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한국체조 육성과 후원, 30년 만에 금빛 결실 맺다

2012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양학선 선수와 정동화 대한체조협회회장

2012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양학선 선수와 정동화 대한체조협회회장

물질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만이 지역밀착의 나눔경영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스포츠와 문화를 통해 행복에너지를 충전해주는 활동 역시 나눔과 공감의 경영을 실천하는 또 하나의 사회공헌인 것이다.

포스코건설의 스포츠 활동은 비인기 종목의 육성에서 출발했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던 일을 맡아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다. 한국체조의 육성과 후원이 바로 그것이다. 포스코 시절부터 시작해서 30년의 땀과 정성이 있었기에 양학선이라는 세계적으로도 걸출한 스타가 탄생할 수 있었다.

“지금껏 그 누구도 해낸 적 없는 성취는 지금껏 그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프랜시스 베이컨)

2012년 8월 7일 런던올림픽 체조 남자 도마 결승전. 경기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것도 잠시, 일순간 모든 시선이 한 선수에게로 쏠렸다.

1차 시기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양학선’ 기술을 선보였다. 착지에서 두 발 정도 더 나와 약간 불안했다. 그래도 최고 점수를 받았다. 2차 시기에서는 좀더 쉬운 기술로 완벽한 착지를 완성했다. 한국체조가 1960년 로마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이후 52년 만에 금메달을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결국 ‘도마의 신’ 양학선에게 적수는 없었다. 그는 그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기술로 그 누구도 해낸 적이 없는 성취를 얻었다.

한국체조가 이만큼 성숙하기까지는 포스코건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포스코건설과 체조의 인연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체조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파란 눈과 금발의 루마니아 출신 체조요정 코마네치를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우리는 ‘체조란 동양인과는 맞지 않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꿈과 열정이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체육계와 체조인들을 중심으로 노메달의 한국체조의 숙원을 풀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됐으며, 모기업 포스코가 기꺼이 한국체조의 지원과 육성을 약속했다.

체조협회 후원사를 자청한 데 이어 포스코는 저변 확대와 꿈나무 육성에 나섰다. 꿈나무 육성을 위해 포스코교육재단은 1985년부터 전국 초·중학교 체조대회를 개최해왔으며, 아울러 포철서초, 포철중, 포철고 등 3개 학교에 남녀 체조부를 두고 지속적으로 꿈나무 발굴에 앞장서 왔다. 이 같은 노력은 훗날 한국체조의 탄탄한 토양이 됐다.

포스코가 후원에 나서면서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노메달의 한을 풀었다. 박종훈 선수가 도마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도마에서의 선전은 1992년 바로셀로나올림픽으로 이어져 유옥렬 선수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6.09 1996 아틀란타올림픽 체조선수단 포상

1996.09 1996 아틀란타올림픽 체조선수단 포상

포스코건설은 출범과 함께 1995년 대한체조협회 후원사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포스코건설이 후원에 나서면서 한국체조는 좀더 성숙해졌으며, 메달의 색깔도 바뀌기 시작했다. 1996년 아틀랜타올림픽에서 여홍철 선수가 도마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이주형 선수가 평행봉에서 은메달을, 철봉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급기야 양태영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탄생하며 금메달에 대한 염원이 활활 타 올랐다.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한국체조 역사상 최초로 양태영 선수가 4관왕의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심판의 오심에 양태영 선수가 눈물을 머금었으며, 금메달의 꿈도 좌초됐다. 한국체조는 개인종합에서 김대은 선수의 은메달과 양태영 선수의 동메달, 그리고 첫 단체전 4위라는 성적에 위안을 삼아야만 했다.

한국체조계의 아쉬움에 포스코건설의 후원은 더욱 분전했다. 2004년 11월 시청과 도청팀 일색인 실업팀 체제에서 경북도청팀을 인수하고 포스코건설 남자체조단을 창단, 한국체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양태영, 이장형, 박상민, 문성민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로 구성하고 출발한 포스코건설 체조단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인 마루운동에서 김수면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현재 포스코건설 체조단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남자 안마 금메달 리스트인 이장형 코치를 중심으로 김수면, 신동현, 최진성, 손혁, 김재환, 이성재, 조재윤 등국가대표급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다.

포스코건설 남자체조단

포스코건설 남자체조단

2010.01.21 대한체조협회 제28대 정동화 회장 취임

2010.01.21 대한체조협회 제28대 정동화 회장 취임

2004년에 아깝게 금메달을 놓친 이후 절치부심했지만, 금빛 사냥은 쉽지 않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유원철 선수가 평행봉에서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렀다. 그러나 2010년 정동화 부회장이 대한체조협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는 ‘건설 CEO’다운 특유의 과감한 결단으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2011년 7월에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코리안컵 고양 국제체조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체조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한국체조의 위상을 드높였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그의 ‘체조 사랑’ 행보는 더욱 빨라졌다. 정초에 ‘체조인의 밤’ 축사에서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체조 금메달리스트에게 1억 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또 7월에는 태릉선수촌을 방문해 막판 구슬땀을 흘리는 체조선수단에게 격려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AGU(아시아 체조연맹) 집행위원회 인천 개최에 성공하면서 한국체조의 위상을 더욱 높였다.

이처럼 30년간 헌신한 포스코건설 같은 각계각층의 노력이 있었기에 한국체조는 양학선이라는 전대미문의 세계적인 스타를 탄생시킬 수 있었고, 27년 동안 금 하나, 은 넷, 동 넷이라는 알찬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포스코건설 럭비단

포스코건설 럭비단

도 운영하고 있다. 국내 비인기종목 육성을 통한 스포츠 발전을 위해 2010년 1월 포스코강판으로부터 럭비단을 인수하고 포스코건설 럭비단을 창단했다.

포스코건설 럭비단은 창단 첫해에 춘계럭비리그, 전국선수권대회, 전국체육대회 등 주요 대회를 석권하는 등 놀라운 저력을 과시했다.

춘계럭비리그에서는 전통의 강호 삼성중공업과 한국전력공사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전국선수권대회에서는 고려대와 경희대, 국군체육부대를 차례로 꺾고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전국체육대회에서는 상무와 충남대, 한국전력을 차례를 꺾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특히 전국체육대회 우승까지 포스코건설 럭비단은 무려 16연승을 달리며 괴력을 과시했다.

2011년에는 춘계럭비리그와 전국체육대회에서, 2012년에는 대통령기 전국 종별 럭비 선수권대회에서 각각 우승했다. 앞으로도 포스코건설은 국내 리그 활성화를 통한 스포츠발전 및 저변확대를 위해 계속 노력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