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3. 에너지와 플랜트의 도전, 동남아 진출과 일관제철소 꿈 이루다

# 칠레에서는 포스코건설이 한국기업 넘버 원으로 통한다

2010.3.30 칠레 산타마리아 발전소 계약식

건축과 토목 분야가 베트남에서 건설한류 전파를 주도했다면 에너지 분야는 중남미에서 한류 전파에 앞장섰다. 포스코건설은 칠레 벤타나스 성공신화를 바탕으로 캄피체, 앙가모스, 엘살바도르에 이어 산타마리아Ⅱ, 코크런, 카스틸라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공사를 연속으로 수주했다.

2010.3.30 칠레 산타마리아 발전소 계약식

2010년 3월 수주한 산타마리아Ⅱ는 사업비 7억 달러 규모의 발전용량 400MW급 석탄화력발전소였다. 발주처는 칠레 2위의 전력생산업체인 콜번사이며, 발전소의 위치는 산티아고에서 남서쪽으로 약 450km 떨어진 항구도시 코로넬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수주 배경은 벤타나스 후광이었다. 산타마리아Ⅰ 발전소는 벤타나스와 함께 착공에 들어갔으나, 벤타나스만 준공에 성공하고 산타마리아Ⅰ은 시공을 맡았던 유럽업체가 중도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콜번의 경영층이 도움을 요청해왔고, 포스코건설의 기술력으로 마침내 산타마리아Ⅰ 발전소가 준공에 성공했다. 따라서 산타마리아Ⅱ는 산타마리아Ⅰ에 대한 감사의 선물이라 할 수 있었다. 더욱이 다른 입찰 참가자보다 가격이 높았으나, 콜번측은 이를 프리미엄으로 인정하고 포스코건설을 선택했다.

2011년 11월 칠레 발전사업자 코크런으로부터 수주한 코크런 발전소는 앙가모스 옆 부지에 266MW급 석탄화력 발전설비 2기를 신설하는 EPC 턴키 프로젝트였다.총 사업비는 9억 달러 규모였다.

산타마리아Ⅱ와 코크런에 이어 2012년 6월 포스코건설은 브라질계 다국적 전력회사인 MPX사로부터 카스틸라 발전소를 수주했다. 사업비는 15억 달러 규모이며, 350MW 석탄화력 발전설비 2기를 신설하는 EPC 턴키 프로젝트였다.

카스틸라 역시 산타마리아Ⅱ처럼 벤타나스 후광이 수주 배경이었다. 벤타나스의 성공을 지켜본 MPX는 포스코건설이 자신들의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하길 원했다.

그러나 벤타나스의 발주처였던 AES가 자사 발전사업에만 집중해줄 것을 요구했고, 포스코건설 역시 벤타나스에 이어 캄피체와 앙가모스를 수행하느라 MPX의 요청을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앙가모스의 성공적 준공 이후 포스코건설은 마이웨이를 선언하고 MPX의 카스틸라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입찰 결과 가격이 경쟁자였던 SK건설보다 3000만 달러가 더 높았는데도 MPX는 포스코건설의 손을 들어주었다. 산타마리아Ⅱ와 마찬가지로 최고 EPC 기술력에 프리미엄을 인정한 것이었다.

한편 벤타나스 성공신화에 이어 앙가모스 발전소가 또 하나의 성공신화를 만들어냈다. 2011년 11월 성공적인 준공으로 칠레 사회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어려움이 많았던 프로젝트였다. 그 중에서도 칠레 대지진과 근로자 파업이 가장 힘들었다. 그럼에도 조기 준공의 성과를 달성해 발주처로부터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반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종규 상무)

2010년 2월 발생한 칠레 대지진은 위기이자 기회였다. 이 대지진으로 칠레 연안에는 쓰나미가 덮치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524명이 사망하고 31명이 실종됐으며, 300억 달러의 재산 피해가 났다.

해안에 인접한 벤타나스 현장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다행히 공사현장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최고의 내진 설계를 한 포스코건설의 품질 시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칠레 대지진은 공사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는 위기이면서 포스코건설의 기술력을 알리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대지진으로 인한 아름다운 일화도 있었다.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포스코건설은 앙가모스 현장의 현지 근로자들에게 격려금을 나눠주고 대지진이 발생한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뿐만 아니라 포스코건설 직원들도 피해 현장으로 달려가 위문품을 전달하는 등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에 칠레 사회가 큰 감동을 받았고, 피해복구 이후 고향에서 돌아온 현지 근로자들 역시 감사의 표시로 더욱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45일의 공기 지연은 막을 수가 없었다. 공기 지연을 만회하기 위해 포스코건설은 밤낮을 잊은 채 돌관공사에 들어갔다.

지진의 위기를 넘기자 2010년 8월 노조파업이란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다. 어려운 상황을 맞아 포스코건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최고의 법률팀으로 현지 법원으로부터 불법파업 판결을 얻어내 합법적 해고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 결과 3일 만에 노조와의 협상이 타결돼 빠른 시일 내 공사를 정상화시킬 수 있었다.

앙가모스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성과는 조기 준공이었다. 지진과 노조파업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포스코건설은 조기 준공은 물론, 500만 시간 무재해 기록을 세워 발주처로부터 약 70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았다.

그리고 환경과 안전 등을 포함한 각종 규제가 유럽 선진국만큼이나 까다로운 칠레 정부의 인허가 기준을 만족시켜 칠레 사회로부터 무한한 신뢰를 얻었다.

특히 벤타나스에 이어 앙가모스에서도 성공신화를 창출해내면서 칠레 사회에서 한국기업에 대한 인지도가 바뀌었다. 한국기업이라면 삼성과 LG만을 떠올리던 칠레인들이 앙가모스 이후 포스코건설을 한국 최고기업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발전플랜트 나비효과, 중남미 날개짓에 이스라엘이 들썩이다

칠레에서 포스코건설의 활동은 금방 입소문을 타고 중남미로 퍼져나갔다. 입소문의 진원지는 KOTRA로, 포스코건설의 칠레 활약상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이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나라가 페루였다. 당시 페루 정부는 경제성장으로 2017년까지 매년 10%씩 전력수요 증가가 예상됨에 따라 민간발전사업자를 통한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들 발전사업자 중 이스라엘 인키아에너지사의 페루 현지법인 칼파제너레이션이 칠레에서의 활약상을 듣고 포스코건설에게 입찰참가를 요청한 것이었다.

“2008년 11월경 사업정보를 입수하고 페루로 날아가 보니 이미 지멘스와 한국기업으로는 H사가 한창 물밑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H사가 우리 실적을 자기네 실적으로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가장 먼저 경쟁에서 탈락했다. 지멘스의 경우 그 동안 페루에서 폭리를 많이 취해 기업이미지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래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김원석 상무)

페루 칼파 발전소

페루 칼파 발전소

칠카우노 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

칠카우노 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

2009년 9월 경쟁입찰에서 포스코건설은 세계 유수의 경쟁사인 아벤고아, 지멘스 등을 제치고 사업비 3억 5000만 달러 규모, 발전용량 830MW급의 칼파 LNG 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이 프로젝트는 페루 리마에서 약 62km 떨어진 칠카에 위치한 기존의 발전시설을 복합발전시설로 개조하는 것이 주요 사업내용이었다.

특히 칼파 발전소 수주는 국내 건설사 가운데 첫 페루 에너지시장 진출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칼파에 이어 포스코건설은 칠카우노 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에도 도전했다. 프랑스 GDF 수에즈사의 페루 현지법인 에네루수르사가 발주한 이 프로젝트는 사업비 2억 9000만 달러 규모, 발전용량 810MW급의 LNG 복합화력 건설사업이었다.

칼파와 칠카우노 발전소는 각각 2012년 8월과 11월에 성공적으로 준공됐으며, 특히 칠카우노 발전소는 조기 준공의 성과도 달성했다.

칼파 발전소 수행 과정에서는 중남미 EPC 중견기업 산토스CMI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산토스CMI는 칼파 프로젝트에서 협력사로 참여 중이었는데, 향후 성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포스코건설에게 M&A를 요청해왔다.

이 회사는 2010년 기준 매출 1920억 원을 올린 에콰도르 최대의 플랜트 시공업체로, 1994년 설립 이래 중남미 18개국에서 발전, 화공, 토목 등의 분야에서 130여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왔으며, 미국 GE사의 최우수 협력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포스코건설은 2020 싱크포워드 비전에 따라 산토스CMI 인수를 결정했다. 싱크포워드 비전에서 중남미는 포스코건설이 선택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실제 해외사업에서도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가도를 달려왔다. 그러나 프로젝트 수가 증가할수록 지리적, 언어적, 환경적 문제 해결이 선결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현지화 전략의 일환으로 산토스CMI 인수를 결정했다.

칠레에서 활약이 입소문을 타고 이웃나라 페루로 날아가더니, 이번에는 페루에서 활약이 입소문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을 가로질러 이스라엘까지 닿았다.

입소문의 진원지는 칼파의 발주처 칼파제너레이션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본사 인키아에너지사에 포스코건설의 활약상을 소개했고, 이에 인키아는 포스코건설을 이스라엘까지 불러들여 프로젝트를 맡겼다.

이스라엘 로템 복합화력발전소

이스라엘 로템 복합화력발전소 전경

R 프로젝트라 명명된 이 사업은 네게브 사막 미소르 로템 산업지역에 427MW급의 복합화력발전소를 짓는 신설사업이었다. 2010년 9월 착공, 2013년 7월 준공됐으며, 이스라엘 최초의 민간발전사업이란 점에서 지역사회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스라엘에 첫 진출한 포스코건설은 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많은 성과를 달성했다. 우선 철저한 사전조사와 엄정한 평가를 통해 우수 현지업체를 발굴했으며, 또 설비의 운송기간 및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해냈다.

“낯선 언어인 히브리어를 접해야 하는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까다로운 규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지 적응을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제외근거를 마련해서 인허가 관련 관공서, 발주처, 현지 설계사들을 설득, 설계변경 승인을 얻어냈다. 그 결과 이익률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었으며, 회사가 뽑은 2011년도 최우수현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희성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이 같은 성과에 이스라엘 사회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대용량의 발전소가 한 점의 오차도 없이 준공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포스코건설의 기술력에 크게 감탄했다. 포스코건설로서는 입소문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한편 2011년 2월 산토스CMI 인수이후 포스코건설은 자사가 수행 중이던 중남미 프로젝트에 산토스CMI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신규사업 발굴에서도 상호 협력해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모았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페루 노도 발전플랜트였다.

당시 페루 정부는 향후 남부지역에서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2단계에 걸쳐 총 2000MW의 발전소 건설을 계획했다. 이 계획에 따라 페루 현지 발전회사인 싸마이사가 리마에서 약 1055km 떨어진 남부지방 모옌도에 사업비 3억 달러 규모, 발전용량 720MW급의 노도 가스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

포스코건설은 2013년 10월 프로젝트 정보를 입수하고, 산토스CMI와 공동으로 이 프로젝트 수주에 나섰다. 이 사업에서 포스코건설은 설계와 설비공급을, 산토스CMI는 시공을 수행하기로 했다.

경쟁입찰에서는 독일의 지멘스, 스페인의 아벤고아, 테크니카스 레우니다스 등과 치열한 경합을 펼쳤다. 그 결과 2014년 1월말 포스코건설이 수주에 성공하며 중남미 에너지 플랜트 강자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노도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성과는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확보한 것이었다. 포스코건설은 최저가 낙찰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의 입찰경쟁에서 EPC 기술력을 당당히 인정받아 이 사업을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수주했다.

또 산토스CMI와 동반 협력을 통해 수주 창출에 성공한 것 역시 큰 성과였으며, 향후 발주 예정인 2단계 사업 수주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한 점도 나름 의미 있는 성과였다.

 

# 동남아 발전플랜트 진출 모색과 사업영역 다양화

칠레와 페루에서 EPC 기술력을 크게 인정받았지만, 2010년 이후 마르지 않을 것 같았던 중남미 블루오션에 이상 징후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환경문제로 산타마리아Ⅱ와 카스틸라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공사가 중단됐으며, 칠레 산업의 중심이자 발전소의 최대 수요자였던 광산산업 역시 구리 가격 하락으로 침체기를 맞았다. 칠레 석탄화력을 뒤로 하고 페루 가스화력발전으로 방향을 전환했지만, 만족할 만큼의 프로젝트 물량이 나와 주지 않았다.

성장 정체를 타개할 특단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에 에너지 분야는 자신만의 강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칠레에서 터득한 석탄화력 기술력에 최고 점수를 주었다. 그리고 강점을 살려나갈 메이저 시장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동남아시아를 선택하고 사업발굴에 나서기 시작했다.

에너지 분야 해외사업 강점인 석탄화력 외에도 포스코건설은 중유발전, 수력발전 등에서도 성과를 냈다. 이라크 쿠르드 중유발전은 국내 에너지사업부서가 한국석유공사를 통해 발굴해낸 사업이었다.

2008년 한국석유공사는 쿠르드 자치정부와 지역 내 유전개발 합의 과정에서 발전소 건설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2012년 8월 포스코건설은 전체 7억 달러 규모의 이 사업을 한국석유공사를 통해 수주함으로써 중동 발전시장에 첫 진출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포스코건설의 임무는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 수도 아르빌에 300㎿급 화력발전소와 술라이마니야 지역에 400kV급 변압시설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중유발전에 이어 수력발전 해외진출에도 성공했다. 2013년 4월 포스코건설은 65MW급 규모의 라오스 남릭1 수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수주했다.

이 사업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포스코건설은 태국 국영에너지기업인 PTTI, 발전설비사인 HEC, 라오스 전력청 등과 NL1PC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사업비 1억 2000만 달러 규모의 이 사업은 BOT방식으로 추진되며, NL1PC법인이 준공 후 27년간 운영한 뒤 라오스 정부에 기부채납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이 시기 에너지 분야는 중남미 발전시장 위축에 대한 대안으로 성장 잠재력이 큰 동남아 시장 진출을 모색했으며, 아울러 수력, 풍력 등 사업군을 다양화하면서 사업영역 확대를 도모했다.

 

# 일관제철소의 꿈, 포스코-인도 하공정부터 시작

세계 최고의 제철 플랜트 기술력을 자랑하는 포스코건설에게는 못 다 이룬 꿈이 하나 있었다. 포스코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강의 제철강국을 이룩했지만, 허전한 그 무엇이 있었다.

포스코건설과 모기업 포스코가 꿈꾸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해외 일관제철소 건설의 꿈이었다. 포스코는 포항과 광양의 일관제철소 성공신화를 기반으로 전 세계 곳곳에 포스코왕국 건설에 나섰으며, 포스코건설 역시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일관제철소 건설의 꿈을 해외사업을 통해 실현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 꿈의 실현을 향한 도전 스토리는 먼저 인도에서 시작됐다. 2000년대 중반 포스코는 해외 첫 일관제철소 부지로 인도를 선택했다. 철강원료가 넘쳐나고, 거대시장을 보유한 나라 인도는 성장 잠재력도 높아 그만큼 사업기회 선점의 타당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다. 특히 포스코가 전략적으로 선택한 오디샤주에는 철광석이풍부하게 매장돼 있었다.

2005년경 포스코는 인도 오디샤주 정부와 연산 1200만 톤 규모의 일관제철소 건설을 위한 MOU를 체결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일관제철소 도전에 나섰다. 2020년까지 12조 원의 투자가 예상되는 이 프로젝트는 한국기업의 해외 단일투자로는 최대 규모였으며, 인도에서도 외국인 직접 투자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포스코건설도 오디샤에 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포스코를 따라 인도에 진출하면서 일관제철소 건설의 부푼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이후 오디샤 프로젝트는 2014년까지 9년 동안이나 지지부진한 길을 걸었다. 일부 주민의 반대와 광물자원의 반출문제가 현지 법률과 마찰을 빚으면서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이 같은 오디샤 프로젝트의 위축된 분위기는 2014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이 인도 국빈 방문을 통해 중앙정부에 강력한 협조를 요청하면서 반전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지난 9년간의 지지부진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포스코는 인도에서 일관제철소 건설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디샤주 외에도 카르나타카주, 자르칸드주 등지에서 일관제철소 건설을 타진했다. 특히 상공정의 부진 타개를 위해 우선 하공정부터 건설 추진에 나서 마하라슈트라주 빌레바가드 산업단지 내에 부지를 확보했다.

마하라슈트라주는 폭스바겐, GM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사들과 타타자동차, 마힌드라마힌드라, 바자즈 등 인도 최고의 자동차사 및 부품사들이 포진한 인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다. 포스코는 자동차강판 생산라인 건설과 함께 가공과 판매까지 최적화된 고객서비스 구축을 위해 자동차 및 전기강판 전문 가공센터인 포스코-IPPC를 시작으로 푸네, 델리, 첸나이, 하이데라바드 등지에 5개의 가공센터를 구축해나갔다.

2010.03.15 인도 포스코-마하라슈트라 CGL공장 착공식

2010.03.15 인도 포스코-마하라슈트라 CGL공장 착공식

포스코건설은 포스코-마하라슈트라 하공정에서 CGL과 냉연공장 건설을 수행하면서 아직 꽃 피지 못한 인도 일관제철소 건설의 아쉬움을 달랬다. CGL공장(2009.12~2012.5)은 사업비 1억 9000만 달러, 연산 45만 톤 규모였으며, 냉연공장(2011.5~2013.12)은 사업비 3억 달러, 연산 180만 톤 규모였다.

“CGL 현장은 우리 회사가 인도에서 처음으로 수행한 대형 공사였다. 가장 큰 어려움은 계절적 악조건이었다.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은 40도에서 50도를 육박하는 혹서기였으며,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은 몬순 기후로 우기의 계절이었다. 우리는 몬순 우기 때 지연된 공기를 혹서기 때 야간작업을 통해 만회하는 등 프로젝트의 무사 준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 (김노정 Director, 당시 인도CGL 현장소장)

 

# 멕시코 2CGL, “살아 돌아온 너에게 갈채를 보낸다

2009.08.24 멕시코 포스코 CGL 공장 준공식

2009.08.24 멕시코 포스코 CGL 공장 준공식

인도에서 포스코 CGL공장 건설이 한창일 때 지구 반대편 멕시코에서는 또 하나의 포스코 CGL공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었다.

2009년 6월 멕시코 CGL공장 준공을 계기로 포스코의 멕시코 냉연강판시장 점유율은 단번에 40%대까지 치솟았다.⓺ 포스코-멕시코 CGL이 이처럼 중남미에서 선전하는 가운데 신일본제철과 현지 철강업체 테르니움사가 합작으로 CGL 및 냉연공장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포스코도 2CGL 추진을 서둘렀다.

포스코건설은 1CGL 때의 실패사례에서 교훈을 얻어 2CGL의 전체 EPC를 맡았으며, 설비공급도 품질이 우수한 한국업체 발주로 기준을 정했다.

그러나 경쟁자의 추격에 쫓긴 포스코로부터 무리한 임무가 떨어졌다. ‘신일본제철 프로젝트보다 먼저 준공하라’는 지시에 따라 공사기간을 21개월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체계가 가장 잘 갖춰진 국내에서도 통상 22개월이 기본이었다. 인도 CGL이 27개월이나 걸린 것만 봐도 해외사업에서 21개월은 무리한 일정이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포스코건설 내부에 있었다. 일관제철소의 꿈이 인도네시아와 브라질에서 한꺼번에 터졌다. 그러다 보니 쓸만한 대부분의 인력이 이 초대형 프로젝트로 불려갔다. 멕시코는 한 마디로 찬밥이었다. 파병할 인력이 부족해 신병들로 조직을 급조했는데, 심지어 현장소장도 차장급이었다.

2011년 8월 멕시코 프로젝트 수행 조직이 한국을 떠나던 날, 경영층의 심정은 어두웠다. 실패를 예감한 그들은 아들을 전장에 보내는 부모의 심정으로 무사 귀환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우려했던 대로 많은 실수가 발생했다.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기자재 공급의 지연이었다. 선박 수송과정에서 선적 명령이 잘못 나가 핵심설비가 1개월 보름이나 늦게 들어왔다.

이에 공기준수를 위해 돌관공사를 추진했는데, 그 비용을 고스란히 포스코건설이 물었다. 1CGL 때도 돌관공사를 했지만, 귀책사유가 포스코 측에 있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귀책사유가 자신들에게 있었으니 손실은 손수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많은 실수가 있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경험이 부족했던 젊은 요원들은 실패가 거듭될수록 단단해지고 더욱 성숙해져갔다. 그 결과 가장 어려움이 많았던 시운전 과정에서 ‘젊은 피’의 저력을 과시했다.

“갑작스런 집중 폭우로 지하구조물이 침수됐으며, 핵심설비마저 침수가 우려되자 우리는 인근의 양수기를 총동원했다. 겨우 위기를 넘긴 이후에는 폭우에 대비해 24시간 교대근무를 섰으며, 자다가도 천둥소리만 나면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 결과 끝까지 침수를 막고 시운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박재현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그러나 이 같은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2013년 6월 프로젝트 요원들은 준공을 코앞에 두고 현장에서 철수했다. 포스코가 경쟁자인 신일본제철의 파트너이자 현지 철강업체인 테르니움사로부터 제소를 당했고, 그 결과 현지 법원으로부터 반덤핑 예비판정이란 결정타를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60%의 관세 페널티로 냉연강판을 생산하면 오히려 적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포스코가 준공을 미룬 것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프로젝트 요원들은 준공 실패란 결과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모든 포스코건설 임직원들은 그들의 무사 귀환에 갈채를 보냈다. 모두들 결과보다는 과정을 높이 평가했고, 더욱 성숙해진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한편 포스코-멕시코 2CGL은 법정공방을 슬기롭게 마무리하고 2014년 1월 말 마침내 준공됐다.2CGL 준공으로 포스코는 2009년 연산 40만톤의 1CGL에 이어 총 90만톤 규모를 갖춤으로써 현지기업 테르니움에 이어 멕시코 내에서 제2의 자동차강판 철강사로 부상했다.

 

# 중국보다 높은 가격으로 포머사 베트남 제철소 따내다

1954년에 설립된 포머사 그룹은 석유화학, 정유, 에너지, 섬유, 전자, 중공업, 자동차, 운송사업, IT, 철강 등 40여개 계열사를 보유한 대만의 대표 기업이었다. 포스코가 인도네시아에서 일관제철소의 꿈을 실현할 때 포머사는 베트남에서 그 꿈을 키우고 있었다.

포머사와 포스코건설의 인연은 2009년 포스코-베트남 냉연공장의 성공적 준공으로 시작됐다. 당시 베트남 중부 하띤성에서 연산 700만 톤 규모의 일관제철소 건설을 준비 중이던 포머사의 가장 큰 고민은 공기준수였다. 베트남에서는 유럽이나 일본기업도 기후와 지역 특성상 1년 정도의 공기지연은 관례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베트남 사회에서 포스코 냉연공장의 공기 내 준공은 신선한 화제로 회자됐으며, 포머사도 그 소문을 듣고 포스코건설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

포머사의 요청에 2009년경 포스코건설은 하띤 일관제철소 설비공급 입찰에 참여했으나, 쓸쓸한 패배를 맛보았다. 성심을 다해 포머사를 지원했으나, 결과는 저가로 무장한 중국업체들의 독식이었다. 괜히 소중한 기술자료만 뺏기고 들러리를 선 꼴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2012년 시공관련 입찰이 시작되자 이때도 포머사는 포스코건설에게 참여를 권유해왔다. 입찰 참여를 놓고 내부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또 다시 중국업체들의 들러리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이번만큼은 철저히 준비해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의욕도 흘러나왔다. 결국 포스코건설은 도전정신에 큰 의미를 두고 다시 한 번 입찰 참여를 결정했다.

중국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맞서 포스코건설은 사전에 막강한 사업수행 체계를 구축했다. 본사, 베트남법인, 중국법인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연합작전을 펼쳤다. 본사는 총괄관리와 핵심부품 공급을, 베트남법인은 시공을, 중국법인은 자재공급을 맡기로 했다. 베트남법인의 철구공장 역시 철구 공급에 참여하기로 했다.

막강한 사업수행 체계로 입찰에 임한 결과, 포스코건설은 2012년 말부터 2013년 중반까지 원료처리설비, 열연공장, 화성공장 시공 계약권을 잇따라 따냈다.원료처리설비 공사는 사업비 4억 달러, 연산 700만 톤 규모였으며, 열연공장 시공은 사업비 2억 9200만 달러, 연산 530만 톤 규모였다. 화성공장은 사업비 7400만 달러로, 시간당 150만 N㎥의 가스를 처리할 수 있다.

베트남 하틴제철소 원료처리설비 공사현장

베트남 하틴제철소 원료처리설비 공사현장

베트남 하틴제철소 열연공장 공사현장

베트남 하틴제철소 열연공장 공사현장

당시 입찰에서는 포스코건설 내부 컨소시엄의 효과적인 역할 분담이 가장 큰 승리 요인이었다. 마지막까지 포머사 CEO를 설득한 것도 주효했다. 포스코건설은 포머사 CEO 설득 과정에서 자신들의 기술력과 사업관리 능력을 강하게 어필했다.

“중국업체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점도 효과가 있었다. 덤핑으로 계약을 처리하면 중도에 공사를 포기하는 사태가 올 것이라는 위협에 포머사가 크게 흔들렸다. 결국 중국업체보다 높은 가격을 써내고도 기술력과 사업관리 능력을 인정받아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이호성 Director, 해외영업기획그룹리더)

포머사 프로젝트 외 포스코사업이 아닌 대외사업으로는 동티모르 시멘트 플랜트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동티모르 TL시멘트사가 발주한 3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사업으로, 2013년 12월초 수주에 성공했다. 특히 북동부 바우카우 지역에 연산 150만 톤 규모의 시멘트공장 건설이 주목적인 이 프로젝트는 신생국가 동티모르 내 최대 규모의 민간투자사업이란 점에서 현지 사회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의 수주 성공에는 서호주 대표 건설사인 BGC사와의 협력이 크게 기여했다. 발주처인 TL시멘트사는 BGC사가 100% 지분을 소유한 특수목적법인이었고, BGC사는 포스코건설의 호주 건축시장 진출의 파트너였다. 결국 포스코건설이 BGC사와 그 동안 서호주 페사 프로젝트 등 여러 사업을 통해 쌓아온 신뢰관계가 동티모르 프로젝트 수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었다.

 

# 은 이루어진다!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이번 일관제철소는 한국의 기술과 인도네시아의 우수한 인적자원이 합쳐져 이뤄낸 성과이다. 포스코가 제철보국 이념으로 한국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됐듯 크라카타우포스코도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2013년 12월 23일,마침내 포스코건설과 포스코는 해외 첫 일관제철소 건설의 꿈을 실현했다. 특히 포스코는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를 연결하는 철강벨트를 완성함으로써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철강사로 한 단계 도약했다.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포스코 일관제철소는 포스코 70%,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사 크라카타우스틸 30% 지분으로 설립한 합작법인이며, 제철소 부지는 자카르타에서 서쪽으로 100km 떨어진 반텐주 찔레곤에 위치해 있었다.

건설계획은 1단계에서 조강 300만 톤급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고 이어서 2단계에서 누계 600만 톤 규모로 완성한다는 내용이었다. 1단계의 규모는 고로, 소결, 코크스, 제강, 연주, 후판 등 6개의 주설비로 이루어졌으며, 그 외 15개의 부대설비로 구성돼 있었다.

총 사업비 30억 달러 규모의 1단계 일관제철소 건설에서 포스코건설은 EPC 일괄 턴키를 맡아 16억 8000만 달러를 수주했다. 포스코 패밀리도 동반 진출해 포스코에너지가 200MW급의 발전소 건설을 맡았으며, 포스코ICT는 IT통합운영시스템 구축을 담당했다. 포스코엠텍은 알루미늄 탈산제 생산시스템 구축을 맡았다. 그 외 284개나 되는 중소기업이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동반성장의 모델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초대형 프로젝트였던 만큼 인력의 투입도 대규모였다. 포스코건설에서는 건축을 뺀 모든 사업본부가 참여했다. 프로젝트 수행의 중심인 플랜트사업본부에서는 152명으로 가장 많은 인력이 투입됐으며, 에너지사업본부에서는 발전설비 공급을 위해 5명이, 토목환경사업본부에서는 배수종말과 급배수를 위해 3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현장 일평균 투입 인력만도 3100명에 이르렀다. 일관제철소 건설은 2010년 10월말 전체 규모 370헥타르에 대한 부지조성 착수에 이어 2011년 7월초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갔다.

“현장사무소 입구에 포항제철소 착공 때의 사진을 걸어놓고 실패하면 자바 해협에 빠져 죽자는 각오로 임했다. 우리와는 달리 사계절의 변화가 없는 기후와 이질적인 이슬람 문화에 초창기 직원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또 초창기 지역사회 현지화도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이를 위해 사회공헌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김덕률 전무, 당시 사업단장)

현지 적응은 물론, 지역사회와의 유대강화는 프로젝트의 성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현지의 많은 지역업체를 프로젝트에 참여시켰으며, 지역주민도 최대한 고용했다.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2개월 단위로 현장 인근 정화활동을 실시했으며, 긴급 구호키트를 지원하기도 했다. 대학생봉사단이 방문해 봉사활동과 함께 한류 전파에 앞장섰으며, 지역사회 5개 학교를 개보수하고 교육기자재도 지원했다.

건설 과정에서는 현지 적응 외에도 포스코 문화의 특징인 공기준수를 달성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다. 현지 파트너인 크라카타우엔지니어링의 사업경험 부족으로 공정에 차질이 발생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포스코건설은 설비별로 세부 공정을 검토하고 공기지연 만회 대책을 수립하는 등 현지 협력업체 중점 관리를 실시했다.

기자재공급의 지연과 품질 문제도 발생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3개월 단위로 선적과 반입 계획을 세웠고, 6개월 단위로 제작공정을 중점 관리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포스코건설은 1개월 공기단축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재무건전성 향상도 또 하나의 성과였다.

일관제철소 현장이 원가절감에 나선 배경은 계약금액 감소와 기전계약률 하락으로 매출이익률이 감소한 것이 주요 요인이었다. 이에 물량 최소화로 고로를 설계하고, 현장관리비 절감, 자재 통합구매 등을 통해 82억 원의 원가절감을 달성했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포스코건설에게 일관제철소의 꿈을 실현한 현장으로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아울러 후속 일관제철소 프로젝트인 브라질 CSP의 소중한 산 교육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실제로 브라질 CSP의 최고경영층 등 많은 인사들이 프로젝트 현장을 둘러보고는 일관제철소 건설에 대한 성공 확신을 얻기도 했다.

 

# 역대 최대 규모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에 화룡점정하다

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이틀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외환시장이 열렸다. 당초 북한 리스크로 환율이 급등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환율이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언론이 긴급 시황 속보를 타전했다.

“환율 하락, 포스코건설 수주 물량 유입!”

포스코건설이 수주한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가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프로젝트가 시작도 되기 전에 1조 원에 육박하는 선수금 20%가 외환시장으로 들어왔는데, 이것이 환율을 끌어내린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대한민국 해외 수주사상 단일 제철 플랜트로는 최대 규모 프로젝트의 위력이었다.

CSP는 브라질 최대 철광석 공급사인 발레가 50%. 동국제강이 30%, 포스코가 20% 지분을 투자해 설립한 합작법인이었다. 사업비 43억 4000만 달러 규모의 CSP 일관제철소는 브라질 북동부 세아라주 뻬셍 산업단지 내 위치하고 있었다.

사업 규모는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포스코 일관제철소와 비슷했다. 1단계에서 연산 300만 톤의 슬래브를 생산하는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고, 이어서 2단계에서 누계 600만 톤 규모로 완공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 공사현장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 공사현장

포스코건설이 수주한 1단계의 규모는 원료 및 소결, 코크스 설비, 고로, 제강, 연주, 발전 및 부대설비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설계, 기자재 공급, 시공, 시운전에 이르기까지 사업 전 단계를 일괄 수행하는 EPC 턴키 방식으로 이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후판이 빠지고도 인도네시아보다 비싼 이유는 현지 고물가 때문이었다.

포스코건설과 CSP와의 인연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철 플랜트 분야는 포스코 베트남 냉연공장을 성공적으로 준공하고 싱크포워드 비전에 따라 미래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포스코건설이 예측한 미래 전망은 어두웠다. 포스코의 설비투자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2015년쯤 제철 플랜트 시장규모의 축소가 예상됐다.

불투명한 미래 전망에 전전긍긍하는 가운데 때마침 CSP를 준비하던 발레와 동국제강으로부터 타당성 조사 의뢰가 들어왔다. 용역비용이 170만 달러밖에 안 돼 일각에서는 ‘일은 많고 돈은 얼마 안 되는 용역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그런데 사업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규모가 만만치 않았다.

결국 기회라 판단하고 타당성조사 의뢰를 받아들였다. 용역 수행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발레와 동국제강의 심중을 읽어냈다. 그들은 향후 CSP의 정상적인 조업을 위해 세계적 조업능력을 갖춘 포스코의 프로젝트 참여를 은근히 원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포스코건설은 포스코 설득에 나섰다. 분명한 사업 기회라고 강하게 어필했지만, 설득은 쉽지 않았다. 포스코는 남미의 강성노조에 대한 걱정과 함께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건설로 이중 투자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은 포기하지 않았다. 포스코건설의 지칠 줄 모르는 공세에 결국 포스코는 투자결정을 위한 경영위원회를 개최했다.

“정준양 회장이 참석한 경영위원회에서 나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으로 계속 설득했다. 나중에는 전체 사업비에서 5억 달러 정도의 20%만 투자하면 매년 15%씩의 이익을 보장하겠다고 큰소리까지 쳤다. 그러자 정준양 회장이 씨익 웃었다.” (김성관 사장)

포스코건설의 패기에 2011년 5월 포스코는 마침내 CSP 투자를 결정했다. 이후 CSP 일관제철소 수주를 위한 활동이 본격화됐는데, 계약이 성사되기까지 두 번의 고비가 있었다. 첫 번째 고비는 설계기준이었다.

국제 표준코드와 브라질 표준코드의 견적서 적용 차이가 30~40%나 나왔다. 포스코건설은 계약 막판에 브라질 코드로 변경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CSP측에서 반발하면서 협상 결렬의 일촉즉발 상황까지 갔다. 그래도 다행히 파국을 막고 가능한 부분은 국제 코드로 하고, 국가 인허가 사항에 관련된 부분에 한해서 브라질 코드를 사용하기로 합의를 보면서 포스코건설이 실속을 챙길 수 있었다.

두 번째 고비는 세금문제였다. CSP 일관제철소가 위치한 지역은 수출진흥특별지역으로 세금혜택이 있었다. 이에 CSP측이 세금절감을 위해 하도급 기성비 지급을 직접 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자면 포스코건설이 매출을 잡을 수 없어 고스란히 세금을 물어야 할 상황이었다. 한 달에 걸친 양측의 실랑이 끝에 결국 서로의 요구를 반씩 들어주는 조건으로 무사히 협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마침내 모든 협상을 끝내고 2012년 12월 중순 계약이 체결됐다.당시 계약은 포스코건설에게 남다른 의미가 많았다. 1998년 코브라스코 프로젝트 수행 이후 14년만의 브라질 재진출이었으며, 수주 금액은 포스코건설 20년 역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무엇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일관제철소 건설 경험을 가진 유일한 건설사로, 브라질 CSP 수주는 그 기술력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주변의 부러운 시선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철강 경기 하락에다 브라질 고물가 때문에 예상보다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이란 예측이 나돌면서 경쟁력이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사실 출발부터가 고난의 행군이었다.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와 마찬가지로 163명이란 대규모 인력이 투입됐는데, 장장 35시간을 비행해야 하는 힘든 여정이었다. 4개월마다 한국을 오가면서 현장 인력 13% 정도가 늘 자리가 비어, 이를 대체하느라 토요일과 휴일도 잊은 채 업무에 시달려야 했다. 이에 본사는 고통분담과 배려 차원에서 12시간 차이의 낮과 밤이 바뀌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지 시차에 맞춰 영상회의를 실시했다.

착공도 쉽지 않았다. 수주에만 급급해 사전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발주처는 현지업체에게 하도급을 줄 것을 요구했고, 그들의 요구대로 현지업체들에게 견적을 받아보니 현지 물가를 고려했는데도 불구하고 예상치보다 200%~300% 이상의 견적이 나왔다. 출발할 때 주변의 우려가 현실화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전혀 터무니없는 가격도 아니었다. 브라질은 국제 규격보다 더 엄격한 ‘브라질 규격’을 적용하는데, 발주처 발레는 브라질 규격보다 더 엄격한 ‘발레 규격’을 적용했다. 그러다 보니 그만한 견적을 뽑아야만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인식이 현지에 팽배해 있었다. 결국 한국업체 하도급으로 방향을 전환했는데, 그 과정에서 발주처를 설득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2012년 7월 착공 이후 어려움으로는 엄격한 규정과 환경규제가 있었다. 엄격한 안전 규정으로 작업중지 명령을 받기도 했으며, 현장사무소 건설 과정에서는 주변에 잡목을 제거했다가 형사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작업하다 벌집이 나오면 안전한 곳으로 무사히 옮겨놓아야 환경단체로부터 고소를 피할 수 있었다.

강성노조도 큰 어려움이었다. 2013년에만 두 차례 파업이 있었다. 달래다 지쳐 마침내 법에 호소하기에 이르렀고, 법원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불법파업을 선언했다.

통관문제도 하나의 큰 이슈였다. 아무 이유 없이 40일이나 선박을 부두에 묶어놓고 통관을 시키지 않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발주처에게 공기연장을 신청하고 연장비용을 청구하며 맞섰다.

모든 문제의 발단은 소통의 부재에서 출발했다. 쌍방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 서로 평행선을 달렸다.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 회복이 시급한 시점이었다.

2013년 말을 고비로 그런 노력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먼저 포스코건설은 과정을 중시하는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엄격한 규정에 익숙해져갔다.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해외구매 통합 등 경비절감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하도급 90%를 차지하는 한국 협력업체들의 프로젝트 수행 선전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했다.

발주처도 포스코건설의 노력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CSP의 경영진 교체를 통해 쇄신에 나섰으며, 프로젝트의 성공적 완수를 위해 포스코건설의 요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양측의 이 같은 노력으로 CSP 일관제철소 프로젝트가 순항하는 가운데 2013년 11월말 브라질에서 또 하나의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브라질 CSS사로부터 사업비 6억 달러 규모의 하공정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열연 20만 톤, 냉연 60만 톤 등 총 80만 톤 규모의 판재류를 생산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주요 공급설비는 열간 압연기, 냉간 압연기, 부대설비 및 설치공사 등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수주 배경은 연산 350만 톤 규모의 광양 4열연 신설공사의 경험과 기술력 확보가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무엇보다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는 포스코건설 일관제철소 건설의 화룡점정이었고, 해외사업 20년 역사상 최고의 걸작이었다. 이로써 포스코건설은 세계 유일의 일관제철소 건설사로서 제철 플랜트 분야 글로벌 정상에 올라섰다.

 

 

<생각하는 페이지>

호주 로이힐 프로젝트 수주 실패의 반성과 교훈

호주 로이힐 프로젝트 수주 실패는 포스코건설에게 큰 충격이었다. 인도네시아와 브라질 일관제철소 계보를 잇는 메가 프로젝트로서, 포스코건설이 강한 의욕을 가지고 열정을 쏟은 프로젝트였다.

너무나 기대가 커 아쉬움이 많았던 포스코건설은 또 다시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를 다지기 위해 389쪽에 이르는 완료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특히 로이힐 수주 실패는 포스코건설 20년사 서술에 영향을 미쳤다. 실패의 역사도 가감 없이 기록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호주 건설시장은 높은 물가, 폐쇄적인 인력시장, 길고 까다로운 인허가, 강력한 노조 등 외국 건설사들의 시장진입이 쉽지 않았다. 더구나 대부분 대규모 투자사업이어서 추진 과정에 많은 인내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었다. 이 모든 사실을 포스코건설은 로이힐 프로젝트 준비 과정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다.

로이힐의 시작은 포스코가 열었다. 2010년 3월 포스코는 철광석 원료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호주 로이힐 광산개발에 1차 투자를 결정하고 투자협약서를 체결했다. 이 투자협약서 내용 중 투자자의 자회사에게 프로젝트에 기여할 기회를 우선적으로 부여한다는 조건에 따라 포스코건설이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포스코건설이 강한 의욕을 갖고 참여했지만, ECI(Early Contractor Involvement) 과정이 쉽지 않았다. ECI는 호주만의 독특한 입찰방식으로, 본 공사 계약 전 입찰업체가 공사 수행방안과 공정계획 수립, 시공비 확정, 사전 설계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이었다. ECI 과정에서는 10조 원에 이르는 사업비 중 70%에 이르는 대규모 자금에 대한 금융조달 계획수립이 가장 힘들었다. 이로 인해 투자자 지분 변경, EPC 사업구도 변경, 계약조건 변경, 파이낸싱 시장상황 변동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발생해 EPC 계약이 계속 지연됐다.

더구나 가격 경쟁을 노리고 발주처가 삼성건설을 끌어들이면서 포스코건설의 위상이 크게 위축되더니, 결국 2013년 4월 입찰경쟁에서 가격에 밀려 포스코건설이 삼성건설에게 무릎을 꿇었다.

수주 실패의 근본적인 요인은 신규 진출시장에 대한 전략 부재였다. 그 결과 EPC 수행 구도에 맞는 파트너사 선정이 지연됐으며, 무엇보다 현지업체와 최저 가격 도출에 실패한 것이 뼈에 사무치는 아쉬움이었다. 발주처 기대에 호응하는 가격을 제시하고 신뢰를 얻었다면 ECI가 그렇게 길어지지는 않았을 것이고, 삼성건설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주 실패 이후 완료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EPC 수행 업무시스템 구축과 현지화 전략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호주지역 사업추진 특징에서 발주처가 요구하는 사업자의 능력은 사업기획에서 자금조달, 운영관리까지 매우 포괄적이었다. 어찌 보면 이 같은 호주시장의 특징은 포스코건설이 추구하는 펩콤(PEPCOM)으로서, 로이힐 프로젝트가 팹콤의 첫 시험무대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은 펩콤은커녕 EPC 통합관리 능력마저 아직까지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창립 20주년을 맞아 포스코건설은 펩콤보다는 본원경쟁력과 EPC 역량확보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기본으로 되돌아가 EPC부터 갖춘 다음 펩콤에 도전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현지화에도 문제가 많았다. 현지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발주처와 갈등을 빚고, 능력 있는 현지업체 발굴에 실패하는 등 치밀한 사업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포스코건설은 EPC 종합관리 능력 확충과 함께 현지화된 프로젝트 수행계획 수립을 선결 과제로 꼽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