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5. 경쟁자 없는 제철 플랜트, “기술력 진보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 파이넥스 2공장 준공, 세계 최초 상용화 성공

포스코건설 출범의 기반이었던 제철 플랜트는 전체 사업부서의 맏형으로서 꾸준히 회사 성장에 기여해왔다. 2008년까지 건축 분야와 함께 회사 성장을 리딩해왔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2009년에 일시적으로 실적이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 제철 플랜트는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 곧바로 부진을 훌훌 털고 일어섰다.

무엇보다 제철 플랜트는 더 이상 국내 경쟁자가 없는 고독한 시절을 맞았다. 그렇다고 기술력 연마를 게을리 할 수는 없었다. 세계를 상대로 기술력을 다지는 과정은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이 시기 제철 플랜트의 기술력 연마는 제선과 제강 분야에서 돋보였다. 독보적인 친환경 고로인 파이넥스는 2공장 준공으로 그 기술력이 한층 더 향상됐으며, 광양 5고로 신설 이후 고로 신설과 개수 기술력은 세계 최강을 자랑했다. 특히 포항 신제강, 광양 5코코스 등 대규모 신설사업을 수행하면서 새롭게 기술력을 다져나갔다.

“파이넥스 완성은 영일만에 철강산업의 불을 지핀 지 40년 만에 세계 철강사를 새롭게 쓴 쾌거이자, 우리경제가 가야 할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준공식 치사에서)

“세계 주요 철강사들이 대형화, 통합화를 통해 경쟁우위를 회복하고 있고, 후발 철강사들의 도전이 더욱 거세지는 상황에서 파이넥스공장 준공은 포스코의 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 준공식 기념사에서)

2007.6.5 파이넥스 준공식

2007.06.05 파이넥스 준공식

세계 최초의 상용화 설비인 파이넥스 2공장이 착공 34개월만인 2007년 5월 마침내 준공됐다. 60만 톤의 데모 플랜트보다 그 용량이 150만 톤으로 커졌고, 데모 플랜트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을 개선해 설계, 제작, 시공에서의 오류를 최소화했다.

파이넥스 공정은 가루 형태의 철광석을 가스로 환원시켜 순수한 철 성분으로 바꾸어 주는 유동환원로, 환원된 철광석과 석탄을 일정한 모양으로 만드는 HCI 설비 및 성형탄 설비, 그리고 철광석과 석탄을 녹이고 환원에 필요한 일산화탄소와 수소를 만들어 내는 용융로로 구성돼 있고, 이 4가지 공정이 파이넥스 공법의 핵심기술이었다.

파이넥스 상용화 설비에서는 유동환원로와 HCI 설비 개선이 특징이었다. 먼저 데모 플랜트의 HCI 설비를 광폭 HCI로 개선함으로써 원료비와 설비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특히 유동환원로 개선으로 그 동안 용광로의 특성상 사용할 수 없었던 알루미나(Al2O3)나 아연(Zn) 성분이 많이 포함된 철광석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4단 유동환원로에 가스를 불어넣어 가루 형태의 철광석을 날리면서 4차례에 걸쳐 환원시키기 때문에 통기성 문제나 아연 성분의 기화로 노벽에 붙는 현상을 제거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원료의 무제한 사용이라는 세계 철강업계의 숙원을 해결할 수 있었다.

파이넥스 2공장 준공 과정에서는 오스트리아 푀스트알피네사가 기본설계를 맡았고, 포스코건설이 상세설계와 제작, 시공을 담당했다. 플랜트 단일공사로는 공사비용 6610억 원으로, 당시로는 최대 규모였다. 시공 물량만도 기계공사 8만 6000톤으로, 300만 톤 고로 2기를 동시에 건설하는 것과 맞먹는 대규모 공사였다.

무엇보다 국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은 프로젝트였다. 해외 유명 철강사들이 신제선 공법을 개발하고도 상업화에 잇달아 실패하면서 포스코의 파이넥스 상용화 성공 여부에 세계 철강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또 정부의 10대 기술과제로도 선정돼 국가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준공 과정에 어려움도 많았다.

“2006년에 포항지역 건설노조의 83일간 장기간 파업으로 공사가 중단된 적도 있었고, 공사 진행 중 본체설비의 엔지니어링 변경으로 약 3개월간 주 작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장문재 전 이사보, 당시 현장소장)

그럼에도 프로젝트 요원들은 세계 최고의 파이넥스 상용화 성공을 위해 열정을 불태웠다. 그 결과 2005년 하반기, 2006년 상반기 연속으로 회사차원의 품질·안전·환경 평가에서 우수현장에 선정됐다. 또 파이넥스 기술개발과 건설을 병행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과업을 완수함으로써 EPC 일괄 수행체제 모범 현장의 선례를 남겼다.

 

# 고로 개수 기술력, 세계가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

“고로 개수는 1992년 포항 1고로 2차 개수부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신일본제철이 고로 개수를 맡았고, 그들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아 기술력을 확보했다.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러 우리의 기술력은 세계 정상에 올라섰고, 오히려 일본이 우리에게 기술을 배우는 신세로 전락했다.” (진재기 상무보)

고로 개수 실적은 2014년까지 총 14개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광양 5고로 1차 개수가 진행 중에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기록으로, 포스코건설만의 경쟁력이었다. 대표적 프로젝트로는 광양 2고로 1차(2005), 포항 3고로 2차(2006), 광양 3고로 1차(2007), 광양 1고로 2차(2013) 개수등이 있었다.

광양 2고로 1차 개수

광양제철소 2고로 전경

광양 2고로 1차 개수의 성과로는 내용적이 3800㎥에서 4350㎥로 그 크기가 14.5% 커졌으며, 쇳물을 뽑아내는 능력도 총 출선량 8400톤에서 1만 100톤으로 연간 46만 톤 증산이 가능해졌다. 아울러 노체냉각방식을 변경해 냉각반 대신 스테이브(Stave)를 설치해 노수명을 향상시켰다.

가장 큰 성과는 공기단축이었다. 66일 만에 완료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최단기간 기록이었다. 공기단축으로 인한 성과는 컸다. 고로 셧다운을 하루 앞당기면 1만 톤을 더 생산할 수 있었고, 10일이면 10만 톤을 더 생산할 수 있었다. 이것은 승용차 1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이었다.

당시 공기단축의 배경은 타워크레인에 있었다. 이전까지 60톤 규모의 크레인을 사용해 보통 100일 정도 걸리던 고로 개수 기간을 광양 2고로 1차 개수부터 1000톤의 크레인을 투입함으로써 공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광양제철소 3고로 전경

광양제철소 3고로 전경

광양 2고로 1차 개수에서 세운 최단기간 기록은 포항 3고로 2차 개수에서 다시 갱신됐다. 기록 갱신의 배경은 대블록이었다.

“어느 날 이구택 회장이 일본 출장길에 가져온 사진 3장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신일본제철 고로 개수 장면으로, 세계 최초로 대블록 4개를 적용한 것이었다. 이 사진은 세계 최고라는 우리의 자존심에 불을 지폈으며, 우리는 달랑 사진 3장을 갖고 대블록 개발에 들어갔다.” (조운석 전 이사보, 당시 PM)

이전까지 포스코건설은 고로 개수에서 소블록 14개를 적용했다. 그러나 신일본제철에 자극받아 1년여의 연구과정을 거쳐 마침내 세계 최초로 3개로 이루어진 대블록 개발에 성공하고, 이를 포항 3고로 2차 개수 때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당시 기록한 58일의 공기단축도 세계 최고 기록이었다. 이를 통해 포스코건설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기록은 또 다시 깨졌다. 광양 3고로 1차 개수에서 55일만에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또 다시 세계 최단기간 기록을 갱신했다. 이때 기록 갱신의 원동력은 중블록 개발과 낭비요소 제거를 위한 3정5S(3정: 정위치, 정품, 정량, 5S: 정리, 정돈, 청소, 청결, 습관화) 혁신활동이었다.

대블록에서 중블록으로 바꾼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었다. 포항 3고로 2차 개수 때는 대블록을 적용하느라 추가비용이 200억 원이나 늘어났다. 이에 고로개수 전담 요원들이 연구개발에 들어가 중블록이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고, 광양 3고로 1차 개수 때 중블록 8개를 적용해 그 동안의 연구성과를 증명했다.

3정5S 혁신활동도 공기단축에 큰 힘이 됐다. 공사 잔재가 발생할 때 즉시 처리하는 것이 시간낭비를 줄이고 안전과 품질을 확보하는 지름길이었다. 이로 인해 물류 흐름이 원활해졌고, 작업 능률도 향상됐다. 무엇보다 안전사고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였다.

광양 1고로 2차 개수 때는 그 동안 포스코건설이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가 모두 반영됐다. 1000톤에 이어 1350톤의 크레인을 투입했으며, 블록도 효율적인 중블록 8개를 선택했다. 그 결과 계획대비 11일을 단축하고, 무재해 3배수도 달성했다. 특히 광양 1고로 2차 개수의 가장 큰 성과는 내용적 확대 기술력이었다. 3950㎥의 내용적을 세계 최대인 6000㎥로 확장하는 등 세계 최고의 고로 개수 기술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 포항 신제강 신설, 독자수행 EPC 능력 확보
포항 신제강 착공 부지

포항 신제강 착공 부지

파이넥스, 고로의 신설과 개수 등 제선 분야에서는 세계가 따라올 수 없는 기술력을 확보했지만, 제강 분야 기술력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신예화와 합리화 경험은 있었으나, 아직까지 설계능력을 확보할 기회가 없었다.

드디어 그 기회가 2007년에 찾아왔다. 포항제철소가 전로 조업의 호환성 확보와 저원가 생산 및 품질향상을 위해 포항 신제강 신설에 나선 것이었다. 이는 기존 포항제철소의 1제강과 2제강 체제에서 2제강 규모의 신제강을 신설해 465만 톤 생산능력을 구축하기 위한 포스코의 미래 전략이었다.

포항 신제강 신설은 제강 프로젝트로는 초대형급이었다. 신제강 신설을 위해 51개의 프로젝트가 단계별로 추진됐으며, 투자비용만 1조 500억 원에 이르렀다. 그 중 순수 신제강 신설 단독 프로젝트에만 전체 사업비의 53% 수준인 5300억 원이 들었다.

초대형급이었던 만큼 사업추진 준비기간이 1년이나 걸렸다. 사전 설계검토, 견적가 산출, 원가절감 방안 마련 등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이 기간 동안 포스코건설은 EPC 턴키 수주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사업추진 기간 보여준 신뢰와 열정을 포스코로부터 크게 인정받아 2007년 12월 사상 처음으로 제강 분야 신설사업 EPC 수주에 성공했다.

그러나 사업추진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2008년 말 갑작스런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과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 대규모 리스크가 발생했다. 발주 설비 가격이 크게 상승했는데, 중국 발주 물량의 경우 145% 이상이나 급상승했다. 이에 포스코는 인도적 차원의 소재비 보전을 추진, 환차손에 의한 원자재 가격 상승 품목을 대상으로 일부 보전을 추진함으로써 모든 협력업체와 고통을 분담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공기연장이었다. 예상치 못한 공기연장이 무려 11개월이었다. 첫 번째 공기연장은 2009년도 상반기였다.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로 포스코가 6개월 공사중단을 지시했고, 이로 인해 일부 협력업체에서 부도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두 번째 공사중단은 2010년도 하반기로, 기간은 5개월이었다. 포항시의 건축 인허가 오류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고도제한에 대한 사전 검토가 미흡했다.

포항 신제강 공사현장

포항 신제강 공사현장

“공사현장이 포항공항 인근이라 건축물의 높이에 대한 규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항시가 실수로 인허가를 냈고, 건축물이 서고 나서 관할 군부대가 원상복구를 요구하자 그때서야 실수를 인지한 포항시가 공사중단 처분을 내린 것이었다. 결국 66.5m 고도제한 규정을 맞추느라 85m까지 올라갔던 구조물을 철거하고 다시 설치하느라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고, 공사중단으로 협력업체들의 고통도 가중됐다.” (오헌주 상무, 당시 현장소장)

한편으론, 11개월 공기연장은 포스코건설에게 소중한 보약이었다. 이 기간에도 프로젝트 요원들은 쉬지 않고 기술검토와 수정을 반복했다. 그 결과 2011년 3월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료됐으며, 준공 후에도 트러블 없이 조기 조업 성과를 달성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제강 분야 EPC 턴키 기술력 확보였다.

“신예화나 합리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었다. 맨 땅에 대규모 제강공장 신설사업을 독자적으로 수행해 EPC 턴키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감을 확보했다. 이때 확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관련 경험인력들이 해외 프로젝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신동철 상무, 당시 PM)

또 하나의 성과는 경영혁신이었다. 경영혁신 시범현장으로 선정돼 수많은 설계 및 시공개선을 통해 원가절감을 실현했으며, 2008년에 경영혁신 최우수 현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경영혁신의 가장 큰 성과는 EPC 통합 운영이었다.

설계와 시공 분야의 분리 운영 관행을 깨고 EPC를 통합 운영함에 따라 엔지니어링 단계부터 시공 분야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시공 과정에서의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었고, 턴키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감도 확보할 수 있었다.

 

# 광양 5코크스 신설, 위기극복하고 EPC 기술력 확보

제강 기술력 확보에 이어 제선 분야 중 코크스 신설 EPC를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찾아왔다. 코크스 공정은 유연탄을 고로 선출의 연료인 코크스로 만드는 과정으로, 전체 제철 프로세스 중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공정이기도 하다.

그 동안 포스코는 고로 개수에 따른 출선량 증대로 코크스 부족현상이 발생하자 주로 중국에서 코크스를 수입해왔다. 그러나 수입에 따른 비용부담도 있었고, 또 연료의 품질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자 연간 230만 톤 생산의 광양 5코크스 신설로 방향을 바꾸었다.

광양 5코크스 신설은 오븐, 화성 설비, CDQ 설비, 선탄 설비 등 4가지 패키지로 구성된 대규모 프로젝트로, 여기에 투입되는 사업비만도 5593억 원에 이르렀다. 포스코건설은 이 같은 대형 프로젝트의 수주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 특히 포스코건설의 최대 목표는 EPC 기술력 확보였다. 코크스 신설은 20년 전 광양 4코크스 이후 처음인데다 그 동안 합리화나 신예화도 별로 없어 EPC 기술력을 확보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수주 경쟁에는 코크스 설계로 유명한 독일의 우데(Uhde)사와 광양 4코크스 신설 당시 시공을 맡았던 롯데건설이 뛰어들었다. 포스코는 포스코건설의 의욕과 그 동안의 신뢰관계를 높이 평가해 2008년 중반 전체 EPC를 포스코건설에게 맡겼다. 다만 핵심설비인 오븐과 화성 설비의 설계는 독일의 우데사에 발주했다.

1단계(2008.11~2010.11)와 2단계(2009.12~2011.11)로 나눠 추진된 광양 5코크스 신설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금융위기로 인한 공사 중단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9년에 공사가 잠시 중단됐으며, 2010년엔 건설노조 파업과 유독 길었던 장마로 많은 곤혹을 치렀다. 그러다 보니 그간 까먹은 공기를 만회하느라 프로젝트 요원들은 불철주야 공기와의 전쟁을 벌였다.” (손용철 상무, 당시 현장소장)

EPC 경험부족도 프로젝트 진행에 고통을 가중시켰다. 모르면 알 때까지, 안 되면 될 때까지 서적을 파고들었다.

토목공사에서도 공기를 많이 까먹었다. 공사현장 부지가 제철 폐기물 매립장이어서 고로의 부산물인 슬러그가 쌓여 있었다. 바다 인근이라 자갈 모양의 슬러그 빈틈을 타고 바닷물이 오랜 세월 흘러들었고, 그러다 보니 땅을 팔 때마다 물이 고였다. 인근의 모든 양수기를 동원해 바닷물을 퍼냈는데, 그 시간이 무려 석 달이나 걸렸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반을 다지기 위해 파일 항타를 했더니, 파일이 박히지 않았다. 이번에도 문제는 철광석을 녹이고 남은 찌꺼기인 제강의 부산물 자금덩어리였다. 자금덩어리 역시 나름 철광석이어서 파일 항타를 견뎌낸 것이었다. 이번에는 대형 장비를 동원해 이걸 다 들어냈는데, 무려 30톤이나 나왔다. 따라서 이 과정이 작업도 더디고 가장 힘들었다. 까먹은 공기를 만회하기 위해 패스트 트랙 공법이 추진되기도 했다.

이 같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준공 이후 광양 5코크스는 동양 최초의 자동화설비 구축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고, 아울러 세계적으로도 최신예 제철소라는 명성을 얻었다.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과도 많았다. 가장 큰 성과는 국산화를 통한 원가절감이었다. 가스처리 설비인 굴뚝 모양의 스택(Stack)의 경우 독일의 우데사 설계에서는 높이 178m에 직경이 6m로 나왔다. 이 설비가 너무 고가라 조사 및 연구를 했더니 165m 높이에 5m의 직경이면 충분하다는 결론이 나왔고, 국산화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결국 국산화에 성공했고, 원가절감에도 성공했다.

그 외 내화벽돌의 국산화에도 성공했고, 스택과 내화벽돌을 연결하는 지지대인 앵커레일(Anchor rail)의 국산화에도 성공했다. 이 같은 연구개발과 국산화는 포스코건설 독단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설계사인 우데사와 레터 교신을 통해 기술검토 과정을 거쳤다. 포스코건설이 계속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자 우데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안전관리에서는 현장 특성에 따른 맞춤식 안전활동으로 2011년 5월 플랜트부문 최초로 무재해 5배수를 달성하기도 했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어렵게 확보한 EPC 기술력인 만큼 모든 기술적인 자료를 수집해 데이터로 축적했다. 아울러 이 기술력으로 무장한 경험인력들은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대형 해외 프로젝트 현장으로 달려나가 자신들의 역량을 맘껏 펼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