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5. 건축 분야, 송도 새출발 이어 도시정비사업 경쟁력 확보하다

# 송도국제도시, GCF 유치로 성공을 예감하다

건축물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개성 있게 설계돼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도시, 송도국제도시가 제 모습을 갖춰가면서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먼저 드라마, 영화, 광고 CF, 뮤직비디오 등 각종 매체들의 촬영 명소로 급부상했다. 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 ‘right now’는 컨벤시아 앞 대로에서 촬영됐으며,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는 센트럴파크 주차장에서 촬영됐다. 이국적인 수로형 스트리트 상가인 커낼워크는 KBS 드라마 ‘도망자’의 촬영지였으며, 그 외 이온음료, 자동차, 보험사 광고 등의 주요 무대가 됐다.

독특한 역셀 디자인의 트라이볼 역시 보험사 CF에서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몸짓과 조화를 이루면서 유명세를 탔고, 영화배우 고수가 등장한 디지털카메라 CF의 배경이기도 했다. 센트럴파크는 SBS 드라마 ‘스타일’에서 중앙 수로를 달리는 수상택시가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송도국제학교는 2AM의 뮤직비디오 ‘잘못했어’의 주요 무대였다. 포스코이앤씨 타워는 MBC 드라마 ‘로얄패밀리’와 SBS 드라마 ‘야왕’의 촬영지였다.

국내는 물론 송도국제도시는 전세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미국 최대 실시간 뉴스 채널인 CNN은 ‘미래도시 개발의 모델’이라고 극찬했으며, 해외 유명 주간지인 월스트리트 저널은 ‘친환경적 계획도시’라고 평가했다. 세계 다큐멘터리 채널인 디스커버리는 ‘아시아의 떠오르는 별’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송도국제도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특히 송도국제업무단지의 개발 주체인 NSIC는 동북아트레이드타워(NEAT)의 공사가 중단되는 등 송도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송도에 올인한 포스코건설의 고민도 깊어졌다. 송도사옥에 입주하면서 배수진을 쳤지만 국내외 투자유치는 정체됐고, 송도 리스크에 대한 주변의 우려도 점점 커져갔다.

이 위기의 순간, 포스코건설이 사태 해결의 전면에 나섰다.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끝까지 책임지는 포스코정신을 발휘했다. 40여 년 전 제철보국을 위해 우향우 정신으로 무장했던 모기업 포스코와 같은 심정이었다.

2010년 말 포스코건설이 지원에 나서면서 NSIC의 송도국제업무단지 개발 자금난에 숨통이 트였다. NSIC는 신한은행 등 대주단과의 협의를 통해 2조 5000억 원의 대출금 만기를 2년 늘리고 상환 비율을 조정하는 내용의 대출 약정 변경에 합의했다.

포스코건설 외 또 하나의 개발 주체인 인천시도 송도사업의 가속화와 개발 안정화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2010년과 2011년 인천시, NSIC 간 두 차례 협약을 통해 개발의 발목을 잡았던 주거시설과 상업시설의 개발 연동제를 사실상 폐지했다.

분양 활성화를 위해 주상복합건물 내 주거비율을 높였으며, 제2국제학교 등 공공시설 개발 의무를 축소하는 등 NSIC의 개발 부담을 덜어주었다. 특히 외국인 임대주택을 줄이는 대신 국내 입주기업 임대주택을 확대함으로써 국내기업 투자유치를 적극 유도했다.

송도국제업무단지 개발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투자유치였다. 국내외 투자유치를 위해 포스코건설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신념 하에 이색적인 홍보전략을 전개했다. 적극적인 해외인사 초청을 통해 송도의 개발상을 직접 체험하게 했다.

청사업의 효과는 긍정적이었다. 10년 전의 갯벌이 국제도시로 변모한 모습에 방문객들이 크게 감탄하는 등 초청사업은 투자유치는 물론 포스코건설 건축 분야 해외사업 홍보용으로도 그만이었다.

국내외 투자유치를 위해 정부도 적극 홍보활동에 나섰다. 투자유치는 2011년 삼성그룹이 바이오단지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불붙기 시작했으며, 2012년에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GCF(녹색기후기금) 유치에도 성공했다. GCF 유치는 송도국제도시 개발의 성공을 예감하게 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독일과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펼쳤는데,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가 사활을 걸고 유치활동에 나선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미국이 한국을 지원하도록 설득한 스탠 게일 회장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 (강수동 Sr.Manager)

GCF 효과는 2013년 리파이낸싱 성공으로 이어졌다. 2013년 11월 중순 포스코건설은 대출금 상환 만기를 3년 앞둔 시점에서 리파이낸싱을 시도했다. 기존 은행 중심의 자금조달 구조에서 탈피, 다수의 증권사 및 은행과 6개 패키지로 나눠 파이낸싱을 추진했다. 그 결과 연 4~5%대의 유리한 금리 조건으로 자금조달과 리파이낸싱에 성공했다.

GCF 유치에 이어 자율형 사립고 설립 등의 호재가 계속되면서 투자유치도 더욱 활기를 띠었다. 삼성바이오, 동아제약, 대우인터내셔널, 롯데, 이랜드, 코오롱, 시스코, 오티스, 3M, 현대엠코 등의 국내외 유명기업들의 입주가 속속 이어졌다. 특히 NEAT의 대우인터내셔널 매각은 송도 부동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 같은 송도국제도시의 성공 예감을 만끽하며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NSIC, 인천시, 인천경제자유구역청 등 송도사업의 주체들은 투자유치 활동과 2020년 2단계 사업의 완수를 위해 더욱 힘을 모아나가고 있다.

 

# 건설경기 침체, 개발사업과 공공 및 민간건축 정체되다

2000년대 들어 크게 활성화됐던 개발사업은 금융위기와 부동산 경기침체가 맞물리면서 크게 위축됐다. 이 시기 포스코건설의 개발사업으로는 일반 업무시설인 양재동 파이시티, 판교 N-스퀘어, 용인수지 유타워 등이 있었으며, 콘도 개발사업으로 제주 에어레스트 시티 곶자왈 빌리지 등의 프로젝트가 있었다.

파이시티는 양재동 화물터미널 개발사업이며, 총 사업비 2조 4000억 원 규모로 사업추진 초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시공사가 워크아웃 판정을 받으면서 개발에 난항을 겪었으며, 2012년 3월 발주처가 다시 시공사 선정에 나섰다.

포스코건설은 이 사업에서 선매각 후 사업추진이라는 제안으로 자금압박에 시달리던 발주처로부터 호감을 샀으며, 결국 시공사로 선정됐다. 그러나 인허가 과정에서 특혜시비에 휘말리면서 선매각이 M&A로 전환됐으며, M&A 과정에서 2013년 7월 STS개발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포스코건설의 시공권이 불투명해졌다.

판교 N-스퀘어는 유스페이스에 이어 포스코건설의 두 번째 판교테크노밸리 개발사업이었다.2011년 1월 포스코건설은 NHN과 네오위즈의 컨소시엄사인 NNAM이 발주한 판교 N-스퀘어 2단계 사업 수주에 성공했다. 2013년 5월 26개월 만에 준공된 이 건물은 사업비 904억 원, 지하 4층 지상 10층과 11층 2개동 규모의 업무복합빌딩이었다.

2011년 1월 포스코건설은 호텔·리조트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말레이시아 버자야그룹이 국내 관광사업 분야에 투자한 ‘제주 에어레스트 시티’ 1단계 개발사업인 ‘곶자왈 빌리지’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제주 에어레스트 시티’ 프로젝트는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조성하기 위해 정부와 제주시가 추진하는 6대 핵심 프로젝트 사업 중 하나로, 제주 서귀포 예래동 일대 약 74만 2500㎡ 부지에 2017년까지 고급 호텔, 콘도미니엄 등 다양한 숙박시설과 복합 쇼핑몰, 의료센터, 카지노 등이 포함된 휴양형 주거단지를 조성하는사업이었다. ‘곶자왈 빌리지’는 ‘제주 에어레스트 시티’의 1단계 사업이며, 단지 내 가장 전망이 좋은 해안가에 총 147개동 규모의 콘도미니엄 단지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였다.

포스코건설과 버자야그룹의 인연은 송도국제도시에서 시작됐다. 포스코건설 초청으로 송도를 방문한 버자야그룹 관계자는 그 규모와 도시계획에 감탄했으며, 더욱이 퍼스트월드와 컨벤시아 등의 건축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고 사업제의를 요청해왔다.

1단계 사업 수주 과정에서는 말레이시아를 오가며 1년 동안이나 정성을 들였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파이낸싱 보증관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보증금액을 최소화하는 방안과 불가피하게 보증의무를 제공하더라도 자금회수가 가능한 보증을 추구했다. 그 결과 전체 사업비에 맞먹는 1400억 원의 국토해양부 보증을 성사시킴으로써 보증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제주 에어레스트 시티 프로젝트는 총 4단계로 진행되며, 곶자왈 빌리지는 1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큰 프로젝트인 2단계는 카지노호텔을 포함해 호텔 3개동, 실내공연장 등을 건립하는 사업으로, 대략 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어떻게 리스크를 줄여 사업구조를 구성해 수주할지에 대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나가고 있다.” (노재현 Director, New-Biz그룹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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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청사 전경

개발사업 외에 공공 및 민간건축 사업으로는 대표적으로 행정복합도시 정부청사, 한국도로공사 신사옥, 포스코 그린빌딩, 대구대교구 100주년 기념성당 프로젝트 등이 있었다.

행정복합도시 정부청사 1단계 2구역(2010.10~2012.11)은 사업비 1665억 원, 연면적 21만 5250㎡, 지하 1층, 지상 7층 8개동 규모의 건설공사였다. 예정 공기보다 8개월이나 단축해 25개월 만에 준공했으며, 정부청사 이전 첫 사업이었던 만큼 2, 3단계 후속 공사의 롤모델이었다. 준공 후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농림수산식품부, 국토해양부, 환경부 등의 정부기관들이 입주했다.

“처음에는 발주처에서도 25개월 안에 공사를 마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보다 적은 규모의 사업들도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곳은 정부청사 중에서도 첫 착공한 현장이라 외부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행정안전부에서도 13명의 인원을 현장에 파견할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김유근 전 상무보, 당시 현장소장)

2011년 6월 포스코건설은 한국도로공사 경북 김천 이전 신사옥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포스코건설이 주간사로 한화건설, 동아건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했다. 16개사가 참여한 입찰에서 가격 개찰에서는 8순위에 그쳤으나, 1차 심사 결과 1순위에 올랐고, 최종 심사를 통과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2011년 6월 착공, 2014년 6월 준공됐으며, 사업비 1194억 원, 연면적 10만 9756㎡, 지하 2층, 지상 25층 본관동 및 부속시설 4개동 규모의 건설공사였다.

연세대학교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위치한 포스코 그린빌딩(2012.9~2013.8)은 연면적 5547㎡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실험실 1개동이며, 그 외 오피스 빌딩 및 지상 3층 규모의 공동주택 5세대, 그리고 조립형 모듈러 주택 4세대로 이루어졌다.

포스코 그린빌딩 전경

포스코 그린빌딩 전경

포스코와 연세대간 산학협력 협약에 의해 준공된 이 건물은 100여 개의 친환경 기술이 집약돼 있으며, 일반 빌딩과 비교해 에너지 소모량이 절반 수준이었다. 이산화탄소를 연간 475톤 감축할 수 있으며, 건물 수명을 60년으로 봤을 때 나무 56만 그루를 심는 효과와 맞먹었다.

건물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를 태양열, 지열, 빗물 재활용 등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확보하고 포스코가 개발한 내진 강재를 적용해 안전성을 높이는 등 에너지 저감형 모델로 설계했다. 공장에서 건물을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만 하는 모듈러 건축기술과 철강 부산물인 ‘고로 슬래그’ 재활용으로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는 친환경 콘크리트 기술도 적용했다. 단순히 에너지 절약 효과만이 아니라 최첨단 친환경 건축기술을 통해 설계, 시공, 운영 등 모든 과정에 친환경 개념을 구현했다.

 

# 수주 1조 클럽 가입, 도시정비사업 강자로 부상하다

이 시기 공모형 PF 복합개발 사업이 주춤한 가운데 재개발·재건축 사업인 도시정비사업이 포스코건설 건축 분야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포스코건설의 도시정비사업은 저 멀리 회사 출범 이전 PEC 시절 도심 재개발사업이었던 충정타워 프로젝트가 있었으며, 회사 출범 이후에는 1999년 9월 수주한 암사동 서방연립주택 재건축사업이 도시정비사업의 효시였다.

2000년 10월 포스코건설은 IMF 위기 때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동아아파트 재건축사업을 수주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회자됐던 이 경쟁에서 포스코건설은 단숨에 도시정비사업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후 후발주자로서의 수주 경험과 준비 부족으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익아파트, 서울 강동구 고덕시영아파트 등에서 잇달아 실패를 경험했다.

당시 실패를 교훈 삼아 포스코건설은 초심으로 돌아가 정진한 끝에 서울 서초구 서초동 현대빌라, 경기 평택시 서정주공, 강원 춘천시 후평주공,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 6단지, 경기도 안산시 군자주공 8단지 등의 사업들을 수주하며 비로소 도시정비사업에 안착했다. 그러나 도시정비사업은 각종 비리와 담합 등으로 갈수록 혼탁해졌고, 무엇보다 2003년부터 윤리규범 선언으로 윤리경영이 강화되면서 포스코건설은 이 사업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도시정비사업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09년이었다. 재개발·재건축사업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공관리자제도가 이때 등장했다. 이 제도는 지방자치단체가 비리와 부작용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사업시행 전 과정을 직접 관리·지원하는 제도로서, 2009년 시범 도입에 이어 2010년 7월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투명성이 확보되자 포스코건설은 도시정비사업 재진입을 시도했다. 2009년 재진입을 위한 시장분석 결과, 전체 20조 원 규모의 도시정비사업에서는 절대 강자가 없었으며, 상위 10대 건설사가 고른 비율로 시장을 점유하고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이 정도면 도전에 나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위기 때마다 힘을 발휘하는 탄탄한 재무구조에 자신감이 충만했다. 우선 수주 1조 클럽 가입을 목표로 본격적인 도전에 나서 2009년 4월 경기도 용인 신갈주공 재건축사업 수주에 성공했다.

용인 신갈주공 수주 성공에 힘입어 그 다음 서울 광진구 구의1구역 재건축에 도전했다. 이 프로젝트는 분양성이 담보된 서울지역 재건축 단지여서 경쟁이 치열했다. 포스코건설도 조합원 물량보다 일반 분양분이 많아 사업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의욕적으로 도전했다.

그러나 의욕에 비해 결과는 참담했다. 2009년 6월말 조합원 총회 결과 경쟁사 중 꼴찌를 기록했다. 실패 요인은 사전홍보 미흡이었다. 경쟁사들은 약 2년간이나 사전홍보를 통해 정성을 쏟은 반면, 포스코건설은 겨우 4개월을 투자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전정보가 부족했으며, 정확한 판세분석에도 실패했다.

2009년의 마지막 도전 지역은 경기 수원시였다. 당시 수원은 많은 프로젝트들이 몰려 있어 도시정비사업의 각축장이었다. 포스코건설은 구의동 실패를 계기로 새로운 전략을 마련했다. 메이저 건설사들이 사전에 철저히 관리해온 지역은 피하기로 했다.

그렇게 틈새를 찾아 수원 111-4구역 주택재개발 지역인 조원동을 선택했다. 중위권의 경쟁사가 있었지만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포스코건설은 도전에 앞서 ‘이 사업마저 실패하면 도시정비사업은 끝이다’는 각오로 조원동에 배수진을 쳤으며, 전사적 지원 하에 공격적인 홍보활동을 펼쳤다. 사활을 건 배수진에 힘입어 마침내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으며, 조원동의 성공은 포스코건설 도시정비사업의 터닝 포인트였다.

수원 조원동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포스코건설은 이후 전략을 일부 수정했다. 경쟁사가 오랜 기간 정성을 들인 지역을 기피하기보다는 컨소시엄 구성을 모색했다. 그 결과 2010년에 경남 창원시 가음주공, 서울 마포구 마포로 1구역 제54지구, 인천 주안4구역, 서울 성북구 장위6구역, 경기 의정부시 장암4구역 등 5개의 프로젝트를 연속으로 수주하며 도시정비사업 철수 5년 만에 다시 한 번 안착에 성공했다.

그러나 뼈아픈 실패도 있었다. 2010년 5월 포스코건설은 다잡은 대어를 놓쳤다. 서울지역 노른자위로 관심이 높았던 강동구 고덕주공 6단지 사업 수주에 실패했다.

이 사업은 이미 2003년경 두산건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에 성공했으나, 2006년 8월 관련법의 개정으로 사업자 선정이 무효가 됐다. 법 개정으로 사업추진 주체가 추진위원회에서 조합으로 변경됐다. 그 바람에 고덕주공 6단지를 비롯해 총 7개 프로젝트의 사업자 선정이 무효가 되면서 새 주인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유독 7곳 중에서도 노른자위란 인식 때문에 포스코건설이 버티고 있던 고덕주공 6단지로만 경쟁자들이 몰려들었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강력한 경쟁자들이 추격해오자 당황한 포스코건설은 두산건설만으로 역부족이라고 판단했고, 결국 현대건설로 말을 갈아탔다. 그러나 결과는 두산건설의 승리였다. 사업자 선정 막판에 조합원 지분율이 쟁점으로 떠올랐는데, 두산건설이 170%를, 대우건설이 160%를, 포스코-현대건설 컨소시엄이 150%를 보장함에 따라 포스코건설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 치욕적인 사실은 당시 7곳의 재선정 과정에서 대부분이 이전 계약자가 다시 사업자로 선정됐으나, 포스코건설만이 유일하게 수주에 실패했다.

비록 뼈아픈 실패로 큰 상처를 입었으나, 포스코건설은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전국 도시정비시장을 누비며 고군분투했다. 그 결과 2011년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수주 1조 클럽 진입을 코앞에 두었다. 수주 실적에서 2009년 2193억 원으로 출발, 2010년 6619억 원, 2011년에 9783억 원을 달성함으로써 시장 재진입 2년 만에 약 40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물량도 최대 규모로, 서울·수도권 5곳과 부산·경남 3곳 등 총 8곳을 수주했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3구역은 삼성-대우가시공사였으나, 시공계약 해지를 틈 타 현대-SK와 연대해 시공권 확보에 성공했다. 또 수도권 지역보다 분양시장이 양호한 부산지역에 발 빠르게 사업지를 선점해 2곳에서 시공권을 확보했다.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포스코건설은 최고 수주실적을 갱신했다. 1조 1180억 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1조 클럽에 진입했다. 경기도에서 부천시 원미6B구역을 시작으로 광명시 1R구역, 안양시 호계주공, 안양시 진흥아파트를 연속적으로 수주했으며, 이어 과천시 주공1단지, 안양시 호원초교, 그리고 강원도 원주시 단계동 등의 사업들을 수주했다.

당시 안양·과천 지역에서는 6개의 프로젝트가 쏟아졌는데, 그 중 포스코건설이 4개를 수주하며 기염을 토했다. 특히 대어급들이 많았다. 광명 1R구역, 과천 주공1단지, 안양 호원초교 등의 사업 규모가 1000세대를 넘었다. 가장 큰 수확은 과천 주공1단지였다. 단독으로 경쟁에 나서 수주에 성공했는데, 그 규모가 역대 최대인 1567세대에 이르렀다.

기록 행진은 2013년에도 이어졌다. 전북 전주시 감나무골, 경기 하남시 하남C구역, 성남시 신흥주공 등을 수주하며 역대 최대 실적인 1조 1721억 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결과는 부동산 경기침체로 사업 물량이 급격히 준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선전이었다. 2009년 20조원 규모의 도시정비사업은 2012년 9조 7000억 원대를 기록하며 반토막이 났다. 2013년엔 6조 6000억 원으로 또 다시 3분의 1로 줄어들었으며, 전체 33개 사업장 중에서 포스코건설이 5곳을 수주했다.

특히 2013년의 경우 1조 클럽이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단 3개 건설사뿐이었다. 이로써 포스코건설은 2009년 도시정비사업 재진입 이후 단 4년 만에 빅3로 부상하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다.

 

# 이시아폴리스 분양 성공, 아파트분양 마케팅에 새 지평 열다
대구 이시아폴리스 더샾 1차 전경

대구 이시아폴리스 더샾 1차 전경

2010년 송도사옥 입주를 계기로 송도시대를 열었으나, 분양사업은 가장 힘든 시절을 맞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부동산 경기침체로 이어졌으며, 급기야 미분양 사태가 속출했다. 그나마 포스코건설은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도권 침체를 딛고 지방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건설사 중에서 높은 분양률을 기록했다. 선전의 배경은 고객의 마음을 읽고 좋은 상품을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심화되는 가운데 2010년에는 단 두 건을 분양하는데 그쳤다. 부산 서면 센트럴스타 주상복합 중 오피스텔분 319세대와 대구 이시아폴리스 더샵 1차 아파트 652세대 물량이었다.

극심한 부동산 경기침체 속에서도 이시아폴리스는 불황 극복의 대표적 성공사례였다. 약 115만 5000㎡의 대규모 주택사업지로, 3차에 걸쳐 분양계획이 잡혀 있었다.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는 하나, 이시아폴리스 1차 분양을 위해 대구로 떠났던 직원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당시 대구지역은 구매심리가 급속히 냉각돼 ‘청약률 제로 단지’가 속출하는 등 ‘미분양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택 경기가 참담했다.

대구에 도착한 그들은 먼저 주변 아파트 시세부터 조사했다. 이시아폴리스 1차에 책정된 분양가는 3.3㎡당 650만 원이었는데, 조사 결과 주변 시세는 480만 원 불과했다. 분양 실패가 불 보듯 뻔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들은 출구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첫째, 1개월 내 분양률이 10% 이하면 적자를 감수하고 철수한다.

둘째, 6개월 내 분양률이 50% 이하면 1차 착공을 포기한다.

셋째, 6개월 내 80%를 넘지 못하면 1차만 착공에 들어가고, 나머지 2, 3차는 포기한다.

결국 이시아폴리스의 운명이 분양률에 맡겨진 셈이었다. 모두가 실패를 장담하던 그 순간, 운명의 신이 분양률을 끌어올렸다. 초기 분양에서 28%를 기록하며 생명을 연장했던 이시아폴리스는 6개월 후 마지노선인 80%를 넘기면서 회생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시아폴리스의 성공은 운명의 장난이 아니었다. 고객의 마음을 헤아린 직원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우선 분양가부터 조정했다. 소형 아파트는 낮추고 대형은 높이는 전략으로 기존 분양가 650만 원보다 평균 분양가를 625만 원으로 낮추었다. 이 과정에서 내부 마찰이 있었다. 원가법으로 책정한 분양가를 낮추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이시아폴리스 분양을 책임진 직원들은 시장이 가격을 정한다는 논리를 폈다. 팽팽한 설전 끝에 결국 부동산 경기침체라는 추세에 따라 가격을 낮추기로 결정됐다.

분양계획도 3차에서 4차로 늘렸다. 이는 마케팅 활동을 오래 가져가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 과정에서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아파트 상품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갔다.

남향을 선호하는 기호에 맞춰 판상형으로 설계했으며, 1~4차 차수별 단점을 보완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이에 보조 주방이 등장했으며, 2차에서는 수납공간을 극대화한 알파룸이 등장했다. 3차에서는 커뮤니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영장을 만들었으며, 4차에서는 85㎡형에 방 4개를 창출해내는 마법이 펼쳐졌다. 또 1층 미분양 해소를 위해 지하층을 덤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이처럼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탄생한 작품들은 ‘포스코스타일’이라 불리며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시아폴리스의 성공은 아파트 분양 운영기법을 바꾸어 놓았다. 통상 모델하우스의 운영은 분양 기간 계약 때까지 전시공간으로만 활용됐다. 그러나 이시아폴리스는 계약 이후에도 모델하우스를 철거하지 않고 이를 통한 마케팅으로 고객을 모았다. 이 역시 성공요인이었다. 이후 이 기법은 모델하우스 운영기법의 정석으로 자리 잡는 등 분양 마케팅 활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시아폴리스의 고객 모집을 위한 마케팅 활동은 치열했다. 분양 기간이 끝나도 단 1명이라도 더 많은 고객을 모집하기 위해 텅 빈 분양사무소를 지켰고, 분양사무소에 꽃밭을 가꿔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기도 했다.

“단 1명의 고객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한 번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 한 분이 며칠째 모델하우스를 찾아오기에 그 이유를 정중히 물었다. 그러자 그 분은 ‘아파트가 마음에는 드는데 장애인용이 아니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한 분을 위해 바닥 턱 마감과 화장실 문도 안으로 밀도록 개선했다.” (우호재 Director, 당시 분양소장)

 

# 더샵 헤아림으로 리뉴얼, “마음을 읽습니다
2010년 변경한 더샵 브랜드 BI

2010년 변경한 더샵 브랜드 BI

이시아폴리스 1차 분양 시기 포스코건설은 2002년 3월 더샵 브랜드 발표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BI를 변경했다.

‘내 삶의 반올림’이란 슬로건으로 탄생한 더샵은 독특하고 세련된 이미지가 강한 인상을 주었으나, 음악 기호이다 보니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아울러 ‘더샾’이란 한글명은 문자 조합이 없어 문서작성 중 글자를 인식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보완하기 위해 리뉴얼을 추진하긴 했으나, 무엇보다 가장 큰 목적은 이시아폴리스 성공사례에서 나타나듯이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좋은 상품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새롭게 선보인 더샵은 세련되고 고급스런 이미지를 더했고, 포스코 패밀리의 핵심가치인 ‘고객지향’을 BI의 주된 철학으로 내세웠다.

브랜드 콘셉트는 고객의 마음을 읽는다는 의미의 ‘헤아림’으로, 정성과 세심한 배려를 통해 고객의 삶에 진정한 풍요를 제공하고자 하는 포스코건설의 마음을 담았다. 이에 반음 올림을 뜻하는 음악적 기호인 “#”을 가로획과 세로획이 서로 엮여있는 직물 형상으로 표현해 한 땀 한 땀 정성들인 느낌을 살렸다.

‘헤아림’으로 리뉴얼 이후 포스코건설은 고객이 ‘이런 것까지 신경 쓰는구나’라고 할 정도로 감동을 주기 위해 숨은 공간, 작은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은 서비스를 추구했다. 대표적인 ‘헤아림’ 서비스로는 지하주차장 색채사인 시스템, 통합전기제품군 디자인 개발, ‘온마음 서비스’, ‘더샵 지키미’등이 있었다.

‘더샵 지하주차장 색채사인 시스템’은 기존에 어둡고 위험한 공간으로 인식되던 지하주차장을 그래픽, 색채, 사인, 조명 등 4가지 요소를 활용해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가족을 위한 임시 주차공간, 친환경자동차를 위한 주차공간, 카플을 위한 주차공간, 짐을 부릴 수 있는 받침대, 주차장 전체 지도 등 기존 국내 주차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요소를 개발·적용함으로써, 입주민들의 편의와 안전, 만족을 도모했다.

2012년 굿디자인어워드 최우상을 수상한 통합전기제품군 디자인은 기존에 분리돼 있던 월패드, 조명 스위치, 온도 조절기 등의 전기제품을 하나의 제품에 통합 설치해 심미적으로 깔끔한 디자인을 구현했고,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편의성을 강조했다.

2012년 10월 포스코건설은 더샵 아파트의 새로운 서비스 브랜드 ‘온마음서비스’를 론칭했다. ‘온마음 서비스’는 더샵의 브랜드 철학인 ‘헤아림’을 바탕으로 더샵 아파트 고객에게 보다 품격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포스코건설은 고객을 위해 ‘마음을 다하는(全心) 서비스’, ‘마음이 따뜻해지는(溫) 서비스’, ‘언제나 고객의 소리에 깨어있는(On)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마음을 담아 ‘온마음 서비스’라고 네이밍했다. 이후 입주지원센터를 ‘온마음 라운지’로, 입주도우미를 ‘온마음 매니저’로 변경했으며, 입주 후 제공되는 서비스도 새롭게 업그레이드해 더샵 고객들에게 즐겁고 편안한 더샵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나갔다.

2013년 12월 포스코건설은 통합 보안 솔루션인 ‘더샵 지키미’를 공개했다. ‘더샵 지키미’는 맞벌이 가구와 여성 독신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사생활 보호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아파트 입주자 중 취약계층인 여성과 어린이를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고자 추진된 통합 보안 솔루션이었다.

‘더샵 지키미’는 아파트 단지 출입구부터 세대 출입구까지의 공간을 단지 내부영역, 외부영역, 세대 내부영역 등 3단계 영역으로 구분해 각 영역별 체계적인 보안 방어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보안 방어체계는 총 7가지 특화된 보안 시스템을 적용해 단지 내·외부 곳곳의 보안 기능을 개선 적용했으며, 입주민이 직접 단지 보안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 센텀포레 부산 재진입 성공과 오피스텔 브랜드 더샵 라르고론칭

헤아림으로 고객의 마음을 읽는 더샵으로의 리뉴얼 이후 2011년을 맞아 포스코건설은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인천 송도 그린스퀘어, 이시아폴리스 2,3차, 울산 문수산, 부산 센템포레, 세종 센트럴시티, 세종 레이크시티 등 총 7개 프로젝트에 7578세대 분양에 나섰다.

부산 센텀포레는 부산지역 주택사업 재기 성공작이었다. 2002년 해운대 센텀파크 분양 대박 이후 아델리스, 센텀스타 등으로 불패신화를 이어가던 포스코건설은 2007년 센트럴스타 분양 참패라는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따라서 센텀포레는 이후 4년만의 도전이었다. 결과는 부동산 경기침체 속 보기 드물게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성공 요인은 우선 입지가 좋았다. 부산 최고 주거지역인 센텀권역 입지와 수영강이란 친환경 요소를 끼고 있었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도 성공 요인이었다. 3.3㎡당 1000만 원 이상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분양가 상한제로 960만 원을 책정했다.

이 두 가지 펙트를 포스코건설은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고객이 가장 기다리던 아파트’란 슬로건으로 호기심을 유발했다. 좋은 입지에 마케팅의 영향으로 저렴하다는 착시효과까지 더해져 사람들의 발길이 몰려든 것이었다.

센텀포레로 재기에 성공한 이후 센텀누리, 파크시티, 시티에비뉴등도 분양에 성공하며 다시 한 번 부산 불패신화를 이어갔다. 더욱이 이 시기 포스코건설은 모델하우스 하나로 3년 동안 4개의 프로젝트를 소화해냄으로써 효율적·경제적 분양관리 성과까지 달성했다.

세종시 프로젝트도 재미있는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행정복합도시 이전사업 추진 당시 대부분의 건설사들은 성공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정권교체를 계기로 백지화 내지 축소를 예상했다. 그러다 보니 사업권 반납이 속출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포스코건설은 오히려 역발상으로 블루오션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부가 국민적 약속을 지킬 것이란 믿음이 있었으며, 75% 공무원 특별분양 조건도 끝까지 믿었다.

부지 선정 과정에서는 많은 건설사들이 떠난 뒤라 선택의 폭이 넓었다. 기존 부지를 반납하고 입지가 좋은 지역을 다시 받았다. 이후 포스코건설의 예상은 적중했다. 정권이 바꿔도 국민적 약속이 지켜져 행정복합도시 이전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추진됐다.

세종 센트럴시티

세종 센트럴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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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레이크시티

세종 센트럴시티와 레이크시티는 세종시에서 처음으로 분양된 공동주택이었다. 준비기간이 길었던 만큼 포스코건설은 마케팅 전략도 철저하게 준비했다. 서울과 과천청사에서 실시한 분양 마케팅에서는 포스코건설 설명회에만 공무원들이 몰렸다. 테라스하우스식의 가든하우스가 많은 인기를 끌었다.

입지가 좋았던 만큼 분양도 성공적이었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 시기에 신생도시에서 860만 원이나 분양가를 책정할 만큼 성공한 분양이었다. 분양 이후 이 프로젝트에는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었다.

부산과 세종시에서 값진 성과를 올린 포스코건설은 2012년에 인천 송도 그린워크 1, 2차, 부산 해운대 센텀누리, 이시아폴리스 4차, 부산 파크시티, 강원 강릉 더샵, 서울 강남 더샵 라르고, 인천 송도 마스터뷰 등 9개 프로젝트에서 총 8040세대 분양에 나섰다.

강남 보금자리지구 ‘강남 더샵 라르고’는 오피스텔 분양이었다. 포스코건설이 주상복합이 아닌 단독 오피스텔 분양에 나선 건 2005년 ‘안양 메쎄 포스빌’ 이후 7년 만이었다. 오피스텔사업 확대를 위해 2012년 10월 포스코건설은 오피스텔 전문 브랜드 ‘더샵 라르고’를 새롭게 론칭했다.

이탈리아어인 ‘라르고(largo)는 ‘폭넓게, 느릿하게’라는 뜻으로, ‘더샾 라르고’는 ‘바쁜 도시 속에서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오피스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더샵 라르고’의 대외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강남 더샵 라르고’ 마케팅 과정에서 사내 직원들을 홍보모델로 기용됐다.

‘미스 & 미스터 라르고’로 명명된 홍보모델은 포스코건설 직원들의 추천을 통해 선발됐다. 남녀 총 12명으로 구성된 ‘미스 & 미스터 라르고’는 각종 홍보포스터 모델로 활동했으며, 분양홍보관에서 분양상담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헤아림도우미’로도 활약했다.

강남 라르고 분양은 높은 경쟁률 속에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KTX수서역과 가까운 입지 조건과 저렴한 분양가가 성공적 분양에 한몫했으며, 무엇보다 포스코건설은 마케팅에서 이 같은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 헤아림과 온마음 서비스5년 연속 한국품질만족지수 1위 차지

강남 라르고 분양 성공에 이어 2013년 포스코건설은 경기 동탄역 센트럴시티, 부산 시티에비뉴, 충남 아산 레이크시티 2, 3차, 경기 기흥 프라임뷰, 인천 송도 그린워크 3차, 경기 평촌 센트럴시티등 10개 프로젝트에서 총 8900세대를 분양했다.

동탄역 센트럴시티는 역경을 딛고 분양에 성공한 프로젝트였다. 동탄신도시 아파트 분양의 경우 시범사업이었던 2004년 1차 동시분양에서는 성공적 분양으로 첫 출발이 좋았으나, 이후 2005년 2차 동시분양부터 미분양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동탄역 센트럴시티는 차수로 따지자면 3차 사업이었으나, 동시분양이 아닌 단독분양이었다. 단독분양으로 경쟁사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단독분양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KTX동탄역 3분 거리라는 입지 조건을 살려 프로젝트명을 ‘동탄역 더샵 센트럴시티’라고 정했다.

포스코건설은 성공적 분양을 위해 마케팅 활동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삼성전자가 가장 매력적인 고객이었으나, 회사 출입이 쉽지 않았다. 이에 갖가지 아이디어들이 총동원됐다. 명절 귀성버스에 광고 문구를 끼워 넣었으며, 심지어 삼성전자 내 휴게소 자판기 관리자를 포섭해 종이컵에다 광고 문구를 찍어 넣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과 좋은 입지에 힘입어 동탄역 센트럴시티의 분양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동탄역 센트럴시티는 미분양 해소의 터닝 포인트였다. 포스코건설이 인허가 관청에 장담했던 대로 동탄역 센트럴시티의 분양 성공 이후 동탄신도시 미분양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아산 레이크시티 역시 역경을 딛고 분양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아산지역의 미분양 사태는 동탄보다 심했다.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2006년 1차 분양부터 미분양이 발생하자 포스코건설은 후속 분양 프로젝트를 추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계속 분양을 미루다가 7년 만에 아산에 내려갔을 때 포스코건설에 대한 지역민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신뢰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이었다. 신뢰회복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아파트 현장을 아산의 중심으로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교육기관을 유치하고 학교, 유치원, 상업시설 등의 인프라를 구축해나갔으며, 이들 시설들을 무상 임대함으로써 차츰 지역민들로부터 잃었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분양 마케팅 과정에서는 매력적인 고객으로 삼성디스플레이를 선택하고 분양 지역이 아산의 중심임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특히 젊은층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야간 분양상담을 실시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최초로 실시한 공동구매도 효과가 좋았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포스코건설은 ‘미분양의 무덤’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으며, 특히 신뢰회복을 계기로 후속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동탄과 아산의 성과에 이어 2014년 포스코건설은 경기 구리 갈매, 하남 센트럴뷰, 동탄 이시아폴리스 주상복합 분양을 추진했으며, 그 외 구리 인창동, 세종시, 경남 창원 가음정,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부산 광안리 등에서 분양을 준비하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부동산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2010년부터 2013년까지 28개 프로젝트에서 2만 5489세대 분양에 성공했다. 이 같은 힘의 원동력은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자 고객의 마음을 읽는 헤아림과 격조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던 ‘온마음 서비스’ 정신이었다.

포스코건설은 헤아림과 ‘온마음 서비스’의 실천을 위해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CCM(소비자중심경영) 인증을 획득하고, 2013년에 다시 재인증을 획득했다. CCM은 기업의 모든 경영활동을 소비자 중심으로 구성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2년마다 한국소비자원이 평가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증하는 제도였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헤아림과 ‘온마음 서비스’ 성과를 크게 인정받아 한국표준협회와 품질경영학회로부터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 연속 한국품질만족지수 아파트부문 1위를 차지했다. 한국품질만족지수는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소비자와 해당분야 전문가를 대상으로 사용품질과 감성품질의 우수성 및 고객만족도를 조사해 발표하는 종합지표로, 높은 객관성과 신뢰도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