아법인 등이 활동하고 있다.

2005년 4월 포스코건설은 중국 내 제철설비의 설계 및 공급 위주에서 현지 건설공사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중국건설법인을 설립했다. 중국건설법인은 2008년 장자강 설비법인을 인수해 종합건설사로서의 성장과 발전 기반을 구축했으며, 2010년에는 중국 내 한국계 건설사로서는 최초로 1급 건설면허와 해외 건설면허를 동시에 취득, 현지화에 성공했다.

제철 플랜트 분야에서는 한국본사의 중국산 설비 공급의 창구로서 중국, 베트남, 인도, 멕시코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건축 분야에서는 대표적으로 주중 한국대사관 리모델링(2006.11~2007.3),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저(2007.4~2008.6), 중국 난닝 동맹국제상무구 한국원(2008.9~2009.12), 옌타이 한국상성건축(2009.10~2011.12)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11.4.25 중국 다롄 포스코IT센터 기공식

2011.4.25 중국 다롄 포스코IT센터 기공식

다롄시 포스코IT센터는 한국업체 최초의 중국 내 복합개발사업이었다. 사업비 3000억 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다롄시 가오신구 내 루밍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파트의 경우 7개동 1034세대, 지하 1층과 지상 23층 규모로 2011년 착공, 2014년 3월 준공됐다. 오피스는 1개동으로 지하 2층과 지상 27층 규모였으며, 2013년 3월 착공해 2015년 10월 준공 예정이다.

분양 과정에서는 더샵의 중국 브랜드 ‘포스코웨이(浦項道)’를 선보였다. 포스코웨이는 내부 가구를 모두 남향으로 배치하고, 친환경 마감재 사용, 현관 시스템 수납장, 알파 룸, 다양한 옵션 선택권을 부여하는 등 한국형 최신 아파트의 장점을 살린 거주자 중심의 설계로 분양 과정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베이징 포스코센터는 1999년 상하이 포스플라자 이후 두 번째로 추진된 포스코의 이름을 내건 랜드마크 사업이었다. 2010년 9월, 40년 운영 후 기부체납하는 조건으로 상하이 녹지그룹의 3호 부지를 확보했다. 오피스 2개동으로 구성됐으며, 지하 4층과 각각 지상 25층, 지상 33

2011.3.17 중국 북경 포스코센터 기공식

2011.3.17 중국 북경 포스코센터 기공식

층 규모였다. 2011년 8월 착공, 2014년 8월 준공됐으며, KOTRA를 비롯해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협협회,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의 현지 법인 등 25개사가 입주할 예정이다.

훈춘 국제물류단지는 포스코 패밀리(80%)와 현대그룹(20%) 합작사업이었다. 두 그룹은 중국 동북3성을 무대로 하는 물류기지 구축과 대북진출 거점 확보라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총 150만 ㎡ 부지를 중국 정부로부터 50년간 임차해 인프라 및 세제혜택 등을 제공받고, 물류창고, 콘테이너 야적장, 집배송시설 등을 개발 운영하는 사업으로, 사업비 2000억 원 규모였다. 개발은 3단계로 나눠 추진되며, 1단계 사업은 2013년 3월 착공, 2014년 10월 준공됐다. 향후 2019년 12월까지 모든 개발이 완료될 예정이다.

동남아사업단에서는 베트남법인이 많은 활동을 펼쳤다.

2011.5.12 중국 훈춘 물류단지 주주협약식

2011.5.12 중국 훈춘 물류단지 주주협약식

베트남법인의 전신은 포스리라마이며, 호치민시로부터 60km 떨어진 동나이성 롱탄 지역에 위치해 있다. 1995년 6월 베트남 건설성 산하 리라마와 합작으로 설립됐다. 1996년 철구공장 준공 이후 철구조물 제작 전문업체로 출발했으며,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일반건축과 토목, 플랜트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1999년에는 ISO 9001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월 생산량 200톤 이하, 공장 가동률 20~30% 등 영업이익률이 극히 저조했다. 이에 경영난 타개를 위해 위탁경영과 직영관리 등을 실시했으나, 사업관리 미숙으로 이익률이 계속 떨어졌다.

계속되는 경영난 속에서 포스리라마는 2007년부터 플랜트와 토건 시공 중심으로 사업방향을 전환했다. 그 결과 경영정상화에 성공하고 흑자 전환했다. 이윽고 2010년 6월 포스코건설이 리라마의 지분을 전량 인수함에 따라 포스리라마는 포스코이앤씨 베트남법인으로 거듭났다.

이후 포스코 프리미엄으로 성장을 지속하고 현지화에도 성공해 현지 건설사들과 대등한 경쟁을 펼치기 시작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한국본사, 중국건설법인과 협력해 원료처리공장, 열연공장, 화성공장 등 대만 포머사 베트남 제철소 프로젝트를 연속으로 수주하며 성장에 날개를 달았다.

베트남법인 외에 IBC법인은 호치민에서 다이아몬드플라자를 운영하고 있으며, 안카잉법인은 스플랜도라 신도시 건설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캄보디아법인은 바타낙 캐피탈 타워 프로젝트 수행 이후 현지에서 각종 건설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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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6. 토목·환경, 해수담수와 장대교량으로 새 도전에 나서다        

# 도로 분야, SOC 민자사업과 턴키시장 강자로 부상하다

토목·환경 분야는 더 이상 회사 균형 발전의 장애물이 아니었다. 2006년 수주 1조 원 시대를 연 이후 2009년엔 2조 원대에 근접했다. 이후로도 큰 도약은 없었으나 꾸준한 실적을 유지하며 회사 균형 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토목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SOC 민자사업과 턴키시장에서 꾸준히 실력을 쌓아 정상급 경쟁자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그 중 철도는 경전철 기술력을 바탕으로 차량기지 분야의 독보적인 경쟁력을 과시했으며, 도로는 오랜 기술개발과 도전 끝에 장대교량 분야에서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3년 토목·환경은 턴키 분야 수주 1위를 달성하며 마침내 정상에 등극했다.

이 시기 수행 중이던 SOC 민자 도로로는 제2영동고속도로 서울~원주간, 수도권 서부고속도로 수원~광명간, 서울~포천간 도로, 제2경인 연결 안양~성남간, 부산신항 제2배후도로, 제2외곽순환 인천~김포간, 부산 산성터널프로젝트 등이 있었다.

포스코건설이 주간사를 맡은 인천~김포간 제2외곽순환도로는 2공구와 3-1공구에서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012년 3월 착공, 2017년 3월 준공 예정인 2공구는 인천 송현동과 원창동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업비는 2763억 원 규모였다. 특히 2공구는 국내 최초 도심지 장대터널이 계획돼 있었다. 3-1공구는 청라 경제자유지구 통과 지역으로, 사업비 869억 원에 1.65km에 이르는 지하차도가 특징이었다.

2013년 8월 착공, 2018년 2월 준공 예정인 부산 산성터널 역시 포스코건설이 주간사를 맡은 프로젝트로, 북구 화명동과 금정구 장전동 일대에 위치해 있으며, 사업비 1891억 원 규모였다. 총 연장 5.62km에 도심지 터널 연장만 4.87km에 이르는 대규모 터널 프로젝트였다.

그 외 대표적인 턴키 프로젝트로는 전남 여수산단 마동IC, 완도군 노화-구도간 연도교, 경북 영덕-오산 연속화 도로, 전남 광양 태인2교 신설 구조물 설치공사, 경기 송산그린시티 개발사업 국도77호선 프로젝트등이 있었다.

전남 건설방재국이 발주한 사업비 396억 원 규모의 여수산단 진입도로 마동IC 개설공사(2010.12~2013.4)는 2007년 착공한 여수산단 진입도로 4공구와 연결되는 공사로, 포스코건설은 인력과 장비를 공용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현장은 전남 광양시 금호동과 중마동 일대에 위치해 있으며, 본선과 접속교량에 이어 해상교량이 포함된 건설공사였다. 주간사를 맡은 포스코건설은 2012년 5월 12일 여수엑스포 개장에 맞춰 이보다 이틀 먼저 해상교량을 임시 개통했다. 그 과정에서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시행하는 패스트 트랙 공법을 적용해 18개월 공기단축의 성과를 달성했다.

2011년 12월 착공, 2016년 5월 준공 예정인 전남 완도군 노화-구도간 연도교 가설공사는 완도군 노화읍 동천리와 소안면 구도리를 연결하는 프로젝트이며, 해상교량 790m가 포함된 총 연장 1.9km 2차로 건설공사였다.

전남 완도군이 발주한 사업비 417억 규모의 이 프로젝트의 수주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기본설계와 가격에서 100점 만점을 받았다. 건설 과정에서는 연도교가 관광 자원화가 가능하도록 인근 섬을 조망할 수 있게끔 교량 중간에 전망대를 조성했으며, 경관과 상징성을 강조한 신공법인 엑스트라도즈드교를 적용했다.

영덕-오산간 도로 연속화 공사(2011.11~2014.11)는 용인~서울 고속도로 연계 프로젝트로, 경부고속도로의 기능을 보완하는 남북축 고속화도로망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사업이었다. LH공사가 발주한 사업비 756억 원 규모의 이 사업에서 포스코건설은 대표 시행사를 맡아 포스코엔지니어링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12년 8월 착공, 2015년 12월 준공 예정인 광양 태인2교는 포스코건설 교량 건설역사상 최대 규모의 엑스트라도즈드교이며, 포스코패밀리의 연구성과물이 현장에 적용된 대표적 성공사례였다.

이 프로젝트에는 포스코패밀리 초장대교량추진반이 수행한 국토해양부 제2핵심과제 개발소재가 현장에 적용됐다. 초고강도 강연선 개발을 위해 포스코가 재료를 개발했으며, 연구 주관을 맡은 RIST는 소재를 개발했다.

그 결과 세계 최초로 최고강도 강연선이 개발돼 국내 최초로 PT용 초고강도 강연선 2400MPa이 현장에 적용됐으며, 국내 최초로 사장재용 초고강도 강연선도 2200MPa이나 적용됐다. 그 외 포스코건설 R&D센터가 핵심기술 국산화로 개발한 사장재 케이블 균등긴장 시스템도 현장에 적용됐다.

 

# 눈물로 한땀 한땀 쌓은 실력으로 장대교량 분야 진출

턴키시장 정상 등극에 이어 장대교량 진출은 토목 분야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자랑거리였다. 2013년 6월말 포스코건설은 전남 신안군 임자면과 지도읍을 연결하는 사장교 프로젝트인 ‘지도~임자 도로건설공사’를 수주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턴키시장에서 장대교량을 수주하기까지 그 과정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포스코건설이 장대교량에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한 건 스마트 비전을 수립하던 2004년이었다. 당시 스마트 비전은 토목 분야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장대교량을 선택했다.

장대교량을 선택한 이유는 수익성 때문이었다. 실적 확보 차원에서 턴키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일반 도로 분야는 레드오션이었다. 별 기술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경쟁이 치열했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수익성은 계속 떨어졌다.

반면에 교량 분야는 기술 확보가 어려워 아무나 도전해서 될 분야가 아니었으며, 진입 장벽이 높은 만큼 수익성도 좋았다.

교량 분야의 세계적 규모는 50조 원 수준이었고, 국내 시장에서는 6조 7000억 원 규모였다. 대부분의 물량은 국토해양부 익산국토관리청에서 나왔으며, 서해안 도서벽지와 남해안 다도해가 교량 건설의 메카였다.

국내에서 장대교량의 판세는 대림산업, 현대건설, 삼성건설 등이 주도하고 있었다. 대림산업은 소록대교, 적금대교, 이순신대교, 새천년대교 등의 실적을, 현대건설은 남해대교, 울산대교 등을, 삼성건설은 영종대교 등의 실적을 자랑했다. 이들 빅3에 이어 제2남해대교의 GS건설과 거가대교의 대우건설 등이 추격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2004년 스마트 비전에 따라 후발업체로 뒤늦게 이 분야에 뛰어든 포스코건설은 익산지방국토관리청에 회원사로 등록하고 첫 번째 도전에 나섰다. 도전 프로젝트는 전북 임실군에 위치한 엑스트라도즈드교인 운암대교였다. 결과는 실적 부족으로 포스코건설이 참패하고 쌍용건설이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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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 아라뱃길 4공구 전경

높은 진입 장벽을 실감한 포스코건설은 이후 기술 축적과 함께 실적 확보에 나섰다. 영덕~오산간 도로 1공구를 시작으로 여수산단 진입도로, 교동 연륙교, 경인 아라뱃길 4공구, 인천신항 진입도로등에서 실적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7년 동안의 기술 축적과 실적 확보로 다진 실력으로 2010년 포스코건설은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도전 프로젝트는 여수시 화양과 고흥군 적금을 연결하는 연륙연도교였다. 대림산업, 대우건설, 현대산업개발 등의 건설사와 붙은 경쟁에서 포스코건설은 아쉽게 2위를 차지해 수주에 실패했다. 승리는 현대산업개발이 거머쥐었는데, 현대산업개발은 10년만에 처음으로 장대교량을 수주해 파란을 일으켰다.

아쉽게 승리를 놓친 포스코건설은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또 다시 기술 축적과 실적 확보에 나섰다. 영덕~오산 연속화 도로, 완도군 노화~구도간 연도교 가설공사, 송산그린시티 국도77호선 건설공사등에서 교량 실적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특히 포스코패밀리의 기술력으로 수행한 전남 광양 태인2교에서 장대교량에 대한 자신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2012년 포스코건설은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전남 무안군 해제와 영광군을 연결하는 해상교량인 칠산대교가 세 번째 도전 대상이었다. 포스코건설은 대림산업, 대우건설, 삼환건설 등과 경쟁을 펼쳐 또 다시 2위에 그쳤다. 승리자는 대우건설이었다.

비록 두 번이나 2등에 그쳐 아쉬움이 많았지만, 포스코건설은 발주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자신감도 전혀 꺾이지 않았다. 이에 곧바로 네 번째 도전에 나섰다.

도전 대상은 전남 신안군 지도와 임자도를 연결하는 해상교량 프로젝트였다.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이 발주한 사업비 1408억 원 규모의 이 사업은 총 연장 4.99km에 1.92km의 사장교 2개소가 포함돼 있었다. 원안설계사인 한양건설 컨소시엄과의 경쟁에서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은 2013년 6월말 단 3.2점이라는 간발의 차이로 마침내 장대교량 수주에 성공했다.

‘지도~임자 도로건설공사’ 수주 성공은 턴키 분야 첫 장대교량이라는 것 외에도 교량 건설에 포스코의 고강도 강재를 반영함으로써 패밀리사 시너지 창출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주요 성공 요인은 철저한 사전준비와 탁월한 대안설계였다. 포스코건설은 1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철저히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최상의 설계컨소시엄을 구성했다. 포스코건설이 제시한 대안설계는 원안설계보다 지관장을 200m에서 400m로 크게 늘렸다. 나머지 장대교량도 190m에서 350m로 늘렸다. 이는 가장 경제적인 거리로서 하이테크놀러지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교량의 다리인 교각도 최소화해 가격경쟁력을 높였다. 이 같은 대안설계의 하이테크놀러지가 알려지면서 건설사들이 경쟁에 나서길 꺼려해 원안설계사인 한양건설하고만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최종 심의에서 심사위원들은 원안설계보다 대안설계를 선택했다.

“첫 턴키 장대교량 수주는 지난 10년 세월 동안 눈물로 한 땀 한 땀 쌓은 실적의 결과물이었다. 그 눈물을 다 합쳐도 지도~임자 실적에 못 미친다. 이 프로젝트 하나로 우리는 지금까지 쌓은 일반 교량 실적보다 1.5배나 더 확보했다. 이는 향후 추가 수주 성공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박주운 토목환경사업본부 상무)

턴키 첫 장대교량 수주 성공에는 포스코의 고성능 강재와 케이블도 한몫했다. 포스코가 개발한 HSB 800는 기존 강종 대비 강도, 인성, 용접성 등을 종합적으로 개선한 교량 맞춤형 고성능 강재였다. 케이블의 인장 강도 역시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 월드 베스트라 불리는 이순신대교의 인장 강도가 1680MPa인데, 지도-임자 장대교량에 적용하기로 한 강도는 무려 2200MPa이었다.

포스코건설은 그 동안 쌓은 장대교량 실력과 포스코의 강재 기술력을 기반으로 향후 해외시장에도 적극적으로 도전할 계획이다. 아직 해외 실적이 미천해 그 도전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메이저 건설사들이 포스코의 강재 기술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컨소시엄을 통한 해외 동반진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 경전철 기술력을 바탕으로 차량기지 분야 강자로 부상

도로 분야가 이 시기 장대교량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달성했다면 철도 분야는 경전철 기술력을 기반으로 차량기지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김해경전철 수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차량기지 건설이었다. 차량기지 건설에는 최첨단 기술로서 신호, 통신 기반의 열차관제시스템인 E&M(Electronic & Mechanic) 기술력이 필수적이었다. 포스코건설은 김해경전철 수행 과정에서 2008년경 E&M 조직을 갖추었다. 30여 명으로 이루어진 E&M팀은 국내 건설사 중 포스코건설만이 유일하게 갖춘 차량기지 전문 엔지니어 조직이었다.

그들의 본격적인 활동이 2009년부터 시작됐다. 인천도시철도 2호선 201공구가 첫 번째 성과였다. 오류지구와 검단사거리 구간인 201공구(2009.6~2014.11)는 총 연장 3.296km에 정거장 2개소, 본선환기구 1개소, 차량기지 일종인 주박기지 1개소로 구성돼 있었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주박기지, 교량, 터널, 정거장, 개착박스 등 복합 공종이 다수 포함돼 있어 어려움이 많았으며, 일정을 맞추느라 설계와 시공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패스트 트랙 공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201공구에 이어 2009년 11월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은 벽산건설 컨소시엄을 제치고 인천도시철도 2호선 206공구 수주에 성공했다.

2010년 1월 착공, 2016년 7월 준공 예정인 인천도시철도 2호선 206공구는 인천시 북인천변전소와 서구 가정동 콜롬비아공원 구간이며, 1.72km의 철로 및 정거장 2개소 건설이 주요 임무였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차량기지 추가 수주와 설계변경으로 매출액과 실행이익률이 크게 개선됐다.

차량기지 두 번째 성과는 대구도시철도 3호선이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은 총 23.95km 구간에 지상 모노레일을 설치해 급증하는 도시교통난을 해소하고, 기존 1, 2호선과 연계망을 구축해 보다 나은 교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차량기지 전경

대구도시철도 3호선 차량기지 전경

포스코건설은 3-1공구(2009.6~2014.6)를 맡아 차량기지 1개소와 정거장 3개소를 설치했다. 프로젝트의 특징으로는 국내 최초 2.3km의 모노레일 공사였으며, 세계 최초로 30m 경간 PSC궤도 빔이 설치되기도 했다.

세 번째 성과는 성남~여주 복선전철 부발차량기지 건설공사였다. 2010년 5월 포스코건설은 이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2012년 12월 착공, 2016년 5월 준공예정인 부발차량기지는 입출고선을 포함해 연면적 약 28만 ㎡, 전동차 유치 14편성, 경수선 20편성, 건축물 12개동으로 구성돼 있었다.

포스코건설로서는 최초 일반철도 차량기지 건설공사였으며,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실시설계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E/S 기준 시점 변경, 상수도 원인자 분담금 면제, 특허공법 삭제 등의 항목을 발굴해내 원가절감에 기여했다.

부발차량기지에 이어 2011년 12월 포스코건설은 동해남부선 부산~울산간 덕하차량기지 수주에도 성공했다. 이로써 포스코건설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동안 발주된 5건의 철도차량기지 건설공사 중 인천도시철도 2호선, 대구도시철도 3호선, 부발차량기지, 덕하차량기지 등 4건의 수주실적을 달성함으로써 이 분야 정상에 올랐다. 4건의 공사금액은 총 5547억 원에 이르렀다.

특히 덕하차량기지 건설공사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덕하리 일원(32만 148㎡)에 입출고선(2만 4782㎡)과 차량기지(29만 5396㎡)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로, 수주가격이 4건 중 최고액인 2360억 원이나 됐다.

차량기지 외 전통적 강점 분야인 철도 노반에서는 이 시기 대표적으로 중앙선 원주~제천 복선전철 3공구, 수도권고속철도 수서~평택 7공구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11년 7월 착공, 2017년 2월 준공 예정인 원주~제천간 3공구 노반 건설공사는 충북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와 봉양읍 연박리 일원에 위치해 있으며, 총 연장 12.034km에 NATM공법의 터널 및 사갱 시공, 소교량, 토목공사, 신호장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수도권고속철도 수서~평택 7공구(2012.1~2014.12)는 포스코건설 최초 고속철도 프로젝트였다. 경기도 평택시 장안동과 지제동에 위치해 있으며, NATM 터널 3.52km, 개착터널 380m, U-TYPE 360m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 울릉도 동방파제, 피날레 장식하며 턴키 분야 1위 등극

이 시기 주요 부지조성 사업으로는 영흥화력 5·6호기 부지조성공사, 새만금 방수제 동진 4공구, 포스코건설 최초 댐공사였던 장성댐 둑높이기사업, 구미 하이테크밸리 1단계 조성사업, 민자 택지개발사업이었던 목포 대양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 등이 있었다.

한국남동발전이 발주한 사업비 1083억 원 규모의 영흥화력 5·6호기 부지조성공사(2009.6~2014.5)는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외리에 870MW급 2기 건설을 위한 착수대비 공사로, 포스코건설은 부지조성공사를 비롯해 원료수송을 위한 부두, 방파제 등 기반시설 구축 공사를 맡았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성과를 달성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날씨였다. 섬의 특성상 겨울철 찬바람이 매서웠으며, 2011년 5월부터 9월까지는 장마철 폭우와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작업 일수가 고작 70일에 불과했다.” (정병대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건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일정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성공 요인은 완벽한 시공계획이었다.

영흥화력 5·6호기 건설공사는 20개 건설사가 동원된 대규모 프로젝트로, 포스코건설이 맡은 부지조성공사가 선발주자였다. 따라서 부지조성공사에서 일정이 뒤틀리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모든 공정에 차질이 빚어질 게 뻔했다.

포스코건설은 시의적절한 장비투입 노하우가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판단하고, 무려 11차례 수정을 통해 완벽한 시공계획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주설비가 들어설 파워블록 지역의 부지정지를 계획보다 앞당겨 발주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이로 인해 ‘신재생에너지 진입도로’, ‘접근 수로’ 등을 추가로 수주할 수 있었다.

2012년 4월 착공, 2016년 5월 준공 예정인 구미 하이테크밸리 1단계 조성사업은 경상북도와 구미시가 발주했으며, 부지조성공사로는 대형급(2880억 원)이어서 수주전에 33개나 되는 건설사가 몰려들었다. 포스코건설은 포장공사 전문업체 웅진개발을 부계약자로 끌어들여 수주에 성공했다.

구미 하이테크밸리는 총 면적 934만 ㎡ 규모로서 구미시 해평, 산동면 일원에 1조 8082억 원을 투입해 첨단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며, 포스코건설은 1단계 조성사업에서 연면적 375만 ㎡에 교량 13개소를 비롯해 부지조성공사를 수행하고 있다.

항만 분야에서는 신양항 정비공사, 새만금 신항만 방파제 1단계 2공구 축소공사, 군산항 유연탄 전용부두 축조공사, 울릉도 사동항 2단계 동방파제 축조공사등을 수행했다.

울릉도 사동항 2단계 동방파제 축조공사는 2013년 피날레를 장식하며 포스코건설을 토목환경 턴키 분야 1위로 올려놓은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본사가 있는 경북 포항 지역에서 발주된 사업을 첫 수주하기까지의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포스코건설은 2010년 포항 영일만 2단계 1공구 수주 실패에 이어 2011에도 두 건의 프로젝트를 안방에서 경쟁사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특히 2011년에 놓친 두 건의 프로젝트로 포스코건설은 큰 좌절감에 빠졌다.

포항 영일만 남방파제 1단계 2공구 축조공사의 경우 설계심의에서 1위로 통과해 수주가 유력했으나, 경쟁업체의 예상치 못한 가격 제시로 결국 수주에 실패했다. 대림산업과 경합한 울릉도 일주도로 역시 루머에 휘말려 다 잡은 고기를 놓치고 말았다.

실패 요인은 지역기업이란 이미지가 오히려 부담이었다. 지역기업에 일감을 몰아준다는 식의 루머와 의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따라서 사업비 1561억 원 규모의 울릉도 사동항 동방파제 축조공사 발주가 임박했을 때 많은 건설사들이 관심을 보였으나, 포스코건설은 먼 산 구경하듯 바라만 보았다.

그러나 이 사업이 지자체 사업이 아닌 국가사업으로 바뀌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지역기업이란 족쇄에서 풀려난 포스코건설이 의욕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당시 울릉도 일주도로를 수행하고 있던 대림산업 역시 텃밭임을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양측의 사활의 건 불꽃 튀는 자존심 경쟁에 나머지 건설사들은 주눅이 들어 하나, 둘씩 수주 경쟁에서 발을 뺐다.

2013년 12월말 해양수산부 포항지방해양항만청입찰심의 결과는 4.88점차의 포스코건설 승리를 확정지었다. 승리 요인은 설계의 우수성이었다. 1만 4000톤급의 케이슨 14함을 210km까지 해상 운반하는 고난이도 항만공사 설계에서 포스코건설이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해 대림산업을 따돌렸다.

2014년 2월 착공, 2017년 1월 준공예정인 이 프로젝트는 6000톤급 해군 함정 2척, 해경 함정 1척을 정박할 수 있는 해군·해양경찰청 전용부두와 5000톤급 여객선 3척이 정박할 수 있는 여객부두를 조성하는 사업이며, 포스코건설은 동방파제 640m 축조공사와 해수소통구 1식, 부대시설 1식 건설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 환경 분야, 신사업 해수담수화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다

토목 분야가 장대교량과 차량기지에 역량을 집중하고 성과를 냈다면, 환경 분야는 물산업 중에서도 해수담수에 역량을 집중했다.

물산업 육성은 포스코의 미래 전략 중 하나였다. 전 세계적으로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물산업은 석유의 ‘블랙골드(Black Gold)’와 맞먹는 ‘블루골드(Blue Gold)’로 각광받기 시작했고, 이를 포스코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목한 것이었다.

포스코건설은 물산업을 육성할 가장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최신 기술인 Bio-SAC공법을 적용한 하수처리 프로젝트를 비롯해 각종 첨단공법을 바탕으로 하수재이용과 전처리 기술의 핵심역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같은 역량을 바탕으로 2010년 7월 포스코건설은 물환경본부를 신설했다. 출범 직후 물환경본부는 4가지 측면에서 향후 사업추진 방향을 정했다.

먼저 해수담수화, 하폐수 재활용 등 맑은 물 정수사업에 주목했다. 둘째, 정부의 물산업 민영화 계획에 관심을 가지고 상수도 진출을 모색했다. 셋째, 싱크포워드 비전의 핵심인 펩콤(PEPCOM)의 모델로서 포스코 국내외 제철소의 용수공급, 폐수처리 시설의 EPC 및 O&M(Operation & Maintenance) 참여를 계획했다. 마지막으로 포스코플랜텍, 포스코ICT, 포스코E&E, 포스코엔지니어링 등 포스코 패밀리 시너지 창출을 통한 해외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모하기로 했다.

물사업 운영관리(O&M)와 관련해서는 2011년 12월 O&M 전문기업으로 블루오앤엠을 설립했다. 설립 이후 블루오앤엠은 포항 하수관거 BTL, 김포시 하수도 민간투자사업, 파주 하수관거 BTL, 광양 동호안 해수담수화사업,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배수종말처리 및 재이용시설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상수도의 경우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반대에 부딪쳐 정부의 민영화 계획에 별 진전이 없었다. 상수도 민영화는 먹는 물을 민간에 맡기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논리와 민간이 운영하면 요금이 오른다는 인식 때문에 계속 발목이 잡혔다. 이 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포스코건설은 포항시에 정수장 민자사업을 제안하는 등 상수도 진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나갔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물산업 중에서도 해수담수화 사업에 역량을 집중했다. 포스코건설이 해수담수를 선택한 이유는 사업성 때문이었다.

해수담수는 댐 건설과는 달리 민원 발생에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었다. 댐은 산과 강 생태계 훼손 우려 때문에 환경단체 반대가 많았으나, 해수담수는 바다 물을 이용하는 만큼 그럴 염려가 없었다.

우리나라 3면이 바다에 닿아 있다는 점도 사업화에 좋은 여건이었다. 따라서 포스코건설은 우리나라가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고 있는 시점에서 향후 해수담수화의 사업성을 높게 평가했다.

2011년 3월 포스코건설은 21명의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해수담수 조직을 신설했다. 그러나 실적 부족으로 사업추진이 쉽지 않았다. 이 같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통한 컨소시엄 참여를 희망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이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던 두산중공업이나 그밖의 국내업체들은 포스코건설의 진출을 원하지 않았다. 강력한 라이벌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전략적 제휴가 여의치 않자 포스코건설은 M&A를 통한 시장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2011년 8월경 역삼투압 방식으로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수처리 기술을 갖고 있던 스페인 담수플랜트기업 이니마 인수에 나섰으나, GS건설과의 가격경쟁에 뒤져 M&A에 실패했다.

이후 포스코건설은 기술개발과 자체 사업추진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기술개발 과정에서는 글로벌 수준의 기술자립화를 위한 연구개발에 나서 환경신기술 인증 1건과 환경신기술 검증 1건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광양과 제주도에 연구검증단지도 구축했다.

사업화 추진 과정에서는 광양제철소 인근 동호안에서 해수담수화 사업을 추진했으며, 국토교통부에 여수산업단지 해수담수 민간투자사업을 제안했다.

광양 동호한 해수담수화 용수공급시설

광양 동호한 해수담수화 용수공급시설

광양 동호안 해수담수화 용수공급사업(2012.12~2014.7)은 국내 최초로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를 이용한 해수담수화 사업이었다. 담수화 시설 인근의 SK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를 담수화해 공업용수로 다시 제철소에 공급하는 시스템이며, 1일 용량 3만 톤 규모였다. 담수화 시설 준공 후 30년간의 운영관리는 블루오앤엠이 맡기로 했다.

광양 해수담수 프로젝트 추진으로 자력 설계능력과 운영기반을 확보한 포스코건설은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국토교통부에 ‘여수산단 해수담수 활용 맞춤형 공업용수공급 민간투자사업’을 제안했다.

제안의 발단은 정부가 2017년경 여수산단의 물 부족을 예측하고 고민에 빠졌다는 정보를 입수하면서 출발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자면 통상 댐을 건설해서 해결해야 하나, 정부로서는 예산 부족과 환경단체 반발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포스코건설의 제안에 국토교통부는 크게 반색했으며, 이에 한국수자원공사와 공동 출자를 통한 제3섹터 개발방식의 사업추진에 청신호가 켜졌다.

“광양 해수담수 프로젝트로 우리는 일약 빅3로 도약했다. 겨우 이만한 실적을 가지고 정상급으로 도약할 만큼 아직 국내 해수담수 분야는 초기 단계인 셈이다. 우리는 빠른 시장 선점에 이어 앞으로도 적극적인 기술개발과 사업발굴을 통해 미래 블루골드 물산업 분야를 선도해나갈 것이다.” (장성식 Director, 담수사업그룹리더)

 

# 안양 박달하수처리장, 환경사업 사상 최고 수주액 달성하다

신사업이었던 해수담수 외 이 시기 환경 분야는 수처리 부문에서 전주시 상수도 유수율 제고사업, 대구하수처리장 총인처리시설 설치공사, 안양 박달하수처리장 지하화사업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하수관거 부문에서는 김포시, 파주시, 포항시 등의 하수관거정비 임대형 민자사업(BTL)을 수행했으며, 자원재이용 부문에서는 충남도청 이전신도시 자동집하시설 건설공사등을 수행했다.

전반적으로 이 시기 환경 분야의 실적은 저조한 편이었다. 물사업의 흐름이 하수처리와 하수관거 분야가 마무리되면서 상수도로 넘어왔으나, 그 물량이 적은 데다 포스코건설의 상수도 분야 실적이 전무한 것도 한 요인이었다.

포스코건설로서는 회사 출범 이전 이미 상수도사업이 끝나 경험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 큰 아쉬움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시 상수도 유수율 제고사업은 포스코건설 역사상 첫 상수도사업이었다. 국내 최초 유수율 제고사업이란 남다른 의미를 가진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유수율 제고사업은 새는 물을 막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막대한 사업비가 들어가는 정수장 건설에 앞서 노후 급배수관 정비를 통해 새는 물만 막아도 정수장 하나 짓는 것보다 낫다는 발상에서 이 사업이 탄생했다.

전주시의 경우 2007년 기준 유수율이 63.5%에 불과했고, 그 손실을 환산하면 연간 95억 원 규모였다. 누수의 원인은 역시 급배수관의 노후화였다. 이에 전주시는 10개 급수구역을 대상으로 유수율 제고사업을 추진했으며, 상수도 실적에 목말랐던 포스코건설이 의욕적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2009년 3월 착공에 들어간 이 프로젝트의 임무는 급수구역 관망 정비이며, 아울러 관망의 효율적인 운영관리를 위해 블록시스템과 관망 감시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최종 목표는 유수율 85% 달성이었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민원으로 많은 곤혹을 치렀다. 그 원인을 분석해보니 공사 후 포장복구 지연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았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해결방안을 도출해냈다. 특히 기존 아스콘 대신 리바콘으로 교체한 결과 신속한 복구가 이루어져 민원이 크게 줄었다. 또 9억 원 상당의 원가절감도 달성했다.” (신흥섭 전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적자 운영의 아픔이 있었다. 발주처의 예산부족으로 공기가 지연되면서 준공 시점이 2016년 12월로 미뤄졌다. 무엇보다 사업경험 부족으로 적자를 예측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패 요인이었다.

비록 적자 운영의 고통이 있었지만, 상수도와 유수율 제고사업에 대한 경험을 기반으로 향후 유사 프로젝트 수주의 자신감을 얻었다는 점은 나름의 성과였다.

2013년 4월 착공, 2017년 1월 준공 예정인 안양시 박달하수처리장 지하화사업은 중앙선 도담~영천 복선전철 11공구, 지도~임자 장대교량, 울릉도 사동항 동방파제 축조공사와 함께 2013년도 토목환경 턴키 분야 1위를 이끈 1등 공신이었다.

당초에 박달하수처리장은 지하화보다는 이전사업을 모색했다. 원래 인적이 드문 도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던 박달하수처리장 지역은 인근에 광명KTX역사가 들어서고 역세권개발까지 추진되면서 점차 주택가로 변모해갔다. 그러자 혐오시설에 대한 민원이 제기됐고, 이에 안양시는 2002년부터 하수처리장 이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하수처리장 이전과 기존 부지 재개발은 인허가와 재원조달에 발목이 잡히면서 오랫동안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이 사업이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 건 2011년이었다. 당시 안양시, LH공사, 광명시는 하수처리장의 지하화 재설치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재원은 국고와 LH에서 원인자 부담금으로 조달하기로 했다. 이후 안양시는 환경사업 전문성 확보를 위해 환경공단을 사업자 선정 평가기관으로 발탁했다.

2012년 8월 마침내 박달하수처리장 지하화사업 입찰공고가 떴다.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은 기존 1일 30만 톤 규모의 시설을 철거하고 25만 톤 규모의 고도처리시설을 설치해 지하화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분뇨처리시설(400톤/일), 음식물폐기물시설(360톤/일), 슬러지처리시설(80톤/일) 등의 신설도 포함돼 있었다.

사업비 2660억 원의 대규모 입찰공고가 나오자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쏙쏙 모여들었다. 시공능력 1위의 현대건설, 토목 턴키 분야 강자인 SK건설에 이어 상하수도 환경사업 1위인 포스코건설의 면면도 만만치 않았다.

그 중에서도 포스코건설의 적수로는 대우건설이 가장 큰 라이벌이었다. 대우건설은 지하화 시설 이전 박달하수처리장 건설의 주인공이었고, 2002년 하수처리장 이전이 논의될 때부터 박달하수처리장과 오랜 유대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2013년 3월 환경공단은 포스코건설의 손을 들어주었다. 승리 요인은 상하수도 환경사업 1위의 찬란한 업적에 걸맞은 설계능력이었다.

“연간 운영비가 평가의 핵심인 입찰에서 우리는 대우건설보다 2배 이상의 운영비를 제시했으며, 현대건설이나 SK건설보다도 더 높은 운영비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는 우리가 제시한 운영의 적정성, 객관성을 설계심사에서 발주처가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김민선 Sr.Manager, 물환경영업그룹 근무)

한편 상수도 실적이 전무한 포스코건설이 경북 포항에서 의미 있는 사업 하나를 발굴해냈다. 2013년 8월 포항시에 ‘남구 통합정수장 민간투자사업’을 BTO방식으로 제안했다.

당시 포항시는 상수도경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남구에 위치한 유강, 제2수원지, 택전, 병포 등 4개 정수장의 건립연도가 30~60년이 지나면서 시설 노후화와 시설용량 부족으로 운영 효율성이 크게 떨어져 연간 유지관리 비용이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이에 정수장 신설을 계획했으나, 재원 마련이 쉽지 않았다.

더욱이 먹는 물의 사유화, 민영화 논란 속에 중앙부처인 환경부에서도 6년 이상 물산업 육성을 위한 상수도 시장을 개척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때 포스코건설은 포항시, 의회, 경실련 등 이해관계자와의 접점을 찾아 PPP(Public Private Partnership, 정부-민간 합동 프로젝트 방식) 형태를 제안하고 ‘남구 통합정수장’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통합정수장의 규모는 총 15만 2000톤으로, 1단계에서 제2수원지와 택전 정수장을 통합해 9만 톤의 규모를 갖추고, 2단계에서는 유강과 병포 정수장을 통합해 6만 2000톤 시설을 갖춘다는 계획이었다. 본 사업제안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산하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의 사업타당성조사 및 적격성조사 과정을 약 8개월 이상 거쳤다. 그 결과 2014년 6월, 사업내용이 양호하다는 판단에 따라 최초제안자의 가점 획득과 함께 법적 추진 근간이 마련됐다.

특히 포항시는 제안서 내용 중 운영관리 조건에 크게 반색했다. 포항시가 70%의 운영권을 확보함에 따라 인력 구조조정 없이 조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포스코건설에게도 이득은 있었다. 단순한 내용만 파악하면 사회공헌의 성과밖에 없지만, 국내 최초로 정수장의 민자사업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