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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스코건설 출범과 ‘POSEC 비전 2005’ 수립

창립 20주년을 맞아 포스코건설은 2020년까지 세계 10대 건설사 도약을 목표로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글로벌 Top 10의 비전을 세우기까지, 그리고 국내 빅5 건설사로 성장하기까지 그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포스코건설은 모기업 포스코의 철저한 사업계획에 입각해 탄생했다. 당시 포스코는 2005년까지 세계 100대 그룹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철강, 정보통신, 건설과 엔지니어링(E&C)을 3대 핵심 동력으로 삼았다.

‘포스코 비전 2005’가 등장했던 1990년대 중반은 세계화와 개방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UR 타결과 WTO 체제 출범에 따라 포스코는 시대적 조류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그룹의 변신을 시도했다. 향후 10년의 비전을 세우고 철강, 정보통신과 함께 제철소 건설능력을 핵심역량과 유망 사업군으로 선택했다.

건설에 있어 단순 시공이 아닌 엔지니어링이 가능한 종합건설에 목적을 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선진국과 달리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 건설업계는 엔지니어링 분야가 취약하고 시공 분야만 크게 발달해 있었다. 압축성장과 중동건설 활황 등이 이러한 불균형의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 시절은 기술개발에 힘을 들이지 않아도 시공 능력만으로도 생존과 성장이 가능했다.

그러나 1990년대를 맞아 세계는 크게 변화하고 있었다. 세계화와 개방화가 가속화하면서 선진국과의 경쟁이 불가피해졌고, 엔지니어링과 시공 능력의 불균형으로 국내 건설업계는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국내 건설사들은 엔지니어링이 가능한 종합건설회사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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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보고 주주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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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개발 현판식

포스코건설 역시 E&C에 목적을 두었고, 포스코의 전략에 따라 씨앗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 순조롭게 착착 진행돼갔다. 포스코의 엔지니어링본부와 건설본부, 건설 패밀리사인 거양개발, 엔지니어링 패밀리사인 포스코엔지니어링(PEC)의 통합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사명은 포스코개발(POSEC, 이하 포스코건설로 통일)로 정했고, 1994년 11월 16일 현판식을 갖고 곧이어 12월 1일 공식 출범했다.

포스코건설의 출범은 포항과 광양제철소 건설 과정에서 축적한 엔지니어링 능력과 건설 경험, 인력을 십분 활용해서 국내 최초의 종합 E&C회사가 탄생했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제철보국의 주역답게 국내 엔지니어링 건설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했고, 건설문화 쇄신을 위해서는 무담합, 무덤핑, 무부실의 3무 정신을 창업정신으로 내걸었다.

출범과 함께 포스코건설은 ‘POSEC 비전 2005’를 수립했다. 세계적 E&C 회사인 미국의 벡텔을 롤모델로 삼았고, 2005년까지 수주 8조 원, 매출 6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강한 의지도 담았다. 경영조직에 있어서는 책임경영체제 확립을 위해 부문별 사장제를 도입했다. 손근석 대표이사 회장, 박준민 엔지니어링부문 사장, 이정부 건설부문 사장, 고학봉 해외담당 사장을 선임하고 협력과 분권을 통한 성장기반을 갖춰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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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술연구소 설립과 종합기술계획 수립

종합 E&C 회사를 지향했던 포스코건설은 출범과 동시에 자체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종합 E&C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에 준하는 기술경쟁력 확보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먼저 포스코건설은 철강 플랜트 부문의 핵심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토목, 환경, 에너지 등 전략사업 부문의 요소기술들을 개발하기로 했다. 기술개발 과정에서는 선진 건설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기술자립에 주력하고, 향후 독자기술을 확보하기로 했다.

기술연구소 야경

기술연구소 야경

조직은 엔지니어링과 건설 부문으로 분리했는데, 이는 플랜트 분야의 엔지니어링 기술력 확보와 토건 분야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신기술 개발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함이었다. 조직 구성에 앞서 우수 연구인력 확보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출범과 동시에 대대적인 인력확보에 나서 60여명에 이르는 연구인력을 확보했다.

단기간에 대규모 연구인력 확보에 이어 포스코건설은 대단위 기술연구소 건립을 위해 경기도 기흥에 15만 ㎡ 규모의 부지를 확보하는 등 설립 초기부터 기술경쟁력 확보에 각별한 열정을 쏟았다. 1996년부터 건립에 들어간 기술연구소는 1998년에 1단계로 연구동 건물을 완공했으며, 2단계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토목실험동, 품질실험동 등의 부속건물들이 속속 완공됨에 따라 1999년 11월에 종합 준공하였다.

설립 초기 포스코건설의 R&D 활동은 선진 건설사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기술도입이 눈에 띠였다. 회사 출범 2년 동안 18건에 달하는 기술협약이 체결되는 등 단시간에 많은 기술도입이 이루어졌다. 일본 니켄 세케이와 가지마건설과는 E&C 전반에 관한 기술협약(1995.7)을 체결했다.

제철 분야에서는 포스코에 주요 설비를 공급해오던 영국의 데이비 인터내셔널과 합작계약을 체결하고 이 회사의 연속주조 부문을 분리해 데이비 디스팅턴사를 설립(1995.1)했다. 미국 ATSI와는 제강전로 내화물 수명 연장을 위한 슬래그 코팅 설비의 엔지니어링과 조업 노하우 기술이전에 관한 기술협약(1995.12)을 체결했다.

CH2M HILL 기술협약 조인식

CH2M HILL 기술협약 조인식

환경 분야에서는 미국 CH2M HILL과 폐수 재활용 및 지하수 개발 등 환경 엔지니어링 전반에 걸쳐 기술협약(1994.12)을 체결했고, 토건 분야에서는 영국의 모트 맥드날드사와 도로, 교량, 지하철 및 터널, 초고층빌딩, 항만, 상하수도 등 SOC 전반에 걸쳐 기술협약(1995.10)을 체결했다.

기술도입과 함께 특허 출원 및 신기술 개발 등 기술개발에도 총력을 기울여 과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거치식 이중벽 강판 셀 공법’은 포스코건설의 산업재산권 출원 활동의 첫 열매로, 1995년 9월 4일 당시 건설교통부로부터 신기술로 지정받았다. 이 기술은 ‘포항 제4호안 조성공사’에 국내 최초로 적용돼 20% 공기 단축이라는 성과를 거두었고, 경제성과 함께 친환경적 효과가 크다는 평가도 받았다.

왕성한 기술경쟁력 확보 의지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건설은 출범 2년 만에 R&D 구조조정이라는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모기업 포스코는 패밀리사 연구기관들의 업무가 다각화하고 중복돼 연구소 간 효율적인 운영이 어렵다고 보았다. 또 계열사 단위의 분산 R&D 체계는 범포스코 차원의 전략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했다.

포스코는 이 같은 판단에 따라 R&D BPR을 실시하고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이하 RIST) 중심의 일관 연구체제를 갖추었다. 그 결과 1996년 7월 18일부로 포스코건설의 연구인력은 기술연구소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인 11명만 남고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RIST로 이관됐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의 기술경쟁력 확보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비록 신생기업이었지만 이미 포스코건설의 기술경쟁력은 8기에 이르는 포항과 광양제철소 건설 노하우에 점점이 녹아 있었다. 국내에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쟁력이었고, 전 세계적으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포스코건설은 이러한 기술적 자부심을 더욱 키워나가고, 또 R&D 구조조정으로 정체된 회사의 기술개발 여건에 물꼬를 트고자 1997년부터 매년 중장기 마스터플랜인 종합기술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현장 엔지니어들의 머리에서 정리돼 정제된 종합기술계획은 오늘날 회사가 R&D 경쟁력을 확보하고 성장 도약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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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BEST POSEC 운동 추진과 성장기반 구축

출범 당시 포스코건설은 시공능력 37위로 그 위상이 지금과 비교하면 많이 왜소했지만, 그 떡잎은 달랐다. 제철보국 신화의 후손으로 그 의지가 대단했고, 포스코의 후광으로 새내기 때 이미 중견기업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새내기의 이 같은 똘똘함은 시기를 불러왔고, 거듭되는 경쟁자들의 질투와 견제로 토목과 건축 분야에서는 오랜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출범 직후 포스코건설의 과제는 경영효율화와 조직의 화합이었다. 경영효율화는 모기업 포스코에서 그 물결이 일었다. 포스코 역사상 최초의 외부 영입 최고경영자였던 김만제 회장은 핵심역량 강화나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경영효율화를 강조했다.

1995년 6월 포스코건설은 경영효율화를 위해 추진위원회와 추진반을 구성하고 경영진단을 실시했다. 경영진단을 통해 포스코건설은 회사의 비전을 재확인했으며, E&C 사업 수행에 적합한 업무의 표준화와 시스템의 체계화를 통해 기술, 품질, 원가관리의 효율화를 도모하기로 했다. 또 경영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활용을 통해 종합 E&C 회사에 걸맞은 경영관리 체제를 조기에 정착시켜 나가기로 했다. 1단계 경영진단은 업무 진행과정 개선과 조직관리로 1995년 11월 말 완료했으며, 2단계는 기술 및 원가관리에 대한 경영진단으로 1996년 11월 완료했다.

경영효율화 못지않게 출범 초기 포스코건설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조직의 화합이었다. 거양개발, PEC, 그리고 포스코의 엔지니어링본부와 건설본부는 포스코라는 큰 울타리 속에서 성장해 왔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조직일 수밖에 없었다. 회사 출범 자체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공감했지만, 보이지 않는 갈등도 잠재돼 있었다.

BEST POSEC 출범식

BEST POSEC 출범식

포스코건설은 조직의 화합을 위해 기업문화활동으로 1996년부터 ‘BEST POSEC’ 운동을 추진했다. BEST는 경영혁신 활동, 경쟁력 제고, 기술향상, 신뢰구축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것이었다. 크게 의식혁신, 행동혁신, 전략혁신 등 세 가지로 나누었다. 의식 및 행동혁신은 기업문화 혁신을 통해 이루어졌고, 전략혁신은 현장밀착형 과제 및 중장기 발전전략 수립을 통해 실천했다.

BEST POSEC 기업문화 선포식

BEST POSEC 기업문화 선포식

포스코건설은 BEST POSEC 운동의 정착을 위해 직원대토론회, 기업문화 선포식, BEST POSEC 경진대회 등 다양한 행사들을 추진했다. 특히 1996년 10월 포스코건설은 세계 으뜸 E&C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기업문화 선포식을 개최했다. 이날 선포식에서는 ‘21세기 세계 으뜸 E&C 기업’이라는 슬로건 아래 ‘미래도전, 가치창조, 참여경영’을 회사의 경영이념으로 정하고,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하며, 바르게 행동한다’를 사원정신으로 삼아서 세계적인 E&C 기업으로 성장해나갈 것을 다짐했다.

출범 직후부터 BEST POSEC 운동을 전개하는 등 강력한 경영혁신을 추진해온 포스코건설은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만에 성장기반을 구축하는 경영성과를 달성했다. 도급순위에서는 37위로 출발해서 1995년에 14단계가 뛰어올라 23위를 기록했으며, 1996년에는 전년보다 11단계 뛰어올라 12위를 차지했다. 1997년에는 도급제가 폐지되고 시공능력 평가제가 도입됐는데, 포스코건설은 첫 시공능력 평가에서 당당히 7위에 링크되는 비약적인 성장드라마를 연출해냈다.

성장의 원동력은 플랜트였다. 수주 실적에서 플랜트는 전체 수주액에서 1995년 71.7%를 차지했고, 1996년엔 56.3%, 1997년에는 무려 91.1%나 상승했다. 1997년 기준 플랜트가 1조 6717억 원을 기록한 반면 토목과 건축은 각각 1000억 원도 넘지 못했다. 제철 플랜트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과시했다면, 이 시기 토목과 건축은 경쟁업체들의 견제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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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MF 위기와 기술경영 강화

지난 30여 년 동안 급속 페달을 밟아온 우리나라 경제가 마침내 브레이크가 걸렸다. 1997년 말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면서 치욕적인 IMF 관리체제를 맞았다. 책상을 빼는 것만이 능사라는 논리가 횡행했고, M&A와 빅딜이 유행하는 등 전 국민이 고통 받았다.

IMF 관리체제는 성장기반을 갖춰가던 포스코건설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을 안겨주었다. 수주가 격감하면서 구조조정 압박에 시달렸다. 1997년 1조 8340억 원에 달하던 수주액이 불과 1년 만에 4564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경영효율화 과정에서 매각한 아스트론 공장

경영효율화 과정에서 매각한 아스트론 공장

포스코건설의 구조조정은 이미 1996년에 있었다. 경영진단을 통한 경영효율화 과정에서 종합 E&C 회사로 업종 전문화를 선택했으며, 그 과정에서 철구공장과 아스트론공장을 매각하는 등 260명의 인력을 구조조정했다.

한 발 앞선 구조조정으로 충격파를 덜 받긴 했지만, IMF 위기는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시련이었다. 포스코건설은 대외경쟁력 확보를 위해 1998년 4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을 실시해 700여 명을 감축했다.

자산 매각과 사업구조조정도 뒤따랐다. 1998년 7월 분당의 대규모 복합단지 건립용 부지 매입계약을 해지했으며, 하와이 프로젝트도 취소했다. 또 건설 중이던 가락동 오피스빌딩과 유성콘도 프로젝트 공사를 중단하고, 서울 강남구 도곡동과 삼성동 부지 매각을 추진했다.

IMF 시기 포스코건설은 기술경영을 통해 위기 극복을 모색했다. 1998년 6월 취임한 박득표 회장은 ‘기술중시’를 경영이념으로 강조했다. IMF 위기라는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력 강화를 생존전략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1997년부터 종합기술계획 수립을 시작한 포스코건설은, 1998년에 비교우위 선점을 위한 최우선 기술 확보로는 12개의 대표기술을 선정했으며, 그 외 기술 확보로는 핵심기술과 육성기술로 나누어 63건을 선정했다. 이후 선정된 기술의 확보 방향을 실행운영계획에 반영해 본부 중점사업으로 추진하도록 했으며, 기술개발 추진실적은 전사 운영회의를 통해 매달 보고하도록 했다.

제2대 박득표 회장 취임식

제2대 박득표 회장 취임식

1999년 3월에는 보유 기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보유기술집을 발간했다. 이를 통해 고유기술의 특화 및 상품화 기반을 구축했다. 또 전 직원 공유를 통한 활용성 제고를 위해 지식경영과 연계해서 보유기술 요약집을 별도로 발간했다.

2002년 들어 포스코건설은 제철 분야에 치우진 종합기술계획을 토목과 건축 분야로 확대했다. 3개월에 걸친 검토와 조정작업 끝에 철강 분야는 고로 등 5개, 토목·환경 분야는 장대교량 등 3개, 건축 분야는 초고층 등 2개 분야를 핵심사업으로 선정했다.

포스코건설은 이처럼 어려운 시대 환경을 맞아 R&D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IMF 위기를 극복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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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철 분야 신기술 확보와 마이다스 벤처 성공

파이넥스 데모 플랜트 준공

파이넥스 데모 플랜트 준공

제철 플랜트 분야가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까지의 과정에는 포스코건설의 기술경영 의지가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IMF 위기 때 포스코건설은 제철 플랜트에서 고로, 노외정련, 연주, 표면처리, 파이넥스를 5대 핵심사업으로 선정하고 이 분야의 기술개발에 주력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파이넥스, 시험연주기 설비, 포스트립(poStrip) 데모 플랜트, 광양 CGL 파일럿 플랜트 등에서 많은 가능성을 열었다.

파이넥스 프로세스는 코렉스보다 한 단계 발전된 제철기술이며, 소결이나 코크스 제조공정이 필요 없다. 특히 분광석을 직접 사용해 쇳물을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포스코는 1990년대 초부터 파이넥스 기술개발에 착수했으며, RIST와 오스트리아 푀스트알피네가 기술개발 전반을 주도했다.

파이넥스 파일럿 플랜트에 참여했던 포스코건설도 후속사업인 파이넥스의 상업화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데모 플랜트 건설에 참여하면서 파이넥스추진반을 발족시키는 등 포스코, 푀스트알피네와 공동으로 직접 투자에 나섰다.

2001년 1월 착공, 2003년 6월 준공한 파이넥스 데모 플랜트 건설은 업무 분담에 따라 푀스트알피네가 기본설계를 수행했으며, 포스코건설이 상세설계, 설비조달 및 설치공사를 담당했다. 그러나 데모 플랜트를 구성하는 설비 중의 하나인 성형탄 제조설비에 대해서는 포스코건설이 기본설계를 포함해 개발 및 건설에 필요한 모든 업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했다.

포스코건설은 연속주조 설비 국산화에도 참여했다. 1998년부터 산업자원부 지원으로 추진된 이 프로젝트에는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포스코, 포스콘, 로템 등 총 11개 기업과 연구소, 대학 등으로 구성된 연구 인력이 참여했다.

포스코건설은 1998년 10월부터 2000년 9월까지 핵심설비 설계기술 개발에 참여했으며, 2000년 10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개발된 설계기술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연주기 건설공사를 수행했다. 마침내 2003년 5월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 제작된 연속주조 파일럿 설비가 준공됐으며, 이로써 우리나라는 연속주조 설비의 설계·제작 국산화에 성공했다.

마이다스 패밀리 프로그램 발표

마이다스 패밀리 프로그램 발표

연주설비와 열연설비를 한 공장에 통합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인 스트립 캐스팅 기술개발에도 참여했다. 포스트립 데모 플랜트라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2004년 6월 착공해 2006년 6월 준공했다. 이후 포스코와 포스코건설은 상업화를 위한 조업 테스트를 시행하면서 생산제품의 상용화를 실현해나갔다.

RIST가 추진 중이던 광양 CGL 파일럿 플랜트 신설에도 참여했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IMF 위기를 맞아 포스코가 투자를 축소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건설은 구성설비 중 일부 전문 품목을 제외하고 모든 설비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 같은 국산화를 통해 확보된 핵심설비에 대한 기반기술은 이후 표면처리 분야 CGL 설비의 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한편 2000년 8월부터 포스코건설은 사내벤처 제도를 운영했다. 사내벤처의 성공작으로는 마이다스가 있었다. 구조물 설계 업무의 전 과정을 자동화하기 위해 PEC 시절이던 1989년부터 꾸준한 연구개발과 보완작업을 거듭해 1996년 11월 마침내 포스코건설은 마이다스 패밀리 프로그램 상용화에 성공했다. 시판에 들어간 마이다스는 선진 외국업체가 개발한 상용 소프트웨어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나 판매가 급증했다.

포스마이다스 창립기념식

포스마이다스 창립기념식

포스코건설은 마이다스가 상업화에 성공하자 사내벤처의 모범사례로서 분사를 추진했으며, 2000년 9월 구조해석용 설계 프로그램인 마이다스의 개발 및 판매 등 관련업무 일체를 담당할 독립법인인 주식회사 포스마이다스가 탄생했다.

포스마이다스는 설립 이후 첨단 구조해석 컨설팅 사업, 3D CAD 사업,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솔루션 사업 등 사업영역을 확대했으며, 전략적 제휴를 통해 미국시장 진출에도 성공했다. 2001년 ㈜마이다스아이티로 상호를 변경한 후에도 중국과 미국에 법인을 설립하고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 등에 대리점을 개설하면서 벤처 성공신화를 지속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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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창립 10년의 결산, 수주액 4조 원 달성

회사 출범 3년 만에 성장기반을 구축하고 세계적 E&C 기업 도약을 준비하던 포스코건설은 IMF 위기를 맞아 잠시 꿈을 접고 생존전략에 온 열정을 쏟았다.

생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많은 것을 내놓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였다. 실적보다 재무상태가 중요한 시대가 도래하면서 제철 플랜트에서 잃은 부분을 주택사업이 만회하는 등 포스코건설은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가도를 달려 나갔다.

IMF 위기 이후 경영활동에서의 과제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적응력 강화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조직의 화합을 위해 추진했던 BEST POSEC 운동을 마감하고 2000년부터 지식경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지식경영 우수사례발표회

지식경영 우수사례발표회

주요 활동으로는 사이버 공간에 자유토론 공간인 ‘모아광장’을 마련했으며, 핵심역량 확보에 필요한 경영과제 해결을 위해 ‘학습조직형 지식교류회’를 도입했다. 지식교류회 과제는 마케팅, 기술개발, 엔지니어링, 사업관리, 공사, 조달, 경영 등 7가지 부문으로 분류하고 사업영역에 따라 본부실별 전략과제를 따로 구성했다.

특히 모아광장은 운영 1년 만에 직원들의 의식개혁을 선도하는 열린경영의 표본으로 거듭났다. 회사 성장을 위한 제도개선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투명경영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변화와 혁신을 위한 의식개혁 무장 훈련소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식경영 활동이 무르익어가는 가운데 2001년 8월 포스코건설은 지식경영 시스템인 KMS와 전자문서 관리시스템인 EDMS를 오픈했다. 이로써 보다 체계적인 지식경영의 활용과 추진이 가능해졌다. 2002년 11월 국내 최초의 기업 적용 사례집 ‘신뢰로 이뤄낸 지식경영’을 발간하기도 했다.

지식경영 추진과 함께 포스코건설은 2002년도에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했다. 성과주의 인사제도 도입으로 직급 구조가 8단계에서 5단계로 축소됐으며, 책임직위 보임 범위도 확대됐다. 뿐만 아니라 능력에 따라 파격 승진이 가능해졌으며, 연공서열제도가 사라졌다. 임금제도는 5등급의 연봉체계로 바꾸었으며, 평가제도는 능력과 업적 평가를 위해 역량과 공헌도 평가로 바꾸었다.

이 같은 혁신활동들이 성과를 내면서 회사의 성장과 함께 사세도 날로 커져갔다. 사세의 변화에 따라 먼저 2002년 2월 사명을 포스코개발에서 포스코건설로 변경했다. 회사 탄생 8년이 지나면서 사업 범위가 제철 중심에서 건축과 토목으로 확대됨에 따라 ‘개발’이라는 이미지가 소규모 기업을 연상시킨다는 사내 전반적 여론을 반영해 보다 진취적인 의미를 담아서 ‘건설’로 변경했다.

포스코건설로 사명 변경

포스코건설로 사명 변경

서울 사옥은 새로운 강남시대를 열었다. 사세가 커짐에 따라 포스코센터와 가락동 IT벤처타워 등 여러 곳에 산재해 있던 서울 조직들을 한데 모아 2004년 10월 강남구 역삼동 대륭빌딩으로 통합 이전했다.

경영실적은 IMF 위기극복 이후 수직 상승했다. IMF 관리체제 직후 4000억 원대까지 뚝 떨어졌던 수주액은 2001년부터 IMF 이전 수준을 회복하면서 처음으로 2조원대에 진입했으며, 이후 비약적인 성장으로 단 3년 만에 2배 신장 기록을 달성하는 등 2004년에 수주액 4조 원 시대를 열었다.

성장의 배경에는 탄탄한 재무구조가 있었다. 한국신용정보㈜의 신용평가에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7년간 최우수 등급을 획득했다. 국내 건설사 중 최고의 신용등급을 획득함에 따라 공격경영을 펼칠 좋은 여건이 갖춰졌다.

탄탄한 재무구조와 함께 주택사업의 선전도 비약적 성장의 1등 공신이었다. 설립 직후 성장을 견인했던 제철 플랜트 분야는 IMF 위기 이후 그 역할을 건축 분야로 넘겼다. 전체 수주액에서 20%대를 밑돌던 건축 분야의 실적이 2000년대 이후 급격히 늘어나면서 2001년에 36%, 2002년에 54%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2003년에는 62%로까지 늘어났으며, 마침내 2004년에는 또 다시 2조원 이상의 실적을 달성함으로써 포스코건설의 4조 원 클럽 입성에 크게 기여했다.

창립 10년 만에 수주액 4조 원 시대를 연 포스코건설은 이후 Global Top 30과 ‘SMART Global E&C Company’를 비전으로 세우고 새로운 도약이 전개될 다음 10년을 향해 달려갔다.

cpi data

2. PI 1기 성공적 완료, 스피드경영체제 구축

1. PI 관련 교육 실시

PI 관련 교육 실시

송도국제업무단지 개발이 순항하는 가운데 2006년 1월 포스코건설은 프로세스 혁신인 PI 1기 구축을 성공적으로 완료하고 투명성 제고와 함께 스피드경영체제를 구축했다.

PI 프로젝트는 2003년 5월부터 추진됐다. 당시 포스코건설은 시공능력 7위의 중위권 기업에서 상위 그룹으로의 진입을 모색하고 있었다. 양적으로도 수주 7조 원, 매출 6조 원 달성의 미래비전을 설정함으로써 프로세스 혁신과 제도개선, 그리고 임직원의 마인드 쇄신 등 경영혁신이 요구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부서중심 시스템개발로 인한 전사 표준화 부재, 시스템 간 기능 및 데이터 중복, 정보·자료의 분산으로 인한 실적축적 미흡, 오프라인 중심의 사고 및 업무처리 등의 문제점들이 개선 대상으로 떠올랐다. 따라서 표준화·통합화·변화관리를 실시함으로써 사업관리능력 제고, 원가 경쟁력 제고, 업무 스피드 향상을 위한 통합시스템 구축이 포스코건설 PI의 최종 목표였다.

포스코건설은 2003년 5월부터 PI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해 3개월간 PI 대비 ISP를 수행하고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그 과정에서 PI 시스템 구축을 위한 핵심적인 IT 인프라 개선과제를 도출해냈다.

개선과제로는 정보분류체계 표준화, 자료관리체계 개선, 지식경영체계 개선, 사업기획 역량강화, 엔지니어링 협업체계 구축, 공사관리체계 개선, 공사·용역 조달체계 개선, 인사 최적업무 수행체계 구축, 재무정보통합시스템 및 책임경영체계 구축 등 9대 과제를 선정했다.

2004년 1월부터는 IT 인프라 개선과제 수행과 병행해 업무설계 및 시스템 설계, EP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P시스템은 2004년 9월부터 시범 가동돼 그해 연말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2005년 1월부터 5월까지 신프로마스터, 공사용역신조달, 전사자료관리, 통합인사, 영업지원, 재무ERP, EIS, DW, KM 등 총 9개 단위의 PI 업무시스템 개발을 완료했다.

이 과정에서 EAI 도입을 병행했으며, 시스템 개발 이후에는 단위테스트와 결합테스트를 수행했다. 이어서 시스템 안정화와 가동테스트에 돌입, 마침내 2006년 1월 PI가 성공적으로 가동됐다.

PI 데이터이행 모습

PI 데이터이행 모습

이 프로젝트에 투입된 인원은 연인원 기준 무려 5만 5720명이었고, 194회에 걸쳐 토론회가 진행됐으며, 변화관리와 시스템교육에 6500여 명이 동원됐다. 뿐만 아니라 1기 PI는 데이터이행에만 수십 회에 걸쳐 수천 명이 투입된 대단위 프로젝트였다.

PI 구축을 통해 포스코건설은 첫째, 프로세스 재설계를 통한 업무절차의 표준화와 건설정보 분류체계를 표준화함으로써 사업관리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축적·활용할 수 있었다.

둘째, PI 구축으로 유사한 프로젝트를 다시 수행할 경우 기획, 마케팅, 수주, 계약, 사후관리 등의 업무를 직접 활용할 수 있었으며,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효과도 얻었다. 특히 자료분류체계가 프로세스체계와 같아지면서 업무수행과의 연관성이 극대화됐다.

마지막으로 통합화로 인해 각 업무담당시스템의 유기적인 연계는 물론, 중복입력 및 업무비효율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결과적으로 포스코건설은 PI 1기의 성공적 완료를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업무기반 확립과 함께 스피드경영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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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에너지사업본부 신설, 대외사업 경쟁에 나서

송도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1기 PI 구축으로 스피드경영체제를 갖춘 포스코건설은 이 시기 업계 최초로 에너지사업본부를 신설하는 등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에너지사업본부 신설의 배경은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플랜트와 주택, 송도사업에 편중된 사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플랜트, 공공 SOC, 건축 등 적정 포트폴리오 구성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발전에너지 분야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선택했다. 그 이유는 발전에너지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데다 포스코패밀리 물량이 있어 당장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2006년 12월 에너지사업본부를 신설한 포스코건설은 이전처럼 내부 물량에만 안주하지 않고 대외사업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해외 발전사업 진출을 모색했고, 새롭게 그린에너지 사업발굴에도 열정을 쏟았다.

화성 열병합발전소 준공식

화성 열병합발전소 준공식

그 결과 국내 발전에너지 분야에서는 대외사업 경쟁을 통해 소중한 경험들을 축적해나갔다. 한국지역난방공사 발주한 화성 열병합발전소(2005.4-2007.11), 파주 집단에너지 발전사업(2007.3-2011.2), 의정부 민락2지구 집단에너지 발전사업(2008.9-2013.3) 등을 수행했다. 2005년 5월 에너지관리공단이 매각한 대전열병합발전소의 인수와 매각에도 참여해 둔산지구 집단에너지사업을 수행하기도 했다.

포스코패밀리 물량으로는 광양제철소 9호 발전설비(2004.11-2006.8), 포항제철소 파이넥스 복합발전 설비(2005.5-2007.7), 포스코에너지 인천 복합발전 5,6호기(2008.12-2011.6) 등을 수행했다.

광양 9호 발전설비는 친환경 설비로, 광양제철소의 조강증산으로 발생한 잉여 부생가스를 회수해 재활용 연료로 사용하고자 100MW 용량의 자가용 열병합발전 설비 1기를 증설하는 사업이었다.

포항 파이넥스 복합발전 설비는 포항제철소의 파이넥스에서 발생하는 부생가스를 연료로 이용해 146MW 용량의 친환경 가스터빈 복합발전소를 신설하는 사업이었다. 특히 이 설비는 저위 발열량의 제철소 부생가스를 이용한 국내 최초의 가스터빈 복합발전 설비였으며, 가스터빈과 스팀터빈이 1개의 축으로 연결된 싱글샤프트(Single Shaft) 방식이었다.

3. 인천 LNG 복합화력 5,6호기 공사 현장

인천 LNG 복합화력 5,6호기 공사 현장

설비용량 1000MW급의 인천 LNG 복합화력 5,6호기는 포스코에너지의 민자 발전사업으로, 수도권 지역에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목적이었다. 포스코건설은 이 프로젝트에서 500MW 용량의 가스터빈 복합발전 설비 2기의 설계시공을 일괄 턴키로 수행했다.

한편 화공에너지 분야에서는 광양 3호기 LNG탱크 증설공사를 비롯해 동력설비로 포항과 광양제철소에서 산소설비 신설공사를 많이 수행했다. 포항에서는 13,14,15호기 산소설비에 참여했으며, 광양에서는 14,15호기 산소설비 공사를 수행했다. 광양 3호기 LNG탱크 증설공사(2007.7-2010.9)는 광양 LNG터미널 내 LNG 저장탱크 1기 증설공사로, 대림산업과 공동으로 수행했다.

에너지사업본부 신설 이후의 과정을 되돌아볼 때 이 시기 포스코건설은 포스코패밀리 물량 수행을 통해 기술을 축적하면서, 아울러 한국지역난방공사 발주 경쟁입찰에 참여해 대외사업에 대한 경험을 쌓아나갔다. 이러한 기술과 경험 축적은 향후 안산 복합발전 민자사업 같은 개발사업을 추진하는데 소중한 밑바탕이 됐다.

cposco engineering

7. 대우엔지니어링 인수, 해외사업 역량강화

포스코건설 임원 대우엔지니어링 방문

포스코건설 임원 대우엔지니어링 방문

에너지 분야가 국내 건설사 최초로 중남미 진출에 성공하면서 해외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는 가운데 2008년 4월 포스코건설은 대우엔지니어링을 인수하고 해외사업 역량을 더욱 강화했다.

대우엔지니어링은 1976년 10월 설립됐으며, 1990년 9월 대우그룹에서 분리 독립해 사원지주회사로 전환한 우리나라 대표적 엔지니어링 기업이었다. 화공, 플랜트, 토목, 건축 등 건설 전 분야에서 다수의 엔지니어링 실적을 보유하고 있었고, 특히 석유화학 플랜트 분야에서 두드러진 실적과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주, 유럽, 중동은 물론 중앙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엔지니어링 경험을 보유하고 있었다.

포스코건설의 대우엔지니어링 인수 목적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화공에너지 진출에 대한 야망이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대우엔지니어링의 강점인 석유화학 플랜트 강점을 살려 화공에너지 진출을 계획했다.

둘째, 해외사업 역량강화란 목적이 있었다. 당시 포스코건설은 날로 늘어만 가는 해외사업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설계 안정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었다.

셋째, 국내 턴키시장에서의 토목 분야 수주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당시 대우엔지니어링은 화공 플랜트와 해외사업 외에도 국내 토목 분야에서 풍부한 설계 경험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 같은 전략에 따라 2008년 4월 포스코건설은 대우엔지니어링의 주식 60%를 인수하고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로써 화공에너지 진출기반을 마련하고, 해외에너지와 토목사업에 대한 설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포스코건설 계열사 편입 이후 대우엔지니어링은 연평균 50% 이상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해 2009년 사상 처음으로 수주 1조 원을 돌파한 데 이어 2011년에는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또 2007년 시공능력 평가순위 72위에서 2011년에는 42위로 30계단 수직 상승하는 등 설계 중심의 엔지니어링 기업에서 EPCM을 아우르는 대형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대우엔지니어링 포스코엔지니어링으로 사명 변경

대우엔지니어링 포스코엔지니어링으로 사명 변경

2011년 10월 5일 대우엔지니어링은 포스코엔지니어링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사명변경선포식 및 35주년 창립기념식을 가졌다.

새롭게 태어난 포스코엔지니어링은 당시 사명변경을 통해 포스코패밀리 내에서 ‘엔지니어링 리더와 프로바이더’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오는 2020년까지 수주 15조원을 달성함으로써 ‘글로벌 Top 50위 EPCM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미래 성장전략을 제시했다. EPCM기업이란 단순 설계, 시공 등의 수주 형태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영역인 설계(Engineering), 구매(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 운영(Management)을 총괄해 창의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을 의미하고 있었다.

cvision

17. 최단기간 수주 10조 달성과 경영혁신 활동        

창립 10주년 비전 선포

창립 10주년 비전 선포

IMF 위기를 극복하고 비약적 성장에 성공한 포스코건설은 창립 10주년을 맞아 스마트 비전(SMART Global E&C Company)을 수립했다. 목표 달성 연도 2015년의 스마트 비전에서는 글로벌 Top 30위를 상징적 목표로 삼았으며, 규모로는 수주액 7조 원과 매출액 6조 원을 설정했다.

비전 설정과 함께 송도사업에 이어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갈 신사업으로 발전에너지 분야를 확정했다. 이후 발전에너지 조직은 해외사업과 그린에너지 사업에 역량을 집중했다.

발전에너지 신사업에 이어 해외영업 조직을 새롭게 갖추었다. 치열한 국내경쟁의 대안으로 포스코건설은 발전에너지와 함께 해외사업을 성장동력으로 선택했다.

2006년 해외영업지원팀, 해외플랜트영업팀, 해외토건영업팀 등 3개 조직을 신설하고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 결과, 건축과 토목 분야가 베트남 진출에 성공했다. 특히 발전에너지 분야는 국내 최초로 중남미에 진출, 벤타나스 석탄화력발전소 수주에 성공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국내 최초로 에너지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잇따른 해외시장 개척 성과에 힘입어 해외사업이 급성장했다. 2005년 560억 원에 불과하던 수주 규모가 2007년에 40배나 뛰어오르며 2조 2045억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전체 기여도에서도 30%대에 육박했다.

2007년의 경우 플랜트가 일본 아시아특수제강, 포스코-베트남 냉연공장, 포스코-멕시코 CGL 등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주했으며, 에너지 분야는 벤타나스의 성공적 수행에 힘입어 칠레의 캄피체와 앙가모스 석탄화력발전소 수주에 성공했다.

해외사업의 선전으로 에너지 분야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07년에 2조 916억을 수주하며 제철 플랜트 규모와 맞먹었고, 토목·환경, 건축 분야와 2배 이상 격차를 벌였다. 2008년엔 엘살바도르 석탄화력발전소를 수주하며 중남미 발전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했다.

창립 14주년 기념식 수주액 10조 원 돌파

창립 14주년 기념식 수주액 10조 원 돌파

특히 포스코건설은 국내 건설업계 성장역사를 바꿔놓았다. 3년 연속 국내 건설사 가운데 최단기간 연간 수주액 기록을 갱신했다.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최단기간 수주 5조 원, 7조 원을 돌파했으며, 마침내 2008년 창사 14년 만에 국내 건설사 가운데 최단기간 연간 수주액 10조 원 달성의 쾌거를 이룩했다.

이 시기 도약과 번영의 배경에는 전반부에 성장을 견인한 송도사업이 있었으며, 후반부에는 에너지사업과 해외사업의 선전이 있었다. 토목·환경 분야의 성장도 인상적이었다. 2006년 최초 수주 1조원 달성에 이어 3년만인 2009년에 수주 2조 원 시대를 열며 사업포트폴리오 균형 발전에 기여했다.

2009년도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매출(6조 6757억 원)에서 역대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 해외사업도 역대 최대 실적인 수주 2조 2505억 원을 기록했다. 토목 분야가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신설공사에서 3개를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 베트남에서 크게 선전했다.

포스코건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2009년부터 원가혁신, 공정혁신, 기업문화 혁신, 일하는 방식의 혁신 등 4대 혁신활동을 강력히 추진했다. 영업이익률 확보를 통한 경영목표 달성을 위해 원가혁신을 추진했으며, 아울러 선진 공정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공정혁신을 추진했다.

기업문화 혁신 과정에서는 본부별 임원과 직책보임자에게 SFCF에 대한 개인별 행동원칙을 설정했다. SFCF란 자기희생(Self Sacrifice), 솔선수범(To be First), 의사소통(Communication), 코칭과 피드백(Feedback)의 약자로, 직책보임자의 실천적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었다.

일하는 방식의 혁신에서는 VP 활동을 추진했다. VP는 비주얼 플래닝(Visual Planning)의 약자로서, 잘못된 업무관행과 비효율적 업무처리 방식, 불필요한 지시나 보고, 회의 등 낭비요인을 제거하는 혁신활동이었다.

한편 포스코건설은 수주 7조 원, 매출 6조 원의 스마트 비전을 2007년에 수주액에서, 2009년 매출액에서 조기 달성함에 따라 새로운 비전을 수립했다. 2018년까지 수주 25조 원, 매출 15조 원을 달성해 세계 20위의 건설회사로 성장한다는 내용이었다.

창립 15년 만에 수주 10조 원 시대를 연 포스코건설은 이처럼 새롭게 비전을 갖추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어 창립 20년의 재도약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