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4. 에너지사업본부 출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라!”        

# 발전에너지에서 숨은 역량을 찾아내다

에너지 분야 중무장의 계기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역설적으로 포스코건설은 잘 나가던 시절인 2000년대 중반 왠지 모를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한수양 사장이 막 새로운 CEO로 부임하던 순간과 맞물렸다.

그는 플랜트와 주택, 송도사업에 편중된 사업구조를 걱정했다. ‘모멘텀은 언제 바뀔지 모른다’ 그런 위기의식이 회사 전반에 만연하기 시작했고, 한수양 사장은 플랜트, 공공 SOC, 건축 등 적정 포트폴리오의 사업구조를 강조했다. 특히 주택에 이어 새로운 성공신화를 창출해낼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포스코건설은 에너지사업을 선택했다.

에너지사업본부가 탄생하기까지 그 과정은 부침의 연속이었다. 에너지사업 조직은 회사 출범과 운명을 같이했다. 당시 포스코의 석탄화력 민자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과 기술인력을 갖추면서 사업조직이 태동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로 포스코의 석탄화력 민자사업이 취소되면서 포스코건설의 에너지사업은 존폐 기로에 섰다. 다행히 포스코 내부 물량이 뒷받침되면서 조직의 규모를 축소하고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500MW급 광양 복합발전과 350MW급 포항 복합발전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포스코의 발전설비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에너지 조직은 국내외 발전설비 공사를 추가로 개발해내지 못했다. 결국 2002년 3월 조직이 해체되고 인력 대부분이 퇴사하거나 다른 부문으로 전출되는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그 생명력은 끈질겼다. 공중 분해됐던 에너지사업은 2004년에 다시 한 번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요구하는 한수양 사장이 취임했고, 포스코에서는 광양 9호 발전설비 프로젝트가 나왔다. 더구나 플랜트사업본부가 처음으로 외부 프로젝트인 남제주화력 3, 4호기공사를 경쟁입찰을 통해 수주하는 성과까지 올렸다.

이즈음 플랜트사업본부는 CEO의 요구사항이기도 했던 성장동력 확보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4년 중반 플랜트사업본부는 경주에서 워크숍을 실시했다. 당시 고영균 본부장을 비롯해 모든 참석자들은 계급장을 떼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 에너지사업을 선택했다. 발전에너지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데다 당장 일거리가 있으니 바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화공에너지 같이 과감한 배팅에 대한 위험부담도 덜했다.

2004년 7월 마침내 에너지사업 조직이 회생했다. 발전사업팀과 발전영업팀이 신설됐는데, 이전과 다른 점은 영업조직의 태동이었다. 이전까지 에너지사업은 내부 물량에만 안주했다. 그러다 보니 포스코의 투자 전략에 따라 에너지사업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제 더 이상 그 같은 전철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 따라 영업조직이 태동한 것이며, 다시 회생한 그들은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대외사업 경쟁에 뛰어들었다.

막상 에너지사업의 돛을 올렸지만, 국내 발전에너지 시장 진출은 녹록치 않았다. 한국전력 발전자회사와 선발 건설사들의 장벽이 너무 높았다.

또 다시 고민하는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전문가를 영입했다. 포스코에서 29년간 환경·에너지 분야 베테랑으로 명성을 날리던 김호섭 본부장을 사령탑으로 맞이하고, 2006년 12월 업계 최초로 에너지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첫 출항에 나선 에너지사업본부는 해외 발전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새롭게 그린에너지 사업발굴에도 나섰다.

한편 화공에너지는 발전에너지보다 그 시장규모가 3배 이상 거대하다는 매력이 있지만, 장치산업이라 초기 투자비용이 많고, 또 정유사를 보유한 SK건설이나 GS건설 등 기존 선발업체들의 높은 장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 육성사업 대상에서 한발 밀렸다. 그럼에도 2006년 12월 에너지사업본부 신설 때 처음으로 동력사업팀이라는 조직을 갖췄으며, 2007년 6월에는 화공사업그룹으로 조직이 성장하기도 했다.

 

# 그린에너지 첫 작품, 태기산 풍력 성공적 준공

태기산 풍력발전단지

그린에너지는 국가·세계적 사명과 기업이념인 이윤 창출이 충돌하는 사업 분야이다. ‘우리별 지구환경을 지키자’는 측면에서 당연히 모든 기업이 사명감을 갖고 나서야 하지만, 투자비용에 비해 발전에너지 만한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윤 창출의 기업이념 차원에서는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포스코건설은 국가적 사명과 수익사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아 그린에너지 분야에 진출했다. 계륵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제철보국 유전자를 지닌 포스코건설은 국가적 사명을 먼저 염두에 두었다.

포스코건설의 그린에너지 포트폴리오는 다양했다. 풍력, 태양광, 조력, RDF 등 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신에너지인 연료전지까지 갖추었다. 풍력에서는 태기산 풍력발전소(2006.12~2008.11)를 준공·운영하고 있으며, 태양광의 경우 영암에 태양광발전소를 지었다. 조력 분야에서는 한국서부발전이 추진하는 가로림 조력발전소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연료전지 분야에서는 부곡, 포항, 율촌 등에 연료전지 발전소를 지어 운영하기도 했다.

태기산 풍력발전단지는 그린에너지 첫 작품이었다. 이 사업은 강원도가 유러스에너지재팬(EEJ)과의 외자유치에 성공하면서 본격화됐다. EEJ는 일본 최대 풍력개발 회사로 세계 풍력시장의 37%를 점유하는 등 6개국에서 62개의 풍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강원도는 외자유치에 이어 EEJ와 함께 2004년 12월부터 강릉시 왕산면과 횡성군 둔내면에 풍력계측기를 설치해 풍력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강릉 왕산은 초당 7.6m, 횡성 1, 2호기는 각각 6.4m와 7m의 풍황 결과치를 얻었다.

이후 2005년 4월 MOU 체결과 함께 포스코건설이 참여하면서 강원도의 풍력개발 추진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MOU 체결 이후 2006년 2월 MOU 후속 조치로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강원도, 강릉시, 횡성군, EEJ 등이 모여 풍력단지 조성을 위한 5자간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들에 의해 특정목적회사(SPC)인 ㈜태기산풍력발전이 탄생했다. 2007년 1월에는 포스코건설이 태기산 SPC로부터 풍력발전단지 조성사업을 수주함에 따라 태기산 프로젝트가 본 궤도에 올랐다.

“풍력발전단지 개발에 있어서 사업성이 우선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하지만 시행 단계에 있어서는 지자체와의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아무리 사업성이 좋아도 지자체 의지가 부족하면 추진 자체가 어렵다. 민원 및 사업 인허가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만큼 지자체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차태선 상무보)

태기산 프로젝트 역시 인허가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 풍력단지가 횡성군과 평창군에 걸쳐 있었고, 지방 산림청도 2곳이나 관여하고 있었다. 물론 강원도로부터도 허가를 받아야 했다. 사업 인허가를 얻기 위해 프로젝트 요원들은 횡성, 평창, 강릉, 춘천 사이를 한 달 평균 7000㎞ 이상 뛰어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2008.11.26 태기산 풍력발전 준공식

2008.11.26 태기산 풍력발전 준공식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결국 모든 인허가 획득에 성공했다. 정공법을 택한 덕에 이해관계가 복잡한 공공기관의 마음을 하나로 움직일 수 있었고, 이후의 과정은 오히려 더 빨리 진행됐다. 꼼수를 부리지 않은 묵묵히 정공법을 택한 결과였다.

2007년 7월 착공 이후에도 정공법의 초심을 잃지 않았다. 그린에너지답게 환경훼손을 최소화했으며, 지자체나 산림청에서 지적하는 사항은 즉시 해결했다. 그 결과 2008년 11월 태기산 풍력발전단지가 성공적으로 준공됐다.

120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자된 태기산 풍력발전단지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에 걸쳐있는 태기산 일대에 2MW급 20기, 발전용량 40MW 규모로, 이는 2만 50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었다 특히 강원도는 연간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6만 톤 가량 줄여 3000ha 규모의 산림대체 효과를 얻었다.

풍력발전단지 준공식에서 당시 정준양 사장은 인사말에서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부응해 그린에너지사업을 꾸준히 개발하고 관련산업 성장에 이바지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풍력 발전사업은 이후 지지부진했다. 경북 청송과 영덕 등에서 의욕적으로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나, 사업성 부족의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기기 가격이 계속 오르는 반면 발전차액 기준가격이 계속 낮아진 것이 한 요인이었고,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사업을 할 만큼 풍력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었다.

 

# 그린에너지 독보적 존재, 국가적 녹색성장에 기여
영암 태양광발전소

영암 태양광발전소

태양광 발전은 태양의 방사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하는 솔라셀(Solar Cell)의 광전효과를 이용한 것이며, 포스코건설은 국내 최초로 영암 태양광발전소(2007.2~2008.2)를 지었다. 총 발전용량은 3MW로 단일 규모로는 당시 세계 최대 발전용량을 자랑했다.

3MW는 영광군 법성리 1500가구 전체가 6개월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며, 특히 5400배럴의 원유 절감효과와 2200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포스코건설의 합작법인인 ㈜한국솔라파크가 발주했던 당시 프로젝트에서 포스코건설은 EPC 턴키로 사업 인허가부터 최종 준공까지 일괄 수행해 그 기술력을 과시했다.

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로 전기화학 반응을 일으켜 전기를 생산하고 난 뒤 폐열을 온수로 활용하는 고효율 신에너지이다. 포스코건설은 포항에서 2개의 프로젝트, 충남 당진과 전남 순천에서 각각 1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포항에서는 북구 흥해읍 영일만항 배후 산업단지에 포항연료전지발전㈜이 발주한 설비용량 2400kW(1200 kW, 2기)의 연료전지 발전소(2008.9~2008.11)를 EPC로 건설했으며, 아울러 포스코에너지가 발주한 연산 50MW의 포항 연료전지 발전소(2008.10~2009.7)도 EPC로 영일만 배후 산업단지에 건설했다.

부곡 연료전지 발전소(2008.10~2009.7)는 GS EPS가 발주한 프로젝트였다. 포스코건설은 충남 당진군 부곡 산업단지 GS EPS 발전소 내에 설비용량 2400kW 1기의 연료전지 공장을 EPC로 건설했다. 전남 순천 율촌 산업단지 MPC 율촌발전소 내에 EPC로 건설한 연료전지 발전소(2008.2~2009.8)은 설비용량이 4800kW(2400 kW, 2기)로 포스코건설이 건설한 연료전지 발전소 중 그 규모가 가장 컸다.

조력발전은 해양에너지를 이용하는 발전시스템으로, 주로 서해안의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해수의 운동에너지로 터빈을 구동시킨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로림만이 조수간만의 차(7~9m)가 커 국내외에서 조력발전소의 최적지로 평가받았다. 이에 한국서부발전이 충남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와 태안군 이원면 내리에 2㎞의 제방을 쌓아 520㎿의 전기를 생산하는 가로림 조력발전소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포스코건설도 사업비 1조 2000억 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2007년 8월에는여러 대형 건설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SPC법인이 설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 최대 규모로 기대를 모았던 가로림 조력 프로젝트는 환경단체와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 막혀 지금까지 계속 발이 묶여 있다.

태기산 프로젝트부터 시작해 그린에너지 추진 5년. 포스코건설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했다.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기피하는 사업군에다 실제로 수익적 측면에서 큰 성과는 없었으나, 포스코건설은 다양한 시도와 개척을 통해 국가적 과제인 녹색성장 정책에 기여했다.

 

# 국내 발전에너지, 대외사업 경쟁 통해 사업경험 축적
2005.3.15 화성열병합 발전소 계약식

2005.03.15 화성열병합 발전소 계약식

2004년 극적으로 회생한 에너지사업 조직은 국내 발전에너지 분야에서 포스코 물량에 안주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외사업 경쟁에 나섰다. 2005년 3월 그 첫 결실을 맺었다. 한국지역난방공사가 발주한 화성열병합발전소 건설사업에서 대우건설 주간의 회원사로 참여해 수주에 성공했다.

2005년 4월 착공, 2007년 11월 준공된 화성열병합발전소는 한국지역난방공사 최초의 중대형 열병합발전소로, 총 3000억 원이 투자됐으며, 170MW급 가스터빈 2기와 배열회수보일러 2기, 165MW급 스팀터빈 1기 등 발전시설과 지역난방시설로 이루어졌다. 준공 후 화성열병합발전소는 시간당 총 525MW의 전기와 513Gcal의 지역난방열을 생산해냈다.

화성 프로젝트 수주 성공에 이어 2005년 5월 포스코건설은 조선내화, 케너텍과 함께 대전 3, 4공단 열병합발전소 인수에 참여해 대전열병합발전㈜을 설립했다. 대전열병합발전소는 설비용량 88.1MW, 보일러 용량 660톤, 부지 1만 5000평의 규모로 대전 3, 4단지와 주변지역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따라 대전열병합을 매각했으며, 포스코건설은 대전열병합 관할의 둔산지구 집단에너지사업을 노리고 대전열병합의 인수와 설립에 참여했다.

실제로 2005년 12월 포스코건설은 대전열병합이 발주한 둔산지구 지역난방 열배관 설치공사를 수주하기도 했다. 이후 둔산지구 프로젝트가 모두 끝나자 더 이상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2007년 9월 대전열병합에 대한 지분을 매각했다.

화성과 대전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포스코건설은 이후 한국지역난방공사가 발주한 파주와 의정부 집단에너지시사업 경쟁입찰에 참여했다.

파주 집단에너지 발전사업(2007.3~2011.2)은 교하지구의 난방용 집단에너지 공급을 위한 LNG 열병합 복합화력발전소 건설과 함께 열공급 시스템을 건설하는 프로젝트였다. 의정부 집단에너지 발전사업(2008.9~-2013.3)은 민락2지구 1만 5000세대에 난방열 집단에너지 공급을 위한 LNG 열난방시스템을 설치하는 사업이었다.

화성과 파주, 의정부로 이어지는 한국지역난방공사 발주의 사업들은 경쟁입찰이긴 하나, 포스코건설이 회원사로 참여한 프로젝트였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 포스코건설은 선발업체들의 회원사로 참여해 대외사업에 대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이 시기 포스코패밀리 발주 물량 중 착공에 들어간 프로젝트로는 광양제철소 9호 발전설비(2004.11~2006.8), 포항제철소 파이넥스 복합발전 설비(2005.5~2007.7), 포스코에너지 인천 복합발전 5,6호기(2008.12~2011.6)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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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제철소 9호 발전설비 건설 현장

광양 9호 발전설비의 건설 목적은 고로 용선증대 및 조강증산으로 발생되는 잉여 부생가스를 발전에너지로 활용함으로써 연간 300억 원의 에너지 절감을 통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있었다. 실제 설비증설로 광양제철소의 자가발전 능력은 기존 1390MW에서 1490MW로 늘어났다. 당시 공사에서 포스코건설은 안정적인 설비공급 및 철저한 시공으로 당초 공정대비 공기 100일을 단축했고, 특히 우수한 시공품질로 발주처인 포스코로부터 감사패를 수여받는 등 발전설비에 대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설비용량 1000MW급의 인천 LNG 복합화력 5, 6호기는 포스코에너지의 민자 발전사업으로, 수도권 지역에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목적이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포스코건설 요원들에게는 갯벌과의 사투로 얻은 영광의 현장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갯벌을 메워 땅으로 만드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배수공을 설치해 지하 갯벌층의 수분을 외부로 배출하는 작업과 함께, 매립토를 전량 외부에서 반입해야 했기에 덤프트럭이 하루 700대나 드나들었다.” (조현조 전 부장, 당시 현장소장)

특히 인천 복합화력 5, 6호기는 친환경공법으로 청정에너지 터전을 마련한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준설토 매립 과정에서는 폐기물 발생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대나무네트를 활용했으며, 재하성토 과정에서는 지중을 진공상태로 만드는 진공압밀공법도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그 외에도 설계 및 검토 전 단계에 걸쳐 6건 이상의 친환경공법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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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산소공장

광양 3호기 LNG탱크 증설공사 전경

광양 3호기 LNG탱크 증설공사 전경

한편 화공에너지 분야에서는 광양 3호기 LNG탱크 증설공사를 비롯해 동력설비로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에서 수많은 산소설비 신설공사를 수행했다. 포항에서는 13, 14, 15호기 산소설비에 참여했으며, 광양에서는 14, 15호기 산소설비 공사를 수행했다. 광양 3호기 LNG탱크 증설공사(2007.7~2010.9)는 광양 LNG터미널 내 LNG 저장탱크 1기 증설공사로, 대림산업과 공동으로 수행했다.

결과적으로 2004년 에너지 조직 회생 이후 5년간의 기간은 포스코패밀리 물량 수행을 통해 기술을 축적하고, 아울러 선발업체 회원사로 참여해 대외사업에 대한 경험을 쌓아나가는 과정이었다. 포스코건설은 이 같은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안산 복합발전 민자사업 등 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