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2. 건축과 토목환경, 베트남 성공 기반으로 해외사업 영토를 확장하다

# 해외사업 총동원령, 배수진의 각오로 임하라!

2009년 창립 15년을 맞은 포스코건설의 해외사업 분야는 앞선 5년간 크게 성장했다. 이전 10년과 비교해 봐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눈부시게 발전했다.

사실 회사 출범 이전인 거양개발과 PEC 시절부터 의욕적으로 해외사업에 나섰으나, 내용이 별로 좋지 않았다. 든든한 포스코를 따라 베트남과 중국 진출에는 성공하지만, 포스코가 빠지고 독자적으로 수행한 해외사업에서는 시련이 많았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제철 플랜트 중심이었다. 제철 플랜트 외 해외사업이 중국 포스플라자, 베트남 다이아몬드플라자, 하와이 콘드 등 3건의 자체 개발사업에 그쳐 ‘제철소 건설사’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5년은 달랐다. 건축과 토목 분야가 베트남에서 맹활약했고, 에너지 분야는 중남미 발전시장에서 성공신화를 써나갔다. 관록의 제철 플랜트 역시 중동과 인도, 일본과 베트남, 심지어 중남미 멕시코까지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력이었다. 안 되면 포기하고 막히면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포스코건설은 초심을 버리지 않았다. 글로벌 E&C의 꿈을 잊지 않았다.

특히 해외사업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건설경기가 침체기를 맞으면서 위기감이 고조됐고, 한정된 국내시장에 그 파이마저 계속 줄어드니 재도약을 위해서는 글로벌 확장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신사업 발굴도 쉽지 않았다. 해외 발전에너지만 선전할 뿐, 화공 분야 진출의 장벽은 너무 높았고, 그린에너지 역시 성장동력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해외사업만이 살 길이었다. 싱크포워드 비전 수립 이후 포스코건설은 해외사업 총동원령을 내렸고, 모든 사업부서가 배수진의 각오로 해외사업을 추진했다.

캄보디아 직원훈련원 전경

캄보디아 직원훈련원 전경

바타낙 캐피탈 타워 조감도

바타낙 캐피탈 타워 조감도

건축 분야는 베트남에 한국형 신도시 수출에 이어 캄보디아 건축시장 진출에 성공하면서 첫 포문을 열었다. 2010년 3월말 캄보디아 부동산 개발회사인 바타낙 프로퍼티사가 발주한 바타낙 캐피탈 타워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국제협력 사업인 캄보디아 직업훈련원(2003.6~2005.5) 프로젝트 수행이후 민간 발주사업으로는 최초의 실적이었다.

수도 프놈펜 중심부에 위치한 바타낙 캐피탈 타워(2010.3~2012.12)는 사업비 6600만 달러가 투자된 지하 4층, 지상 38층 규모의 인텔리전트빌딩이었다. 인천국제공항 설계로 유명한 영국의 테리 파렐 파트너십사(TFP-Terry Farrell Partnerships)가 설계를 맡았으며, 행운과 건강을 상징하는 용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준공 이후 바타낙 캐피탈 타워에는 캄보디아 최초의 증권거래소와 바타낙 은행 등이 입주함에 따라 캄보디아 금융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거듭났다.

캄보디아 금융빌딩 수주를 시작으로 이 시기 포스코건설의 건축 분야는 베트남을 정점으로 동남아시아에서 크게 활동했다. 하노이시 마스터플랜의 성공적 완수에 이어 스플랜도라 신도시 1단계 사업을 무사히 완료하면서 베트남 건설한류의 중심에 섰고, 대우인터내셔널과 동반 협력으로 미얀마 호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동남아시아 외에도 카자흐스탄 신도시 개발사업에 참여함에 따라 중앙아시아에 첫 진출했으며, 이어서 영역을 오세아니아로 확대해 호주 호텔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 하노이 플랜 성공적 완수, 뜨거운 베트남의 가슴을 움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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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 광역도시 마스터플랜 조감도

베트남 하노이시, 2011년 7월 29일 오후 2시. 응웬떤중 베트남 총리를 비롯해 국가 고위급 인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하노이 국가 도시계획 전시관’ 개관 행사장이었다. 1, 2층이 오픈된 전시관은 2층에서 관람이 시작되는 구조였다. 2층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3개로 이루어진 도시 모형이 시선을 압도했다.

첫 번째 모형은 근대 이전 하노이의 모습이었고, 두 번째가 현재의 하노이, 그리고 마지막 모형은 포스코건설이 설계한 20년 후 미래의 하노이 전경이었다. 경이로운 광경에 관람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 이 날은 포스코건설의 역작 하노이 마스터플랜이 완성된 기념비적인 날이기도 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하노이 마스터플랜 사업의 성공적인 완수를 기념하고, 베트남 정부가 하노이의 미래 발전상을 홍보하는 데 기여할 목적으로 280만 달러 상당의 ‘초대형 하노이시 모형’을 기증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스터플랜 수립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초 1년 6개월의 일정이 1년이나 더 연장됐다. 하노이시와 주변 5개 위성도시를 연결하는 대단위 개발계획이다 보니 많은 기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무려 750가지나 되는 개발계획이 이해관계에 따라 쏟아져 나왔는데, 이를 조정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 (김창묵 Director)

베트남 정부가 이 사업을 자국 내 전문가들에게 맡기지 않고 국제입찰에 부친 이유도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었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선진 기법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베트남 정부는 천년 수도 하노이시의 웅장한 미래 모습을 설계해주길 원했다.

설계를 맡은 포스코건설은 조정과 정리 과정에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정보를 공개했고,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논리적인 설득을 통해 최대한 협력을 이끌어냈다. 그러자니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750가지나 되던 개발계획을 40%로 줄여 난개발을 방지할 수 있었다. 특히 하노이 중심부와 주변 5개 위성도시를 효율적으로 연결하면서 그 중간 지점에만 신도시 계획을 세웠고, 나머지는 생태학적 자연환경 보존 차원에서 그린 코리더로 지정함으로써 40%의 녹지축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미래지향적이고 지속 발전이 가능한 친환경 생태도시로 웅장한 하노이시의 미래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다. 그린 코리더(Green Corridor)는 풍부한 대도시의 생태계를 위해 강기슭이나 도로 등을 녹화하고, 다양한 생물을 도입하는 녹지계획이었다.

베트남 호치민시 중심부에 위치한 다이아몬드플라자

베트남 호치민시 중심부에 위치한 다이아몬드플라자

하노이시 설계에서 보여준 포스코건설의 성심은 베트남 사회에 또 한 번의 우호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포스코건설은 1990년대 중반 철강 프로젝트로 첫 인연을 맺은 이후 호치민시 중심부에 랜드마크 다이아몬드플라자를 건설함으로써 베트남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신도시, 고속도로 등 대규모 국책사업을 수행하면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포스코건설이 펼친 사회공헌활동은 베트남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 같은 베트남 사회의 우호적인 관심이 2011년 11월경 베트남 제1국영방송인 VTV에 고스란히 담겼다.

당시 포스코건설 특집방송은 베트남 현지는 물론, VTV가 운영하는 국제방송 채널을 통해 미국, 호주, 유럽 등에도 방영됐으며, VTV는 1시간 내내 베트남의 경제발전과 지역사회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긍정적 평가와 함께 VTV는 성공적으로 완수한 하노이시 마스터플랜을 비롯해 스플랜도라 신도시 개발사업,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건설공사 등 자국의 대규모 국책사업에서 펼친 포스코건설의 역동적인 활동을 소개했다. 특히 VTV는 송도국제도시 개발 등 한국에서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베트남 국책사업 참여의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동화 사장과의 인터뷰에서는 글로벌 전략과 베트남에서의 활동 방향에 대해 질의했다. 이에 정동화 사장은 “모든 활동에서 진심으로 베트남의 미래건설에 일조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고, 이어 “우리 회사가 한-베트남 양국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가교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 한국형 신도시 스플랜도라 1단계 준공과 베트남 우정휘장 수상

저녁 8시 식사를 마친 베트남 사람들이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베트남 국영TV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VTV3 채널에 한류 스타 장동건이 등장했다. 그는 포스코건설 기업 이미지 광고의 모델이었다.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 이제 베트남까지 이어집니다. 세계는 내일의 베트남을 송강의 기적이라 부를 것입니다. 더 큰 베트남을 기대합니다.”

스플랜도라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한류를 이끌었다. 시청률이 높은 방송 시간대에 한류 스타 장동건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데 이어 포스코건설 입간판에도 출연시켰다.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오는 고속도로 길목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장동건의 입간판이 하노이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먼저 맞이했다.

이런 적극적인 마케팅 덕에 베트남 내에서 포스코건설의 글로벌 이미지는 삼성과 LG 못지않게 높아졌으며, 더욱이 한국형 아파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스플랜도라 신도시 1단계 주거지역

스플랜도라 신도시 1단계 주거지역

2013년 9월 스플랜도라 신도시 1단계 건설공사가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스플랜도라가 큰 인기를 모은 비결은 완벽한 주거 인프라 구축이었다. 그 외 한국형과 현지형 아파트의 현명한 접목도 베트남 사람들로부터 많은 호감을 얻었다.

스플렌도라 신도시는 뛰어난 주거품질 외에도 국제학교, 대형 할인마트, 종합병원 등 생활편의시설과 하수종말처리장, 가스저장보급소, 첨단 수도공급시설 등 각종 주거 인프라를 완벽하게 갖추었다. 더구나 한국형 커뮤니티시설, 단지 내에 가로지르는 개천, 개인 풀장, 어린이 놀이터 등은 현지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형 신도시의 장점 외에도 현지 정서를 알맞게 살렸다. 대표적으로 아파트 벽을 현지 시공방법인 조적식으로 시공했다. 집안 내부 벽과 바닥 공사도 기후가 워낙 습해 한국식의 도배나 장판을 배제하고 페인트나 타일 시공으로 마감했다.

“아파트 벽식 시공을 놓고 처음에 고민이 많았다. 한국식 월(wall)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어서 시공이 간편했지만, 그럴 경우 열대성 기후로 벽이 울퉁불퉁해져 미장을 다시 해야 할지 모른다는 기술진단에 따라 과감하게 조적을 선택했다. 그 결과 자재비와 인건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박희도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1단계 사업의 성공적 준공에 이어 2012년 6월부터 포스코건설은 2단계 착공에 들어갔다. 2단계 사업에서는 스플랜도라 전체 사업부지(264만㎡) 중 75만 8천㎡ 규모 부지에 아파트, 빌라, 테라스하우스, 중앙공원 등을 개발하게 된다.

아파트는 2800여세대가 조성된다. 아파트 지하층은 주차공간 및 기계시스템, 1층은 공공서비스, 기타 다른 층은 주거용으로 건설되며, 아파트 건물 사이에는 주차장, 공원, 수영장 및 커뮤니티 시설이 조성된다.

빌라는 3층 규모, 412세대가 8가지 타입으로 구성되며, 건폐율 37.5%에 2층짜리 커뮤니티시설 2개동으로 개발된다. 테라스하우스는 4층 규모, 466세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폐율 59.7%로 2층 규모의 커뮤니티시설 1개 동을 포함하고 있다.

약 16만㎡ 규모의 중앙공원에는 호수, 녹지공간, 관리사무소, 보안구역, 상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2단계 사업의 디자인은 하노이시 마스터플랜을 함께 작업했던 미국의 세계적 설계사인 퍼킨스 이스트만이 맡았다.

국영TV 특집방송에 이어 2012년 10월경 포스코건설은 또 다시 베트남 사회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하노이시 마스터플랜의 성공적인 수행과 베트남 건설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우정휘장을 수상했다. 베트남 우정휘장은 베트남 경제, 사회, 정치, 외교, 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와 협력을 거둔 외국기관 및 개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포상이었다.

 

# 중앙아시아·오세아니아 건축시장 진출하다

베트남 우정휘장 수상의 영광에 이어 2012년 10월말 포스코건설은 중앙아시아에 첫 진출했다. 카자흐스탄 굴지의 기업인 카스피안 그룹과 공사비 7000억 원 규모의 코얀쿠스 주택건설사업에 대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당시 카자흐스탄은 사업기간 15년 계획 하에 전체 공사금액이 50조 원에 이르는 ‘G4 신도시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 사업은 카자흐스탄의 경제수도인 알마티에서 캅차가이 호수까지 79km의 구간에, 이니셜 ‘G’로 시작하는 4개의 신도시를 민관이 합동으로 건설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4개 신도시의 이름은 알마티에서 가까운 순으로 각각 게이트시티, 골든시티, 그로잉시티, 그린시티였다.

포스코건설이 맡은코얀쿠스 주택사업은 G4 신도시 개발사업의 1단계 프로젝트였다. 알마티의 북측 경계로부터 1.5km 떨어져 있는 게이트시티 내에 8000여 세대에 이르는 뉴타운을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공사기간은 설계기간을 포함해 총 69개월, 공사비는 6억 4000만 달러 규모였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투자나 파이낸싱 없이 해외 개발사업을 수주함에 따라 사업 리스크가 없는 안정적인 공사계약 성과를 달성했다. 또 설계와 조달, 시공을 일괄 수행하는 디자인 빌드(design build) 방식으로 수주함으로써 신도시 건설에 대한 종합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더욱이 당시 카자흐스탄 진출은 베트남에 이어 두 번째 한국형 신도시 수출이란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중앙아시아 진출에 이어 이즈음 포스코건설은 미얀마 진출을 시도했다. 미얀마 진출은 포스코 패밀리사인 대우인터내셔널과의 협력이 돋보였다.

미얀마는 2000년대 말부터 개혁개방이 가속화되면서 해외 투자자들의 발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우인터내셔널도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미얀마 가스전 개발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대우인터내셔널은 몰려드는 해외 투자자들에 비해 호텔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부동산 개발을 병행했다.

우선 대우인터내셔널은 미얀마 정부와의 오랜 유대관계를 기반으로 최대 상업도시인 양곤의 인야 호수 주변의 정부 소유 토지를 장기 임대하는데 성공했다. 이어서 포스코건설, 롯데호텔 등과 컨소시엄을 결성하고 현지 대기업인 IGE그룹과 부동산 개발사업을 위한 합작사를 설립했다.

총 2억 달러가 투자되는 양곤 부동산 개발은 모두 2개동으로 2016년 완공 예정이며, 1개 동은 호텔로 이용되고 다른 건물은 호텔식 서비스의 주거시설인 레지던스 형태로 운영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롯데호텔은 호텔의 운영을 맡았으며, 포스코건설은 시공을 맡아 2014년 2월부터 본격적인 건설공사에 들어갔다.

미얀마 첫 진출에 이어 포스코건설은 호주 건축시장에 첫 진출했다. 호주 진출은 전략적 파트너사인 서호주 최대 주택건설업체인 BGC사와의 협력이 돋보였다.

BGC사와 협력해 수주한 건축 프로젝트는 일명 페사(FESA)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서호주 정부가 호텔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퍼스 시내에 위치한 소방방재청을 사업부지로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따라서 페사 프로젝트는 소방방재청 이전 조건으로 그 부지 위에 14층 높이, 330실 규모의 호텔과 22층 높이의 오피스를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사업 구조는 서호주 정부가 개발사업 제안을 공모하고, 선정된 시행사가 부지 매입과 함께 사업권을 획득하는 방식이었다. 사업제안에 앞서 BGC사는 포스코건설에 협력을 요청했고, 포스코건설은 그 동안 쌓은 풍부한 개발사업 제안 노하우를 기반으로 BGC사의 페사 프로젝트 사업권 획득을 지원했다.

그 과정에서 2013년 7월 포스코건설과 BGC는 합작법인 BPI를 설립했다.포스코건설 지분은 49%였다. 이어서 BGC가 페사 프로젝트를 위해 설립한 페사480사가 마침내 사업권 획득에 성공했으며, 2013년 12월말 포스코건설의 합작법인 BPI가 페사480사로부터 약 1200억 원 규모의 페사 프로젝트 시공권을 수주하기에 이르렀다.

“페사 프로젝트 수주는 포스코건설이 그간 국내외에서 수행한 초고층 건물 시공 실적과 설계 기술력을 호주시장에서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계기로 향후 선진 건축시장 진출이 가속화될 것이다.” (이용일 전무, 호주사업단장)

 

# 공기준수와 최고 품질로 베트남 고속도로 석권하다
성공적으로 수행한 베트남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성공적으로 수행한 베트남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토목 분야도 건축 분야 못지않게 베트남에서 크게 선전했다.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공사에서 3개 공구를 수행하는 가운데 호치민~저우자이 고속도로에서 2개 공구 수주에 성공했으며, 빈폭성~메린 고속도로 수주에도 성공했다.이로써 총 6개의 고속도로 공사를 수행하게 되는데, 이는 베트남에서 외국기업으로는 최다 실적이었다.

첫 사업이었던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에서는 전체 8개 공구 중 포스코건설이 가장 많은 3개 공구를 수행했다. 3개 공구의 총 연장이 81km에 이르는 대규모 공사였다. 따라서 성토량과 보드 파일의 수가 엄청났다. 3개 현장 공사에 필요한 흙을 쌓은 양인 성토량은 잭니클라우스 골프장 10개 규모와 맞먹는 1300㎥이었으며, 교량공사를 지지하기 위한 보드 파일의 길이도 63빌딩을 264개나 쌓을 높이였다.

3개 공구 중 A1공구(2009.7-2014.10)는 교량 19개소, 643m의 지하차도가 포함돼 있었으며, A2공구(2010.1-2014.10)는 교량 19개소에 FCM 교량 1개소가 포함돼 있었다. A3공구(2010.1-2014.12)에는 교량 18개소와 FCM 교량 1개소가 포함돼 있었다.

첫 경험이었던 만큼 프로젝트 수행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우선 환경이 열악했다. 공사 현장이 있던 빈폭성은 1년에 3분의 2가 폭우가 쏟아지는 강우 지역이었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점은 지역주민과의 토지 보상이었다.

“준공 4개월을 앞두고 겨우 보상 문제가 해결됐다. 우리나라 개발식으로 접근해서는 베트남 사업에서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베트남은 인민의 나라라는 인식이 강해 정부도 함부로 못한다.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공사 현장에 바나나 나무를 심거나, 벼를 말리는 등 지속적으로 공사 진행을 방해했다.” (주인식 Sr.Manager, 당시 A2공구 현장소장)

발주처가 요구하는 품질이 까다롭고 관리절차 기준이 복잡한 점도 큰 난관이었다. 이는 발주처의 간섭이 심하다는 의미로써, 심지어 하도급 선정도 승인절차를 밟아야 할 정도였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포스코건설은 주민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보상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기후문제도 철저한 준비와 관리로 적절하게 대응했다. 발주처 문제는 공기준수와 최고 품질로 신뢰를 얻어 극복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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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4.20 호치민~저우자이 고속도로 3공구 착공식

2011.10.17 베트남 빈푹성~메린 도로공사 착공식

2011.10.17 베트남 빈푹성~메린 도로공사 착공식

노이바이~라오까이의 성공적 수행에 힘입어 2010년 4월 포스코건설은 베트남 도로공사가 발주한 전체 노선 51km의호치민~저우자이 고속도로 중 호치민 인근에 위치한 9.8Km의 3공구(2010.5-2013.12) 수주에 성공했다.총 사업비 1억 45만 달러 규모의 왕복 4차선 아스팔트 포장공사로, 5개의 교량공사가 포함돼 있었다.

3공구의 성공적 준공에 이어 2013년 12월 포스코건설은 호치민~저우자이 고속도로 중 5공구 수주에 성공했다. 이 사업은 사업비 4869만 달러 규모로, 공사 구간은 13.9km였다.

호치민~저우자이 외에도 2011년 7월 포스코건설은 빈폭성~메린 고속도로 건설공사(2011.9-2014.3)를 수주했다. 이 프로젝트는 메린 신도시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사업으로, 총 연장 15km의 4차선 도로 건설공사였다. 사업구간에는 교량 4개소도 예정돼 있었다.

한편 2013년 8월 포스코건설은 베트남 하노이 광역철도 관리위원회와 7296만 달러 규모의 베트남 하노이에 최초로 건설되는 경전철의 지상역사 공사계약을 체결했다. 이 프로젝트는 하노이 농 역에서 킴마 역사까지 8.5km 구간 내에 있는 총 8개의 지상역사와 토목구조물을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특히 이 사업의 수주는 베트남 하노이에 확대 도입 예정인 전철공사의 첫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

베트남에서 외국기업으로 최다 실적을 보유한 토목 분야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철저한 사업관리가 큰 몫을 했다. 첫 사업이었던 노이바이~라오까이의 경우 저가 수주여서 프로젝트 시작부터 적자가 예상됐다. 스플랜도라 파트너이자 도로공사 수주에서 경쟁자였던 비나코넥스 역시 포스코건설의 저가 수주를 우려할 정도였다.

실제로 노이바이~라오까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국의 K사와 D사는 저가 수주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후속 프로젝트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은 철저한 사업관리로 적자 폭을 최대한 줄이고, 이후 후속 사업에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베트남법인의 현지화도 성공요인이었다. 법인은 베트남에서 오랜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기업과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강한 체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발주처와의 신뢰도 성공가도에 큰 보탬이 됐다. 이 같은 신뢰는 철저한 공기준수와 최고 품질로 얻어낸 소중한 자산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성심을 다하는 사회공헌활동으로 베트남 사회로부터 우호적인 관심과 좋은 기업이미지를 이끌어냈는데, 이 역시 성공요인이었다.

운도 따랐다. 노이바이~라오까이 수행 당시 베트남은 부동산 경기 과열로 현지 건설사들이 도로공사보다 건축사업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외국기업이 비집고 들어갈 빈틈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성공요인은 사람이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게 열정, 그 열정으로 포스코건설은 숱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 베트남 성공에 이어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건설에 나서다

베트남 사업에서 자신감을 얻은 토목 분야는 영역 확대를 시도했다. 때마침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대한 고속도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었다. 일명 카렉(CAREC) A380이라고 불리던 중앙아시아 경제협력(CAREC, Central Asia Regional Economic Cooperation) 프로젝트였다.

2007년부터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10개국이 추진 중인 이 프로젝트는 현대판 실크로드 재건사업이었다. 중국에서 서유럽을 연결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인 만큼 지속적인 사업 발주가 예상됐고, 이에 포스코건설이 이 사업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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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렉 A380도로 전경

첫 도전은 우즈베키스탄 재정경제부 산하 로드펀드가 발주한 카렉 A380도로(2010.7-2013.12) 메샤클에서 투르쿨까지의 연장 91km 구간이었다. 총 사업비가 1억 3215만 달러 규모로, 4차선 콘크리트 포장공사와 부대시설 건설이 주요 내용이었다.

“중앙아시아 첫 진출이었던 만큼 어려움이 많았다. 현지 건설시장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대사관과 은행, 소규모 건설회사, 엔지니어링사 등을 일일이 방문한 끝에 신뢰성 있는 견적을 확보할 수 있었고, 한국 포장전문업체와 견적을 비교하는 등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입찰에 참가했다.” (김익희 전 부사장)

약 두 달간의 기술서류 심사기간에도 예상치 못한 추가 작업들이 발생했다. 발주처는 입찰보증 서류에 대해 은행 재확인을 요청했으며, 실적 서류의 재보완과 지난 10년 동안 포스코건설이 수행해온 모든 프로젝트에 대한 콘크리트 포설 물량 증명까지 요구했다.

포스코건설은 발주처에 신뢰와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그들이 요구하는 항목들을 꼼꼼히 챙겨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그 결과 중국,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등 저임금으로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던 국가들을 물리치고 2010년 4월 마침내 수주에 성공했다.

두 번째 도전은 카자흐스탄이었다. 카자흐스탄 교통통신부가 발주한 사업비 약 1200억 원 규모, 48km의 쉽켄트~투르키스탄 구간의 카자흐스탄 남서고속도로 4공구(2011.3-2014.10)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이 경쟁에서 포스코건설은 한국 건설사는 물론, 중국, 이탈리아, 터키 등 외국 건설사까지 제치고 2010년 8월 수주에 성공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도 그렇고, 카자흐스탄도 그렇고 중앙아시아 첫 진출 작품이라 프로젝트 수행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현지 기후, 관습, 시장 여건, 제도 등 낯선 환경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공사 물량에 비해 부족한 공사 기간 때문에 공기 준수를 위해 야간작업과 돌관공사를 병행해야만 했다.

“CIS 국가 특유의 권위주의적 책임 회피성 업무처리로 공사 진행이 쉽지 않았다. 그보다 국제 계약공사 경험이 부족해 적자를 보았으며, 대형 프로젝트 수행 능력 부족도 큰 아쉬움이었다.” (박상훈 Director, 현장소장)

비록 적잖은 수업료를 치렀지만, 학습효과와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공기를 준수함으로써 발주처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가장 큰 성과는 공사 품질력을 알린 것이며, 이로 인해 우즈베키스탄 내에서 경쟁력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 프로젝트에서는 건설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인데다 공사현장이 오지에 위치해 인력확보에 어려움이 많았다. 우즈베키스탄과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시행착오도 많았다. 일례로 계약보다는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무리한 보상요구와 작업중지 지시 등의 공사 방해로 많은 곤혹을 치렀다.

“다소 공사가 지연되긴 했으나, 품질에 대해서는 발주처와 감리단으로부터 크게 인정받은 점은 큰 성과였다. 더욱이 혹한기에 대처할 수 있는 경험의 확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됐다.” (박찬호 Director, 현장소장)

실패를 극복하고 이룩한 그간의 성과에 힘입어 2013년 12월말 포스코건설은 카렉 A380 프로젝트의 추가 수주에 성공했다. 유럽, 중국, 터키 등 13개 건설사와 열띤 경합을 펼쳐 사업비 1억 7500만 달러 규모의 우즈베키스탄 키실락 지역부터 가질 지역까지 약 85km 구간의 실크로드 공사를 수주했다.

 

# 환경 분야 해외진출, 매운 중동 모래바람에 고전

해외사업 총동원령에 환경 분야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2010년 포스코건설은 물환경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의욕적으로 해외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첫 경험은 아픈 법이다. 수업료가 많이 들었다. 강한 의욕을 가지고 가장 먼저 중동으로 달려갔지만, 매서운 모래바람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아부다비 담수저장 및 회수설비 프로젝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하수처리장 프로젝트가 그랬다.

2010년 8월말 수주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프로젝트는 미르파 담수 배관망으로부터 잉여담수를 받아 하루 3만 톤씩 최대 2700만 톤을 사막 지하 85m 대수층에 저장하는 사업으로, 이는 아부다비 시민 44만 명에게 90일간 식수를 제공할 수 있는 양이었다. 현지 건설사인 ACC와 공동으로 수주했으며, 사업비는 1억 9750만 달러 규모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포스코건설은 담수저장소 3개소와 펌프장 4개소, 길이 161km의 배관망 등을 신설하는 공사를 수행했다.

수주 당시만 하더라도 독일의 린덴버그를 비롯해 7개의 세계적인 기업과 경합을 펼쳐 승리를 쟁취한 만큼 회사 내부적으로 상당히 고무돼 있었다. 그러나 이후 프로젝트 수행 과정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설계 부실이었다. 주간사인 ACC의 경우 EPC 경험이 부족해 프로젝트 진행을 원활하게 이끌어가지 못했다. 발주처인 아랍에미리트 수전력청 아드위아는 설계변경에 따른 추가공사가 필요한데도 이에 따른 추가비용과 공기연장을 인정하지 않아 프로젝트 진행이 답보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포스코건설 역시 실패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사전준비가 부족해 리스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특히 물량과 단가를 정확히 계산해내지 못했다. 결국 첫 성과에 눈이 먼 성급한 판단이 화를 자초했다.

아부다비 프로젝트에 이어 2011년 2월 한라산업개발과 함께 수주한 사업비 8500만 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하수처리장 건설사업 역시 시련의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사우디 제다항 북쪽 350㎞ 지점에 있는 홍해연안 얀부 산업단지 내 하수처리장의 하루 처리용량을 2배 확장해 하루 4만 7000톤의 하수를 처리할 수 있도록 개조, 증설하는 건설공사였다.

한라산업개발의 참여 요청으로 이 프로젝트에 발을 들여 논 포스코건설은 아부다비 담수와 마찬가지로 수주 성과에만 연연했다. 수주 당시부터 적자가 빤히 보였지만, 한라산업개발이 제시한 매출이익 1% 보장 조건만 믿고 덜컥 미끼를 물었다.

설상가상으로 한라산업개발이 개인회생 절차를 밟으면서 이 프로젝트는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었고, 법원마저 계약무효를 선언함에 따라 손실의 폭이 커져갔다. 심지어 포스코건설은 거덜난 사업을 떠안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우리가 주간사가 돼 공사를 재개하는 과정에서 설계 오류, 부실시공 등을 바로잡는 작업이 쉽지 않았고, 발주처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마라픽과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데도 많은 공력이 들었다. 비록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의 대외 신인도를 지키기 위해 성공적 사업수행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박근 전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 동유럽 첫 진출, 국내 최초 폴란드 소각플랜트 수주

두 번의 실패는 큰 고통이었으나, 한편으론 좋은 보약이었다. 환경 분야는 실패를 교훈 삼아 해외시장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웠으며,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치밀한 전략으로 해외사업에 임하는 태도를 몸에 익혔다.

그 결과 폴란드 소각플랜트를 수주하며 동유럽 첫 진출에 성공했고, 중남미 하수도개선 마스터플랜 수립 지원사업에 참여해 시장탐색과 사업발굴을 병행했다. 베트남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수주 역시 철저한 사전준비와 치밀한 전략의 결과였다.

2012년 11월 포스코건설은 폴란드 크라쿠프시가 발주한 2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생활폐기물 에너지화 발전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이 사업은 소각로 2기와 열병합 발전설비가 들어가는 프로젝트로, 하루 약 680톤, 연간 약 22만 톤의 생활폐기물을 처리하게 되며, 처리된 폐기물은 에너지로 재활용돼 연간 약 9만 5000MWh의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폴란드 소각플랜트는 원래 에너지사업본부가 발굴해낸 사업이었다. 2008년경부터 에너지사업본부는 동유럽의 소각플랜트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 EU는 동유럽의 환경개선을 위해 환경 인프라 지원펀드를 만들어 대규모 소각플랜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는 매립 방식의 동유럽 폐기물을 소각으로 전환하는 사업이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1차 펀드가 동유럽에 지원됐는데,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은 나라가 지원펀드에서 46%나 확보한 폴란드였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의 동유럽 소각플랜트 사업 참여는 쉽지 않았다. 이 시장은 유럽과 일본업체들이 양분하고 있었고, 원천기술의 대부분도 유럽업체들이 보유하고 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에너지사업본부는 이 사업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1년경 2차 펀드에 대한 사업자 모집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에너지사업본부는 동유럽 국가 중 폴란드에 집중했고, 지원금 유치에 나선 슈체진, 코닌, 비알리스톡, 크라쿠프 등 5개 지자체 중에서도 사업 규모가 가장 컸던 크라쿠프시를 선택했다.

사업 규모가 큰 만큼 이익률도 좋았다. 그러나 그만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기도 했다. 첫 사업에 대한 리스크 우려로 사업참여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갈등의 순간, 폴란드 네트워크가 탄탄한 삼성물산이 손을 내밀었다. 절호의 찬스이긴 했으나, 그들이 내민 손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까지는 좀 더 고민이 필요했다. ‘자기네도 건설조직이 있는데, 왜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별 이득이 없으니 버린 카드가 아닐까?’ 하는 식의 조직 내부의 의혹부터 풀어나가야 했다.

“사실 그들은 실리를 따져 우리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룹차원에서 대승적으로 협력할 수도 있지만, 한 푼이라도 수익을 더 내야 하는 비정한 경쟁체제에서 그들은 자기네 건설조직보다 우리와 협력하는 것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박재영 Sr.Manager, 해외영업그룹 근무)

2011년 1월경 든든한 에이전시를 확보하고 본격적인 사업참여에 시동을 걸었지만, 가장 중요한 기술선 확보가 쉽지 않았다.

유럽이나 일본의 메이저 기술선들은 경험 없는 포스코건설을 외면했다. 어쩌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도 가장 중요한 가격협상에서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메이저 기술선들은 100% 기자재공급을 요구했고, 포스코건설은 핵심기술만을 원했다.

포스코건설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술축적이 필요했고, 또 기자재공급 범위를 줄여야 입찰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같은 태도는 사우디아라비아 얀부나 아부다비 담수 프로젝트 때와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성급하게 첫 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고민하고, 다음 프로젝트까지 준비하는 치밀한 태도로 변모한 것이었다.

결국 포스코건설은 메이저 카드를 버리고 마이너 카드를 집어 들었다. 독일업체 렌트제스(Lentjes)를 기술선으로 선택했다. 회사 규모가 작았던 렌트제스는 리스크를 우려해 기자재공급 범위 확대를 오히려 부담스러워 했다. 포스코건설로서는 이상적인 기술선이었다.

비록 마이너와 마이너끼리의 만남이었지만, 두 회사의 열정만큼은 메이저 기업을 압도했다. 렌트제스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도 포스코건설의 입찰준비를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이는 유럽기업 정서상 드문 사례였다.

2011년 9월 포스코건설의 제안서가 PQ를 통과하면서 이 프로젝트의 업무가 환경부서로 이관됐다. 이후 본격적인 입찰경쟁에는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4개 업체가 뛰어들었다. 대부분 폴란드 업체가 유럽과 일본의 쟁쟁한 기술선들과 연대했다.

특히 모스토스탈(Mostostal)과 일본의 기술선 히타치, PBG와 프랑스 기술선 CNIM의 조합은 결코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느껴졌다. 모스코스탈과 PBG는 폴란드 내에서 우리나라 삼성그룹과 비슷한 거대기업으로 알려져 있었다. 포스코건설로서는 그나마 폴란드업체 버디멕스(Budimex)와 벨기에 기술선 괴펠(Keppel)이 팀을 이룬 그룹만이 해볼 만한 경쟁자로 느껴졌다.

이후 7개월간의 준비작업 끝에 2012년 4월 최종 경쟁입찰이 실시됐다. 결과는 모스토스탈-히타치의 승리였다. 포스코건설은 최하위 4위를 기록했다.

초라한 성적에 고개를 떨구고 발길을 돌리려던 그 순간, 행운의 여신이 포스코건설 앞에 강림했다. 행운의 여신이란 폴란드만의 독특한 절차적 합리주의인 어필링 프로셔(appealing procedure)였다.

“어필링 프로셔는 입찰이 끝나도 낙찰자의 제안이나 기술에 문제가 있다면 나머지 경쟁자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때 반론의 진실여부를 판단하는 조직이 중재위원회이며, 중재위원회에 의해 반론이 인정되면 낙찰자는 자격을 잃고 재입찰이 실시된다.” (구기욱 전 상무)

이 과정이 무려 3차례에 걸쳐 6개월이나 이어졌다. 첫 반론에서 모스토스탈-히타치가 탈락했고, 두 번째 반론에서 PBG-CNIM이 탈락했다. 심지어 세 번째 반론에서 버디멕스-괴펠까지 탈락해 포스코건설만이 남았다.

그 사이 폴란드 정부나 크라쿠프시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다른 지역은 벌써 사업자를 선정하고 사업추진 준비를 마쳤지만, 가장 규모가 큰 크라쿠프 프로젝트만이 어필링 프로셔에 발목이 잡힌 것이었다. 결국 크라쿠프시는 더 이상의 재입찰을 포기하고 포스코건설을 최종 사업자로 선정했다.

폴란드 소각플랜트의 수주 승리는 능력 있는 에이전시의 만남, 열정적인 기술선의 확보도 주요 성공요인이었으나, 공공조달 최고 전문가 집단의 로펌을 파트너로 유치한 것 역시 주효했다. 이들은 어필링 프로셔 기간에 포스코건설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유리한 상황들을 조성해나갔다. 그밖에 다급해진 폴란드 정부가 사업자 선정을 서두르는 등 전반적으로 운이 좋았고, 경영진의 적극적인 지원도 큰 힘이 됐다.

그보다 가장 큰 성공요인은 해외사업에 대한 실무진들의 태도 변화였다. 그들은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았고, 철저한 준비작업과 치밀한 전략으로 프로젝트 수주를 성공으로 이끌어갔다.

2013년 7월 착공, 2015년 12월 준공 예정인 폴란드 소각플랜트는 2014년 7월 말 발전시설의 핵심설비인 보일러드럼 상량식과 함께 60%의 공정률을 보이면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 중남미 하수도사업 진출, 신규사업 발굴을 모색하다

중남미 하수도개선 마스터플랜 수립 지원사업은 환경부 지원의 개도국 원조사업이며, 포스코건설로서는 사업발굴과 시장탐색을 위한 장기적 안목의 전략사업이었다. 포스코건설은 환경부가 발주한 세계 각지의 지원사업 중 중남미 지역을 선택했다.

중남미를 선택한 이유는 에너지사업본부가 이 지역 발전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하는 등 사업수행에 필요한 충분한 네트워크를 갖추기 때문이었다.

2012년 환경부 공모에서는 페루를 선택하고 입찰경쟁에 나섰다. GS건설, 대림건설, SK건설, 롯데건설 등과 경합을 펼쳤으나, 포스코건설이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수주에 성공했다. 수주 성공요인은 페루에 지사가 있는 등 경쟁사들보다 중남미에 대한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이며, 제안서의 내용 역시 경쟁사들보다 뛰어났다.

사업추진 과정에서는 많은 후속 사업들이 발굴됐지만, 개발자금 확보가 여의치 않아 실제 사업화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됐다. 그럼에도 포스코건설은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지역밀착에 의미를 두고 향후 투자 여건 개선을 기대했다.

2013년 환경부 공모에서는 멕시코, 콜롬비아, 미얀마, 라오스 등의 프로젝트들이 나왔다. 이 중에서 포스코건설은 멕시코를 선택했다.멕시코의 선택도 페루와 마찬가지로 제철 플랜트의 거점이 이곳에 있어 사업수행이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제철 플랜트는 이 지역에서 포스코의 CGL공장을 건설하고 있었다.

특히 멕시코는 수주 실패의 아픔을 겪었던 지역이기도 했다. 2008년경 포스코건설은 멕시코 하수처리장 경쟁입찰에 뛰어들었으나,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스페인 업체에게 패배를 당했다. 실패 원인은 운영관리 능력의 부족이었다.

포스코건설이 EPC 역량만 갖추고 있었던 반면, 경쟁사인 스페인 업체는 운영관리 능력을 갖춰 운영권까지 확보함으로써 건설공사에서의 적자를 만회할 수 있었다. 이 사업 실패를 통해 포스코건설은 운영관리 능력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으며, 멕시코 하수도개선 마스터플랜 수립 지원사업을 통해 이 지역에서의 사업재기를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베트남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베트남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베트남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수주는 글로벌 기업 간 협력이 빚어낸 걸작이었다.

포스코건설은 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프랑스, 일본 대표 수처리 업체와 글로벌 드림팀을 구성했다. 프랑스 업체는 세계적 수처리 기업인 베올리아 자회사인 오티브이로, 수처리를 비롯해 해수담수화, 물재이용 분야에서 많은 경험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 업체인 히타치는 하수 및 산업폐수 처리 분야에 강점을 지닌 기업이었다. 각 사별 지분은 포스코건설 57%, 오티브이 32%, 히타치 11%였다.

글로벌 드림팀의 파워를 바탕으로 2014년 1월 포스코건설은 1억 2000만 달러 규모의 베트남 호치민 하수처리장 2단계 건설공사 수주에 성공했다.

호치민 하수처리장 2단계 공사는 기존 1일 처리용량 14만 1000톤을 1일 32만 8000톤으로 증설하는 사업이었다. 이 사업에서 포스코건설은 토목과 건축 시공을, 오티브이는 수처리 기자재 조달 및 설치를, 히타치는 슬러지 기자재 조달과 설치를 수행했다.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수주는 시장규모가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환경시장보다는 많은 먹거리가 있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 대규모 사업을 발굴해 수주에 성공했다는 의미가 있었다. 앞으로도 우리 토목환경사업본부는 이 사업 수주 성과를 기반으로 베트남을 비롯한 세계 각국 수처리사업에 적극 도전할 계획이다.” (최용석 토목환경사업본부장)

 

# 중국사업단과 동남아사업단의 활동과 현지화 성공

중국과 동남아에서도 한국본사의 해외사업 못지않게 눈부신 활약상을 펼쳤다. 중국사업단에서는 중국건설법인을 주축으로 다롄 포스코IT센터, 베이징 포스코센터, 훈춘 포스코현대국제물류단지 등의 개발사업을 수행했다. 동남아사업단에는 베트남에서 베트남법인, IBC법인, 안카잉법인, 하노이사무소 등이 활동하고 있으며, 캄보디아에서도 캄보디아법인 등이 활동하고 있다.

2005년 4월 포스코건설은 중국 내 제철설비의 설계 및 공급 위주에서 현지 건설공사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중국건설법인을 설립했다. 중국건설법인은 2008년 장자강 설비법인을 인수해 종합건설사로서의 성장과 발전 기반을 구축했으며, 2010년에는 중국 내 한국계 건설사로서는 최초로 1급 건설면허와 해외 건설면허를 동시에 취득, 현지화에 성공했다.

제철 플랜트 분야에서는 한국본사의 중국산 설비 공급의 창구로서 중국, 베트남, 인도, 멕시코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건축 분야에서는 대표적으로 주중 한국대사관 리모델링(2006.11~2007.3),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저(2007.4~2008.6), 중국 난닝 동맹국제상무구 한국원(2008.9~2009.12), 옌타이 한국상성건축(2009.10~2011.12)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11.4.25 중국 다롄 포스코IT센터 기공식

2011.4.25 중국 다롄 포스코IT센터 기공식

다롄시 포스코IT센터는 한국업체 최초의 중국 내 복합개발사업이었다. 사업비 3000억 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다롄시 가오신구 내 루밍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파트의 경우 7개동 1034세대, 지하 1층과 지상 23층 규모로 2011년 착공, 2014년 3월 준공됐다. 오피스는 1개동으로 지하 2층과 지상 27층 규모였으며, 2013년 3월 착공해 2015년 10월 준공 예정이다.

분양 과정에서는 더샵의 중국 브랜드 ‘포스코웨이(浦項道)’를 선보였다. 포스코웨이는 내부 가구를 모두 남향으로 배치하고, 친환경 마감재 사용, 현관 시스템 수납장, 알파 룸, 다양한 옵션 선택권을 부여하는 등 한국형 최신 아파트의 장점을 살린 거주자 중심의 설계로 분양 과정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베이징 포스코센터는 1999년 상하이 포스플라자 이후 두 번째로 추진된 포스코의 이름을 내건 랜드마크 사업이었다. 2010년 9월, 40년 운영 후 기부체납하는 조건으로 상하이 녹지그룹의 3호 부지를 확보했다. 오피스 2개동으로 구성됐으며, 지하 4층과 각각 지상 25층, 지상 33

2011.3.17 중국 북경 포스코센터 기공식

2011.3.17 중국 북경 포스코센터 기공식

층 규모였다. 2011년 8월 착공, 2014년 8월 준공됐으며, KOTRA를 비롯해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협협회,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의 현지 법인 등 25개사가 입주할 예정이다.

훈춘 국제물류단지는 포스코 패밀리(80%)와 현대그룹(20%) 합작사업이었다. 두 그룹은 중국 동북3성을 무대로 하는 물류기지 구축과 대북진출 거점 확보라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총 150만 ㎡ 부지를 중국 정부로부터 50년간 임차해 인프라 및 세제혜택 등을 제공받고, 물류창고, 콘테이너 야적장, 집배송시설 등을 개발 운영하는 사업으로, 사업비 2000억 원 규모였다. 개발은 3단계로 나눠 추진되며, 1단계 사업은 2013년 3월 착공, 2014년 10월 준공됐다. 향후 2019년 12월까지 모든 개발이 완료될 예정이다.

동남아사업단에서는 베트남법인이 많은 활동을 펼쳤다.

2011.5.12 중국 훈춘 물류단지 주주협약식

2011.5.12 중국 훈춘 물류단지 주주협약식

베트남법인의 전신은 포스리라마이며, 호치민시로부터 60km 떨어진 동나이성 롱탄 지역에 위치해 있다. 1995년 6월 베트남 건설성 산하 리라마와 합작으로 설립됐다. 1996년 철구공장 준공 이후 철구조물 제작 전문업체로 출발했으며,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일반건축과 토목, 플랜트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1999년에는 ISO 9001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월 생산량 200톤 이하, 공장 가동률 20~30% 등 영업이익률이 극히 저조했다. 이에 경영난 타개를 위해 위탁경영과 직영관리 등을 실시했으나, 사업관리 미숙으로 이익률이 계속 떨어졌다.

계속되는 경영난 속에서 포스리라마는 2007년부터 플랜트와 토건 시공 중심으로 사업방향을 전환했다. 그 결과 경영정상화에 성공하고 흑자 전환했다. 이윽고 2010년 6월 포스코건설이 리라마의 지분을 전량 인수함에 따라 포스리라마는 포스코이앤씨 베트남법인으로 거듭났다.

이후 포스코 프리미엄으로 성장을 지속하고 현지화에도 성공해 현지 건설사들과 대등한 경쟁을 펼치기 시작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한국본사, 중국건설법인과 협력해 원료처리공장, 열연공장, 화성공장 등 대만 포머사 베트남 제철소 프로젝트를 연속으로 수주하며 성장에 날개를 달았다.

베트남법인 외에 IBC법인은 호치민에서 다이아몬드플라자를 운영하고 있으며, 안카잉법인은 스플랜도라 신도시 건설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캄보디아법인은 바타낙 캐피탈 타워 프로젝트 수행 이후 현지에서 각종 건설사업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