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7. 도약과 번영의 해법, “10년 앞을 내다보라!”

# 발전에너지와 해외사업, 새 성장엔진으로 삼다

“회사 설립 이후 10년간 우리는 수주액 규모에서 회사 출범 이후 무려 6배나 성장했다. 시공능력에서도 30계단이나 뛰어올라 7위의 위상을 갖추었다. 10년 이후 맞이한 2005년은 또 다른 10년을 시작하는 해이다. 따라서 2005년은 스마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도전과 변화의 원년이 될 것이다.” (한수양 전 사장)

IMF 위기를 극복하고 폭풍 성장을 이룩한 포스코건설은 도약과 번영의 새 시대를 열면서 스마트 비전(SMART Global E&C Company)으로 무장했다.

목표 달성 연도 2015년의 스마트 비전에서는 글로벌 Top 30위를 상징적 목표로 삼았으며, 규모로는 수주액 7조 원과 매출액 6조 원을 설정했다. 목표 달성의 해법으로는 기술력 기반의 사업포트폴리오 균형·발전을 추구했다. 플랜트 분야에서는 파이넥스를 비롯해 EPC 기술력 확대를 추구했으며, 토목환경 분야는 경전철과 장대교량 기술력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건축 분야는 초고층 기술력을 더욱 배가해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스마트 비전 수립 직후인 2005년에는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정부의 규제정책을 감안해 보수적 목표치를 설정했다. 수주액 4조 300억 원, 매출액 3조 500억 원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그 결과는 플랜트와 건축 분야의 선전으로 수주액 4조 332억 원, 매출액 3조 9250억 원을 기록하는 등 무난히 목표치를 달성했다.

2005년도 경영활동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신사업 분야의 확정이었다. 스마트 비전에서 사업포트폴리오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토목환경 분야의 선전이 필요했고, 한편으론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갈 새로운 사업 분야 발굴이 시급했다. 지난 시절 주택사업을 선택해 IMF 이후 회사의 성장을 견인하고, 또 다시 송도 개발에 뛰어들어 향후 10년의 일거리를 확보했듯이, 송도 이후를 대비해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 임무가 플랜트사업본부에게 맡겨졌고, 전 직원 난상토론 끝에 이들은 발전에너지 분야를 선택했다. 이후 발전에너지 조직은 해외사업과 그린에너지 사업에 역량을 집중했다.

그러나 해외사업 역량 부족은 핸디캡이었다. 제철 플랜트 의존도가 높은 해외사업은 2005년도 전체 수주액 비중에서 10%는커녕 560억 원으로 1%를 겨우 넘어섰다. 이 역시 사업포트폴리오 균형 발전에는 걸림돌이었다.

2006년도 목표 설정 과정에서는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와 공공물량 축소가 예상돼 더욱 보수적인 목표치를 내놓았다. 수주 3조 9500억 원, 매출 3조 5600억 원으로 전년도보다 낮은 목표치를 설정했으나, 주총 과정에서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우려가 제기돼 수주 규모를 5조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결과는 플랜트, 건축과 토목 분야가 고른 선전을 보이면서 무난히 목표치를 달성했으며, 처음으로 수주 5조 원 시대를 열었다(수주 5조 2531억 원, 매출 3조 6704억 원). 특히 토목환경 분야의 선전이 돋보였다. 처음으로 수주 1조 원 클럽에 가입하며 사업포트폴리오 균형 발전에 기여했다.

2006년도 경영활동에서의 주요 변화는 해외영업 조직의 신설이었다. 치열한 국내경쟁의 대안으로 포스코건설은 발전에너지에 이어 해외시장 개척을 매력적인 성장동력으로 선택했다.

해외영업지원팀, 해외플랜트영업팀, 해외토건영업팀 등 3개 조직을 신설하고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 결과, 건축과 토목 분야가 베트남 진출에 성공했다. 더욱이 발전에너지 분야는 국내 최초로 중남미에 진출, 칠레 벤타나스 석탄화력발전소를 수주하며 본부급으로 격상돼 플랜트, 건축, 토목환경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해외사업의 회사 기여도 역시 상당히 개선됐다. 건축과 에너지 분야의 선전에 힘입어 전체 수주액 비중에서 20%대에 근접, 9826억 원을 달성하면서 사업포트폴리오 균형 발전의 걸림돌이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났다.

 

# 최단기간 수주 10조 달성, 업계 성장역사를 갈아치우다

2007년을 맞아 포스코건설은 전년도 성과에 자극 받아 공격적 목표치를 설정했다. 수주 7조 원, 매출 3조 4000억 원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그 결과 에너지 분야와 해외사업의 선전으로 가볍게 목표치를 달성하고 사상 첫 수주 7조 원 시대를 열었다(수주 7조 7063억 원, 매출 3조 4100억 원).

먼저 해외사업의 성장이 크게 주목을 받았다. 2년 전 560억 원에 불과하던 수주 규모가 40배나 뛰어오르며 2조 2045억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전체 기여도에서도 30%대에 육박했다. 급성장의 배경은 제철 플랜트와 에너지 분야의 뒷심이었다.

포스코-베트남 냉연공장 전경

포스코-베트남 냉연공장 전경

플랜트는 일본 아시아특수제강, 포스코-베트남 냉연공장, 포스코-멕시코 CGL 등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주했으며, 에너지 분야는 벤타나스 석탄화력발전소의 성공적 수행에 힘입어 칠레의 캄피체와 앙가모스 석탄화력발전소 수주에 연속으로 성공했다.

에너지 분야의 비약적 성장도 인상적이었다. 본부 조직 신설 1년 만에 2조 916억을 수주하며 제철 플랜트 규모와 맞먹었으며, 토목환경과 건축을 더블스코어 차이로 따돌렸다. 급성장의 배경은 해외사업의 선전이었다.

한편 이 시기 조직에 변화가 있었다. 팀 중심에서 그룹 조직으로 개편됐다. 그룹제는 대팀의 개념으로, 그룹장의 권한이 확대되면서 조직 슬림화의 효과를 가져왔다. 기존 102개 팀이 60개 그룹으로 축소됐으며, 해외영업 분야의 경우 조직 축소 없이 그룹으로 그 위상이 격상됐다.

2008년을 맞아서는 행정도시, 혁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공공사업 확대가 기대된 반면, 지방 미분양, 분양가 상한가 등의 영향으로 주택경기 침체가 예상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건설은 지난 3년간 지속적인 성장에 편승해 공격적인 목표치를 설정했다. 수주와 매출 목표를 전년 대비 각각 12%, 30% 늘어난 10조 원, 4조 원으로 설정했다. 처음으로 해외 목표치를 설정, 3조 2000억 원으로 책정했다.

2008년도 마감 결과 부동산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면서 분양 연기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목표치를 근소하게 달성했다. 수주 10조 44억 원, 매출 4조 5173억 원을 달성했으며, 해외 수주는 기대에 못 미처 1조 3424억 원을 기록했다.

해외사업의 경우 수주액은 낮았지만, 베트남과 중남미에서의 선전은 여전했다. 베트남에서는 카이멥 국제항만공사와 하노이시 마스터플랜을 수주했으며, 중남미에서는 엘살바도르 석탄화력발전소 EPC 턴키공사를 수주했다.

무엇보다 포스코건설은 수주액에서 금자탑을 이룩했다. 3년 연속 국내 건설사 가운데 최단기간 연간 수주액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최단기간 수주 5조 원, 7조 원을 돌파했으며, 마침내 2008년 창사 14년 만에 국내 건설사 가운데 최단기간 연간 수주액 10조 원 달성의 쾌거를 이룩했다.

조직에서는 홍역이 있었다. 한수양 사장이 물러나고, 2008년 11월 정준양 포스코 사장이 새 CEO에 올랐다. 해외영업 조직은 전년도 그룹 단위 격상에 이어 해외수주영업실로 확대됐다.

 

# 대우엔지니어링 인수, 석유화학 플랜트 진출 모색
2008.5.6 대우ENG와 포스코건설 Win-Win을 위한 임원 워크숍

2008.5.6 대우ENG와 포스코건설 Win-Win을 위한 임원 워크숍

2008년도 가장 눈길을 끈 경영활동으로는 대우엔지니어링(현 포스코엔지니어링) 인수가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2008년 4월 대우엔지니어링의 주식 60%를 인수하고 경영권을 확보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대우엔지니어링은 1976년 10월 설립, 1990년 9월 대우그룹에서 분리 독립해 사원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설립 이후 한국 엔지니어링 산업과 함께 성장해온 대우엔지니어링은 화공, 플랜트, 토목, 건축 등 건설 전 분야에서 다수의 엔지니어링 실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석유화학 플랜트 분야에서 두드러진 실적과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미주, 유럽, 중동은 물론 중앙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엔지니어링 경험을 보유하고 있었다.

포스코건설의 대우엔지니어링 M&A 추진의 가장 큰 목적은 화공에너지 분야 진출이었다. 발전에너지로 성장동력을 다져가던 포스코건설은 화공 분야까지 진출, 명실공히 제철-발전-화공 플랜트 삼각 편대 구축의 야망을 드러냈다.

둘째, 날로 늘어만 가는 해외사업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설계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국내 턴키시장에서의 토목 분야 수주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실제로 대우엔지니어링은 화공 플랜트와 해외사업 외에도 국내 토목 분야에서 풍부한 설계 경험을 확보하고 있었다. 대우엔지니어링 인수를 통해 포스코건설은 화공에너지 진출기반을 확보하고, 해외에너지와 토목사업에 대한 설계 경쟁력을 다질 수 있었다.

2009년은 전년도 말 미국 리먼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파가 매서웠다. 특히 포스코의 투자 축소로 제철 플랜트가 크게 위축됐다.

2009.3.2 윤석만 회장, 정동화 사장 취임식

2009.3.2 윤석만 회장, 정동화 사장 취임식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라 2009년 목표치는 현상유지에 맞춰졌다(수주 10조 5000억 원, 매출 6조5000억 원). 2009년 마감 결과 수주 9조 5965억 원, 매출 6조 6757억 원으로 수주액이 목표치에 살짝 못 미쳤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한파를 감안해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철 플랜트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건축, 토목환경 분야 모두 전년도보다 향상된 실적을 기록했다. 특히 토목환경 분야는 처음으로 수주액 2조 원 시대를 열며 후발업체로서의 실적부진을 말끔히 씻어내고 상위 업체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해외사업에서도 역대 최대 실적인 2조 2505억 원을 달성하는 등 좋은 성과를 얻었다. 무엇보다 토목 분야가 베트남에서 크게 선전했다. 하노이와 중국을 잇는 노이바이~라오까지 고속도로 신설공사에서 3개를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회사의 명성을 드높였다.

조직에서는 송도사업본부가 건축사업본부로 흡수 통합됐으며, 국내수주영업실과 해외수주영업실이 수주영업실로 통합됐다. 한편 정준양 사장이 포스코 회장으로 영전됨에 따라 윤석만 회장과 정동화 사장이 취임했다.

 

# PI 1기 구축, 업무 수행방식 혁신적 변화 통해 내부역량 강화

최단기간 수주 10조 원을 달성했던 도약과 번영의 이 시기 대표적 경영혁신 활동으로는 PI 1기 구축과 VP 활동이 있었다.

“프로세스 혁신인 PI 개념은 2000년대 들어 포스코가 ERP를 구축하면서 국내 기업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포스코는 모든 패밀리사에 PI 추진을 권고했으나, 우리 회사는 2003년 이후 국내 건설회사에 적합한 ERP 모듈이 개발되는 추이에 따라 추진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던 중 모아광장에서 ‘사내에 시스템은 많은데 연계성이 부족해 사용하기에 불편하다’는 직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고, 이것이 계기가 돼 기술연구소가 PI 추진을 위한 보고서를 임원회의에 제출하게 됐다.” (안상목 Director, 당시 프로세스기획팀장)

2002년 7월 기술연구소의 임원회의 보고로 출발한 PI 추진은 준비과정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경영기획실 주도로 PI 추진반을 구성하고 1개월간 사례 조사와 부서별 의견 수렴을 거쳐 추진계획을 임원회의에 보고했으나, 추진 사유가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라 호응을 얻어내는데 실패했다. 다행히 당시 회의에서 박득표 회장이 ‘우수한 컨설팅사를 선정해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고 지시함에 따라 꺼져가던 PI 불씨가 다시 되살아났다.

이후 베어링포인트사를 컨설팅사로 선정하고 회사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자체 검토를 거쳐 2003년 5월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그러나 임원회의와 오너 워크숍 과정에서 전사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본부장들이 직접 본부별 업무 프로세스 개선 추진계획을 발표하게 됐고, 그제야 어느 정도 PI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e-프로세스추진반’이 출범했으며, 2003년 10월 9일 PI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인 시스템개발에 들어갔다.

“시스템개발 과정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무엇보다 PI에 대해 회사 전체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특히 PI 가동으로 인해 현업 프로세스의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에 대해 현업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변화의 타당성을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 (구병모 전 이사보, 당시 추진반장)

2003년 5월 마스터플랜 수립으로 본격화된 PI 1기 추진은 ‘업무 수행방식의 혁신적인 변화를 통한 내부역량 강화’를 시스템 구축의 목표로 삼았다.

이후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시스템설계, 시스템구축 및 테스트 과정을 거쳐 마침내 2006년 1월 2일 PI 1기 작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이 기간 동안 99개 시설물별 분류코드와 1만 3557개의 자재코드, 1098종의 자료코드, 그리고 회계업무의 핵심인 계정과목 등의 분류체계가 정비됐다.

업무체계 측면에서는 프로젝트 기획에서부터 설계, 공사 및 사후관리가 일관된 흐름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데 시스템개발의 초점이 맞춰졌다. 프로젝트에 투입된 인원은 연인원 기준 무려 5만 5720명이었고, 194회에 걸쳐 토론회가 진행됐으며, 변화관리와 시스템교육에 6500여 명이나 동원됐다. 뿐만 아니라 데이터 이행을 위해서만 수십 회에 걸쳐 수천 명이 투입된 대역사였다.

특히 횟수만 4년에 걸쳐 장기간 수행된 포스코건설 PI는 당시 건설업계 최대 규모이자 최초 프로젝트였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된 이유는 국내 건설업에서 PI 사례가 전무한 데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 수집 때문이었다. 건설업 특성상 일정한 패턴이 없다 보니 데이터 확보도 힘든 작업이었다. 그렇다고 데이터 수집을 소홀히 한다면 PI 구축의 의미가 반감되기 때문에 건설의 A부터 Z까지 모든 업무를 시스템화하기 위해 책상 서랍 속에 들어있는 모든 서류들을 꺼내 데이터화했다.

PI 1기 시스템의 성공적 구축으로 포스코건설은 영업부문의 사업기획 역량강화, 엔지니어링부문의 관리체계 통일화를 통한 업무효율 증대 및 자료축적의 자동화, 표준분류체계 구축, 공사·용역 조달체계의 개선, 재무ERP 도입에 따른 스피드경영체계 구축 등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아울러 포스코건설은 EP 시스템을 구축해 국내외 현장은 물론 자택에서도 결재 및 기간 시스템을 통한 업무가 가능토록 시스템을 구성했다. 특히 투명하고 공정한 업무기반이 구축됨에 따라 포스코건설이 최고의 경영이념으로 지향하는 윤리경영 정착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었다.

 

# VP 혁신활동, 나는 너의 업무를 전부 알고 있다!
2007.12.27 경영혁신 자랑대회

2007.12.27 경영혁신 자랑대회

PI 1기의 성공적 완료로 스피드 경영체제를 구축한 포스코건설은 이후 현장 중심의 동아리활동으로 혁신활동을 강화했다. 2000년대 초 지식경영과 함께 추진된 동아리활동은 공식적인 업무 팀은 아니지만, 공통사안에 대해 집단토론과 지식의 공유 및 학습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임 활동이었다.

2007년 9월에는 경영혁신팀을 신설하고 동아리활동을 더욱 독려했으며, 이때부터 혁신문화의 정착과 각 현장 간 정보교류를 위해 경영혁신 자랑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2007년 12월말 행사에는 159개 동아리가 참가해 혁신활동 발표, 혁신활동을 주제로 한 연극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업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변신타위(變新打危)의 자세를 갖춰 늘 앞선 생각과 앞선 기술, 앞선 열정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기업만이 미래 성장을 기약할 수 있다.” (정동화 전 부회장)

혁신활동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더욱 활성화됐다. 당시 정동화 사장은 위기가 곧 기회라는 신념을 가지고 새롭게 변신해 위기를 타개하자는 의미에서 변신타위를 강조했으며, 아울러 원가혁신, 공정혁신, 기업문화 혁신, 일하는 방식의 혁신 등 4대 혁신활동을 강력히 추진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원가경쟁력이었다.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심정으로 주변의 낭비요소 제거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에 공정과 원가, 프로세스의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해 업무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낭비제거 활동을 추진했다. 이어 영업이익률 확보를 통한 경영목표 달성을 위해 원가혁신을 추진했으며, 아울러 핵심 요소기술 개발, 시공성을 고려한 설계 및 공법 개선, 협력업체 수행능력 제고, 제도개선 및 사업관리 강화 등 선진 공정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공정혁신을 추구했다.

기업문화 혁신 과정에서는 경영혁신 활성화를 위한 계층별 토론회를 실시했으며, 본부별 임원과 직책보임자에게 SFCF에 대한 개인별 행동원칙을 설정하고, CEO가 서명함으로써 혁신활동을 위한 실천력을 확보했다. 또 이를 VP 보드에 부착해 직원들로 하여금 리더의 변화된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SFCF란 자기희생(Self Sacrifice), 솔선수범(To be First), 의사소통(Communication), 코칭과 피드백(Feedback)의 약자로, 직책보임자의 실천적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었다.

2009년부터 시작된 혁신활동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왕성하게 추진된 활동은 일하는 방식의 혁신인 VP 활동이었다.

VP는 비주얼 플래닝(Visual Planning)의 약자로서, 2006년 10월 포스코가 먼저 시작했다. ‘버리고’ ‘채우는’ 혁신활동으로, 잘못된 업무관행과 비효율적 업무처리 방식, 불필요한 지시나 보고·회의 등 낭비요인을 버리고 대신 그곳에 가치 있는 업무로 공간을 채워나가자는 캠페인이기도 했다. 이를 위해 임직원들은 자신의 업무와 문제점들을 남김없이 드러내야 하고, 무엇보다 VP 활동의 성공 여부는 상사와 부하, 동료직원들 간 신뢰와 화합의 기업문화에 달려 있었다.

직원 각자 업무를 시각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VP 도입에 따라 업무계획의 공유, 계획의 실행력과 업무생산성 향상을 위해 VP 보드판이 만들어졌다. 이후 조직 내부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포스코건설 직원들은 하루 업무를 VP로 시작한다. 매일 업무 개시 전 15분 내지 20분 정도 VP 보드판 앞에 서서 업무를 협의한다. 협의는 업무보고가 아닌 피드백과 코칭이 일어날 수 있도록 중요 업무나 이슈 중심으로 개인별로 진행한다. 또 전일 업무내용의 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이슈를 공유하며, 금일 업무계획의 공유와 업무 부하에 대한 조정도 이루어진다. 특히 그룹장은 그룹 중점추진 업무에 대해 수시로 설명함으로써 그 내용을 전 그룹직원들과 공유한다.

2009.12.18 2009 IF행사

2009.12.18 2009 IF행사

2009년 연말에는 4대 혁신활동 추진성과를 점검하는 IF(Innovation Festival) 행사가 처음으로 열렸다. 당시 행사에는 포스코패밀리 및 우수 협력업체 대표들도 참석했으며, 원가와 공정, 그리고 일하는 방식의 혁신에 대한 우수사례 발표를 주요 축으로 직원들의 공연이 곁들여진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한편 포스코건설은 수주 7조 원, 매출 6조 원의 스마트 비전을 2007년에 수주액에서, 2009년 매출액에서 조기 달성함에 따라 새 비전을 수립하고 2009년 11월 30일 창립 15주년 기념식 및 비전 선포식을 개최했다.

새 비전에서는 2018년까지 수주 25조 원, 매출 15조 원을 달성해 세계 20위의 건설회사로 성장할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목표달성을 위해 수주 창출력 극대화, 종합 수익력 제고, 글로벌 인프라 구축을 3대 전략방향으로 설정했다.

이 외에도 주력분야 경쟁력 제고, 신성장동력 발굴, 핵심 기술개발 역량 확보, 국내외 네트워크

구축 및 활용, 조직운영 및 지원체계 고도화, 글로벌 인재확보 및 육성을 전사 6대 중점 전략과제로 책정했다.

2009.11.30 창립 15주년 기념식

2009.11.30 창립 15주년 기념식

창립 15주년. 포스코건설은 창립 10년의 폭풍 성장 이후 창립 15년까지 도약과 번영을 이룩했다. 수주액과 매출액에서 5년 전에 비해 2.5배 성장했다. 수주액 10조 원 달성은 한국 건설업계 역사상 최단기간 기록이었다.

전반적으로 이 시기 송도사업이 성장을 이끌었으며, 하반기에는 에너지 분야와 해외사업의 선전으로 스마트 비전의 조기 달성과 수주 10조 원의 금자탑을 이룩했다.

그렇다면 도약과 번영의 해법은 무엇일까? 포스코건설에게는 10년 앞을 내다보는 혜안에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언제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철저히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성장동력을 확보해나갔다.

제철 플랜트에 올인하면서 한편으론 건축과 토목 진출을 모색했으며, 주택사업의 성공 드라마를 써나가면서도 송도 개발이라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후 에너지 분야와 해외사업을 육성, 회사 성장과 도약의 초석을 다졌다. 결국 철저한 준비와 지속적인 성장동력 확보 노력이 도약과 번영의 시대를 연 원동력이었다.

 

 

<역대 CEO 인터뷰_한수양 전 사장>
 계속 해외에서 희망을 찾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한수양 전 사장은 1971년 포스코에 입사, 광양제철소장을 거쳐 2004년 3월 포스코건설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재임 기간 해외사업과 에너지사업을 적극 육성해 베트남과 중남미 진출의 기반을 닦았으며, 국내 건설사 가운데 최단기간 수주액 10조원 달성의 경영성과를 달성했다.

 

재임 기간 스마트 글로벌 E&C 컴퍼니비전을 세우시고, 국내기업 중 최단기간 수주 10조원 달성의 업적을 이룩하셨습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인지요.

“취임 직후 수주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뒤주론’으로 임직원들에게 수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뒤주론이란 뒤주 안에 쌀이든, 보리든, 잡곡이라도 들어 있어야 밥을 짓던, 떡을 만들던, 죽을 쑬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경영방침을 임직원들이 잘 따라주어 정체된 국내시장보다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짧은 기간에 수주 10조원을 달성할 수 있었다.”

 

재임 초기 해외사업 실적이 미천했으나, 적극적인 해외사업 추진으로 오늘날 포스코건설이 베트남과 중남미에서 크게 활약할 수 있는 기반을 닦으셨습니다. 재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지요?

“칠레 벤타나스 프로젝트를 잊을 수가 없다. 실적이 없어 자격이 안 되는데도 발주처를 한국으로 초청해 포스코의 대규모 발전설비를 보여주면서 우리의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공기 내 건설 완료를 약속했다. 그러자 모든 칠레 사회가 반신반의 했지만, 마침내 그 약속을 지켜내자 칠레 사회가 우리에게 찬사를 보내며 발주처들도 함께 일하자고 찾아왔다.”

 

송도국제업무단지는 포스코건설 20년 역사에서 건축 분야 최고의 걸작입니다. 그러나 서울을 두고 송도로의 사옥 이전을 결정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파트너인 게일사가 외국기업 투자유치를 장담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국내기업 유치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앞장서서 분위기 조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어려움이 많았지만, GCF 유치 이후 투자유치가 활성화되고 있다. 앞으로도 잘 되리라 믿는다.”

 

취임했을 즈음이 10주년이었는데, 또 다시 10년이 흘러 창립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앞으로 10, 20, 백년대계를 이끌어갈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내사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아무리 힘들더라고 계속해서 해외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해외시장 개척 과정에서는 겸손이라는 덕목이 중요하다. 겸손을 통해 발주자의 호의를 얻어내는 것이 개인과 회사 발전의 출발점인 것이다. 특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자세가 중요하다.”

 

<역대 CEO 인터뷰_정동화 전 부회장>
해외사업에서 희망을 찾고, 주인의식을 갖고 정진해나가길

정동화 전 부회장은 1976년 포스코에 입사, 광양제철소 부소장을 거쳐 2007년 3월 부사장에 선임되면서 포스코건설에 합류했다.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어려운 시기에 CEO를 맡아 포스코건설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내실경영과 성장 전략을 적절히 구사해 2011년 처음으로 국내 건설사 중 빅4에 진입했으며, 2013년엔 수주·매출·영업이익 목표 초과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재임 시기 어떤 전략으로 위기극복에 임했으며, 가장 큰 성과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금융위기로 건축 분야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위기극복 과정에서는 수익성 제고를 위해 다양한 경영혁신을 추진했다. 내실경영과 함께 성장 전략으로는 에너지 분야의 중남미 성과에 힘입어 해외사업에 많은 역량을 쏟았다. 그 결과 빅4 진입이라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빅4는 메이저 건설사 진입의 상징이며, 창립 20주년의 의미 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2011년에 국내 건설사 중 해외 수주 1위를 달성하는 등 해외사업에서 성과가 많았습니다. 베트남에서는 건축과 토목 분야가, 중남미에서는 에너지 분야가 두각을 나타냈으며, 제철 분야는 일관제철소의 꿈을 일궈냈습니다. 해외사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지요?

“칠레 앙가모스 프로젝트를 잊을 수가 없다. 지구 정 반대편,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거웠고, 돌아가는 발걸음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 악조건 속에서도 그들은 조기 준공의 성과를 달성하고 발주처로부터 인센티브까지 받아냈다. 나는 그들이 포스코건설의 영웅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아부다비 담수, 사우디아라비아 얀부하수처리장 등에서 적자가 발생하는 등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재임 중 가장 아쉬운 프로젝트라면 무엇이 있는지요?

“한때 언론에다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호주 로이힐 프로젝트를 놓친 게 가장 아쉽다. 호주 현지에 100여명의 인력을 파견해 2년간이나 준비작업을 했건만, 국내 경쟁업체의 상식 밖의 가격경쟁에 휘말려 결국 수주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당시 무리하게 가격을 더 내렸더라면 지금쯤 회사가 경영위기를 겪었을지도 모른다.”

 

창립 15주년에 CEO에 올라 많은 업적을 남기셨는데, 벌써 창립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전임 CEO로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힘이 되는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해외사업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선진국보다는 개도국에서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들과 윈-윈할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해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포스코 DNA라는 성공유전자가 있다. 직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정진해나간다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