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4. 제철 플랜트, 세계 유일의 일관제철소 기술력을 다져나가다

# 광양 5소결 신설, 공기단축과 원가절감 두 마리 토끼 쫓다

해외에서 일관제철소의 꿈을 이룩한 이 시기 제철 플랜트 사업실적은 변동이 심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반짝 위축된 경기는 2010년부터 곧바로 회복됐다. 2011년의 경우는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 효과로 사업실적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며 회사를 업계 4위까지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후 철강 경기가 하락하며 그 실적이 급격히 떨어졌다.

비록 변동이 심한 널뛰기 장세였으나, 이 시기 국내 제철 플랜트는 세계 유일의 일관제철소 건설 기술력을 더욱 다져나갔다. 광양 5소결 신설, 포항 4선재 신설, 광양 4열연 신설 프로젝트 등을 통해 제선과 열연 분야의 기술력을 더욱 다졌다. 제2공장 준공으로 상업화에 성공한 파이넥스는 제3공장 준공으로 경제성을 확보했다.

광양 5소결 신설사업(2009.8~2011.2)은 5고로 신설 이후 공정별 일대일 체계를 추구하는 포스코의 과제였으며, 포스코건설로서는 소결 EPC 기술력을 확보할 좋은 기회였다. 사업비 3102억 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화상면적 600㎡의 세계 최대급 소결기를 신설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신설 외에도 포스코건설은 포스코로부터 임무 하나를 더 부여받았다. 당시 포스코는 소결 부족으로 급하게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최대한의 공기단축을 요구했다.

회사로부터도 과제가 떨어졌다. 계약 당시 가격 분석 과정에서 이 프로젝트는 적자가 예상했다. 그러나 신설사업 EPC 기술력 확보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결국 회사로부터는 원가절감이라는 지상과제를 부여받게 된 셈이었다.

공기단축을 위해 가장 시급한 문제는 포스코건설, 포스코, 협력업체 등 프로젝트 관계자들의 협업체계 구축이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버추얼팀을 구성하고 포스코의 참여를 요청했다. 요청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우선 소통의 중요성을 알렸으며, EPC 시행사 중심으로 팀이 하나로 움직여야 의사결정이 빨라지고, 공기지연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발주처로서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포스코는, 공기단축을 위해 과감하게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처음으로 우리가 주도하는 버추얼팀이 만들어졌으며, 이 같은 협업체계의 효율적 운영은 공기단축의 대표적 성공요인이었다.” (김종래 상무, 당시 현장소장)

기자재 국산화 비율을 높인 것도 공기단축에 크게 기여했으며, 포스코건설 대표적 혁신활동인 VP 활동도 크게 한몫 했다. VP 활동에 협력업체도 참여했는데, 이런 활동을 통해 리스크를 사전에 제거함으로써 공사 진행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회사의 지상과제인 원가절감을 통해서도 공기단축을 실현했다. 우선 재하시험에 기초한 경제적 파일 설계로 원가절감과 공기단축의 성과를 얻었다.

포스코건설은 재하시험을 통해 토건 기초공사에 사용되는 파일이 그 동안 너무 많은 양이 적용됐음을 입증했다. 따라서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파일 수를 대폭 줄였으며, 지하배수로(Culvert)에는 아예 파일을 없앴다. 아울러 기존 파일을 재사용했다.

그 결과 공기단축은 물론, 123억 원의 원가절감 효과를 얻었다. 그밖에 지하배수로 축소를 통해서도 공기단축과 원가절감 성과를 달성했다.

특히 세계 최단기간 공기단축이 가장 큰 성과였다. 이에 광양 5소결 신설 프로젝트가 포스코가 시행하는 성과공유제(Benefit-Sharing)의 최초 수혜 대상이 됐다. 포스코건설로서는 소결 EPC 기술력 확보가 가장 큰 성과였다.

 

# 3세대 슬림 파이넥스 3공장 준공, 해외 수출길 열다

파이넥스의 역사는 연구소 실험실에서 출발했다. 1992년경 포스코의 연구원들은 15톤의 소규모 실험로를 가지고 파이넥스에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99년 8월 150톤 규모의 파일럿 플랜트가 완성되자 포스코 내부에서는 상업화에 대한 꿈이 부풀어 올랐다.

이후 2003년 6월 60만톤 데모 플랜트 준공으로 포스코는 준상업화에 성공했으며, 그들은 이를 1세대 파이넥스 1공장이라 불렀다. 2007년 5월 150만 톤의 2세대 파이넥스 2공장 준공으로 포스코는 비로소 상업화에 성공했으며, 이어서 3세대 파이넥스에 도전했다. 1세대에서 3세대까지 포스코의 새로운 도전에 포스코건설이 늘 함께했다.

2011.6.28 포스코 포항 3세대 파이넥스 3공장 착공식

2011.6.28 포스코 포항 3세대 파이넥스 3공장 착공식

포스코건설이 EPC 일괄 턴키를 맡은 사업비 6120억 원, 200만 톤 규모의 3세대 파이넥스 3공장(2011.6~2013.7)의 목적은 슬림 파이넥스, 즉 경제성 확보였다. 슬림 파이넥스를 위해 포스코건설은 파이넥스 2공장 설비의 연구개발과 가동경험을 바탕으로 설비를 보다 단순화하고, 차별화된 요소기술들을 대거 채용했다.

실제 설계에서는 가루 철광석을 순수한 철 성분으로 전환해주는 설비인 유동환원로를 기존 4단에서 3단으로 간소화했으며, 벨트컨베이어를 이용해 이송하던 분철광석을 자체 발생하는 가스로 운송 투입하는 등 차별화된 기술을 적용했다.

그러나 파이넥스 3공장 건설 과정에서는 난관도 많았다. 2012년 철강경기 하락으로 포스코가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잠시 프로젝트가 중단되기도 했다.

“공사현장이 포항제철소 맨 끝이라 7km나 걸어서 이동해야 해서 직원들이 무척 힘들어 했다. 아예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다. 포스코 위기로 전체 프로젝트들이 6개월 연기됐지만, 우리 현장은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준공 세러모니와 맞추기 위해 5개월만 연기했다. 무엇보다 늦춰진 공기를 만회하느라 야간작업을 반복했던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강환철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만큼 성과도 많았다. 우선 기술력을 과시했다. 고로가 50만 톤에서 200만 톤으로 생산 규모를 확대하는데 통상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파이넥스는 채 10년이 안 되는 기간에 60만 톤에서 200만 톤까지 확대함으로써 우수한 기술력을 입증할 수 있었다.

당초 목표였던 슬림 파이넥스와 경제성도 확보했다. 파이넥스 2공장과 동일한 투자비를 유지하면서도 생산량은 33%나 높아졌다. 더욱이 포항제철소 전체 철강 생산량의 25%인 410만 톤을 파이넥스 공법으로 생산함으로써 저가원료 사용에 따른 연간 원가 절감액이 1772억 원에 이르렀다.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당시 포항 4선재 신설, 스테인리스 신제강 신설과 함께 프로젝트가 추진돼 총 2조 2000억 원이 투입됐으며, 이에 연인원 125만 명이 동원됨으로써 고용창출 효과를 올렸다. 동반성장의 성과도 있었다. 핵심부품과 유지보수 부품을 생산하는데 200개가 넘는 중소기업이 참여했다.

가장 큰 성과는 해외 첫 수출이었다. 상업화와 경제성 확보 이후 세계 철광석 매장량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저급 분철광석과 일반탄의 사용이 가능한 파이넥스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기존 고로공법에 비해 환경오염 물질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다.

이 같은 전 세계적 관심 속에 2013년 9월 포스코는 중국 국영기업 충칭강철과 연산 300만 톤 규모의 파이넥스 일관제철소 건설 합작협약을 체결했다. 향후 중국 정부의 비준과 한국 정부의 기술수출 승인이 이뤄지면 본계약이 체결될 예정이며, 이에 따라 포스코건설의 역할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 포항 4선재 신설, 숱한 역경을 딛고 공기단축에 성공

포항 4선재 프로젝트(2012.1~2013.5)는 연산 70만 톤급의 선재공장 신설사업이었다. 포스코는 국내외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2008년 기준 시장 점유율이 52%였으나 이대로 가면 2012년경 42%대의 점유율 하락이 예상됐다. 따라서 70만 톤을 신설해 점유율을 63%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추진 목적이었다.

사업비 4735억 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를 포스코건설은 선재 기술력 확보의 찬스로 받아들였다. 이에 적자를 무릅쓰고라도 전체 EP를 다 하겠다고 욕심을 부렸으나, 포스코는 일부 설비인 가열로와 유압설비만 맡기고 대부분의 핵심설비는 지멘스에 발주했다. 1989년 3선재 신설 이후 이 분야 국내 설계 기술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EP 전부를 포스코건설에게 맡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믿었던 지멘스도 기자재공급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냈다. 가장 큰 문제는 저가 분할 발주였다. 중국, 대만, 이탈리아, 미국 등으로 발주된 설비들은 설치 과정에서 현장과 안 맞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수정하는 데만 2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설비 문제로 포스코와 분쟁도 발생했다. 대만 포머사로 발주된 주요 설비인 압연기와 감속기에서 품질 문제가 발생했다. 오일배관에서 이물질이 나와 포스코가 전면 교체를 요구하자 지멘스는 부분 수리로만 일관했다. 양사의 분쟁은 공기에 쫓긴 포스코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하고 결국 한 걸음 물러나면서 일단락됐다.

포스코건설이 맡은 일부 설비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EP에 대한 경험자가 없어 조업 정비 인력을 투입하다 보니 실패를 자초하고 말았다. 관리능력 부족으로 제작이 계속 늦어졌으며, 이를 시공에서 만회하느라 갖은 고초를 겪었다.

“시공 과정에서는 공기 만회를 위해 토목공사에서 단축공사를 요구했는데, 토목공사를 맡은 협력업체가 과다한 자금 출혈을 이유로 작업을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 오히려 여기서 공기가 2개월 더 지연됐다.” (김용백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이후 공기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기전에서는 돌관공사를 추진했으며, 토목에서는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시행하는 패스트 트랙 공법을 적용했다. 또 공기단축을 위해 일부 설계를 변경하기도 했다. 전기실과 수처리 설비의 경우 일반 콘크리트로 설계됐는데, 공기단축을 위해 전기실은 철근 콘크리트로, 수처리 설비는 콘크리트 파일에서 스틸로 변경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공기 준수는 물론, 15일 공기단축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 광양 4열연 신설, 최초 자력 엔지니어링 수행 성공

광양 4열연 신설사업은 정준양 전 회장의 탄식에서 출발했다. 2010년경 정 회장은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압연공정을 둘러보고 와서는 ‘광양 후판을 포스코건설이 수행했는데, 왜 아직도 자력 엔지니어링이 안 되느냐’고 경영진들을 질타했다. 인도네사아 프로젝트에서 후판이 외주사에 발주된 데 대한 불만이었다.” (박일호 Director)

최고경영자의 불호령에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패밀리사들이 모여 자력 엔지니어링에 대한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때마침 포스코는 투자계획에 따라 광양 4열연 신설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자력 엔지니어링이 가능하다는 보고와 함께 압연공정의 핵심인 열연공정 자력 엔지니어링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포스코건설의 의욕적인 도전에 포스코는 기술력 확보의 대승적 차원에서 연산 330만 톤 규모의 광양 4열연 신설사업(2011.1~2014.10)을 맡겼다.이 사업은 열연공정이 75%를 차지하고, 열연과 연결되는 제강과 연주공정도 25%가 포함됨에 따라 사업비 규모가 1조 4000억 원에 이르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막상 큰소리는 쳤지만, 이 분야에 대한 자력 엔지니어링 경험이 전무한 포스코건설로서는 위험부담이 큰 프로젝트였다. 3열연 신설이 1981년이라 30년이란 사업수행 공백이 있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안전장치로 해외 선진사 퇴직 인사 중 이 분야 최고 전문가를 긴급 채용하고 검증프로세스를 구축했다.

또 패밀리사 공동 수행 프로젝트인 만큼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협업체계 구축을 위해 포스코건설은 광양 5소결 신설공사에서 효과를 본 버추얼팀을 벤치마킹했다.

버추얼팀에서 포스코건설은 주간을 맡았고, 매월 월례회의를 개최했다. 월례회의는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패밀리사들이 모여 공정을 체크 점검하는 문제 해결의 자리였다.

버추얼팀 효과는 탁월했다. 최적의 설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고, EPC 통합이 가능해졌다. 특히 버추얼팀은 원가절감 아이디어의 산실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자력 엔지니어링 기술력 확보 외에도 원가절감이라는 지상과제가 있었다. 사업비 규모가 시대적 물가와 비교했을 때 1981년 3열연 신설 때보다 절반이나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버추얼팀 회의는 원가절감이 최대 이슈였다.

수차례에 걸친 원가절감 아이디어 회의 결과의 요점은 중국산 설비에 대한 저가 분할 발주와 함께 품질 확보를 위해 중국 설비업체에 직원을 파견함으로써 철저한 사업관리로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하자는 내용이었다.

직원 파견을 통한 사업관리는 압연기 대형 설비 중 하나인 하우징의 제작과 설치에서 빛을 발했다. 이 설비는 무려 총 중량이 3800톤이나 됐는데, 이를 원가절감 차원에서 18개로 저가 분할 발주해 포스코건설의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상당했다.

이 같은 리스크 부담이 직원 파견을 통한 철저한 공정관리의 배경이 됐으며, 이마저도 안심이 안 돼 포스코건설은 18개로 나눠진 하우징에 대해 조립 테스트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스크 차단을 위한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수는 있었다. 설계와 토목에 자신이 없었던 포스코건설은 동시 작업을 시도했지만, 설치 과정에서 계속 엇박자가 낫다. 그만큼 열연공정 신설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 비록 일부 실수가 있었지만, 포스코건설은 공기를 준수하고 당초 목표였던 자력 엔지니어링 수행에도 성공했다.

자력 엔지니어링 수행 과정에서의 성과로는 가열로와 코일 이송 설비에 대한 신기술 적용이 있었다. 가열로를 식혀주는 방법은 이전까지 뜨거운 물이었으나, 포스코건설은 스팀으로 대체해 효과를 보았다. 코일 이송도 기존 체인 방식에서 발레트로 교체함으로써 청결 효과와 운전 편의성 등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특히 당시 열연 분야 기술력 확보는 포스코건설 20년 역사에서 최대 실적인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 수주는 물론, 브라질 CSS사의 압연공정 수주에도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