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윤리규범 선포, 회사 이익보다 윤리가 우선

2003.07.10 포스코건설 윤리규범 선포식

2003.07.10 포스코건설 윤리규범 선포식

“앞으로 공정성과 투명성을 축으로 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하지 않는다면 생존조차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진정한 경쟁력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박득표 전 회장)

2003년 7월 10일 포스코건설은 윤리규범을 선포했다. 윤리규범을 선포하기까지 회사 내부에서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우리 사회가 기업윤리를 강조하기 시작한 건 IMF 위기 직후였다. 먼저 성장 일변도의 맹목적인 기업경영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IMF 위기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기업경영의 투명성 결여가 문제점으로 부각됐기 때문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미국의 에너지기업 엔론과 통신기업 월드컴의 분식회계 사태로 전 세계가 다시 한 번 기업윤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우리나라에서도 대우와 SK가 비윤리적 기업경영으로 곤혹을 치렀다.

일련의 사태로 기업윤리가 지탄을 받으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윤리경영 도입이 확산됐는데, 그 중심에 국민기업 포스코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뉴욕에 상장돼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춘 기업으로서 2003년 6월 2일 포스코는 윤리규범을 선포하고 윤리경영의 패밀리사 확산을 추진했다.

국민기업 포스코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포스코건설 역시 윤리경영에 강한 의지가 있었다. 출범 직후부터 윤리경영을 강조했다. 무담합, 무덤핑, 무부실을 창업정신으로 내걸고 건설문화 쇄신에 앞장섰다.

그러나 신생기업의 이 같은 의욕이 기존 건설사들의 시선에 곱게 비춰질 리가 없었다. 일례로 출범 초기 건설협회 가입이 쉽지 않았다. 업계의 일반적인 관행을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내세워 기존 건설사들이 협회 가입을 반대하는 등 철저하게 소외시켰다. 그 과정에서 업계의 소금 역할을 자처하겠다던 창업정신이 차츰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수주산업이라는 건설업의 특성을 쉽게 간과할 수가 없었다.

포스코건설이 이처럼 기존 건설문화 관행에 동화돼 갈 무렵 포스코가 윤리규범을 선포한 것이었다. 따라서 창립 초기 이러한 문제로 소외를 당한 경험이 있던 그들로서는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회사 내부에서는 ‘왕따’는 둘째치고 일감 확보에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포스코건설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수주를 못해도 좋으니 윤리규범을 실천하라”는 박득표 회장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윤리규범을 선포했다. 이 같은 결단에는 투명성과 글로벌 스탠더드 구축이 기업 생존의 필수조건이라는 강한 자신감이 있었다.

초기의 고민과는 달리 출범 직후와 같은 따돌림은 없었고, 오히려 포스코건설을 시작으로 건설업계에도 윤리경영 선포가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그러나 포스코건설과 일반 건설사들의 윤리경영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포스코건설이 윤리규범에 기업과 개인 차원의 윤리를 모두 강조한 반면, 일반 건설사들은 개인 차원의 윤리규범에만 한정하고 있었다. 수주산업의 특성상 회사 차원으로까지 윤리규범을 확대할 용기가 쉽지 않았다.

포스코건설의 용기는 수주 감소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회사 성장에 기여했다. 윤리경영을 통한 페어플레이는 일감 확보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 포스코건설은 윤리규범을 선포한 2003년 이후 수주액 4조원을 돌파하면서 지속 성장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