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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1. 송도시대 개막, “글로벌 Top 10 향해 해외시장 접수하라!”

# 송도국제도시에 둥지 틀고 Think Forward 비전 세우다

“송도사옥 준공이 송도국제도시의 개발을 더욱 본격화하는 서막이 되기를 기대한다. 인천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지역사회로부터 신뢰와 공감을 얻는 기업이 되고자 노력하겠다.” (정동화 전 부회장)

지난 5년 2.5배 성장과 함께 국내 건설업계 역사상 최단기간 수주 10조원 달성의 신기원을 이룩하며 도약과 번영을 누렸던 포스코건설은 2010년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직접 피부에 와 닿기 시작하면서 송도 개발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2010.5.18 송도사옥 준공식 및 입주식

2010.5.18 송도사옥 준공식 및 입주식

이 위기의 순간, 포스코건설은 국내 대기업 최초로 송도국제도시에 입주했다. 외국기업은 물론 국내기업 투자유치가 절실한 시점에서 내린 과감한 결단이었다. 2010년 5월 10일과 11일 건축사업본부, 개발사업본부, 에너지사업본부의 서울사옥 근무자 600여 명이 포스코이앤씨타워에 입주하기 시작했으며, 이어서 7월까지 토목환경사업본부와 지원부서 등 700여 명의 나머지 인력들이 모두 입주를 완료했다.

포스코건설의 송도 입성에는 3가지 정도의 숨은 의도가 있었다. 첫째, 관망 중인 국내외 기업들에 대한 투자유치 촉매제 효과를 노렸다. 둘째, 기업시민으로서 남다른 사회적 책임도 있었다. 개발이익의 사회환원은 기본이고, 송도사옥 입주는 어떠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도시 완공을 책임지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마지막으로 송도사옥은 포스코건설 제2도약의 전진기지였다.

도약과 번영의 시기를 지나 미래 재도약의 발판으로 송도국제도시를 선택했다.

2010.11.30 창립 16주년 기념식 및 비전 2020 선포식

2010.11.30 창립 16주년 기념식 및 비전 2020 선포식

제2도약을 위해 송도시대를 연 포스코건설은 미래 재도약의 나침반으로 ‘2020 비전’을 수립했다. 싱크포워드(Think Forward)를 슬로건으로 삼고, 2020년 비전의 목표를 수주 50조 원, 매출 30조 원으로 설정했다.

사실 싱크포워드 비전은 2009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포스코건설은 ‘2015 비전’인 스마트 비전을 조기 달성함에 따라 2010년 이후 전환기에 대비해 새 비전의 수립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마침 포스코그룹이 매출 100조 원 달성의 ‘2018 비전’을 수립함에 따라 포스코건설도 그룹의 성장전략에 맞춰 수주 25조 원, 매출 15조 원, 글로벌 Top 20 달성의 새 비전을 수립했다.

그 과정에서 비전의 슬로건인 싱크포워드가 탄생했다. ‘Forward’는 ‘앞으로, 미래로’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Think Forward’의 ‘앞선 생각’의 의미를 ‘앞선 기술’과 ‘앞선 열정’으로 더욱 확장시켰다. 그리고 이를 새 비전의 추구가치와 성장동력으로 삼았다.posco_visioncard(2020)

“싱크포워드 탄생 과정에는 각 사업본부와 지원부서의 실무진들로 구성된 TFT가 크게 활약했다. 이들은 워크숍과 토론, 비전수립을 위한 설문조사, 챌린지보드를 비롯한 여러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많은 슬로건들을 도출해냈고, 이 중 임직원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싱크포워드를 최종 선정했다.” (한용석 전 이사보,당시 경영기획그룹리더)

포스코건설 송도사옥 전경

포스코건설 송도사옥 전경

 

# 글로벌 PEPCOM 체제 구축, 토탈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성장

싱크포워드 비전 수립 이후 2010년 들어 포스코그룹 경영환경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나라 대표적 글로벌기업인 대우인터네셔널을 인수했으며, 해외 첫 일관제철소인 크라카타우포스코가 착공에 들어갔다. 이를 계기로 포스코그룹은 패밀리경영을 추진했으며, 비전의 목표를 매출 200조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모기업의 패밀리 경영 추진에 따라 포스코건설은 포스코엔지니어링, 포스코플랜텍 포스코A&C 등이 참가한 E&C그룹의 리더를 맡았다. E&C그룹 ‘2020 비전’의 목표가 수주 100조 원, 매출 60조 원, 글로벌 Top 10으로 상향 조정됨에 따라, 결국 포스코건설의 싱크포워드 비전 목표치도 상향 조정된 것이었다.

E&C그룹 2020 비전 수립 과정에서는 PEPCOM이란 개념이 탄생했으며, ‘글로벌 PEPCOM 성장’의 포스코건설 3.0 미래상이 만들어졌다.

PEPCOM(Project Planning, 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 Operation & Maintenance)에는 포스코건설의 경쟁력인 EPC 역량을 바탕으로 사업기획과 운영관리의 기술력을 추가 확보해 E&C부문 세계 최고의 토탈 솔루션 프로바이더(Total Solution Provider)로 성장하자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글로벌 PEPCOM 성장’이 구현할 3.0의 미래상은 과거 철강 지원에서 그룹성장 주도로, EPC 중심에서 PEPCOM 체제로, 내부자원을 이용한 유기적 성장에서 외부자원까지 활용하는 적극적 성장으로의 변화를 의미했다.

싱크포워드 비전 달성을 위한 성장전략으로는 업(業)의 진화, 장(場)의 확대, 동(動)의 혁신을 추구했다. 업의 진화는 사업 포트폴리오의 재편을 의미한 것이었다. 제철 플랜트, 도시개발, 철도 등을 3대 주력 사업군으로 설정했으며, 해수담수화, 신성장에너지, 화공, 석탄화력, 도로 및 교량 등의 분야를 5대 강화 사업군으로 구분했다.

장의 확대는 말 그대로 시장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 중심은 해외시장이었다. 포스코건설은 E&C그룹이 경쟁력을 확보한 동남아,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 이머징 국가에 집중 진출하기로 했으며, 그 중에서도 시장 매력도와 사업기반에 따라 집중 포커스 국가, 육성개발 국가 등으로 차별화 전략을 구사했다.

포커스 국가 중 베트남과 칠레는 각각 동남아와 중남미 지역의 허브로서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중국과 인도는 글로벌 구매거점 및 설계센터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기로 했다. 육성 국가 중 알제리와 UAE는 각각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핵심거점으로 육성하고, 중남미 브라질과 페루, 동남아 지역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미래의 성장거점으로서 폭넓은 시장 정보력을 확대해나가기로 했다.

동의 혁신은 사업포트폴리오의 진화와 해외사업 확대의 기반인 인프라 확충을 의미했다. 이에 E&C그룹의 시너지 창출과 해외사업 진출에 필요한 자본확보, 역량강화, 경영관리 선진화 등의 인프라 확립을 위해 9대 핵심과제를 선정·추진했다.

결국 도약과 번영의 시기를 지나 미래 재도약을 향한 수많은 갈림길에서 포스코건설은 해외사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선택한 셈이었다.

한때는 제철 플랜트에서 주택사업으로, 이어서 송도사업에서 이번에는 해외사업을 성장동력으로 지목한 포스코건설은 송도국제도시를 제2도약의 전진기지로 삼았으며, 싱크포워드 비전을 수립하고 글로벌 Top 10을 향해 해외시장을 접수하러 오대양 육대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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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2. 건축과 토목환경, 베트남 성공 기반으로 해외사업 영토를 확장하다

# 해외사업 총동원령, 배수진의 각오로 임하라!

2009년 창립 15년을 맞은 포스코건설의 해외사업 분야는 앞선 5년간 크게 성장했다. 이전 10년과 비교해 봐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눈부시게 발전했다.

사실 회사 출범 이전인 거양개발과 PEC 시절부터 의욕적으로 해외사업에 나섰으나, 내용이 별로 좋지 않았다. 든든한 포스코를 따라 베트남과 중국 진출에는 성공하지만, 포스코가 빠지고 독자적으로 수행한 해외사업에서는 시련이 많았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제철 플랜트 중심이었다. 제철 플랜트 외 해외사업이 중국 포스플라자, 베트남 다이아몬드플라자, 하와이 콘드 등 3건의 자체 개발사업에 그쳐 ‘제철소 건설사’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5년은 달랐다. 건축과 토목 분야가 베트남에서 맹활약했고, 에너지 분야는 중남미 발전시장에서 성공신화를 써나갔다. 관록의 제철 플랜트 역시 중동과 인도, 일본과 베트남, 심지어 중남미 멕시코까지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력이었다. 안 되면 포기하고 막히면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포스코건설은 초심을 버리지 않았다. 글로벌 E&C의 꿈을 잊지 않았다.

특히 해외사업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건설경기가 침체기를 맞으면서 위기감이 고조됐고, 한정된 국내시장에 그 파이마저 계속 줄어드니 재도약을 위해서는 글로벌 확장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신사업 발굴도 쉽지 않았다. 해외 발전에너지만 선전할 뿐, 화공 분야 진출의 장벽은 너무 높았고, 그린에너지 역시 성장동력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해외사업만이 살 길이었다. 싱크포워드 비전 수립 이후 포스코건설은 해외사업 총동원령을 내렸고, 모든 사업부서가 배수진의 각오로 해외사업을 추진했다.

캄보디아 직원훈련원 전경

캄보디아 직원훈련원 전경

바타낙 캐피탈 타워 조감도

바타낙 캐피탈 타워 조감도

건축 분야는 베트남에 한국형 신도시 수출에 이어 캄보디아 건축시장 진출에 성공하면서 첫 포문을 열었다. 2010년 3월말 캄보디아 부동산 개발회사인 바타낙 프로퍼티사가 발주한 바타낙 캐피탈 타워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국제협력 사업인 캄보디아 직업훈련원(2003.6~2005.5) 프로젝트 수행이후 민간 발주사업으로는 최초의 실적이었다.

수도 프놈펜 중심부에 위치한 바타낙 캐피탈 타워(2010.3~2012.12)는 사업비 6600만 달러가 투자된 지하 4층, 지상 38층 규모의 인텔리전트빌딩이었다. 인천국제공항 설계로 유명한 영국의 테리 파렐 파트너십사(TFP-Terry Farrell Partnerships)가 설계를 맡았으며, 행운과 건강을 상징하는 용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준공 이후 바타낙 캐피탈 타워에는 캄보디아 최초의 증권거래소와 바타낙 은행 등이 입주함에 따라 캄보디아 금융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거듭났다.

캄보디아 금융빌딩 수주를 시작으로 이 시기 포스코건설의 건축 분야는 베트남을 정점으로 동남아시아에서 크게 활동했다. 하노이시 마스터플랜의 성공적 완수에 이어 스플랜도라 신도시 1단계 사업을 무사히 완료하면서 베트남 건설한류의 중심에 섰고, 대우인터내셔널과 동반 협력으로 미얀마 호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동남아시아 외에도 카자흐스탄 신도시 개발사업에 참여함에 따라 중앙아시아에 첫 진출했으며, 이어서 영역을 오세아니아로 확대해 호주 호텔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 하노이 플랜 성공적 완수, 뜨거운 베트남의 가슴을 움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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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 광역도시 마스터플랜 조감도

베트남 하노이시, 2011년 7월 29일 오후 2시. 응웬떤중 베트남 총리를 비롯해 국가 고위급 인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하노이 국가 도시계획 전시관’ 개관 행사장이었다. 1, 2층이 오픈된 전시관은 2층에서 관람이 시작되는 구조였다. 2층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3개로 이루어진 도시 모형이 시선을 압도했다.

첫 번째 모형은 근대 이전 하노이의 모습이었고, 두 번째가 현재의 하노이, 그리고 마지막 모형은 포스코건설이 설계한 20년 후 미래의 하노이 전경이었다. 경이로운 광경에 관람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 이 날은 포스코건설의 역작 하노이 마스터플랜이 완성된 기념비적인 날이기도 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하노이 마스터플랜 사업의 성공적인 완수를 기념하고, 베트남 정부가 하노이의 미래 발전상을 홍보하는 데 기여할 목적으로 280만 달러 상당의 ‘초대형 하노이시 모형’을 기증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스터플랜 수립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초 1년 6개월의 일정이 1년이나 더 연장됐다. 하노이시와 주변 5개 위성도시를 연결하는 대단위 개발계획이다 보니 많은 기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무려 750가지나 되는 개발계획이 이해관계에 따라 쏟아져 나왔는데, 이를 조정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 (김창묵 Director)

베트남 정부가 이 사업을 자국 내 전문가들에게 맡기지 않고 국제입찰에 부친 이유도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었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선진 기법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베트남 정부는 천년 수도 하노이시의 웅장한 미래 모습을 설계해주길 원했다.

설계를 맡은 포스코건설은 조정과 정리 과정에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정보를 공개했고,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논리적인 설득을 통해 최대한 협력을 이끌어냈다. 그러자니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750가지나 되던 개발계획을 40%로 줄여 난개발을 방지할 수 있었다. 특히 하노이 중심부와 주변 5개 위성도시를 효율적으로 연결하면서 그 중간 지점에만 신도시 계획을 세웠고, 나머지는 생태학적 자연환경 보존 차원에서 그린 코리더로 지정함으로써 40%의 녹지축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미래지향적이고 지속 발전이 가능한 친환경 생태도시로 웅장한 하노이시의 미래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다. 그린 코리더(Green Corridor)는 풍부한 대도시의 생태계를 위해 강기슭이나 도로 등을 녹화하고, 다양한 생물을 도입하는 녹지계획이었다.

베트남 호치민시 중심부에 위치한 다이아몬드플라자

베트남 호치민시 중심부에 위치한 다이아몬드플라자

하노이시 설계에서 보여준 포스코건설의 성심은 베트남 사회에 또 한 번의 우호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포스코건설은 1990년대 중반 철강 프로젝트로 첫 인연을 맺은 이후 호치민시 중심부에 랜드마크 다이아몬드플라자를 건설함으로써 베트남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신도시, 고속도로 등 대규모 국책사업을 수행하면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포스코건설이 펼친 사회공헌활동은 베트남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 같은 베트남 사회의 우호적인 관심이 2011년 11월경 베트남 제1국영방송인 VTV에 고스란히 담겼다.

당시 포스코건설 특집방송은 베트남 현지는 물론, VTV가 운영하는 국제방송 채널을 통해 미국, 호주, 유럽 등에도 방영됐으며, VTV는 1시간 내내 베트남의 경제발전과 지역사회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긍정적 평가와 함께 VTV는 성공적으로 완수한 하노이시 마스터플랜을 비롯해 스플랜도라 신도시 개발사업,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건설공사 등 자국의 대규모 국책사업에서 펼친 포스코건설의 역동적인 활동을 소개했다. 특히 VTV는 송도국제도시 개발 등 한국에서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베트남 국책사업 참여의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동화 사장과의 인터뷰에서는 글로벌 전략과 베트남에서의 활동 방향에 대해 질의했다. 이에 정동화 사장은 “모든 활동에서 진심으로 베트남의 미래건설에 일조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고, 이어 “우리 회사가 한-베트남 양국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가교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 한국형 신도시 스플랜도라 1단계 준공과 베트남 우정휘장 수상

저녁 8시 식사를 마친 베트남 사람들이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베트남 국영TV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VTV3 채널에 한류 스타 장동건이 등장했다. 그는 포스코건설 기업 이미지 광고의 모델이었다.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 이제 베트남까지 이어집니다. 세계는 내일의 베트남을 송강의 기적이라 부를 것입니다. 더 큰 베트남을 기대합니다.”

스플랜도라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한류를 이끌었다. 시청률이 높은 방송 시간대에 한류 스타 장동건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데 이어 포스코건설 입간판에도 출연시켰다.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오는 고속도로 길목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장동건의 입간판이 하노이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먼저 맞이했다.

이런 적극적인 마케팅 덕에 베트남 내에서 포스코건설의 글로벌 이미지는 삼성과 LG 못지않게 높아졌으며, 더욱이 한국형 아파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스플랜도라 신도시 1단계 주거지역

스플랜도라 신도시 1단계 주거지역

2013년 9월 스플랜도라 신도시 1단계 건설공사가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스플랜도라가 큰 인기를 모은 비결은 완벽한 주거 인프라 구축이었다. 그 외 한국형과 현지형 아파트의 현명한 접목도 베트남 사람들로부터 많은 호감을 얻었다.

스플렌도라 신도시는 뛰어난 주거품질 외에도 국제학교, 대형 할인마트, 종합병원 등 생활편의시설과 하수종말처리장, 가스저장보급소, 첨단 수도공급시설 등 각종 주거 인프라를 완벽하게 갖추었다. 더구나 한국형 커뮤니티시설, 단지 내에 가로지르는 개천, 개인 풀장, 어린이 놀이터 등은 현지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형 신도시의 장점 외에도 현지 정서를 알맞게 살렸다. 대표적으로 아파트 벽을 현지 시공방법인 조적식으로 시공했다. 집안 내부 벽과 바닥 공사도 기후가 워낙 습해 한국식의 도배나 장판을 배제하고 페인트나 타일 시공으로 마감했다.

“아파트 벽식 시공을 놓고 처음에 고민이 많았다. 한국식 월(wall)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어서 시공이 간편했지만, 그럴 경우 열대성 기후로 벽이 울퉁불퉁해져 미장을 다시 해야 할지 모른다는 기술진단에 따라 과감하게 조적을 선택했다. 그 결과 자재비와 인건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박희도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1단계 사업의 성공적 준공에 이어 2012년 6월부터 포스코건설은 2단계 착공에 들어갔다. 2단계 사업에서는 스플랜도라 전체 사업부지(264만㎡) 중 75만 8천㎡ 규모 부지에 아파트, 빌라, 테라스하우스, 중앙공원 등을 개발하게 된다.

아파트는 2800여세대가 조성된다. 아파트 지하층은 주차공간 및 기계시스템, 1층은 공공서비스, 기타 다른 층은 주거용으로 건설되며, 아파트 건물 사이에는 주차장, 공원, 수영장 및 커뮤니티 시설이 조성된다.

빌라는 3층 규모, 412세대가 8가지 타입으로 구성되며, 건폐율 37.5%에 2층짜리 커뮤니티시설 2개동으로 개발된다. 테라스하우스는 4층 규모, 466세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폐율 59.7%로 2층 규모의 커뮤니티시설 1개 동을 포함하고 있다.

약 16만㎡ 규모의 중앙공원에는 호수, 녹지공간, 관리사무소, 보안구역, 상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2단계 사업의 디자인은 하노이시 마스터플랜을 함께 작업했던 미국의 세계적 설계사인 퍼킨스 이스트만이 맡았다.

국영TV 특집방송에 이어 2012년 10월경 포스코건설은 또 다시 베트남 사회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하노이시 마스터플랜의 성공적인 수행과 베트남 건설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우정휘장을 수상했다. 베트남 우정휘장은 베트남 경제, 사회, 정치, 외교, 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와 협력을 거둔 외국기관 및 개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포상이었다.

 

# 중앙아시아·오세아니아 건축시장 진출하다

베트남 우정휘장 수상의 영광에 이어 2012년 10월말 포스코건설은 중앙아시아에 첫 진출했다. 카자흐스탄 굴지의 기업인 카스피안 그룹과 공사비 7000억 원 규모의 코얀쿠스 주택건설사업에 대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당시 카자흐스탄은 사업기간 15년 계획 하에 전체 공사금액이 50조 원에 이르는 ‘G4 신도시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 사업은 카자흐스탄의 경제수도인 알마티에서 캅차가이 호수까지 79km의 구간에, 이니셜 ‘G’로 시작하는 4개의 신도시를 민관이 합동으로 건설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4개 신도시의 이름은 알마티에서 가까운 순으로 각각 게이트시티, 골든시티, 그로잉시티, 그린시티였다.

포스코건설이 맡은코얀쿠스 주택사업은 G4 신도시 개발사업의 1단계 프로젝트였다. 알마티의 북측 경계로부터 1.5km 떨어져 있는 게이트시티 내에 8000여 세대에 이르는 뉴타운을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공사기간은 설계기간을 포함해 총 69개월, 공사비는 6억 4000만 달러 규모였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투자나 파이낸싱 없이 해외 개발사업을 수주함에 따라 사업 리스크가 없는 안정적인 공사계약 성과를 달성했다. 또 설계와 조달, 시공을 일괄 수행하는 디자인 빌드(design build) 방식으로 수주함으로써 신도시 건설에 대한 종합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더욱이 당시 카자흐스탄 진출은 베트남에 이어 두 번째 한국형 신도시 수출이란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중앙아시아 진출에 이어 이즈음 포스코건설은 미얀마 진출을 시도했다. 미얀마 진출은 포스코 패밀리사인 대우인터내셔널과의 협력이 돋보였다.

미얀마는 2000년대 말부터 개혁개방이 가속화되면서 해외 투자자들의 발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우인터내셔널도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미얀마 가스전 개발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대우인터내셔널은 몰려드는 해외 투자자들에 비해 호텔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부동산 개발을 병행했다.

우선 대우인터내셔널은 미얀마 정부와의 오랜 유대관계를 기반으로 최대 상업도시인 양곤의 인야 호수 주변의 정부 소유 토지를 장기 임대하는데 성공했다. 이어서 포스코건설, 롯데호텔 등과 컨소시엄을 결성하고 현지 대기업인 IGE그룹과 부동산 개발사업을 위한 합작사를 설립했다.

총 2억 달러가 투자되는 양곤 부동산 개발은 모두 2개동으로 2016년 완공 예정이며, 1개 동은 호텔로 이용되고 다른 건물은 호텔식 서비스의 주거시설인 레지던스 형태로 운영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롯데호텔은 호텔의 운영을 맡았으며, 포스코건설은 시공을 맡아 2014년 2월부터 본격적인 건설공사에 들어갔다.

미얀마 첫 진출에 이어 포스코건설은 호주 건축시장에 첫 진출했다. 호주 진출은 전략적 파트너사인 서호주 최대 주택건설업체인 BGC사와의 협력이 돋보였다.

BGC사와 협력해 수주한 건축 프로젝트는 일명 페사(FESA)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서호주 정부가 호텔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퍼스 시내에 위치한 소방방재청을 사업부지로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따라서 페사 프로젝트는 소방방재청 이전 조건으로 그 부지 위에 14층 높이, 330실 규모의 호텔과 22층 높이의 오피스를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사업 구조는 서호주 정부가 개발사업 제안을 공모하고, 선정된 시행사가 부지 매입과 함께 사업권을 획득하는 방식이었다. 사업제안에 앞서 BGC사는 포스코건설에 협력을 요청했고, 포스코건설은 그 동안 쌓은 풍부한 개발사업 제안 노하우를 기반으로 BGC사의 페사 프로젝트 사업권 획득을 지원했다.

그 과정에서 2013년 7월 포스코건설과 BGC는 합작법인 BPI를 설립했다.포스코건설 지분은 49%였다. 이어서 BGC가 페사 프로젝트를 위해 설립한 페사480사가 마침내 사업권 획득에 성공했으며, 2013년 12월말 포스코건설의 합작법인 BPI가 페사480사로부터 약 1200억 원 규모의 페사 프로젝트 시공권을 수주하기에 이르렀다.

“페사 프로젝트 수주는 포스코건설이 그간 국내외에서 수행한 초고층 건물 시공 실적과 설계 기술력을 호주시장에서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계기로 향후 선진 건축시장 진출이 가속화될 것이다.” (이용일 전무, 호주사업단장)

 

# 공기준수와 최고 품질로 베트남 고속도로 석권하다
성공적으로 수행한 베트남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성공적으로 수행한 베트남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토목 분야도 건축 분야 못지않게 베트남에서 크게 선전했다.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공사에서 3개 공구를 수행하는 가운데 호치민~저우자이 고속도로에서 2개 공구 수주에 성공했으며, 빈폭성~메린 고속도로 수주에도 성공했다.이로써 총 6개의 고속도로 공사를 수행하게 되는데, 이는 베트남에서 외국기업으로는 최다 실적이었다.

첫 사업이었던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에서는 전체 8개 공구 중 포스코건설이 가장 많은 3개 공구를 수행했다. 3개 공구의 총 연장이 81km에 이르는 대규모 공사였다. 따라서 성토량과 보드 파일의 수가 엄청났다. 3개 현장 공사에 필요한 흙을 쌓은 양인 성토량은 잭니클라우스 골프장 10개 규모와 맞먹는 1300㎥이었으며, 교량공사를 지지하기 위한 보드 파일의 길이도 63빌딩을 264개나 쌓을 높이였다.

3개 공구 중 A1공구(2009.7-2014.10)는 교량 19개소, 643m의 지하차도가 포함돼 있었으며, A2공구(2010.1-2014.10)는 교량 19개소에 FCM 교량 1개소가 포함돼 있었다. A3공구(2010.1-2014.12)에는 교량 18개소와 FCM 교량 1개소가 포함돼 있었다.

첫 경험이었던 만큼 프로젝트 수행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우선 환경이 열악했다. 공사 현장이 있던 빈폭성은 1년에 3분의 2가 폭우가 쏟아지는 강우 지역이었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점은 지역주민과의 토지 보상이었다.

“준공 4개월을 앞두고 겨우 보상 문제가 해결됐다. 우리나라 개발식으로 접근해서는 베트남 사업에서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베트남은 인민의 나라라는 인식이 강해 정부도 함부로 못한다.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공사 현장에 바나나 나무를 심거나, 벼를 말리는 등 지속적으로 공사 진행을 방해했다.” (주인식 Sr.Manager, 당시 A2공구 현장소장)

발주처가 요구하는 품질이 까다롭고 관리절차 기준이 복잡한 점도 큰 난관이었다. 이는 발주처의 간섭이 심하다는 의미로써, 심지어 하도급 선정도 승인절차를 밟아야 할 정도였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포스코건설은 주민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보상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기후문제도 철저한 준비와 관리로 적절하게 대응했다. 발주처 문제는 공기준수와 최고 품질로 신뢰를 얻어 극복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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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4.20 호치민~저우자이 고속도로 3공구 착공식

2011.10.17 베트남 빈푹성~메린 도로공사 착공식

2011.10.17 베트남 빈푹성~메린 도로공사 착공식

노이바이~라오까이의 성공적 수행에 힘입어 2010년 4월 포스코건설은 베트남 도로공사가 발주한 전체 노선 51km의호치민~저우자이 고속도로 중 호치민 인근에 위치한 9.8Km의 3공구(2010.5-2013.12) 수주에 성공했다.총 사업비 1억 45만 달러 규모의 왕복 4차선 아스팔트 포장공사로, 5개의 교량공사가 포함돼 있었다.

3공구의 성공적 준공에 이어 2013년 12월 포스코건설은 호치민~저우자이 고속도로 중 5공구 수주에 성공했다. 이 사업은 사업비 4869만 달러 규모로, 공사 구간은 13.9km였다.

호치민~저우자이 외에도 2011년 7월 포스코건설은 빈폭성~메린 고속도로 건설공사(2011.9-2014.3)를 수주했다. 이 프로젝트는 메린 신도시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사업으로, 총 연장 15km의 4차선 도로 건설공사였다. 사업구간에는 교량 4개소도 예정돼 있었다.

한편 2013년 8월 포스코건설은 베트남 하노이 광역철도 관리위원회와 7296만 달러 규모의 베트남 하노이에 최초로 건설되는 경전철의 지상역사 공사계약을 체결했다. 이 프로젝트는 하노이 농 역에서 킴마 역사까지 8.5km 구간 내에 있는 총 8개의 지상역사와 토목구조물을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특히 이 사업의 수주는 베트남 하노이에 확대 도입 예정인 전철공사의 첫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

베트남에서 외국기업으로 최다 실적을 보유한 토목 분야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철저한 사업관리가 큰 몫을 했다. 첫 사업이었던 노이바이~라오까이의 경우 저가 수주여서 프로젝트 시작부터 적자가 예상됐다. 스플랜도라 파트너이자 도로공사 수주에서 경쟁자였던 비나코넥스 역시 포스코건설의 저가 수주를 우려할 정도였다.

실제로 노이바이~라오까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국의 K사와 D사는 저가 수주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후속 프로젝트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은 철저한 사업관리로 적자 폭을 최대한 줄이고, 이후 후속 사업에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베트남법인의 현지화도 성공요인이었다. 법인은 베트남에서 오랜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기업과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강한 체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발주처와의 신뢰도 성공가도에 큰 보탬이 됐다. 이 같은 신뢰는 철저한 공기준수와 최고 품질로 얻어낸 소중한 자산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성심을 다하는 사회공헌활동으로 베트남 사회로부터 우호적인 관심과 좋은 기업이미지를 이끌어냈는데, 이 역시 성공요인이었다.

운도 따랐다. 노이바이~라오까이 수행 당시 베트남은 부동산 경기 과열로 현지 건설사들이 도로공사보다 건축사업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외국기업이 비집고 들어갈 빈틈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성공요인은 사람이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게 열정, 그 열정으로 포스코건설은 숱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 베트남 성공에 이어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건설에 나서다

베트남 사업에서 자신감을 얻은 토목 분야는 영역 확대를 시도했다. 때마침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대한 고속도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었다. 일명 카렉(CAREC) A380이라고 불리던 중앙아시아 경제협력(CAREC, Central Asia Regional Economic Cooperation) 프로젝트였다.

2007년부터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10개국이 추진 중인 이 프로젝트는 현대판 실크로드 재건사업이었다. 중국에서 서유럽을 연결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인 만큼 지속적인 사업 발주가 예상됐고, 이에 포스코건설이 이 사업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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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렉 A380도로 전경

첫 도전은 우즈베키스탄 재정경제부 산하 로드펀드가 발주한 카렉 A380도로(2010.7-2013.12) 메샤클에서 투르쿨까지의 연장 91km 구간이었다. 총 사업비가 1억 3215만 달러 규모로, 4차선 콘크리트 포장공사와 부대시설 건설이 주요 내용이었다.

“중앙아시아 첫 진출이었던 만큼 어려움이 많았다. 현지 건설시장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대사관과 은행, 소규모 건설회사, 엔지니어링사 등을 일일이 방문한 끝에 신뢰성 있는 견적을 확보할 수 있었고, 한국 포장전문업체와 견적을 비교하는 등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입찰에 참가했다.” (김익희 전 부사장)

약 두 달간의 기술서류 심사기간에도 예상치 못한 추가 작업들이 발생했다. 발주처는 입찰보증 서류에 대해 은행 재확인을 요청했으며, 실적 서류의 재보완과 지난 10년 동안 포스코건설이 수행해온 모든 프로젝트에 대한 콘크리트 포설 물량 증명까지 요구했다.

포스코건설은 발주처에 신뢰와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그들이 요구하는 항목들을 꼼꼼히 챙겨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그 결과 중국,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등 저임금으로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던 국가들을 물리치고 2010년 4월 마침내 수주에 성공했다.

두 번째 도전은 카자흐스탄이었다. 카자흐스탄 교통통신부가 발주한 사업비 약 1200억 원 규모, 48km의 쉽켄트~투르키스탄 구간의 카자흐스탄 남서고속도로 4공구(2011.3-2014.10)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이 경쟁에서 포스코건설은 한국 건설사는 물론, 중국, 이탈리아, 터키 등 외국 건설사까지 제치고 2010년 8월 수주에 성공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도 그렇고, 카자흐스탄도 그렇고 중앙아시아 첫 진출 작품이라 프로젝트 수행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현지 기후, 관습, 시장 여건, 제도 등 낯선 환경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공사 물량에 비해 부족한 공사 기간 때문에 공기 준수를 위해 야간작업과 돌관공사를 병행해야만 했다.

“CIS 국가 특유의 권위주의적 책임 회피성 업무처리로 공사 진행이 쉽지 않았다. 그보다 국제 계약공사 경험이 부족해 적자를 보았으며, 대형 프로젝트 수행 능력 부족도 큰 아쉬움이었다.” (박상훈 Director, 현장소장)

비록 적잖은 수업료를 치렀지만, 학습효과와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공기를 준수함으로써 발주처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가장 큰 성과는 공사 품질력을 알린 것이며, 이로 인해 우즈베키스탄 내에서 경쟁력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 프로젝트에서는 건설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인데다 공사현장이 오지에 위치해 인력확보에 어려움이 많았다. 우즈베키스탄과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시행착오도 많았다. 일례로 계약보다는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무리한 보상요구와 작업중지 지시 등의 공사 방해로 많은 곤혹을 치렀다.

“다소 공사가 지연되긴 했으나, 품질에 대해서는 발주처와 감리단으로부터 크게 인정받은 점은 큰 성과였다. 더욱이 혹한기에 대처할 수 있는 경험의 확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됐다.” (박찬호 Director, 현장소장)

실패를 극복하고 이룩한 그간의 성과에 힘입어 2013년 12월말 포스코건설은 카렉 A380 프로젝트의 추가 수주에 성공했다. 유럽, 중국, 터키 등 13개 건설사와 열띤 경합을 펼쳐 사업비 1억 7500만 달러 규모의 우즈베키스탄 키실락 지역부터 가질 지역까지 약 85km 구간의 실크로드 공사를 수주했다.

 

# 환경 분야 해외진출, 매운 중동 모래바람에 고전

해외사업 총동원령에 환경 분야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2010년 포스코건설은 물환경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의욕적으로 해외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첫 경험은 아픈 법이다. 수업료가 많이 들었다. 강한 의욕을 가지고 가장 먼저 중동으로 달려갔지만, 매서운 모래바람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아부다비 담수저장 및 회수설비 프로젝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하수처리장 프로젝트가 그랬다.

2010년 8월말 수주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프로젝트는 미르파 담수 배관망으로부터 잉여담수를 받아 하루 3만 톤씩 최대 2700만 톤을 사막 지하 85m 대수층에 저장하는 사업으로, 이는 아부다비 시민 44만 명에게 90일간 식수를 제공할 수 있는 양이었다. 현지 건설사인 ACC와 공동으로 수주했으며, 사업비는 1억 9750만 달러 규모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포스코건설은 담수저장소 3개소와 펌프장 4개소, 길이 161km의 배관망 등을 신설하는 공사를 수행했다.

수주 당시만 하더라도 독일의 린덴버그를 비롯해 7개의 세계적인 기업과 경합을 펼쳐 승리를 쟁취한 만큼 회사 내부적으로 상당히 고무돼 있었다. 그러나 이후 프로젝트 수행 과정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설계 부실이었다. 주간사인 ACC의 경우 EPC 경험이 부족해 프로젝트 진행을 원활하게 이끌어가지 못했다. 발주처인 아랍에미리트 수전력청 아드위아는 설계변경에 따른 추가공사가 필요한데도 이에 따른 추가비용과 공기연장을 인정하지 않아 프로젝트 진행이 답보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포스코건설 역시 실패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사전준비가 부족해 리스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특히 물량과 단가를 정확히 계산해내지 못했다. 결국 첫 성과에 눈이 먼 성급한 판단이 화를 자초했다.

아부다비 프로젝트에 이어 2011년 2월 한라산업개발과 함께 수주한 사업비 8500만 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하수처리장 건설사업 역시 시련의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사우디 제다항 북쪽 350㎞ 지점에 있는 홍해연안 얀부 산업단지 내 하수처리장의 하루 처리용량을 2배 확장해 하루 4만 7000톤의 하수를 처리할 수 있도록 개조, 증설하는 건설공사였다.

한라산업개발의 참여 요청으로 이 프로젝트에 발을 들여 논 포스코건설은 아부다비 담수와 마찬가지로 수주 성과에만 연연했다. 수주 당시부터 적자가 빤히 보였지만, 한라산업개발이 제시한 매출이익 1% 보장 조건만 믿고 덜컥 미끼를 물었다.

설상가상으로 한라산업개발이 개인회생 절차를 밟으면서 이 프로젝트는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었고, 법원마저 계약무효를 선언함에 따라 손실의 폭이 커져갔다. 심지어 포스코건설은 거덜난 사업을 떠안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우리가 주간사가 돼 공사를 재개하는 과정에서 설계 오류, 부실시공 등을 바로잡는 작업이 쉽지 않았고, 발주처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마라픽과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데도 많은 공력이 들었다. 비록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의 대외 신인도를 지키기 위해 성공적 사업수행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박근 전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 동유럽 첫 진출, 국내 최초 폴란드 소각플랜트 수주

두 번의 실패는 큰 고통이었으나, 한편으론 좋은 보약이었다. 환경 분야는 실패를 교훈 삼아 해외시장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웠으며,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치밀한 전략으로 해외사업에 임하는 태도를 몸에 익혔다.

그 결과 폴란드 소각플랜트를 수주하며 동유럽 첫 진출에 성공했고, 중남미 하수도개선 마스터플랜 수립 지원사업에 참여해 시장탐색과 사업발굴을 병행했다. 베트남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수주 역시 철저한 사전준비와 치밀한 전략의 결과였다.

2012년 11월 포스코건설은 폴란드 크라쿠프시가 발주한 2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생활폐기물 에너지화 발전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이 사업은 소각로 2기와 열병합 발전설비가 들어가는 프로젝트로, 하루 약 680톤, 연간 약 22만 톤의 생활폐기물을 처리하게 되며, 처리된 폐기물은 에너지로 재활용돼 연간 약 9만 5000MWh의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폴란드 소각플랜트는 원래 에너지사업본부가 발굴해낸 사업이었다. 2008년경부터 에너지사업본부는 동유럽의 소각플랜트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 EU는 동유럽의 환경개선을 위해 환경 인프라 지원펀드를 만들어 대규모 소각플랜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는 매립 방식의 동유럽 폐기물을 소각으로 전환하는 사업이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1차 펀드가 동유럽에 지원됐는데,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은 나라가 지원펀드에서 46%나 확보한 폴란드였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의 동유럽 소각플랜트 사업 참여는 쉽지 않았다. 이 시장은 유럽과 일본업체들이 양분하고 있었고, 원천기술의 대부분도 유럽업체들이 보유하고 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에너지사업본부는 이 사업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1년경 2차 펀드에 대한 사업자 모집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에너지사업본부는 동유럽 국가 중 폴란드에 집중했고, 지원금 유치에 나선 슈체진, 코닌, 비알리스톡, 크라쿠프 등 5개 지자체 중에서도 사업 규모가 가장 컸던 크라쿠프시를 선택했다.

사업 규모가 큰 만큼 이익률도 좋았다. 그러나 그만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기도 했다. 첫 사업에 대한 리스크 우려로 사업참여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갈등의 순간, 폴란드 네트워크가 탄탄한 삼성물산이 손을 내밀었다. 절호의 찬스이긴 했으나, 그들이 내민 손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까지는 좀 더 고민이 필요했다. ‘자기네도 건설조직이 있는데, 왜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별 이득이 없으니 버린 카드가 아닐까?’ 하는 식의 조직 내부의 의혹부터 풀어나가야 했다.

“사실 그들은 실리를 따져 우리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룹차원에서 대승적으로 협력할 수도 있지만, 한 푼이라도 수익을 더 내야 하는 비정한 경쟁체제에서 그들은 자기네 건설조직보다 우리와 협력하는 것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박재영 Sr.Manager, 해외영업그룹 근무)

2011년 1월경 든든한 에이전시를 확보하고 본격적인 사업참여에 시동을 걸었지만, 가장 중요한 기술선 확보가 쉽지 않았다.

유럽이나 일본의 메이저 기술선들은 경험 없는 포스코건설을 외면했다. 어쩌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도 가장 중요한 가격협상에서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메이저 기술선들은 100% 기자재공급을 요구했고, 포스코건설은 핵심기술만을 원했다.

포스코건설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술축적이 필요했고, 또 기자재공급 범위를 줄여야 입찰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같은 태도는 사우디아라비아 얀부나 아부다비 담수 프로젝트 때와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성급하게 첫 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고민하고, 다음 프로젝트까지 준비하는 치밀한 태도로 변모한 것이었다.

결국 포스코건설은 메이저 카드를 버리고 마이너 카드를 집어 들었다. 독일업체 렌트제스(Lentjes)를 기술선으로 선택했다. 회사 규모가 작았던 렌트제스는 리스크를 우려해 기자재공급 범위 확대를 오히려 부담스러워 했다. 포스코건설로서는 이상적인 기술선이었다.

비록 마이너와 마이너끼리의 만남이었지만, 두 회사의 열정만큼은 메이저 기업을 압도했다. 렌트제스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도 포스코건설의 입찰준비를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이는 유럽기업 정서상 드문 사례였다.

2011년 9월 포스코건설의 제안서가 PQ를 통과하면서 이 프로젝트의 업무가 환경부서로 이관됐다. 이후 본격적인 입찰경쟁에는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4개 업체가 뛰어들었다. 대부분 폴란드 업체가 유럽과 일본의 쟁쟁한 기술선들과 연대했다.

특히 모스토스탈(Mostostal)과 일본의 기술선 히타치, PBG와 프랑스 기술선 CNIM의 조합은 결코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느껴졌다. 모스코스탈과 PBG는 폴란드 내에서 우리나라 삼성그룹과 비슷한 거대기업으로 알려져 있었다. 포스코건설로서는 그나마 폴란드업체 버디멕스(Budimex)와 벨기에 기술선 괴펠(Keppel)이 팀을 이룬 그룹만이 해볼 만한 경쟁자로 느껴졌다.

이후 7개월간의 준비작업 끝에 2012년 4월 최종 경쟁입찰이 실시됐다. 결과는 모스토스탈-히타치의 승리였다. 포스코건설은 최하위 4위를 기록했다.

초라한 성적에 고개를 떨구고 발길을 돌리려던 그 순간, 행운의 여신이 포스코건설 앞에 강림했다. 행운의 여신이란 폴란드만의 독특한 절차적 합리주의인 어필링 프로셔(appealing procedure)였다.

“어필링 프로셔는 입찰이 끝나도 낙찰자의 제안이나 기술에 문제가 있다면 나머지 경쟁자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때 반론의 진실여부를 판단하는 조직이 중재위원회이며, 중재위원회에 의해 반론이 인정되면 낙찰자는 자격을 잃고 재입찰이 실시된다.” (구기욱 전 상무)

이 과정이 무려 3차례에 걸쳐 6개월이나 이어졌다. 첫 반론에서 모스토스탈-히타치가 탈락했고, 두 번째 반론에서 PBG-CNIM이 탈락했다. 심지어 세 번째 반론에서 버디멕스-괴펠까지 탈락해 포스코건설만이 남았다.

그 사이 폴란드 정부나 크라쿠프시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다른 지역은 벌써 사업자를 선정하고 사업추진 준비를 마쳤지만, 가장 규모가 큰 크라쿠프 프로젝트만이 어필링 프로셔에 발목이 잡힌 것이었다. 결국 크라쿠프시는 더 이상의 재입찰을 포기하고 포스코건설을 최종 사업자로 선정했다.

폴란드 소각플랜트의 수주 승리는 능력 있는 에이전시의 만남, 열정적인 기술선의 확보도 주요 성공요인이었으나, 공공조달 최고 전문가 집단의 로펌을 파트너로 유치한 것 역시 주효했다. 이들은 어필링 프로셔 기간에 포스코건설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유리한 상황들을 조성해나갔다. 그밖에 다급해진 폴란드 정부가 사업자 선정을 서두르는 등 전반적으로 운이 좋았고, 경영진의 적극적인 지원도 큰 힘이 됐다.

그보다 가장 큰 성공요인은 해외사업에 대한 실무진들의 태도 변화였다. 그들은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았고, 철저한 준비작업과 치밀한 전략으로 프로젝트 수주를 성공으로 이끌어갔다.

2013년 7월 착공, 2015년 12월 준공 예정인 폴란드 소각플랜트는 2014년 7월 말 발전시설의 핵심설비인 보일러드럼 상량식과 함께 60%의 공정률을 보이면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 중남미 하수도사업 진출, 신규사업 발굴을 모색하다

중남미 하수도개선 마스터플랜 수립 지원사업은 환경부 지원의 개도국 원조사업이며, 포스코건설로서는 사업발굴과 시장탐색을 위한 장기적 안목의 전략사업이었다. 포스코건설은 환경부가 발주한 세계 각지의 지원사업 중 중남미 지역을 선택했다.

중남미를 선택한 이유는 에너지사업본부가 이 지역 발전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하는 등 사업수행에 필요한 충분한 네트워크를 갖추기 때문이었다.

2012년 환경부 공모에서는 페루를 선택하고 입찰경쟁에 나섰다. GS건설, 대림건설, SK건설, 롯데건설 등과 경합을 펼쳤으나, 포스코건설이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수주에 성공했다. 수주 성공요인은 페루에 지사가 있는 등 경쟁사들보다 중남미에 대한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이며, 제안서의 내용 역시 경쟁사들보다 뛰어났다.

사업추진 과정에서는 많은 후속 사업들이 발굴됐지만, 개발자금 확보가 여의치 않아 실제 사업화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됐다. 그럼에도 포스코건설은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지역밀착에 의미를 두고 향후 투자 여건 개선을 기대했다.

2013년 환경부 공모에서는 멕시코, 콜롬비아, 미얀마, 라오스 등의 프로젝트들이 나왔다. 이 중에서 포스코건설은 멕시코를 선택했다.멕시코의 선택도 페루와 마찬가지로 제철 플랜트의 거점이 이곳에 있어 사업수행이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제철 플랜트는 이 지역에서 포스코의 CGL공장을 건설하고 있었다.

특히 멕시코는 수주 실패의 아픔을 겪었던 지역이기도 했다. 2008년경 포스코건설은 멕시코 하수처리장 경쟁입찰에 뛰어들었으나,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스페인 업체에게 패배를 당했다. 실패 원인은 운영관리 능력의 부족이었다.

포스코건설이 EPC 역량만 갖추고 있었던 반면, 경쟁사인 스페인 업체는 운영관리 능력을 갖춰 운영권까지 확보함으로써 건설공사에서의 적자를 만회할 수 있었다. 이 사업 실패를 통해 포스코건설은 운영관리 능력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으며, 멕시코 하수도개선 마스터플랜 수립 지원사업을 통해 이 지역에서의 사업재기를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베트남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베트남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베트남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수주는 글로벌 기업 간 협력이 빚어낸 걸작이었다.

포스코건설은 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프랑스, 일본 대표 수처리 업체와 글로벌 드림팀을 구성했다. 프랑스 업체는 세계적 수처리 기업인 베올리아 자회사인 오티브이로, 수처리를 비롯해 해수담수화, 물재이용 분야에서 많은 경험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 업체인 히타치는 하수 및 산업폐수 처리 분야에 강점을 지닌 기업이었다. 각 사별 지분은 포스코건설 57%, 오티브이 32%, 히타치 11%였다.

글로벌 드림팀의 파워를 바탕으로 2014년 1월 포스코건설은 1억 2000만 달러 규모의 베트남 호치민 하수처리장 2단계 건설공사 수주에 성공했다.

호치민 하수처리장 2단계 공사는 기존 1일 처리용량 14만 1000톤을 1일 32만 8000톤으로 증설하는 사업이었다. 이 사업에서 포스코건설은 토목과 건축 시공을, 오티브이는 수처리 기자재 조달 및 설치를, 히타치는 슬러지 기자재 조달과 설치를 수행했다.

“호치민시 하수처리장 수주는 시장규모가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환경시장보다는 많은 먹거리가 있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 대규모 사업을 발굴해 수주에 성공했다는 의미가 있었다. 앞으로도 우리 토목환경사업본부는 이 사업 수주 성과를 기반으로 베트남을 비롯한 세계 각국 수처리사업에 적극 도전할 계획이다.” (최용석 토목환경사업본부장)

 

# 중국사업단과 동남아사업단의 활동과 현지화 성공

중국과 동남아에서도 한국본사의 해외사업 못지않게 눈부신 활약상을 펼쳤다. 중국사업단에서는 중국건설법인을 주축으로 다롄 포스코IT센터, 베이징 포스코센터, 훈춘 포스코현대국제물류단지 등의 개발사업을 수행했다. 동남아사업단에는 베트남에서 베트남법인, IBC법인, 안카잉법인, 하노이사무소 등이 활동하고 있으며, 캄보디아에서도 캄보디아법인 등이 활동하고 있다.

2005년 4월 포스코건설은 중국 내 제철설비의 설계 및 공급 위주에서 현지 건설공사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중국건설법인을 설립했다. 중국건설법인은 2008년 장자강 설비법인을 인수해 종합건설사로서의 성장과 발전 기반을 구축했으며, 2010년에는 중국 내 한국계 건설사로서는 최초로 1급 건설면허와 해외 건설면허를 동시에 취득, 현지화에 성공했다.

제철 플랜트 분야에서는 한국본사의 중국산 설비 공급의 창구로서 중국, 베트남, 인도, 멕시코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건축 분야에서는 대표적으로 주중 한국대사관 리모델링(2006.11~2007.3),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저(2007.4~2008.6), 중국 난닝 동맹국제상무구 한국원(2008.9~2009.12), 옌타이 한국상성건축(2009.10~2011.12)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11.4.25 중국 다롄 포스코IT센터 기공식

2011.4.25 중국 다롄 포스코IT센터 기공식

다롄시 포스코IT센터는 한국업체 최초의 중국 내 복합개발사업이었다. 사업비 3000억 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다롄시 가오신구 내 루밍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파트의 경우 7개동 1034세대, 지하 1층과 지상 23층 규모로 2011년 착공, 2014년 3월 준공됐다. 오피스는 1개동으로 지하 2층과 지상 27층 규모였으며, 2013년 3월 착공해 2015년 10월 준공 예정이다.

분양 과정에서는 더샵의 중국 브랜드 ‘포스코웨이(浦項道)’를 선보였다. 포스코웨이는 내부 가구를 모두 남향으로 배치하고, 친환경 마감재 사용, 현관 시스템 수납장, 알파 룸, 다양한 옵션 선택권을 부여하는 등 한국형 최신 아파트의 장점을 살린 거주자 중심의 설계로 분양 과정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베이징 포스코센터는 1999년 상하이 포스플라자 이후 두 번째로 추진된 포스코의 이름을 내건 랜드마크 사업이었다. 2010년 9월, 40년 운영 후 기부체납하는 조건으로 상하이 녹지그룹의 3호 부지를 확보했다. 오피스 2개동으로 구성됐으며, 지하 4층과 각각 지상 25층, 지상 33

2011.3.17 중국 북경 포스코센터 기공식

2011.3.17 중국 북경 포스코센터 기공식

층 규모였다. 2011년 8월 착공, 2014년 8월 준공됐으며, KOTRA를 비롯해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협협회,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의 현지 법인 등 25개사가 입주할 예정이다.

훈춘 국제물류단지는 포스코 패밀리(80%)와 현대그룹(20%) 합작사업이었다. 두 그룹은 중국 동북3성을 무대로 하는 물류기지 구축과 대북진출 거점 확보라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총 150만 ㎡ 부지를 중국 정부로부터 50년간 임차해 인프라 및 세제혜택 등을 제공받고, 물류창고, 콘테이너 야적장, 집배송시설 등을 개발 운영하는 사업으로, 사업비 2000억 원 규모였다. 개발은 3단계로 나눠 추진되며, 1단계 사업은 2013년 3월 착공, 2014년 10월 준공됐다. 향후 2019년 12월까지 모든 개발이 완료될 예정이다.

동남아사업단에서는 베트남법인이 많은 활동을 펼쳤다.

2011.5.12 중국 훈춘 물류단지 주주협약식

2011.5.12 중국 훈춘 물류단지 주주협약식

베트남법인의 전신은 포스리라마이며, 호치민시로부터 60km 떨어진 동나이성 롱탄 지역에 위치해 있다. 1995년 6월 베트남 건설성 산하 리라마와 합작으로 설립됐다. 1996년 철구공장 준공 이후 철구조물 제작 전문업체로 출발했으며,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일반건축과 토목, 플랜트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1999년에는 ISO 9001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월 생산량 200톤 이하, 공장 가동률 20~30% 등 영업이익률이 극히 저조했다. 이에 경영난 타개를 위해 위탁경영과 직영관리 등을 실시했으나, 사업관리 미숙으로 이익률이 계속 떨어졌다.

계속되는 경영난 속에서 포스리라마는 2007년부터 플랜트와 토건 시공 중심으로 사업방향을 전환했다. 그 결과 경영정상화에 성공하고 흑자 전환했다. 이윽고 2010년 6월 포스코건설이 리라마의 지분을 전량 인수함에 따라 포스리라마는 포스코이앤씨 베트남법인으로 거듭났다.

이후 포스코 프리미엄으로 성장을 지속하고 현지화에도 성공해 현지 건설사들과 대등한 경쟁을 펼치기 시작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한국본사, 중국건설법인과 협력해 원료처리공장, 열연공장, 화성공장 등 대만 포머사 베트남 제철소 프로젝트를 연속으로 수주하며 성장에 날개를 달았다.

베트남법인 외에 IBC법인은 호치민에서 다이아몬드플라자를 운영하고 있으며, 안카잉법인은 스플랜도라 신도시 건설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캄보디아법인은 바타낙 캐피탈 타워 프로젝트 수행 이후 현지에서 각종 건설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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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3. 에너지와 플랜트의 도전, 동남아 진출과 일관제철소 꿈 이루다

# 칠레에서는 포스코건설이 한국기업 넘버 원으로 통한다

2010.3.30 칠레 산타마리아 발전소 계약식

건축과 토목 분야가 베트남에서 건설한류 전파를 주도했다면 에너지 분야는 중남미에서 한류 전파에 앞장섰다. 포스코건설은 칠레 벤타나스 성공신화를 바탕으로 캄피체, 앙가모스, 엘살바도르에 이어 산타마리아Ⅱ, 코크런, 카스틸라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공사를 연속으로 수주했다.

2010.3.30 칠레 산타마리아 발전소 계약식

2010년 3월 수주한 산타마리아Ⅱ는 사업비 7억 달러 규모의 발전용량 400MW급 석탄화력발전소였다. 발주처는 칠레 2위의 전력생산업체인 콜번사이며, 발전소의 위치는 산티아고에서 남서쪽으로 약 450km 떨어진 항구도시 코로넬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수주 배경은 벤타나스 후광이었다. 산타마리아Ⅰ 발전소는 벤타나스와 함께 착공에 들어갔으나, 벤타나스만 준공에 성공하고 산타마리아Ⅰ은 시공을 맡았던 유럽업체가 중도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콜번의 경영층이 도움을 요청해왔고, 포스코건설의 기술력으로 마침내 산타마리아Ⅰ 발전소가 준공에 성공했다. 따라서 산타마리아Ⅱ는 산타마리아Ⅰ에 대한 감사의 선물이라 할 수 있었다. 더욱이 다른 입찰 참가자보다 가격이 높았으나, 콜번측은 이를 프리미엄으로 인정하고 포스코건설을 선택했다.

2011년 11월 칠레 발전사업자 코크런으로부터 수주한 코크런 발전소는 앙가모스 옆 부지에 266MW급 석탄화력 발전설비 2기를 신설하는 EPC 턴키 프로젝트였다.총 사업비는 9억 달러 규모였다.

산타마리아Ⅱ와 코크런에 이어 2012년 6월 포스코건설은 브라질계 다국적 전력회사인 MPX사로부터 카스틸라 발전소를 수주했다. 사업비는 15억 달러 규모이며, 350MW 석탄화력 발전설비 2기를 신설하는 EPC 턴키 프로젝트였다.

카스틸라 역시 산타마리아Ⅱ처럼 벤타나스 후광이 수주 배경이었다. 벤타나스의 성공을 지켜본 MPX는 포스코건설이 자신들의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하길 원했다.

그러나 벤타나스의 발주처였던 AES가 자사 발전사업에만 집중해줄 것을 요구했고, 포스코건설 역시 벤타나스에 이어 캄피체와 앙가모스를 수행하느라 MPX의 요청을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앙가모스의 성공적 준공 이후 포스코건설은 마이웨이를 선언하고 MPX의 카스틸라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입찰 결과 가격이 경쟁자였던 SK건설보다 3000만 달러가 더 높았는데도 MPX는 포스코건설의 손을 들어주었다. 산타마리아Ⅱ와 마찬가지로 최고 EPC 기술력에 프리미엄을 인정한 것이었다.

한편 벤타나스 성공신화에 이어 앙가모스 발전소가 또 하나의 성공신화를 만들어냈다. 2011년 11월 성공적인 준공으로 칠레 사회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어려움이 많았던 프로젝트였다. 그 중에서도 칠레 대지진과 근로자 파업이 가장 힘들었다. 그럼에도 조기 준공의 성과를 달성해 발주처로부터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반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종규 상무)

2010년 2월 발생한 칠레 대지진은 위기이자 기회였다. 이 대지진으로 칠레 연안에는 쓰나미가 덮치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524명이 사망하고 31명이 실종됐으며, 300억 달러의 재산 피해가 났다.

해안에 인접한 벤타나스 현장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다행히 공사현장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최고의 내진 설계를 한 포스코건설의 품질 시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칠레 대지진은 공사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는 위기이면서 포스코건설의 기술력을 알리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대지진으로 인한 아름다운 일화도 있었다.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포스코건설은 앙가모스 현장의 현지 근로자들에게 격려금을 나눠주고 대지진이 발생한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뿐만 아니라 포스코건설 직원들도 피해 현장으로 달려가 위문품을 전달하는 등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에 칠레 사회가 큰 감동을 받았고, 피해복구 이후 고향에서 돌아온 현지 근로자들 역시 감사의 표시로 더욱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45일의 공기 지연은 막을 수가 없었다. 공기 지연을 만회하기 위해 포스코건설은 밤낮을 잊은 채 돌관공사에 들어갔다.

지진의 위기를 넘기자 2010년 8월 노조파업이란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다. 어려운 상황을 맞아 포스코건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최고의 법률팀으로 현지 법원으로부터 불법파업 판결을 얻어내 합법적 해고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 결과 3일 만에 노조와의 협상이 타결돼 빠른 시일 내 공사를 정상화시킬 수 있었다.

앙가모스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성과는 조기 준공이었다. 지진과 노조파업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포스코건설은 조기 준공은 물론, 500만 시간 무재해 기록을 세워 발주처로부터 약 70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았다.

그리고 환경과 안전 등을 포함한 각종 규제가 유럽 선진국만큼이나 까다로운 칠레 정부의 인허가 기준을 만족시켜 칠레 사회로부터 무한한 신뢰를 얻었다.

특히 벤타나스에 이어 앙가모스에서도 성공신화를 창출해내면서 칠레 사회에서 한국기업에 대한 인지도가 바뀌었다. 한국기업이라면 삼성과 LG만을 떠올리던 칠레인들이 앙가모스 이후 포스코건설을 한국 최고기업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발전플랜트 나비효과, 중남미 날개짓에 이스라엘이 들썩이다

칠레에서 포스코건설의 활동은 금방 입소문을 타고 중남미로 퍼져나갔다. 입소문의 진원지는 KOTRA로, 포스코건설의 칠레 활약상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이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나라가 페루였다. 당시 페루 정부는 경제성장으로 2017년까지 매년 10%씩 전력수요 증가가 예상됨에 따라 민간발전사업자를 통한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들 발전사업자 중 이스라엘 인키아에너지사의 페루 현지법인 칼파제너레이션이 칠레에서의 활약상을 듣고 포스코건설에게 입찰참가를 요청한 것이었다.

“2008년 11월경 사업정보를 입수하고 페루로 날아가 보니 이미 지멘스와 한국기업으로는 H사가 한창 물밑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H사가 우리 실적을 자기네 실적으로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가장 먼저 경쟁에서 탈락했다. 지멘스의 경우 그 동안 페루에서 폭리를 많이 취해 기업이미지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래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김원석 상무)

페루 칼파 발전소

페루 칼파 발전소

칠카우노 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

칠카우노 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

2009년 9월 경쟁입찰에서 포스코건설은 세계 유수의 경쟁사인 아벤고아, 지멘스 등을 제치고 사업비 3억 5000만 달러 규모, 발전용량 830MW급의 칼파 LNG 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이 프로젝트는 페루 리마에서 약 62km 떨어진 칠카에 위치한 기존의 발전시설을 복합발전시설로 개조하는 것이 주요 사업내용이었다.

특히 칼파 발전소 수주는 국내 건설사 가운데 첫 페루 에너지시장 진출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칼파에 이어 포스코건설은 칠카우노 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에도 도전했다. 프랑스 GDF 수에즈사의 페루 현지법인 에네루수르사가 발주한 이 프로젝트는 사업비 2억 9000만 달러 규모, 발전용량 810MW급의 LNG 복합화력 건설사업이었다.

칼파와 칠카우노 발전소는 각각 2012년 8월과 11월에 성공적으로 준공됐으며, 특히 칠카우노 발전소는 조기 준공의 성과도 달성했다.

칼파 발전소 수행 과정에서는 중남미 EPC 중견기업 산토스CMI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산토스CMI는 칼파 프로젝트에서 협력사로 참여 중이었는데, 향후 성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포스코건설에게 M&A를 요청해왔다.

이 회사는 2010년 기준 매출 1920억 원을 올린 에콰도르 최대의 플랜트 시공업체로, 1994년 설립 이래 중남미 18개국에서 발전, 화공, 토목 등의 분야에서 130여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왔으며, 미국 GE사의 최우수 협력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포스코건설은 2020 싱크포워드 비전에 따라 산토스CMI 인수를 결정했다. 싱크포워드 비전에서 중남미는 포스코건설이 선택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실제 해외사업에서도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가도를 달려왔다. 그러나 프로젝트 수가 증가할수록 지리적, 언어적, 환경적 문제 해결이 선결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현지화 전략의 일환으로 산토스CMI 인수를 결정했다.

칠레에서 활약이 입소문을 타고 이웃나라 페루로 날아가더니, 이번에는 페루에서 활약이 입소문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을 가로질러 이스라엘까지 닿았다.

입소문의 진원지는 칼파의 발주처 칼파제너레이션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본사 인키아에너지사에 포스코건설의 활약상을 소개했고, 이에 인키아는 포스코건설을 이스라엘까지 불러들여 프로젝트를 맡겼다.

이스라엘 로템 복합화력발전소

이스라엘 로템 복합화력발전소 전경

R 프로젝트라 명명된 이 사업은 네게브 사막 미소르 로템 산업지역에 427MW급의 복합화력발전소를 짓는 신설사업이었다. 2010년 9월 착공, 2013년 7월 준공됐으며, 이스라엘 최초의 민간발전사업이란 점에서 지역사회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스라엘에 첫 진출한 포스코건설은 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많은 성과를 달성했다. 우선 철저한 사전조사와 엄정한 평가를 통해 우수 현지업체를 발굴했으며, 또 설비의 운송기간 및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해냈다.

“낯선 언어인 히브리어를 접해야 하는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까다로운 규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지 적응을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제외근거를 마련해서 인허가 관련 관공서, 발주처, 현지 설계사들을 설득, 설계변경 승인을 얻어냈다. 그 결과 이익률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었으며, 회사가 뽑은 2011년도 최우수현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희성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이 같은 성과에 이스라엘 사회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대용량의 발전소가 한 점의 오차도 없이 준공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포스코건설의 기술력에 크게 감탄했다. 포스코건설로서는 입소문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한편 2011년 2월 산토스CMI 인수이후 포스코건설은 자사가 수행 중이던 중남미 프로젝트에 산토스CMI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신규사업 발굴에서도 상호 협력해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모았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페루 노도 발전플랜트였다.

당시 페루 정부는 향후 남부지역에서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2단계에 걸쳐 총 2000MW의 발전소 건설을 계획했다. 이 계획에 따라 페루 현지 발전회사인 싸마이사가 리마에서 약 1055km 떨어진 남부지방 모옌도에 사업비 3억 달러 규모, 발전용량 720MW급의 노도 가스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

포스코건설은 2013년 10월 프로젝트 정보를 입수하고, 산토스CMI와 공동으로 이 프로젝트 수주에 나섰다. 이 사업에서 포스코건설은 설계와 설비공급을, 산토스CMI는 시공을 수행하기로 했다.

경쟁입찰에서는 독일의 지멘스, 스페인의 아벤고아, 테크니카스 레우니다스 등과 치열한 경합을 펼쳤다. 그 결과 2014년 1월말 포스코건설이 수주에 성공하며 중남미 에너지 플랜트 강자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노도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성과는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확보한 것이었다. 포스코건설은 최저가 낙찰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의 입찰경쟁에서 EPC 기술력을 당당히 인정받아 이 사업을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수주했다.

또 산토스CMI와 동반 협력을 통해 수주 창출에 성공한 것 역시 큰 성과였으며, 향후 발주 예정인 2단계 사업 수주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한 점도 나름 의미 있는 성과였다.

 

# 동남아 발전플랜트 진출 모색과 사업영역 다양화

칠레와 페루에서 EPC 기술력을 크게 인정받았지만, 2010년 이후 마르지 않을 것 같았던 중남미 블루오션에 이상 징후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환경문제로 산타마리아Ⅱ와 카스틸라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공사가 중단됐으며, 칠레 산업의 중심이자 발전소의 최대 수요자였던 광산산업 역시 구리 가격 하락으로 침체기를 맞았다. 칠레 석탄화력을 뒤로 하고 페루 가스화력발전으로 방향을 전환했지만, 만족할 만큼의 프로젝트 물량이 나와 주지 않았다.

성장 정체를 타개할 특단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에 에너지 분야는 자신만의 강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칠레에서 터득한 석탄화력 기술력에 최고 점수를 주었다. 그리고 강점을 살려나갈 메이저 시장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동남아시아를 선택하고 사업발굴에 나서기 시작했다.

에너지 분야 해외사업 강점인 석탄화력 외에도 포스코건설은 중유발전, 수력발전 등에서도 성과를 냈다. 이라크 쿠르드 중유발전은 국내 에너지사업부서가 한국석유공사를 통해 발굴해낸 사업이었다.

2008년 한국석유공사는 쿠르드 자치정부와 지역 내 유전개발 합의 과정에서 발전소 건설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2012년 8월 포스코건설은 전체 7억 달러 규모의 이 사업을 한국석유공사를 통해 수주함으로써 중동 발전시장에 첫 진출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포스코건설의 임무는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 수도 아르빌에 300㎿급 화력발전소와 술라이마니야 지역에 400kV급 변압시설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중유발전에 이어 수력발전 해외진출에도 성공했다. 2013년 4월 포스코건설은 65MW급 규모의 라오스 남릭1 수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수주했다.

이 사업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포스코건설은 태국 국영에너지기업인 PTTI, 발전설비사인 HEC, 라오스 전력청 등과 NL1PC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사업비 1억 2000만 달러 규모의 이 사업은 BOT방식으로 추진되며, NL1PC법인이 준공 후 27년간 운영한 뒤 라오스 정부에 기부채납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이 시기 에너지 분야는 중남미 발전시장 위축에 대한 대안으로 성장 잠재력이 큰 동남아 시장 진출을 모색했으며, 아울러 수력, 풍력 등 사업군을 다양화하면서 사업영역 확대를 도모했다.

 

# 일관제철소의 꿈, 포스코-인도 하공정부터 시작

세계 최고의 제철 플랜트 기술력을 자랑하는 포스코건설에게는 못 다 이룬 꿈이 하나 있었다. 포스코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강의 제철강국을 이룩했지만, 허전한 그 무엇이 있었다.

포스코건설과 모기업 포스코가 꿈꾸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해외 일관제철소 건설의 꿈이었다. 포스코는 포항과 광양의 일관제철소 성공신화를 기반으로 전 세계 곳곳에 포스코왕국 건설에 나섰으며, 포스코건설 역시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일관제철소 건설의 꿈을 해외사업을 통해 실현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 꿈의 실현을 향한 도전 스토리는 먼저 인도에서 시작됐다. 2000년대 중반 포스코는 해외 첫 일관제철소 부지로 인도를 선택했다. 철강원료가 넘쳐나고, 거대시장을 보유한 나라 인도는 성장 잠재력도 높아 그만큼 사업기회 선점의 타당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다. 특히 포스코가 전략적으로 선택한 오디샤주에는 철광석이풍부하게 매장돼 있었다.

2005년경 포스코는 인도 오디샤주 정부와 연산 1200만 톤 규모의 일관제철소 건설을 위한 MOU를 체결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일관제철소 도전에 나섰다. 2020년까지 12조 원의 투자가 예상되는 이 프로젝트는 한국기업의 해외 단일투자로는 최대 규모였으며, 인도에서도 외국인 직접 투자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포스코건설도 오디샤에 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포스코를 따라 인도에 진출하면서 일관제철소 건설의 부푼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이후 오디샤 프로젝트는 2014년까지 9년 동안이나 지지부진한 길을 걸었다. 일부 주민의 반대와 광물자원의 반출문제가 현지 법률과 마찰을 빚으면서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이 같은 오디샤 프로젝트의 위축된 분위기는 2014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이 인도 국빈 방문을 통해 중앙정부에 강력한 협조를 요청하면서 반전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지난 9년간의 지지부진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포스코는 인도에서 일관제철소 건설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디샤주 외에도 카르나타카주, 자르칸드주 등지에서 일관제철소 건설을 타진했다. 특히 상공정의 부진 타개를 위해 우선 하공정부터 건설 추진에 나서 마하라슈트라주 빌레바가드 산업단지 내에 부지를 확보했다.

마하라슈트라주는 폭스바겐, GM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사들과 타타자동차, 마힌드라마힌드라, 바자즈 등 인도 최고의 자동차사 및 부품사들이 포진한 인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다. 포스코는 자동차강판 생산라인 건설과 함께 가공과 판매까지 최적화된 고객서비스 구축을 위해 자동차 및 전기강판 전문 가공센터인 포스코-IPPC를 시작으로 푸네, 델리, 첸나이, 하이데라바드 등지에 5개의 가공센터를 구축해나갔다.

2010.03.15 인도 포스코-마하라슈트라 CGL공장 착공식

2010.03.15 인도 포스코-마하라슈트라 CGL공장 착공식

포스코건설은 포스코-마하라슈트라 하공정에서 CGL과 냉연공장 건설을 수행하면서 아직 꽃 피지 못한 인도 일관제철소 건설의 아쉬움을 달랬다. CGL공장(2009.12~2012.5)은 사업비 1억 9000만 달러, 연산 45만 톤 규모였으며, 냉연공장(2011.5~2013.12)은 사업비 3억 달러, 연산 180만 톤 규모였다.

“CGL 현장은 우리 회사가 인도에서 처음으로 수행한 대형 공사였다. 가장 큰 어려움은 계절적 악조건이었다.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은 40도에서 50도를 육박하는 혹서기였으며,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은 몬순 기후로 우기의 계절이었다. 우리는 몬순 우기 때 지연된 공기를 혹서기 때 야간작업을 통해 만회하는 등 프로젝트의 무사 준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 (김노정 Director, 당시 인도CGL 현장소장)

 

# 멕시코 2CGL, “살아 돌아온 너에게 갈채를 보낸다

2009.08.24 멕시코 포스코 CGL 공장 준공식

2009.08.24 멕시코 포스코 CGL 공장 준공식

인도에서 포스코 CGL공장 건설이 한창일 때 지구 반대편 멕시코에서는 또 하나의 포스코 CGL공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었다.

2009년 6월 멕시코 CGL공장 준공을 계기로 포스코의 멕시코 냉연강판시장 점유율은 단번에 40%대까지 치솟았다.⓺ 포스코-멕시코 CGL이 이처럼 중남미에서 선전하는 가운데 신일본제철과 현지 철강업체 테르니움사가 합작으로 CGL 및 냉연공장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포스코도 2CGL 추진을 서둘렀다.

포스코건설은 1CGL 때의 실패사례에서 교훈을 얻어 2CGL의 전체 EPC를 맡았으며, 설비공급도 품질이 우수한 한국업체 발주로 기준을 정했다.

그러나 경쟁자의 추격에 쫓긴 포스코로부터 무리한 임무가 떨어졌다. ‘신일본제철 프로젝트보다 먼저 준공하라’는 지시에 따라 공사기간을 21개월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체계가 가장 잘 갖춰진 국내에서도 통상 22개월이 기본이었다. 인도 CGL이 27개월이나 걸린 것만 봐도 해외사업에서 21개월은 무리한 일정이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포스코건설 내부에 있었다. 일관제철소의 꿈이 인도네시아와 브라질에서 한꺼번에 터졌다. 그러다 보니 쓸만한 대부분의 인력이 이 초대형 프로젝트로 불려갔다. 멕시코는 한 마디로 찬밥이었다. 파병할 인력이 부족해 신병들로 조직을 급조했는데, 심지어 현장소장도 차장급이었다.

2011년 8월 멕시코 프로젝트 수행 조직이 한국을 떠나던 날, 경영층의 심정은 어두웠다. 실패를 예감한 그들은 아들을 전장에 보내는 부모의 심정으로 무사 귀환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우려했던 대로 많은 실수가 발생했다.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기자재 공급의 지연이었다. 선박 수송과정에서 선적 명령이 잘못 나가 핵심설비가 1개월 보름이나 늦게 들어왔다.

이에 공기준수를 위해 돌관공사를 추진했는데, 그 비용을 고스란히 포스코건설이 물었다. 1CGL 때도 돌관공사를 했지만, 귀책사유가 포스코 측에 있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귀책사유가 자신들에게 있었으니 손실은 손수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많은 실수가 있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경험이 부족했던 젊은 요원들은 실패가 거듭될수록 단단해지고 더욱 성숙해져갔다. 그 결과 가장 어려움이 많았던 시운전 과정에서 ‘젊은 피’의 저력을 과시했다.

“갑작스런 집중 폭우로 지하구조물이 침수됐으며, 핵심설비마저 침수가 우려되자 우리는 인근의 양수기를 총동원했다. 겨우 위기를 넘긴 이후에는 폭우에 대비해 24시간 교대근무를 섰으며, 자다가도 천둥소리만 나면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 결과 끝까지 침수를 막고 시운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박재현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그러나 이 같은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2013년 6월 프로젝트 요원들은 준공을 코앞에 두고 현장에서 철수했다. 포스코가 경쟁자인 신일본제철의 파트너이자 현지 철강업체인 테르니움사로부터 제소를 당했고, 그 결과 현지 법원으로부터 반덤핑 예비판정이란 결정타를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60%의 관세 페널티로 냉연강판을 생산하면 오히려 적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포스코가 준공을 미룬 것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프로젝트 요원들은 준공 실패란 결과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모든 포스코건설 임직원들은 그들의 무사 귀환에 갈채를 보냈다. 모두들 결과보다는 과정을 높이 평가했고, 더욱 성숙해진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한편 포스코-멕시코 2CGL은 법정공방을 슬기롭게 마무리하고 2014년 1월 말 마침내 준공됐다.2CGL 준공으로 포스코는 2009년 연산 40만톤의 1CGL에 이어 총 90만톤 규모를 갖춤으로써 현지기업 테르니움에 이어 멕시코 내에서 제2의 자동차강판 철강사로 부상했다.

 

# 중국보다 높은 가격으로 포머사 베트남 제철소 따내다

1954년에 설립된 포머사 그룹은 석유화학, 정유, 에너지, 섬유, 전자, 중공업, 자동차, 운송사업, IT, 철강 등 40여개 계열사를 보유한 대만의 대표 기업이었다. 포스코가 인도네시아에서 일관제철소의 꿈을 실현할 때 포머사는 베트남에서 그 꿈을 키우고 있었다.

포머사와 포스코건설의 인연은 2009년 포스코-베트남 냉연공장의 성공적 준공으로 시작됐다. 당시 베트남 중부 하띤성에서 연산 700만 톤 규모의 일관제철소 건설을 준비 중이던 포머사의 가장 큰 고민은 공기준수였다. 베트남에서는 유럽이나 일본기업도 기후와 지역 특성상 1년 정도의 공기지연은 관례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베트남 사회에서 포스코 냉연공장의 공기 내 준공은 신선한 화제로 회자됐으며, 포머사도 그 소문을 듣고 포스코건설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

포머사의 요청에 2009년경 포스코건설은 하띤 일관제철소 설비공급 입찰에 참여했으나, 쓸쓸한 패배를 맛보았다. 성심을 다해 포머사를 지원했으나, 결과는 저가로 무장한 중국업체들의 독식이었다. 괜히 소중한 기술자료만 뺏기고 들러리를 선 꼴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2012년 시공관련 입찰이 시작되자 이때도 포머사는 포스코건설에게 참여를 권유해왔다. 입찰 참여를 놓고 내부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또 다시 중국업체들의 들러리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이번만큼은 철저히 준비해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의욕도 흘러나왔다. 결국 포스코건설은 도전정신에 큰 의미를 두고 다시 한 번 입찰 참여를 결정했다.

중국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맞서 포스코건설은 사전에 막강한 사업수행 체계를 구축했다. 본사, 베트남법인, 중국법인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연합작전을 펼쳤다. 본사는 총괄관리와 핵심부품 공급을, 베트남법인은 시공을, 중국법인은 자재공급을 맡기로 했다. 베트남법인의 철구공장 역시 철구 공급에 참여하기로 했다.

막강한 사업수행 체계로 입찰에 임한 결과, 포스코건설은 2012년 말부터 2013년 중반까지 원료처리설비, 열연공장, 화성공장 시공 계약권을 잇따라 따냈다.원료처리설비 공사는 사업비 4억 달러, 연산 700만 톤 규모였으며, 열연공장 시공은 사업비 2억 9200만 달러, 연산 530만 톤 규모였다. 화성공장은 사업비 7400만 달러로, 시간당 150만 N㎥의 가스를 처리할 수 있다.

베트남 하틴제철소 원료처리설비 공사현장

베트남 하틴제철소 원료처리설비 공사현장

베트남 하틴제철소 열연공장 공사현장

베트남 하틴제철소 열연공장 공사현장

당시 입찰에서는 포스코건설 내부 컨소시엄의 효과적인 역할 분담이 가장 큰 승리 요인이었다. 마지막까지 포머사 CEO를 설득한 것도 주효했다. 포스코건설은 포머사 CEO 설득 과정에서 자신들의 기술력과 사업관리 능력을 강하게 어필했다.

“중국업체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점도 효과가 있었다. 덤핑으로 계약을 처리하면 중도에 공사를 포기하는 사태가 올 것이라는 위협에 포머사가 크게 흔들렸다. 결국 중국업체보다 높은 가격을 써내고도 기술력과 사업관리 능력을 인정받아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이호성 Director, 해외영업기획그룹리더)

포머사 프로젝트 외 포스코사업이 아닌 대외사업으로는 동티모르 시멘트 플랜트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동티모르 TL시멘트사가 발주한 3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사업으로, 2013년 12월초 수주에 성공했다. 특히 북동부 바우카우 지역에 연산 150만 톤 규모의 시멘트공장 건설이 주목적인 이 프로젝트는 신생국가 동티모르 내 최대 규모의 민간투자사업이란 점에서 현지 사회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의 수주 성공에는 서호주 대표 건설사인 BGC사와의 협력이 크게 기여했다. 발주처인 TL시멘트사는 BGC사가 100% 지분을 소유한 특수목적법인이었고, BGC사는 포스코건설의 호주 건축시장 진출의 파트너였다. 결국 포스코건설이 BGC사와 그 동안 서호주 페사 프로젝트 등 여러 사업을 통해 쌓아온 신뢰관계가 동티모르 프로젝트 수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었다.

 

# 은 이루어진다!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이번 일관제철소는 한국의 기술과 인도네시아의 우수한 인적자원이 합쳐져 이뤄낸 성과이다. 포스코가 제철보국 이념으로 한국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됐듯 크라카타우포스코도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2013년 12월 23일,마침내 포스코건설과 포스코는 해외 첫 일관제철소 건설의 꿈을 실현했다. 특히 포스코는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를 연결하는 철강벨트를 완성함으로써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철강사로 한 단계 도약했다.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포스코 일관제철소는 포스코 70%,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사 크라카타우스틸 30% 지분으로 설립한 합작법인이며, 제철소 부지는 자카르타에서 서쪽으로 100km 떨어진 반텐주 찔레곤에 위치해 있었다.

건설계획은 1단계에서 조강 300만 톤급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고 이어서 2단계에서 누계 600만 톤 규모로 완성한다는 내용이었다. 1단계의 규모는 고로, 소결, 코크스, 제강, 연주, 후판 등 6개의 주설비로 이루어졌으며, 그 외 15개의 부대설비로 구성돼 있었다.

총 사업비 30억 달러 규모의 1단계 일관제철소 건설에서 포스코건설은 EPC 일괄 턴키를 맡아 16억 8000만 달러를 수주했다. 포스코 패밀리도 동반 진출해 포스코에너지가 200MW급의 발전소 건설을 맡았으며, 포스코ICT는 IT통합운영시스템 구축을 담당했다. 포스코엠텍은 알루미늄 탈산제 생산시스템 구축을 맡았다. 그 외 284개나 되는 중소기업이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동반성장의 모델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초대형 프로젝트였던 만큼 인력의 투입도 대규모였다. 포스코건설에서는 건축을 뺀 모든 사업본부가 참여했다. 프로젝트 수행의 중심인 플랜트사업본부에서는 152명으로 가장 많은 인력이 투입됐으며, 에너지사업본부에서는 발전설비 공급을 위해 5명이, 토목환경사업본부에서는 배수종말과 급배수를 위해 3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현장 일평균 투입 인력만도 3100명에 이르렀다. 일관제철소 건설은 2010년 10월말 전체 규모 370헥타르에 대한 부지조성 착수에 이어 2011년 7월초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갔다.

“현장사무소 입구에 포항제철소 착공 때의 사진을 걸어놓고 실패하면 자바 해협에 빠져 죽자는 각오로 임했다. 우리와는 달리 사계절의 변화가 없는 기후와 이질적인 이슬람 문화에 초창기 직원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또 초창기 지역사회 현지화도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이를 위해 사회공헌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김덕률 전무, 당시 사업단장)

현지 적응은 물론, 지역사회와의 유대강화는 프로젝트의 성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현지의 많은 지역업체를 프로젝트에 참여시켰으며, 지역주민도 최대한 고용했다.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2개월 단위로 현장 인근 정화활동을 실시했으며, 긴급 구호키트를 지원하기도 했다. 대학생봉사단이 방문해 봉사활동과 함께 한류 전파에 앞장섰으며, 지역사회 5개 학교를 개보수하고 교육기자재도 지원했다.

건설 과정에서는 현지 적응 외에도 포스코 문화의 특징인 공기준수를 달성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다. 현지 파트너인 크라카타우엔지니어링의 사업경험 부족으로 공정에 차질이 발생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포스코건설은 설비별로 세부 공정을 검토하고 공기지연 만회 대책을 수립하는 등 현지 협력업체 중점 관리를 실시했다.

기자재공급의 지연과 품질 문제도 발생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3개월 단위로 선적과 반입 계획을 세웠고, 6개월 단위로 제작공정을 중점 관리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포스코건설은 1개월 공기단축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재무건전성 향상도 또 하나의 성과였다.

일관제철소 현장이 원가절감에 나선 배경은 계약금액 감소와 기전계약률 하락으로 매출이익률이 감소한 것이 주요 요인이었다. 이에 물량 최소화로 고로를 설계하고, 현장관리비 절감, 자재 통합구매 등을 통해 82억 원의 원가절감을 달성했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포스코건설에게 일관제철소의 꿈을 실현한 현장으로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아울러 후속 일관제철소 프로젝트인 브라질 CSP의 소중한 산 교육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실제로 브라질 CSP의 최고경영층 등 많은 인사들이 프로젝트 현장을 둘러보고는 일관제철소 건설에 대한 성공 확신을 얻기도 했다.

 

# 역대 최대 규모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에 화룡점정하다

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이틀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외환시장이 열렸다. 당초 북한 리스크로 환율이 급등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환율이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언론이 긴급 시황 속보를 타전했다.

“환율 하락, 포스코건설 수주 물량 유입!”

포스코건설이 수주한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가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프로젝트가 시작도 되기 전에 1조 원에 육박하는 선수금 20%가 외환시장으로 들어왔는데, 이것이 환율을 끌어내린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대한민국 해외 수주사상 단일 제철 플랜트로는 최대 규모 프로젝트의 위력이었다.

CSP는 브라질 최대 철광석 공급사인 발레가 50%. 동국제강이 30%, 포스코가 20% 지분을 투자해 설립한 합작법인이었다. 사업비 43억 4000만 달러 규모의 CSP 일관제철소는 브라질 북동부 세아라주 뻬셍 산업단지 내 위치하고 있었다.

사업 규모는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포스코 일관제철소와 비슷했다. 1단계에서 연산 300만 톤의 슬래브를 생산하는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고, 이어서 2단계에서 누계 600만 톤 규모로 완공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 공사현장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 공사현장

포스코건설이 수주한 1단계의 규모는 원료 및 소결, 코크스 설비, 고로, 제강, 연주, 발전 및 부대설비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설계, 기자재 공급, 시공, 시운전에 이르기까지 사업 전 단계를 일괄 수행하는 EPC 턴키 방식으로 이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후판이 빠지고도 인도네시아보다 비싼 이유는 현지 고물가 때문이었다.

포스코건설과 CSP와의 인연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철 플랜트 분야는 포스코 베트남 냉연공장을 성공적으로 준공하고 싱크포워드 비전에 따라 미래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포스코건설이 예측한 미래 전망은 어두웠다. 포스코의 설비투자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2015년쯤 제철 플랜트 시장규모의 축소가 예상됐다.

불투명한 미래 전망에 전전긍긍하는 가운데 때마침 CSP를 준비하던 발레와 동국제강으로부터 타당성 조사 의뢰가 들어왔다. 용역비용이 170만 달러밖에 안 돼 일각에서는 ‘일은 많고 돈은 얼마 안 되는 용역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그런데 사업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규모가 만만치 않았다.

결국 기회라 판단하고 타당성조사 의뢰를 받아들였다. 용역 수행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발레와 동국제강의 심중을 읽어냈다. 그들은 향후 CSP의 정상적인 조업을 위해 세계적 조업능력을 갖춘 포스코의 프로젝트 참여를 은근히 원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포스코건설은 포스코 설득에 나섰다. 분명한 사업 기회라고 강하게 어필했지만, 설득은 쉽지 않았다. 포스코는 남미의 강성노조에 대한 걱정과 함께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건설로 이중 투자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은 포기하지 않았다. 포스코건설의 지칠 줄 모르는 공세에 결국 포스코는 투자결정을 위한 경영위원회를 개최했다.

“정준양 회장이 참석한 경영위원회에서 나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으로 계속 설득했다. 나중에는 전체 사업비에서 5억 달러 정도의 20%만 투자하면 매년 15%씩의 이익을 보장하겠다고 큰소리까지 쳤다. 그러자 정준양 회장이 씨익 웃었다.” (김성관 사장)

포스코건설의 패기에 2011년 5월 포스코는 마침내 CSP 투자를 결정했다. 이후 CSP 일관제철소 수주를 위한 활동이 본격화됐는데, 계약이 성사되기까지 두 번의 고비가 있었다. 첫 번째 고비는 설계기준이었다.

국제 표준코드와 브라질 표준코드의 견적서 적용 차이가 30~40%나 나왔다. 포스코건설은 계약 막판에 브라질 코드로 변경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CSP측에서 반발하면서 협상 결렬의 일촉즉발 상황까지 갔다. 그래도 다행히 파국을 막고 가능한 부분은 국제 코드로 하고, 국가 인허가 사항에 관련된 부분에 한해서 브라질 코드를 사용하기로 합의를 보면서 포스코건설이 실속을 챙길 수 있었다.

두 번째 고비는 세금문제였다. CSP 일관제철소가 위치한 지역은 수출진흥특별지역으로 세금혜택이 있었다. 이에 CSP측이 세금절감을 위해 하도급 기성비 지급을 직접 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자면 포스코건설이 매출을 잡을 수 없어 고스란히 세금을 물어야 할 상황이었다. 한 달에 걸친 양측의 실랑이 끝에 결국 서로의 요구를 반씩 들어주는 조건으로 무사히 협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마침내 모든 협상을 끝내고 2012년 12월 중순 계약이 체결됐다.당시 계약은 포스코건설에게 남다른 의미가 많았다. 1998년 코브라스코 프로젝트 수행 이후 14년만의 브라질 재진출이었으며, 수주 금액은 포스코건설 20년 역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무엇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일관제철소 건설 경험을 가진 유일한 건설사로, 브라질 CSP 수주는 그 기술력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주변의 부러운 시선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철강 경기 하락에다 브라질 고물가 때문에 예상보다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이란 예측이 나돌면서 경쟁력이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사실 출발부터가 고난의 행군이었다.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와 마찬가지로 163명이란 대규모 인력이 투입됐는데, 장장 35시간을 비행해야 하는 힘든 여정이었다. 4개월마다 한국을 오가면서 현장 인력 13% 정도가 늘 자리가 비어, 이를 대체하느라 토요일과 휴일도 잊은 채 업무에 시달려야 했다. 이에 본사는 고통분담과 배려 차원에서 12시간 차이의 낮과 밤이 바뀌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지 시차에 맞춰 영상회의를 실시했다.

착공도 쉽지 않았다. 수주에만 급급해 사전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발주처는 현지업체에게 하도급을 줄 것을 요구했고, 그들의 요구대로 현지업체들에게 견적을 받아보니 현지 물가를 고려했는데도 불구하고 예상치보다 200%~300% 이상의 견적이 나왔다. 출발할 때 주변의 우려가 현실화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전혀 터무니없는 가격도 아니었다. 브라질은 국제 규격보다 더 엄격한 ‘브라질 규격’을 적용하는데, 발주처 발레는 브라질 규격보다 더 엄격한 ‘발레 규격’을 적용했다. 그러다 보니 그만한 견적을 뽑아야만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인식이 현지에 팽배해 있었다. 결국 한국업체 하도급으로 방향을 전환했는데, 그 과정에서 발주처를 설득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2012년 7월 착공 이후 어려움으로는 엄격한 규정과 환경규제가 있었다. 엄격한 안전 규정으로 작업중지 명령을 받기도 했으며, 현장사무소 건설 과정에서는 주변에 잡목을 제거했다가 형사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작업하다 벌집이 나오면 안전한 곳으로 무사히 옮겨놓아야 환경단체로부터 고소를 피할 수 있었다.

강성노조도 큰 어려움이었다. 2013년에만 두 차례 파업이 있었다. 달래다 지쳐 마침내 법에 호소하기에 이르렀고, 법원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불법파업을 선언했다.

통관문제도 하나의 큰 이슈였다. 아무 이유 없이 40일이나 선박을 부두에 묶어놓고 통관을 시키지 않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발주처에게 공기연장을 신청하고 연장비용을 청구하며 맞섰다.

모든 문제의 발단은 소통의 부재에서 출발했다. 쌍방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 서로 평행선을 달렸다.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 회복이 시급한 시점이었다.

2013년 말을 고비로 그런 노력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먼저 포스코건설은 과정을 중시하는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엄격한 규정에 익숙해져갔다.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해외구매 통합 등 경비절감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하도급 90%를 차지하는 한국 협력업체들의 프로젝트 수행 선전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했다.

발주처도 포스코건설의 노력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CSP의 경영진 교체를 통해 쇄신에 나섰으며, 프로젝트의 성공적 완수를 위해 포스코건설의 요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양측의 이 같은 노력으로 CSP 일관제철소 프로젝트가 순항하는 가운데 2013년 11월말 브라질에서 또 하나의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브라질 CSS사로부터 사업비 6억 달러 규모의 하공정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열연 20만 톤, 냉연 60만 톤 등 총 80만 톤 규모의 판재류를 생산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주요 공급설비는 열간 압연기, 냉간 압연기, 부대설비 및 설치공사 등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수주 배경은 연산 350만 톤 규모의 광양 4열연 신설공사의 경험과 기술력 확보가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무엇보다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는 포스코건설 일관제철소 건설의 화룡점정이었고, 해외사업 20년 역사상 최고의 걸작이었다. 이로써 포스코건설은 세계 유일의 일관제철소 건설사로서 제철 플랜트 분야 글로벌 정상에 올라섰다.

 

 

<생각하는 페이지>

호주 로이힐 프로젝트 수주 실패의 반성과 교훈

호주 로이힐 프로젝트 수주 실패는 포스코건설에게 큰 충격이었다. 인도네시아와 브라질 일관제철소 계보를 잇는 메가 프로젝트로서, 포스코건설이 강한 의욕을 가지고 열정을 쏟은 프로젝트였다.

너무나 기대가 커 아쉬움이 많았던 포스코건설은 또 다시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를 다지기 위해 389쪽에 이르는 완료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특히 로이힐 수주 실패는 포스코건설 20년사 서술에 영향을 미쳤다. 실패의 역사도 가감 없이 기록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호주 건설시장은 높은 물가, 폐쇄적인 인력시장, 길고 까다로운 인허가, 강력한 노조 등 외국 건설사들의 시장진입이 쉽지 않았다. 더구나 대부분 대규모 투자사업이어서 추진 과정에 많은 인내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었다. 이 모든 사실을 포스코건설은 로이힐 프로젝트 준비 과정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다.

로이힐의 시작은 포스코가 열었다. 2010년 3월 포스코는 철광석 원료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호주 로이힐 광산개발에 1차 투자를 결정하고 투자협약서를 체결했다. 이 투자협약서 내용 중 투자자의 자회사에게 프로젝트에 기여할 기회를 우선적으로 부여한다는 조건에 따라 포스코건설이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포스코건설이 강한 의욕을 갖고 참여했지만, ECI(Early Contractor Involvement) 과정이 쉽지 않았다. ECI는 호주만의 독특한 입찰방식으로, 본 공사 계약 전 입찰업체가 공사 수행방안과 공정계획 수립, 시공비 확정, 사전 설계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이었다. ECI 과정에서는 10조 원에 이르는 사업비 중 70%에 이르는 대규모 자금에 대한 금융조달 계획수립이 가장 힘들었다. 이로 인해 투자자 지분 변경, EPC 사업구도 변경, 계약조건 변경, 파이낸싱 시장상황 변동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발생해 EPC 계약이 계속 지연됐다.

더구나 가격 경쟁을 노리고 발주처가 삼성건설을 끌어들이면서 포스코건설의 위상이 크게 위축되더니, 결국 2013년 4월 입찰경쟁에서 가격에 밀려 포스코건설이 삼성건설에게 무릎을 꿇었다.

수주 실패의 근본적인 요인은 신규 진출시장에 대한 전략 부재였다. 그 결과 EPC 수행 구도에 맞는 파트너사 선정이 지연됐으며, 무엇보다 현지업체와 최저 가격 도출에 실패한 것이 뼈에 사무치는 아쉬움이었다. 발주처 기대에 호응하는 가격을 제시하고 신뢰를 얻었다면 ECI가 그렇게 길어지지는 않았을 것이고, 삼성건설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주 실패 이후 완료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EPC 수행 업무시스템 구축과 현지화 전략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호주지역 사업추진 특징에서 발주처가 요구하는 사업자의 능력은 사업기획에서 자금조달, 운영관리까지 매우 포괄적이었다. 어찌 보면 이 같은 호주시장의 특징은 포스코건설이 추구하는 펩콤(PEPCOM)으로서, 로이힐 프로젝트가 팹콤의 첫 시험무대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은 펩콤은커녕 EPC 통합관리 능력마저 아직까지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창립 20주년을 맞아 포스코건설은 펩콤보다는 본원경쟁력과 EPC 역량확보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기본으로 되돌아가 EPC부터 갖춘 다음 펩콤에 도전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현지화에도 문제가 많았다. 현지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발주처와 갈등을 빚고, 능력 있는 현지업체 발굴에 실패하는 등 치밀한 사업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포스코건설은 EPC 종합관리 능력 확충과 함께 현지화된 프로젝트 수행계획 수립을 선결 과제로 꼽았던 것이다.

4-4

Story4. 제철 플랜트, 세계 유일의 일관제철소 기술력을 다져나가다

# 광양 5소결 신설, 공기단축과 원가절감 두 마리 토끼 쫓다

해외에서 일관제철소의 꿈을 이룩한 이 시기 제철 플랜트 사업실적은 변동이 심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반짝 위축된 경기는 2010년부터 곧바로 회복됐다. 2011년의 경우는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 효과로 사업실적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며 회사를 업계 4위까지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후 철강 경기가 하락하며 그 실적이 급격히 떨어졌다.

비록 변동이 심한 널뛰기 장세였으나, 이 시기 국내 제철 플랜트는 세계 유일의 일관제철소 건설 기술력을 더욱 다져나갔다. 광양 5소결 신설, 포항 4선재 신설, 광양 4열연 신설 프로젝트 등을 통해 제선과 열연 분야의 기술력을 더욱 다졌다. 제2공장 준공으로 상업화에 성공한 파이넥스는 제3공장 준공으로 경제성을 확보했다.

광양 5소결 신설사업(2009.8~2011.2)은 5고로 신설 이후 공정별 일대일 체계를 추구하는 포스코의 과제였으며, 포스코건설로서는 소결 EPC 기술력을 확보할 좋은 기회였다. 사업비 3102억 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화상면적 600㎡의 세계 최대급 소결기를 신설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신설 외에도 포스코건설은 포스코로부터 임무 하나를 더 부여받았다. 당시 포스코는 소결 부족으로 급하게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최대한의 공기단축을 요구했다.

회사로부터도 과제가 떨어졌다. 계약 당시 가격 분석 과정에서 이 프로젝트는 적자가 예상했다. 그러나 신설사업 EPC 기술력 확보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결국 회사로부터는 원가절감이라는 지상과제를 부여받게 된 셈이었다.

공기단축을 위해 가장 시급한 문제는 포스코건설, 포스코, 협력업체 등 프로젝트 관계자들의 협업체계 구축이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버추얼팀을 구성하고 포스코의 참여를 요청했다. 요청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우선 소통의 중요성을 알렸으며, EPC 시행사 중심으로 팀이 하나로 움직여야 의사결정이 빨라지고, 공기지연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발주처로서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포스코는, 공기단축을 위해 과감하게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처음으로 우리가 주도하는 버추얼팀이 만들어졌으며, 이 같은 협업체계의 효율적 운영은 공기단축의 대표적 성공요인이었다.” (김종래 상무, 당시 현장소장)

기자재 국산화 비율을 높인 것도 공기단축에 크게 기여했으며, 포스코건설 대표적 혁신활동인 VP 활동도 크게 한몫 했다. VP 활동에 협력업체도 참여했는데, 이런 활동을 통해 리스크를 사전에 제거함으로써 공사 진행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회사의 지상과제인 원가절감을 통해서도 공기단축을 실현했다. 우선 재하시험에 기초한 경제적 파일 설계로 원가절감과 공기단축의 성과를 얻었다.

포스코건설은 재하시험을 통해 토건 기초공사에 사용되는 파일이 그 동안 너무 많은 양이 적용됐음을 입증했다. 따라서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파일 수를 대폭 줄였으며, 지하배수로(Culvert)에는 아예 파일을 없앴다. 아울러 기존 파일을 재사용했다.

그 결과 공기단축은 물론, 123억 원의 원가절감 효과를 얻었다. 그밖에 지하배수로 축소를 통해서도 공기단축과 원가절감 성과를 달성했다.

특히 세계 최단기간 공기단축이 가장 큰 성과였다. 이에 광양 5소결 신설 프로젝트가 포스코가 시행하는 성과공유제(Benefit-Sharing)의 최초 수혜 대상이 됐다. 포스코건설로서는 소결 EPC 기술력 확보가 가장 큰 성과였다.

 

# 3세대 슬림 파이넥스 3공장 준공, 해외 수출길 열다

파이넥스의 역사는 연구소 실험실에서 출발했다. 1992년경 포스코의 연구원들은 15톤의 소규모 실험로를 가지고 파이넥스에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99년 8월 150톤 규모의 파일럿 플랜트가 완성되자 포스코 내부에서는 상업화에 대한 꿈이 부풀어 올랐다.

이후 2003년 6월 60만톤 데모 플랜트 준공으로 포스코는 준상업화에 성공했으며, 그들은 이를 1세대 파이넥스 1공장이라 불렀다. 2007년 5월 150만 톤의 2세대 파이넥스 2공장 준공으로 포스코는 비로소 상업화에 성공했으며, 이어서 3세대 파이넥스에 도전했다. 1세대에서 3세대까지 포스코의 새로운 도전에 포스코건설이 늘 함께했다.

2011.6.28 포스코 포항 3세대 파이넥스 3공장 착공식

2011.6.28 포스코 포항 3세대 파이넥스 3공장 착공식

포스코건설이 EPC 일괄 턴키를 맡은 사업비 6120억 원, 200만 톤 규모의 3세대 파이넥스 3공장(2011.6~2013.7)의 목적은 슬림 파이넥스, 즉 경제성 확보였다. 슬림 파이넥스를 위해 포스코건설은 파이넥스 2공장 설비의 연구개발과 가동경험을 바탕으로 설비를 보다 단순화하고, 차별화된 요소기술들을 대거 채용했다.

실제 설계에서는 가루 철광석을 순수한 철 성분으로 전환해주는 설비인 유동환원로를 기존 4단에서 3단으로 간소화했으며, 벨트컨베이어를 이용해 이송하던 분철광석을 자체 발생하는 가스로 운송 투입하는 등 차별화된 기술을 적용했다.

그러나 파이넥스 3공장 건설 과정에서는 난관도 많았다. 2012년 철강경기 하락으로 포스코가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잠시 프로젝트가 중단되기도 했다.

“공사현장이 포항제철소 맨 끝이라 7km나 걸어서 이동해야 해서 직원들이 무척 힘들어 했다. 아예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다. 포스코 위기로 전체 프로젝트들이 6개월 연기됐지만, 우리 현장은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준공 세러모니와 맞추기 위해 5개월만 연기했다. 무엇보다 늦춰진 공기를 만회하느라 야간작업을 반복했던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강환철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만큼 성과도 많았다. 우선 기술력을 과시했다. 고로가 50만 톤에서 200만 톤으로 생산 규모를 확대하는데 통상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파이넥스는 채 10년이 안 되는 기간에 60만 톤에서 200만 톤까지 확대함으로써 우수한 기술력을 입증할 수 있었다.

당초 목표였던 슬림 파이넥스와 경제성도 확보했다. 파이넥스 2공장과 동일한 투자비를 유지하면서도 생산량은 33%나 높아졌다. 더욱이 포항제철소 전체 철강 생산량의 25%인 410만 톤을 파이넥스 공법으로 생산함으로써 저가원료 사용에 따른 연간 원가 절감액이 1772억 원에 이르렀다.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당시 포항 4선재 신설, 스테인리스 신제강 신설과 함께 프로젝트가 추진돼 총 2조 2000억 원이 투입됐으며, 이에 연인원 125만 명이 동원됨으로써 고용창출 효과를 올렸다. 동반성장의 성과도 있었다. 핵심부품과 유지보수 부품을 생산하는데 200개가 넘는 중소기업이 참여했다.

가장 큰 성과는 해외 첫 수출이었다. 상업화와 경제성 확보 이후 세계 철광석 매장량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저급 분철광석과 일반탄의 사용이 가능한 파이넥스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기존 고로공법에 비해 환경오염 물질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다.

이 같은 전 세계적 관심 속에 2013년 9월 포스코는 중국 국영기업 충칭강철과 연산 300만 톤 규모의 파이넥스 일관제철소 건설 합작협약을 체결했다. 향후 중국 정부의 비준과 한국 정부의 기술수출 승인이 이뤄지면 본계약이 체결될 예정이며, 이에 따라 포스코건설의 역할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 포항 4선재 신설, 숱한 역경을 딛고 공기단축에 성공

포항 4선재 프로젝트(2012.1~2013.5)는 연산 70만 톤급의 선재공장 신설사업이었다. 포스코는 국내외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2008년 기준 시장 점유율이 52%였으나 이대로 가면 2012년경 42%대의 점유율 하락이 예상됐다. 따라서 70만 톤을 신설해 점유율을 63%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추진 목적이었다.

사업비 4735억 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를 포스코건설은 선재 기술력 확보의 찬스로 받아들였다. 이에 적자를 무릅쓰고라도 전체 EP를 다 하겠다고 욕심을 부렸으나, 포스코는 일부 설비인 가열로와 유압설비만 맡기고 대부분의 핵심설비는 지멘스에 발주했다. 1989년 3선재 신설 이후 이 분야 국내 설계 기술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EP 전부를 포스코건설에게 맡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믿었던 지멘스도 기자재공급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냈다. 가장 큰 문제는 저가 분할 발주였다. 중국, 대만, 이탈리아, 미국 등으로 발주된 설비들은 설치 과정에서 현장과 안 맞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수정하는 데만 2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설비 문제로 포스코와 분쟁도 발생했다. 대만 포머사로 발주된 주요 설비인 압연기와 감속기에서 품질 문제가 발생했다. 오일배관에서 이물질이 나와 포스코가 전면 교체를 요구하자 지멘스는 부분 수리로만 일관했다. 양사의 분쟁은 공기에 쫓긴 포스코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하고 결국 한 걸음 물러나면서 일단락됐다.

포스코건설이 맡은 일부 설비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EP에 대한 경험자가 없어 조업 정비 인력을 투입하다 보니 실패를 자초하고 말았다. 관리능력 부족으로 제작이 계속 늦어졌으며, 이를 시공에서 만회하느라 갖은 고초를 겪었다.

“시공 과정에서는 공기 만회를 위해 토목공사에서 단축공사를 요구했는데, 토목공사를 맡은 협력업체가 과다한 자금 출혈을 이유로 작업을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 오히려 여기서 공기가 2개월 더 지연됐다.” (김용백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이후 공기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기전에서는 돌관공사를 추진했으며, 토목에서는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시행하는 패스트 트랙 공법을 적용했다. 또 공기단축을 위해 일부 설계를 변경하기도 했다. 전기실과 수처리 설비의 경우 일반 콘크리트로 설계됐는데, 공기단축을 위해 전기실은 철근 콘크리트로, 수처리 설비는 콘크리트 파일에서 스틸로 변경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공기 준수는 물론, 15일 공기단축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 광양 4열연 신설, 최초 자력 엔지니어링 수행 성공

광양 4열연 신설사업은 정준양 전 회장의 탄식에서 출발했다. 2010년경 정 회장은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압연공정을 둘러보고 와서는 ‘광양 후판을 포스코건설이 수행했는데, 왜 아직도 자력 엔지니어링이 안 되느냐’고 경영진들을 질타했다. 인도네사아 프로젝트에서 후판이 외주사에 발주된 데 대한 불만이었다.” (박일호 Director)

최고경영자의 불호령에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패밀리사들이 모여 자력 엔지니어링에 대한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때마침 포스코는 투자계획에 따라 광양 4열연 신설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자력 엔지니어링이 가능하다는 보고와 함께 압연공정의 핵심인 열연공정 자력 엔지니어링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포스코건설의 의욕적인 도전에 포스코는 기술력 확보의 대승적 차원에서 연산 330만 톤 규모의 광양 4열연 신설사업(2011.1~2014.10)을 맡겼다.이 사업은 열연공정이 75%를 차지하고, 열연과 연결되는 제강과 연주공정도 25%가 포함됨에 따라 사업비 규모가 1조 4000억 원에 이르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막상 큰소리는 쳤지만, 이 분야에 대한 자력 엔지니어링 경험이 전무한 포스코건설로서는 위험부담이 큰 프로젝트였다. 3열연 신설이 1981년이라 30년이란 사업수행 공백이 있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안전장치로 해외 선진사 퇴직 인사 중 이 분야 최고 전문가를 긴급 채용하고 검증프로세스를 구축했다.

또 패밀리사 공동 수행 프로젝트인 만큼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협업체계 구축을 위해 포스코건설은 광양 5소결 신설공사에서 효과를 본 버추얼팀을 벤치마킹했다.

버추얼팀에서 포스코건설은 주간을 맡았고, 매월 월례회의를 개최했다. 월례회의는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패밀리사들이 모여 공정을 체크 점검하는 문제 해결의 자리였다.

버추얼팀 효과는 탁월했다. 최적의 설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고, EPC 통합이 가능해졌다. 특히 버추얼팀은 원가절감 아이디어의 산실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자력 엔지니어링 기술력 확보 외에도 원가절감이라는 지상과제가 있었다. 사업비 규모가 시대적 물가와 비교했을 때 1981년 3열연 신설 때보다 절반이나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버추얼팀 회의는 원가절감이 최대 이슈였다.

수차례에 걸친 원가절감 아이디어 회의 결과의 요점은 중국산 설비에 대한 저가 분할 발주와 함께 품질 확보를 위해 중국 설비업체에 직원을 파견함으로써 철저한 사업관리로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하자는 내용이었다.

직원 파견을 통한 사업관리는 압연기 대형 설비 중 하나인 하우징의 제작과 설치에서 빛을 발했다. 이 설비는 무려 총 중량이 3800톤이나 됐는데, 이를 원가절감 차원에서 18개로 저가 분할 발주해 포스코건설의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상당했다.

이 같은 리스크 부담이 직원 파견을 통한 철저한 공정관리의 배경이 됐으며, 이마저도 안심이 안 돼 포스코건설은 18개로 나눠진 하우징에 대해 조립 테스트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스크 차단을 위한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수는 있었다. 설계와 토목에 자신이 없었던 포스코건설은 동시 작업을 시도했지만, 설치 과정에서 계속 엇박자가 낫다. 그만큼 열연공정 신설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 비록 일부 실수가 있었지만, 포스코건설은 공기를 준수하고 당초 목표였던 자력 엔지니어링 수행에도 성공했다.

자력 엔지니어링 수행 과정에서의 성과로는 가열로와 코일 이송 설비에 대한 신기술 적용이 있었다. 가열로를 식혀주는 방법은 이전까지 뜨거운 물이었으나, 포스코건설은 스팀으로 대체해 효과를 보았다. 코일 이송도 기존 체인 방식에서 발레트로 교체함으로써 청결 효과와 운전 편의성 등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특히 당시 열연 분야 기술력 확보는 포스코건설 20년 역사에서 최대 실적인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 수주는 물론, 브라질 CSS사의 압연공정 수주에도 크게 기여했다.

4-5

Story5. 건축 분야, 송도 새출발 이어 도시정비사업 경쟁력 확보하다

# 송도국제도시, GCF 유치로 성공을 예감하다

건축물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개성 있게 설계돼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도시, 송도국제도시가 제 모습을 갖춰가면서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먼저 드라마, 영화, 광고 CF, 뮤직비디오 등 각종 매체들의 촬영 명소로 급부상했다. 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 ‘right now’는 컨벤시아 앞 대로에서 촬영됐으며,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는 센트럴파크 주차장에서 촬영됐다. 이국적인 수로형 스트리트 상가인 커낼워크는 KBS 드라마 ‘도망자’의 촬영지였으며, 그 외 이온음료, 자동차, 보험사 광고 등의 주요 무대가 됐다.

독특한 역셀 디자인의 트라이볼 역시 보험사 CF에서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몸짓과 조화를 이루면서 유명세를 탔고, 영화배우 고수가 등장한 디지털카메라 CF의 배경이기도 했다. 센트럴파크는 SBS 드라마 ‘스타일’에서 중앙 수로를 달리는 수상택시가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송도국제학교는 2AM의 뮤직비디오 ‘잘못했어’의 주요 무대였다. 포스코이앤씨 타워는 MBC 드라마 ‘로얄패밀리’와 SBS 드라마 ‘야왕’의 촬영지였다.

국내는 물론 송도국제도시는 전세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미국 최대 실시간 뉴스 채널인 CNN은 ‘미래도시 개발의 모델’이라고 극찬했으며, 해외 유명 주간지인 월스트리트 저널은 ‘친환경적 계획도시’라고 평가했다. 세계 다큐멘터리 채널인 디스커버리는 ‘아시아의 떠오르는 별’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송도국제도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특히 송도국제업무단지의 개발 주체인 NSIC는 동북아트레이드타워(NEAT)의 공사가 중단되는 등 송도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송도에 올인한 포스코건설의 고민도 깊어졌다. 송도사옥에 입주하면서 배수진을 쳤지만 국내외 투자유치는 정체됐고, 송도 리스크에 대한 주변의 우려도 점점 커져갔다.

이 위기의 순간, 포스코건설이 사태 해결의 전면에 나섰다.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끝까지 책임지는 포스코정신을 발휘했다. 40여 년 전 제철보국을 위해 우향우 정신으로 무장했던 모기업 포스코와 같은 심정이었다.

2010년 말 포스코건설이 지원에 나서면서 NSIC의 송도국제업무단지 개발 자금난에 숨통이 트였다. NSIC는 신한은행 등 대주단과의 협의를 통해 2조 5000억 원의 대출금 만기를 2년 늘리고 상환 비율을 조정하는 내용의 대출 약정 변경에 합의했다.

포스코건설 외 또 하나의 개발 주체인 인천시도 송도사업의 가속화와 개발 안정화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2010년과 2011년 인천시, NSIC 간 두 차례 협약을 통해 개발의 발목을 잡았던 주거시설과 상업시설의 개발 연동제를 사실상 폐지했다.

분양 활성화를 위해 주상복합건물 내 주거비율을 높였으며, 제2국제학교 등 공공시설 개발 의무를 축소하는 등 NSIC의 개발 부담을 덜어주었다. 특히 외국인 임대주택을 줄이는 대신 국내 입주기업 임대주택을 확대함으로써 국내기업 투자유치를 적극 유도했다.

송도국제업무단지 개발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투자유치였다. 국내외 투자유치를 위해 포스코건설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신념 하에 이색적인 홍보전략을 전개했다. 적극적인 해외인사 초청을 통해 송도의 개발상을 직접 체험하게 했다.

청사업의 효과는 긍정적이었다. 10년 전의 갯벌이 국제도시로 변모한 모습에 방문객들이 크게 감탄하는 등 초청사업은 투자유치는 물론 포스코건설 건축 분야 해외사업 홍보용으로도 그만이었다.

국내외 투자유치를 위해 정부도 적극 홍보활동에 나섰다. 투자유치는 2011년 삼성그룹이 바이오단지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불붙기 시작했으며, 2012년에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GCF(녹색기후기금) 유치에도 성공했다. GCF 유치는 송도국제도시 개발의 성공을 예감하게 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독일과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펼쳤는데,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가 사활을 걸고 유치활동에 나선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미국이 한국을 지원하도록 설득한 스탠 게일 회장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 (강수동 Sr.Manager)

GCF 효과는 2013년 리파이낸싱 성공으로 이어졌다. 2013년 11월 중순 포스코건설은 대출금 상환 만기를 3년 앞둔 시점에서 리파이낸싱을 시도했다. 기존 은행 중심의 자금조달 구조에서 탈피, 다수의 증권사 및 은행과 6개 패키지로 나눠 파이낸싱을 추진했다. 그 결과 연 4~5%대의 유리한 금리 조건으로 자금조달과 리파이낸싱에 성공했다.

GCF 유치에 이어 자율형 사립고 설립 등의 호재가 계속되면서 투자유치도 더욱 활기를 띠었다. 삼성바이오, 동아제약, 대우인터내셔널, 롯데, 이랜드, 코오롱, 시스코, 오티스, 3M, 현대엠코 등의 국내외 유명기업들의 입주가 속속 이어졌다. 특히 NEAT의 대우인터내셔널 매각은 송도 부동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 같은 송도국제도시의 성공 예감을 만끽하며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NSIC, 인천시, 인천경제자유구역청 등 송도사업의 주체들은 투자유치 활동과 2020년 2단계 사업의 완수를 위해 더욱 힘을 모아나가고 있다.

 

# 건설경기 침체, 개발사업과 공공 및 민간건축 정체되다

2000년대 들어 크게 활성화됐던 개발사업은 금융위기와 부동산 경기침체가 맞물리면서 크게 위축됐다. 이 시기 포스코건설의 개발사업으로는 일반 업무시설인 양재동 파이시티, 판교 N-스퀘어, 용인수지 유타워 등이 있었으며, 콘도 개발사업으로 제주 에어레스트 시티 곶자왈 빌리지 등의 프로젝트가 있었다.

파이시티는 양재동 화물터미널 개발사업이며, 총 사업비 2조 4000억 원 규모로 사업추진 초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시공사가 워크아웃 판정을 받으면서 개발에 난항을 겪었으며, 2012년 3월 발주처가 다시 시공사 선정에 나섰다.

포스코건설은 이 사업에서 선매각 후 사업추진이라는 제안으로 자금압박에 시달리던 발주처로부터 호감을 샀으며, 결국 시공사로 선정됐다. 그러나 인허가 과정에서 특혜시비에 휘말리면서 선매각이 M&A로 전환됐으며, M&A 과정에서 2013년 7월 STS개발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포스코건설의 시공권이 불투명해졌다.

판교 N-스퀘어는 유스페이스에 이어 포스코건설의 두 번째 판교테크노밸리 개발사업이었다.2011년 1월 포스코건설은 NHN과 네오위즈의 컨소시엄사인 NNAM이 발주한 판교 N-스퀘어 2단계 사업 수주에 성공했다. 2013년 5월 26개월 만에 준공된 이 건물은 사업비 904억 원, 지하 4층 지상 10층과 11층 2개동 규모의 업무복합빌딩이었다.

2011년 1월 포스코건설은 호텔·리조트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말레이시아 버자야그룹이 국내 관광사업 분야에 투자한 ‘제주 에어레스트 시티’ 1단계 개발사업인 ‘곶자왈 빌리지’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제주 에어레스트 시티’ 프로젝트는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조성하기 위해 정부와 제주시가 추진하는 6대 핵심 프로젝트 사업 중 하나로, 제주 서귀포 예래동 일대 약 74만 2500㎡ 부지에 2017년까지 고급 호텔, 콘도미니엄 등 다양한 숙박시설과 복합 쇼핑몰, 의료센터, 카지노 등이 포함된 휴양형 주거단지를 조성하는사업이었다. ‘곶자왈 빌리지’는 ‘제주 에어레스트 시티’의 1단계 사업이며, 단지 내 가장 전망이 좋은 해안가에 총 147개동 규모의 콘도미니엄 단지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였다.

포스코건설과 버자야그룹의 인연은 송도국제도시에서 시작됐다. 포스코건설 초청으로 송도를 방문한 버자야그룹 관계자는 그 규모와 도시계획에 감탄했으며, 더욱이 퍼스트월드와 컨벤시아 등의 건축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고 사업제의를 요청해왔다.

1단계 사업 수주 과정에서는 말레이시아를 오가며 1년 동안이나 정성을 들였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파이낸싱 보증관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보증금액을 최소화하는 방안과 불가피하게 보증의무를 제공하더라도 자금회수가 가능한 보증을 추구했다. 그 결과 전체 사업비에 맞먹는 1400억 원의 국토해양부 보증을 성사시킴으로써 보증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제주 에어레스트 시티 프로젝트는 총 4단계로 진행되며, 곶자왈 빌리지는 1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큰 프로젝트인 2단계는 카지노호텔을 포함해 호텔 3개동, 실내공연장 등을 건립하는 사업으로, 대략 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어떻게 리스크를 줄여 사업구조를 구성해 수주할지에 대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나가고 있다.” (노재현 Director, New-Biz그룹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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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청사 전경

개발사업 외에 공공 및 민간건축 사업으로는 대표적으로 행정복합도시 정부청사, 한국도로공사 신사옥, 포스코 그린빌딩, 대구대교구 100주년 기념성당 프로젝트 등이 있었다.

행정복합도시 정부청사 1단계 2구역(2010.10~2012.11)은 사업비 1665억 원, 연면적 21만 5250㎡, 지하 1층, 지상 7층 8개동 규모의 건설공사였다. 예정 공기보다 8개월이나 단축해 25개월 만에 준공했으며, 정부청사 이전 첫 사업이었던 만큼 2, 3단계 후속 공사의 롤모델이었다. 준공 후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농림수산식품부, 국토해양부, 환경부 등의 정부기관들이 입주했다.

“처음에는 발주처에서도 25개월 안에 공사를 마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보다 적은 규모의 사업들도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곳은 정부청사 중에서도 첫 착공한 현장이라 외부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행정안전부에서도 13명의 인원을 현장에 파견할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김유근 전 상무보, 당시 현장소장)

2011년 6월 포스코건설은 한국도로공사 경북 김천 이전 신사옥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포스코건설이 주간사로 한화건설, 동아건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했다. 16개사가 참여한 입찰에서 가격 개찰에서는 8순위에 그쳤으나, 1차 심사 결과 1순위에 올랐고, 최종 심사를 통과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2011년 6월 착공, 2014년 6월 준공됐으며, 사업비 1194억 원, 연면적 10만 9756㎡, 지하 2층, 지상 25층 본관동 및 부속시설 4개동 규모의 건설공사였다.

연세대학교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위치한 포스코 그린빌딩(2012.9~2013.8)은 연면적 5547㎡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실험실 1개동이며, 그 외 오피스 빌딩 및 지상 3층 규모의 공동주택 5세대, 그리고 조립형 모듈러 주택 4세대로 이루어졌다.

포스코 그린빌딩 전경

포스코 그린빌딩 전경

포스코와 연세대간 산학협력 협약에 의해 준공된 이 건물은 100여 개의 친환경 기술이 집약돼 있으며, 일반 빌딩과 비교해 에너지 소모량이 절반 수준이었다. 이산화탄소를 연간 475톤 감축할 수 있으며, 건물 수명을 60년으로 봤을 때 나무 56만 그루를 심는 효과와 맞먹었다.

건물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를 태양열, 지열, 빗물 재활용 등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확보하고 포스코가 개발한 내진 강재를 적용해 안전성을 높이는 등 에너지 저감형 모델로 설계했다. 공장에서 건물을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만 하는 모듈러 건축기술과 철강 부산물인 ‘고로 슬래그’ 재활용으로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는 친환경 콘크리트 기술도 적용했다. 단순히 에너지 절약 효과만이 아니라 최첨단 친환경 건축기술을 통해 설계, 시공, 운영 등 모든 과정에 친환경 개념을 구현했다.

 

# 수주 1조 클럽 가입, 도시정비사업 강자로 부상하다

이 시기 공모형 PF 복합개발 사업이 주춤한 가운데 재개발·재건축 사업인 도시정비사업이 포스코건설 건축 분야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포스코건설의 도시정비사업은 저 멀리 회사 출범 이전 PEC 시절 도심 재개발사업이었던 충정타워 프로젝트가 있었으며, 회사 출범 이후에는 1999년 9월 수주한 암사동 서방연립주택 재건축사업이 도시정비사업의 효시였다.

2000년 10월 포스코건설은 IMF 위기 때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동아아파트 재건축사업을 수주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회자됐던 이 경쟁에서 포스코건설은 단숨에 도시정비사업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후 후발주자로서의 수주 경험과 준비 부족으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익아파트, 서울 강동구 고덕시영아파트 등에서 잇달아 실패를 경험했다.

당시 실패를 교훈 삼아 포스코건설은 초심으로 돌아가 정진한 끝에 서울 서초구 서초동 현대빌라, 경기 평택시 서정주공, 강원 춘천시 후평주공,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 6단지, 경기도 안산시 군자주공 8단지 등의 사업들을 수주하며 비로소 도시정비사업에 안착했다. 그러나 도시정비사업은 각종 비리와 담합 등으로 갈수록 혼탁해졌고, 무엇보다 2003년부터 윤리규범 선언으로 윤리경영이 강화되면서 포스코건설은 이 사업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도시정비사업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09년이었다. 재개발·재건축사업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공관리자제도가 이때 등장했다. 이 제도는 지방자치단체가 비리와 부작용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사업시행 전 과정을 직접 관리·지원하는 제도로서, 2009년 시범 도입에 이어 2010년 7월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투명성이 확보되자 포스코건설은 도시정비사업 재진입을 시도했다. 2009년 재진입을 위한 시장분석 결과, 전체 20조 원 규모의 도시정비사업에서는 절대 강자가 없었으며, 상위 10대 건설사가 고른 비율로 시장을 점유하고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이 정도면 도전에 나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위기 때마다 힘을 발휘하는 탄탄한 재무구조에 자신감이 충만했다. 우선 수주 1조 클럽 가입을 목표로 본격적인 도전에 나서 2009년 4월 경기도 용인 신갈주공 재건축사업 수주에 성공했다.

용인 신갈주공 수주 성공에 힘입어 그 다음 서울 광진구 구의1구역 재건축에 도전했다. 이 프로젝트는 분양성이 담보된 서울지역 재건축 단지여서 경쟁이 치열했다. 포스코건설도 조합원 물량보다 일반 분양분이 많아 사업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의욕적으로 도전했다.

그러나 의욕에 비해 결과는 참담했다. 2009년 6월말 조합원 총회 결과 경쟁사 중 꼴찌를 기록했다. 실패 요인은 사전홍보 미흡이었다. 경쟁사들은 약 2년간이나 사전홍보를 통해 정성을 쏟은 반면, 포스코건설은 겨우 4개월을 투자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전정보가 부족했으며, 정확한 판세분석에도 실패했다.

2009년의 마지막 도전 지역은 경기 수원시였다. 당시 수원은 많은 프로젝트들이 몰려 있어 도시정비사업의 각축장이었다. 포스코건설은 구의동 실패를 계기로 새로운 전략을 마련했다. 메이저 건설사들이 사전에 철저히 관리해온 지역은 피하기로 했다.

그렇게 틈새를 찾아 수원 111-4구역 주택재개발 지역인 조원동을 선택했다. 중위권의 경쟁사가 있었지만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포스코건설은 도전에 앞서 ‘이 사업마저 실패하면 도시정비사업은 끝이다’는 각오로 조원동에 배수진을 쳤으며, 전사적 지원 하에 공격적인 홍보활동을 펼쳤다. 사활을 건 배수진에 힘입어 마침내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으며, 조원동의 성공은 포스코건설 도시정비사업의 터닝 포인트였다.

수원 조원동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포스코건설은 이후 전략을 일부 수정했다. 경쟁사가 오랜 기간 정성을 들인 지역을 기피하기보다는 컨소시엄 구성을 모색했다. 그 결과 2010년에 경남 창원시 가음주공, 서울 마포구 마포로 1구역 제54지구, 인천 주안4구역, 서울 성북구 장위6구역, 경기 의정부시 장암4구역 등 5개의 프로젝트를 연속으로 수주하며 도시정비사업 철수 5년 만에 다시 한 번 안착에 성공했다.

그러나 뼈아픈 실패도 있었다. 2010년 5월 포스코건설은 다잡은 대어를 놓쳤다. 서울지역 노른자위로 관심이 높았던 강동구 고덕주공 6단지 사업 수주에 실패했다.

이 사업은 이미 2003년경 두산건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에 성공했으나, 2006년 8월 관련법의 개정으로 사업자 선정이 무효가 됐다. 법 개정으로 사업추진 주체가 추진위원회에서 조합으로 변경됐다. 그 바람에 고덕주공 6단지를 비롯해 총 7개 프로젝트의 사업자 선정이 무효가 되면서 새 주인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유독 7곳 중에서도 노른자위란 인식 때문에 포스코건설이 버티고 있던 고덕주공 6단지로만 경쟁자들이 몰려들었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강력한 경쟁자들이 추격해오자 당황한 포스코건설은 두산건설만으로 역부족이라고 판단했고, 결국 현대건설로 말을 갈아탔다. 그러나 결과는 두산건설의 승리였다. 사업자 선정 막판에 조합원 지분율이 쟁점으로 떠올랐는데, 두산건설이 170%를, 대우건설이 160%를, 포스코-현대건설 컨소시엄이 150%를 보장함에 따라 포스코건설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 치욕적인 사실은 당시 7곳의 재선정 과정에서 대부분이 이전 계약자가 다시 사업자로 선정됐으나, 포스코건설만이 유일하게 수주에 실패했다.

비록 뼈아픈 실패로 큰 상처를 입었으나, 포스코건설은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전국 도시정비시장을 누비며 고군분투했다. 그 결과 2011년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수주 1조 클럽 진입을 코앞에 두었다. 수주 실적에서 2009년 2193억 원으로 출발, 2010년 6619억 원, 2011년에 9783억 원을 달성함으로써 시장 재진입 2년 만에 약 40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물량도 최대 규모로, 서울·수도권 5곳과 부산·경남 3곳 등 총 8곳을 수주했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3구역은 삼성-대우가시공사였으나, 시공계약 해지를 틈 타 현대-SK와 연대해 시공권 확보에 성공했다. 또 수도권 지역보다 분양시장이 양호한 부산지역에 발 빠르게 사업지를 선점해 2곳에서 시공권을 확보했다.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포스코건설은 최고 수주실적을 갱신했다. 1조 1180억 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1조 클럽에 진입했다. 경기도에서 부천시 원미6B구역을 시작으로 광명시 1R구역, 안양시 호계주공, 안양시 진흥아파트를 연속적으로 수주했으며, 이어 과천시 주공1단지, 안양시 호원초교, 그리고 강원도 원주시 단계동 등의 사업들을 수주했다.

당시 안양·과천 지역에서는 6개의 프로젝트가 쏟아졌는데, 그 중 포스코건설이 4개를 수주하며 기염을 토했다. 특히 대어급들이 많았다. 광명 1R구역, 과천 주공1단지, 안양 호원초교 등의 사업 규모가 1000세대를 넘었다. 가장 큰 수확은 과천 주공1단지였다. 단독으로 경쟁에 나서 수주에 성공했는데, 그 규모가 역대 최대인 1567세대에 이르렀다.

기록 행진은 2013년에도 이어졌다. 전북 전주시 감나무골, 경기 하남시 하남C구역, 성남시 신흥주공 등을 수주하며 역대 최대 실적인 1조 1721억 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결과는 부동산 경기침체로 사업 물량이 급격히 준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선전이었다. 2009년 20조원 규모의 도시정비사업은 2012년 9조 7000억 원대를 기록하며 반토막이 났다. 2013년엔 6조 6000억 원으로 또 다시 3분의 1로 줄어들었으며, 전체 33개 사업장 중에서 포스코건설이 5곳을 수주했다.

특히 2013년의 경우 1조 클럽이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단 3개 건설사뿐이었다. 이로써 포스코건설은 2009년 도시정비사업 재진입 이후 단 4년 만에 빅3로 부상하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다.

 

# 이시아폴리스 분양 성공, 아파트분양 마케팅에 새 지평 열다
대구 이시아폴리스 더샾 1차 전경

대구 이시아폴리스 더샾 1차 전경

2010년 송도사옥 입주를 계기로 송도시대를 열었으나, 분양사업은 가장 힘든 시절을 맞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부동산 경기침체로 이어졌으며, 급기야 미분양 사태가 속출했다. 그나마 포스코건설은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도권 침체를 딛고 지방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건설사 중에서 높은 분양률을 기록했다. 선전의 배경은 고객의 마음을 읽고 좋은 상품을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심화되는 가운데 2010년에는 단 두 건을 분양하는데 그쳤다. 부산 서면 센트럴스타 주상복합 중 오피스텔분 319세대와 대구 이시아폴리스 더샵 1차 아파트 652세대 물량이었다.

극심한 부동산 경기침체 속에서도 이시아폴리스는 불황 극복의 대표적 성공사례였다. 약 115만 5000㎡의 대규모 주택사업지로, 3차에 걸쳐 분양계획이 잡혀 있었다.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는 하나, 이시아폴리스 1차 분양을 위해 대구로 떠났던 직원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당시 대구지역은 구매심리가 급속히 냉각돼 ‘청약률 제로 단지’가 속출하는 등 ‘미분양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택 경기가 참담했다.

대구에 도착한 그들은 먼저 주변 아파트 시세부터 조사했다. 이시아폴리스 1차에 책정된 분양가는 3.3㎡당 650만 원이었는데, 조사 결과 주변 시세는 480만 원 불과했다. 분양 실패가 불 보듯 뻔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들은 출구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첫째, 1개월 내 분양률이 10% 이하면 적자를 감수하고 철수한다.

둘째, 6개월 내 분양률이 50% 이하면 1차 착공을 포기한다.

셋째, 6개월 내 80%를 넘지 못하면 1차만 착공에 들어가고, 나머지 2, 3차는 포기한다.

결국 이시아폴리스의 운명이 분양률에 맡겨진 셈이었다. 모두가 실패를 장담하던 그 순간, 운명의 신이 분양률을 끌어올렸다. 초기 분양에서 28%를 기록하며 생명을 연장했던 이시아폴리스는 6개월 후 마지노선인 80%를 넘기면서 회생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시아폴리스의 성공은 운명의 장난이 아니었다. 고객의 마음을 헤아린 직원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우선 분양가부터 조정했다. 소형 아파트는 낮추고 대형은 높이는 전략으로 기존 분양가 650만 원보다 평균 분양가를 625만 원으로 낮추었다. 이 과정에서 내부 마찰이 있었다. 원가법으로 책정한 분양가를 낮추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이시아폴리스 분양을 책임진 직원들은 시장이 가격을 정한다는 논리를 폈다. 팽팽한 설전 끝에 결국 부동산 경기침체라는 추세에 따라 가격을 낮추기로 결정됐다.

분양계획도 3차에서 4차로 늘렸다. 이는 마케팅 활동을 오래 가져가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 과정에서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아파트 상품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갔다.

남향을 선호하는 기호에 맞춰 판상형으로 설계했으며, 1~4차 차수별 단점을 보완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이에 보조 주방이 등장했으며, 2차에서는 수납공간을 극대화한 알파룸이 등장했다. 3차에서는 커뮤니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영장을 만들었으며, 4차에서는 85㎡형에 방 4개를 창출해내는 마법이 펼쳐졌다. 또 1층 미분양 해소를 위해 지하층을 덤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이처럼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탄생한 작품들은 ‘포스코스타일’이라 불리며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시아폴리스의 성공은 아파트 분양 운영기법을 바꾸어 놓았다. 통상 모델하우스의 운영은 분양 기간 계약 때까지 전시공간으로만 활용됐다. 그러나 이시아폴리스는 계약 이후에도 모델하우스를 철거하지 않고 이를 통한 마케팅으로 고객을 모았다. 이 역시 성공요인이었다. 이후 이 기법은 모델하우스 운영기법의 정석으로 자리 잡는 등 분양 마케팅 활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시아폴리스의 고객 모집을 위한 마케팅 활동은 치열했다. 분양 기간이 끝나도 단 1명이라도 더 많은 고객을 모집하기 위해 텅 빈 분양사무소를 지켰고, 분양사무소에 꽃밭을 가꿔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기도 했다.

“단 1명의 고객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한 번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 한 분이 며칠째 모델하우스를 찾아오기에 그 이유를 정중히 물었다. 그러자 그 분은 ‘아파트가 마음에는 드는데 장애인용이 아니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한 분을 위해 바닥 턱 마감과 화장실 문도 안으로 밀도록 개선했다.” (우호재 Director, 당시 분양소장)

 

# 더샵 헤아림으로 리뉴얼, “마음을 읽습니다
2010년 변경한 더샵 브랜드 BI

2010년 변경한 더샵 브랜드 BI

이시아폴리스 1차 분양 시기 포스코건설은 2002년 3월 더샵 브랜드 발표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BI를 변경했다.

‘내 삶의 반올림’이란 슬로건으로 탄생한 더샵은 독특하고 세련된 이미지가 강한 인상을 주었으나, 음악 기호이다 보니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아울러 ‘더샾’이란 한글명은 문자 조합이 없어 문서작성 중 글자를 인식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보완하기 위해 리뉴얼을 추진하긴 했으나, 무엇보다 가장 큰 목적은 이시아폴리스 성공사례에서 나타나듯이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좋은 상품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새롭게 선보인 더샵은 세련되고 고급스런 이미지를 더했고, 포스코 패밀리의 핵심가치인 ‘고객지향’을 BI의 주된 철학으로 내세웠다.

브랜드 콘셉트는 고객의 마음을 읽는다는 의미의 ‘헤아림’으로, 정성과 세심한 배려를 통해 고객의 삶에 진정한 풍요를 제공하고자 하는 포스코건설의 마음을 담았다. 이에 반음 올림을 뜻하는 음악적 기호인 “#”을 가로획과 세로획이 서로 엮여있는 직물 형상으로 표현해 한 땀 한 땀 정성들인 느낌을 살렸다.

‘헤아림’으로 리뉴얼 이후 포스코건설은 고객이 ‘이런 것까지 신경 쓰는구나’라고 할 정도로 감동을 주기 위해 숨은 공간, 작은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은 서비스를 추구했다. 대표적인 ‘헤아림’ 서비스로는 지하주차장 색채사인 시스템, 통합전기제품군 디자인 개발, ‘온마음 서비스’, ‘더샵 지키미’등이 있었다.

‘더샵 지하주차장 색채사인 시스템’은 기존에 어둡고 위험한 공간으로 인식되던 지하주차장을 그래픽, 색채, 사인, 조명 등 4가지 요소를 활용해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가족을 위한 임시 주차공간, 친환경자동차를 위한 주차공간, 카플을 위한 주차공간, 짐을 부릴 수 있는 받침대, 주차장 전체 지도 등 기존 국내 주차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요소를 개발·적용함으로써, 입주민들의 편의와 안전, 만족을 도모했다.

2012년 굿디자인어워드 최우상을 수상한 통합전기제품군 디자인은 기존에 분리돼 있던 월패드, 조명 스위치, 온도 조절기 등의 전기제품을 하나의 제품에 통합 설치해 심미적으로 깔끔한 디자인을 구현했고,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편의성을 강조했다.

2012년 10월 포스코건설은 더샵 아파트의 새로운 서비스 브랜드 ‘온마음서비스’를 론칭했다. ‘온마음 서비스’는 더샵의 브랜드 철학인 ‘헤아림’을 바탕으로 더샵 아파트 고객에게 보다 품격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포스코건설은 고객을 위해 ‘마음을 다하는(全心) 서비스’, ‘마음이 따뜻해지는(溫) 서비스’, ‘언제나 고객의 소리에 깨어있는(On)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마음을 담아 ‘온마음 서비스’라고 네이밍했다. 이후 입주지원센터를 ‘온마음 라운지’로, 입주도우미를 ‘온마음 매니저’로 변경했으며, 입주 후 제공되는 서비스도 새롭게 업그레이드해 더샵 고객들에게 즐겁고 편안한 더샵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나갔다.

2013년 12월 포스코건설은 통합 보안 솔루션인 ‘더샵 지키미’를 공개했다. ‘더샵 지키미’는 맞벌이 가구와 여성 독신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사생활 보호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아파트 입주자 중 취약계층인 여성과 어린이를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고자 추진된 통합 보안 솔루션이었다.

‘더샵 지키미’는 아파트 단지 출입구부터 세대 출입구까지의 공간을 단지 내부영역, 외부영역, 세대 내부영역 등 3단계 영역으로 구분해 각 영역별 체계적인 보안 방어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보안 방어체계는 총 7가지 특화된 보안 시스템을 적용해 단지 내·외부 곳곳의 보안 기능을 개선 적용했으며, 입주민이 직접 단지 보안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 센텀포레 부산 재진입 성공과 오피스텔 브랜드 더샵 라르고론칭

헤아림으로 고객의 마음을 읽는 더샵으로의 리뉴얼 이후 2011년을 맞아 포스코건설은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인천 송도 그린스퀘어, 이시아폴리스 2,3차, 울산 문수산, 부산 센템포레, 세종 센트럴시티, 세종 레이크시티 등 총 7개 프로젝트에 7578세대 분양에 나섰다.

부산 센텀포레는 부산지역 주택사업 재기 성공작이었다. 2002년 해운대 센텀파크 분양 대박 이후 아델리스, 센텀스타 등으로 불패신화를 이어가던 포스코건설은 2007년 센트럴스타 분양 참패라는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따라서 센텀포레는 이후 4년만의 도전이었다. 결과는 부동산 경기침체 속 보기 드물게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성공 요인은 우선 입지가 좋았다. 부산 최고 주거지역인 센텀권역 입지와 수영강이란 친환경 요소를 끼고 있었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도 성공 요인이었다. 3.3㎡당 1000만 원 이상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분양가 상한제로 960만 원을 책정했다.

이 두 가지 펙트를 포스코건설은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고객이 가장 기다리던 아파트’란 슬로건으로 호기심을 유발했다. 좋은 입지에 마케팅의 영향으로 저렴하다는 착시효과까지 더해져 사람들의 발길이 몰려든 것이었다.

센텀포레로 재기에 성공한 이후 센텀누리, 파크시티, 시티에비뉴등도 분양에 성공하며 다시 한 번 부산 불패신화를 이어갔다. 더욱이 이 시기 포스코건설은 모델하우스 하나로 3년 동안 4개의 프로젝트를 소화해냄으로써 효율적·경제적 분양관리 성과까지 달성했다.

세종시 프로젝트도 재미있는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행정복합도시 이전사업 추진 당시 대부분의 건설사들은 성공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정권교체를 계기로 백지화 내지 축소를 예상했다. 그러다 보니 사업권 반납이 속출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포스코건설은 오히려 역발상으로 블루오션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부가 국민적 약속을 지킬 것이란 믿음이 있었으며, 75% 공무원 특별분양 조건도 끝까지 믿었다.

부지 선정 과정에서는 많은 건설사들이 떠난 뒤라 선택의 폭이 넓었다. 기존 부지를 반납하고 입지가 좋은 지역을 다시 받았다. 이후 포스코건설의 예상은 적중했다. 정권이 바꿔도 국민적 약속이 지켜져 행정복합도시 이전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추진됐다.

세종 센트럴시티

세종 센트럴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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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레이크시티

세종 센트럴시티와 레이크시티는 세종시에서 처음으로 분양된 공동주택이었다. 준비기간이 길었던 만큼 포스코건설은 마케팅 전략도 철저하게 준비했다. 서울과 과천청사에서 실시한 분양 마케팅에서는 포스코건설 설명회에만 공무원들이 몰렸다. 테라스하우스식의 가든하우스가 많은 인기를 끌었다.

입지가 좋았던 만큼 분양도 성공적이었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 시기에 신생도시에서 860만 원이나 분양가를 책정할 만큼 성공한 분양이었다. 분양 이후 이 프로젝트에는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었다.

부산과 세종시에서 값진 성과를 올린 포스코건설은 2012년에 인천 송도 그린워크 1, 2차, 부산 해운대 센텀누리, 이시아폴리스 4차, 부산 파크시티, 강원 강릉 더샵, 서울 강남 더샵 라르고, 인천 송도 마스터뷰 등 9개 프로젝트에서 총 8040세대 분양에 나섰다.

강남 보금자리지구 ‘강남 더샵 라르고’는 오피스텔 분양이었다. 포스코건설이 주상복합이 아닌 단독 오피스텔 분양에 나선 건 2005년 ‘안양 메쎄 포스빌’ 이후 7년 만이었다. 오피스텔사업 확대를 위해 2012년 10월 포스코건설은 오피스텔 전문 브랜드 ‘더샵 라르고’를 새롭게 론칭했다.

이탈리아어인 ‘라르고(largo)는 ‘폭넓게, 느릿하게’라는 뜻으로, ‘더샾 라르고’는 ‘바쁜 도시 속에서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오피스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더샵 라르고’의 대외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강남 더샵 라르고’ 마케팅 과정에서 사내 직원들을 홍보모델로 기용됐다.

‘미스 & 미스터 라르고’로 명명된 홍보모델은 포스코건설 직원들의 추천을 통해 선발됐다. 남녀 총 12명으로 구성된 ‘미스 & 미스터 라르고’는 각종 홍보포스터 모델로 활동했으며, 분양홍보관에서 분양상담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헤아림도우미’로도 활약했다.

강남 라르고 분양은 높은 경쟁률 속에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KTX수서역과 가까운 입지 조건과 저렴한 분양가가 성공적 분양에 한몫했으며, 무엇보다 포스코건설은 마케팅에서 이 같은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 헤아림과 온마음 서비스5년 연속 한국품질만족지수 1위 차지

강남 라르고 분양 성공에 이어 2013년 포스코건설은 경기 동탄역 센트럴시티, 부산 시티에비뉴, 충남 아산 레이크시티 2, 3차, 경기 기흥 프라임뷰, 인천 송도 그린워크 3차, 경기 평촌 센트럴시티등 10개 프로젝트에서 총 8900세대를 분양했다.

동탄역 센트럴시티는 역경을 딛고 분양에 성공한 프로젝트였다. 동탄신도시 아파트 분양의 경우 시범사업이었던 2004년 1차 동시분양에서는 성공적 분양으로 첫 출발이 좋았으나, 이후 2005년 2차 동시분양부터 미분양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동탄역 센트럴시티는 차수로 따지자면 3차 사업이었으나, 동시분양이 아닌 단독분양이었다. 단독분양으로 경쟁사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단독분양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KTX동탄역 3분 거리라는 입지 조건을 살려 프로젝트명을 ‘동탄역 더샵 센트럴시티’라고 정했다.

포스코건설은 성공적 분양을 위해 마케팅 활동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삼성전자가 가장 매력적인 고객이었으나, 회사 출입이 쉽지 않았다. 이에 갖가지 아이디어들이 총동원됐다. 명절 귀성버스에 광고 문구를 끼워 넣었으며, 심지어 삼성전자 내 휴게소 자판기 관리자를 포섭해 종이컵에다 광고 문구를 찍어 넣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과 좋은 입지에 힘입어 동탄역 센트럴시티의 분양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동탄역 센트럴시티는 미분양 해소의 터닝 포인트였다. 포스코건설이 인허가 관청에 장담했던 대로 동탄역 센트럴시티의 분양 성공 이후 동탄신도시 미분양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아산 레이크시티 역시 역경을 딛고 분양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아산지역의 미분양 사태는 동탄보다 심했다.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2006년 1차 분양부터 미분양이 발생하자 포스코건설은 후속 분양 프로젝트를 추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계속 분양을 미루다가 7년 만에 아산에 내려갔을 때 포스코건설에 대한 지역민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신뢰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이었다. 신뢰회복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아파트 현장을 아산의 중심으로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교육기관을 유치하고 학교, 유치원, 상업시설 등의 인프라를 구축해나갔으며, 이들 시설들을 무상 임대함으로써 차츰 지역민들로부터 잃었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분양 마케팅 과정에서는 매력적인 고객으로 삼성디스플레이를 선택하고 분양 지역이 아산의 중심임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특히 젊은층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야간 분양상담을 실시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최초로 실시한 공동구매도 효과가 좋았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포스코건설은 ‘미분양의 무덤’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으며, 특히 신뢰회복을 계기로 후속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동탄과 아산의 성과에 이어 2014년 포스코건설은 경기 구리 갈매, 하남 센트럴뷰, 동탄 이시아폴리스 주상복합 분양을 추진했으며, 그 외 구리 인창동, 세종시, 경남 창원 가음정,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부산 광안리 등에서 분양을 준비하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부동산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2010년부터 2013년까지 28개 프로젝트에서 2만 5489세대 분양에 성공했다. 이 같은 힘의 원동력은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자 고객의 마음을 읽는 헤아림과 격조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던 ‘온마음 서비스’ 정신이었다.

포스코건설은 헤아림과 ‘온마음 서비스’의 실천을 위해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CCM(소비자중심경영) 인증을 획득하고, 2013년에 다시 재인증을 획득했다. CCM은 기업의 모든 경영활동을 소비자 중심으로 구성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2년마다 한국소비자원이 평가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증하는 제도였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헤아림과 ‘온마음 서비스’ 성과를 크게 인정받아 한국표준협회와 품질경영학회로부터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 연속 한국품질만족지수 아파트부문 1위를 차지했다. 한국품질만족지수는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소비자와 해당분야 전문가를 대상으로 사용품질과 감성품질의 우수성 및 고객만족도를 조사해 발표하는 종합지표로, 높은 객관성과 신뢰도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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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6. 토목·환경, 해수담수와 장대교량으로 새 도전에 나서다        

# 도로 분야, SOC 민자사업과 턴키시장 강자로 부상하다

토목·환경 분야는 더 이상 회사 균형 발전의 장애물이 아니었다. 2006년 수주 1조 원 시대를 연 이후 2009년엔 2조 원대에 근접했다. 이후로도 큰 도약은 없었으나 꾸준한 실적을 유지하며 회사 균형 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토목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SOC 민자사업과 턴키시장에서 꾸준히 실력을 쌓아 정상급 경쟁자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그 중 철도는 경전철 기술력을 바탕으로 차량기지 분야의 독보적인 경쟁력을 과시했으며, 도로는 오랜 기술개발과 도전 끝에 장대교량 분야에서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3년 토목·환경은 턴키 분야 수주 1위를 달성하며 마침내 정상에 등극했다.

이 시기 수행 중이던 SOC 민자 도로로는 제2영동고속도로 서울~원주간, 수도권 서부고속도로 수원~광명간, 서울~포천간 도로, 제2경인 연결 안양~성남간, 부산신항 제2배후도로, 제2외곽순환 인천~김포간, 부산 산성터널프로젝트 등이 있었다.

포스코건설이 주간사를 맡은 인천~김포간 제2외곽순환도로는 2공구와 3-1공구에서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012년 3월 착공, 2017년 3월 준공 예정인 2공구는 인천 송현동과 원창동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업비는 2763억 원 규모였다. 특히 2공구는 국내 최초 도심지 장대터널이 계획돼 있었다. 3-1공구는 청라 경제자유지구 통과 지역으로, 사업비 869억 원에 1.65km에 이르는 지하차도가 특징이었다.

2013년 8월 착공, 2018년 2월 준공 예정인 부산 산성터널 역시 포스코건설이 주간사를 맡은 프로젝트로, 북구 화명동과 금정구 장전동 일대에 위치해 있으며, 사업비 1891억 원 규모였다. 총 연장 5.62km에 도심지 터널 연장만 4.87km에 이르는 대규모 터널 프로젝트였다.

그 외 대표적인 턴키 프로젝트로는 전남 여수산단 마동IC, 완도군 노화-구도간 연도교, 경북 영덕-오산 연속화 도로, 전남 광양 태인2교 신설 구조물 설치공사, 경기 송산그린시티 개발사업 국도77호선 프로젝트등이 있었다.

전남 건설방재국이 발주한 사업비 396억 원 규모의 여수산단 진입도로 마동IC 개설공사(2010.12~2013.4)는 2007년 착공한 여수산단 진입도로 4공구와 연결되는 공사로, 포스코건설은 인력과 장비를 공용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현장은 전남 광양시 금호동과 중마동 일대에 위치해 있으며, 본선과 접속교량에 이어 해상교량이 포함된 건설공사였다. 주간사를 맡은 포스코건설은 2012년 5월 12일 여수엑스포 개장에 맞춰 이보다 이틀 먼저 해상교량을 임시 개통했다. 그 과정에서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시행하는 패스트 트랙 공법을 적용해 18개월 공기단축의 성과를 달성했다.

2011년 12월 착공, 2016년 5월 준공 예정인 전남 완도군 노화-구도간 연도교 가설공사는 완도군 노화읍 동천리와 소안면 구도리를 연결하는 프로젝트이며, 해상교량 790m가 포함된 총 연장 1.9km 2차로 건설공사였다.

전남 완도군이 발주한 사업비 417억 규모의 이 프로젝트의 수주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기본설계와 가격에서 100점 만점을 받았다. 건설 과정에서는 연도교가 관광 자원화가 가능하도록 인근 섬을 조망할 수 있게끔 교량 중간에 전망대를 조성했으며, 경관과 상징성을 강조한 신공법인 엑스트라도즈드교를 적용했다.

영덕-오산간 도로 연속화 공사(2011.11~2014.11)는 용인~서울 고속도로 연계 프로젝트로, 경부고속도로의 기능을 보완하는 남북축 고속화도로망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사업이었다. LH공사가 발주한 사업비 756억 원 규모의 이 사업에서 포스코건설은 대표 시행사를 맡아 포스코엔지니어링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12년 8월 착공, 2015년 12월 준공 예정인 광양 태인2교는 포스코건설 교량 건설역사상 최대 규모의 엑스트라도즈드교이며, 포스코패밀리의 연구성과물이 현장에 적용된 대표적 성공사례였다.

이 프로젝트에는 포스코패밀리 초장대교량추진반이 수행한 국토해양부 제2핵심과제 개발소재가 현장에 적용됐다. 초고강도 강연선 개발을 위해 포스코가 재료를 개발했으며, 연구 주관을 맡은 RIST는 소재를 개발했다.

그 결과 세계 최초로 최고강도 강연선이 개발돼 국내 최초로 PT용 초고강도 강연선 2400MPa이 현장에 적용됐으며, 국내 최초로 사장재용 초고강도 강연선도 2200MPa이나 적용됐다. 그 외 포스코건설 R&D센터가 핵심기술 국산화로 개발한 사장재 케이블 균등긴장 시스템도 현장에 적용됐다.

 

# 눈물로 한땀 한땀 쌓은 실력으로 장대교량 분야 진출

턴키시장 정상 등극에 이어 장대교량 진출은 토목 분야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자랑거리였다. 2013년 6월말 포스코건설은 전남 신안군 임자면과 지도읍을 연결하는 사장교 프로젝트인 ‘지도~임자 도로건설공사’를 수주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턴키시장에서 장대교량을 수주하기까지 그 과정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포스코건설이 장대교량에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한 건 스마트 비전을 수립하던 2004년이었다. 당시 스마트 비전은 토목 분야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장대교량을 선택했다.

장대교량을 선택한 이유는 수익성 때문이었다. 실적 확보 차원에서 턴키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일반 도로 분야는 레드오션이었다. 별 기술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경쟁이 치열했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수익성은 계속 떨어졌다.

반면에 교량 분야는 기술 확보가 어려워 아무나 도전해서 될 분야가 아니었으며, 진입 장벽이 높은 만큼 수익성도 좋았다.

교량 분야의 세계적 규모는 50조 원 수준이었고, 국내 시장에서는 6조 7000억 원 규모였다. 대부분의 물량은 국토해양부 익산국토관리청에서 나왔으며, 서해안 도서벽지와 남해안 다도해가 교량 건설의 메카였다.

국내에서 장대교량의 판세는 대림산업, 현대건설, 삼성건설 등이 주도하고 있었다. 대림산업은 소록대교, 적금대교, 이순신대교, 새천년대교 등의 실적을, 현대건설은 남해대교, 울산대교 등을, 삼성건설은 영종대교 등의 실적을 자랑했다. 이들 빅3에 이어 제2남해대교의 GS건설과 거가대교의 대우건설 등이 추격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2004년 스마트 비전에 따라 후발업체로 뒤늦게 이 분야에 뛰어든 포스코건설은 익산지방국토관리청에 회원사로 등록하고 첫 번째 도전에 나섰다. 도전 프로젝트는 전북 임실군에 위치한 엑스트라도즈드교인 운암대교였다. 결과는 실적 부족으로 포스코건설이 참패하고 쌍용건설이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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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 아라뱃길 4공구 전경

높은 진입 장벽을 실감한 포스코건설은 이후 기술 축적과 함께 실적 확보에 나섰다. 영덕~오산간 도로 1공구를 시작으로 여수산단 진입도로, 교동 연륙교, 경인 아라뱃길 4공구, 인천신항 진입도로등에서 실적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7년 동안의 기술 축적과 실적 확보로 다진 실력으로 2010년 포스코건설은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도전 프로젝트는 여수시 화양과 고흥군 적금을 연결하는 연륙연도교였다. 대림산업, 대우건설, 현대산업개발 등의 건설사와 붙은 경쟁에서 포스코건설은 아쉽게 2위를 차지해 수주에 실패했다. 승리는 현대산업개발이 거머쥐었는데, 현대산업개발은 10년만에 처음으로 장대교량을 수주해 파란을 일으켰다.

아쉽게 승리를 놓친 포스코건설은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또 다시 기술 축적과 실적 확보에 나섰다. 영덕~오산 연속화 도로, 완도군 노화~구도간 연도교 가설공사, 송산그린시티 국도77호선 건설공사등에서 교량 실적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특히 포스코패밀리의 기술력으로 수행한 전남 광양 태인2교에서 장대교량에 대한 자신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2012년 포스코건설은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전남 무안군 해제와 영광군을 연결하는 해상교량인 칠산대교가 세 번째 도전 대상이었다. 포스코건설은 대림산업, 대우건설, 삼환건설 등과 경쟁을 펼쳐 또 다시 2위에 그쳤다. 승리자는 대우건설이었다.

비록 두 번이나 2등에 그쳐 아쉬움이 많았지만, 포스코건설은 발주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자신감도 전혀 꺾이지 않았다. 이에 곧바로 네 번째 도전에 나섰다.

도전 대상은 전남 신안군 지도와 임자도를 연결하는 해상교량 프로젝트였다.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이 발주한 사업비 1408억 원 규모의 이 사업은 총 연장 4.99km에 1.92km의 사장교 2개소가 포함돼 있었다. 원안설계사인 한양건설 컨소시엄과의 경쟁에서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은 2013년 6월말 단 3.2점이라는 간발의 차이로 마침내 장대교량 수주에 성공했다.

‘지도~임자 도로건설공사’ 수주 성공은 턴키 분야 첫 장대교량이라는 것 외에도 교량 건설에 포스코의 고강도 강재를 반영함으로써 패밀리사 시너지 창출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주요 성공 요인은 철저한 사전준비와 탁월한 대안설계였다. 포스코건설은 1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철저히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최상의 설계컨소시엄을 구성했다. 포스코건설이 제시한 대안설계는 원안설계보다 지관장을 200m에서 400m로 크게 늘렸다. 나머지 장대교량도 190m에서 350m로 늘렸다. 이는 가장 경제적인 거리로서 하이테크놀러지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교량의 다리인 교각도 최소화해 가격경쟁력을 높였다. 이 같은 대안설계의 하이테크놀러지가 알려지면서 건설사들이 경쟁에 나서길 꺼려해 원안설계사인 한양건설하고만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최종 심의에서 심사위원들은 원안설계보다 대안설계를 선택했다.

“첫 턴키 장대교량 수주는 지난 10년 세월 동안 눈물로 한 땀 한 땀 쌓은 실적의 결과물이었다. 그 눈물을 다 합쳐도 지도~임자 실적에 못 미친다. 이 프로젝트 하나로 우리는 지금까지 쌓은 일반 교량 실적보다 1.5배나 더 확보했다. 이는 향후 추가 수주 성공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박주운 토목환경사업본부 상무)

턴키 첫 장대교량 수주 성공에는 포스코의 고성능 강재와 케이블도 한몫했다. 포스코가 개발한 HSB 800는 기존 강종 대비 강도, 인성, 용접성 등을 종합적으로 개선한 교량 맞춤형 고성능 강재였다. 케이블의 인장 강도 역시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 월드 베스트라 불리는 이순신대교의 인장 강도가 1680MPa인데, 지도-임자 장대교량에 적용하기로 한 강도는 무려 2200MPa이었다.

포스코건설은 그 동안 쌓은 장대교량 실력과 포스코의 강재 기술력을 기반으로 향후 해외시장에도 적극적으로 도전할 계획이다. 아직 해외 실적이 미천해 그 도전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메이저 건설사들이 포스코의 강재 기술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컨소시엄을 통한 해외 동반진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 경전철 기술력을 바탕으로 차량기지 분야 강자로 부상

도로 분야가 이 시기 장대교량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달성했다면 철도 분야는 경전철 기술력을 기반으로 차량기지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김해경전철 수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차량기지 건설이었다. 차량기지 건설에는 최첨단 기술로서 신호, 통신 기반의 열차관제시스템인 E&M(Electronic & Mechanic) 기술력이 필수적이었다. 포스코건설은 김해경전철 수행 과정에서 2008년경 E&M 조직을 갖추었다. 30여 명으로 이루어진 E&M팀은 국내 건설사 중 포스코건설만이 유일하게 갖춘 차량기지 전문 엔지니어 조직이었다.

그들의 본격적인 활동이 2009년부터 시작됐다. 인천도시철도 2호선 201공구가 첫 번째 성과였다. 오류지구와 검단사거리 구간인 201공구(2009.6~2014.11)는 총 연장 3.296km에 정거장 2개소, 본선환기구 1개소, 차량기지 일종인 주박기지 1개소로 구성돼 있었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주박기지, 교량, 터널, 정거장, 개착박스 등 복합 공종이 다수 포함돼 있어 어려움이 많았으며, 일정을 맞추느라 설계와 시공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패스트 트랙 공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201공구에 이어 2009년 11월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은 벽산건설 컨소시엄을 제치고 인천도시철도 2호선 206공구 수주에 성공했다.

2010년 1월 착공, 2016년 7월 준공 예정인 인천도시철도 2호선 206공구는 인천시 북인천변전소와 서구 가정동 콜롬비아공원 구간이며, 1.72km의 철로 및 정거장 2개소 건설이 주요 임무였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차량기지 추가 수주와 설계변경으로 매출액과 실행이익률이 크게 개선됐다.

차량기지 두 번째 성과는 대구도시철도 3호선이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은 총 23.95km 구간에 지상 모노레일을 설치해 급증하는 도시교통난을 해소하고, 기존 1, 2호선과 연계망을 구축해 보다 나은 교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차량기지 전경

대구도시철도 3호선 차량기지 전경

포스코건설은 3-1공구(2009.6~2014.6)를 맡아 차량기지 1개소와 정거장 3개소를 설치했다. 프로젝트의 특징으로는 국내 최초 2.3km의 모노레일 공사였으며, 세계 최초로 30m 경간 PSC궤도 빔이 설치되기도 했다.

세 번째 성과는 성남~여주 복선전철 부발차량기지 건설공사였다. 2010년 5월 포스코건설은 이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2012년 12월 착공, 2016년 5월 준공예정인 부발차량기지는 입출고선을 포함해 연면적 약 28만 ㎡, 전동차 유치 14편성, 경수선 20편성, 건축물 12개동으로 구성돼 있었다.

포스코건설로서는 최초 일반철도 차량기지 건설공사였으며,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실시설계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E/S 기준 시점 변경, 상수도 원인자 분담금 면제, 특허공법 삭제 등의 항목을 발굴해내 원가절감에 기여했다.

부발차량기지에 이어 2011년 12월 포스코건설은 동해남부선 부산~울산간 덕하차량기지 수주에도 성공했다. 이로써 포스코건설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동안 발주된 5건의 철도차량기지 건설공사 중 인천도시철도 2호선, 대구도시철도 3호선, 부발차량기지, 덕하차량기지 등 4건의 수주실적을 달성함으로써 이 분야 정상에 올랐다. 4건의 공사금액은 총 5547억 원에 이르렀다.

특히 덕하차량기지 건설공사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덕하리 일원(32만 148㎡)에 입출고선(2만 4782㎡)과 차량기지(29만 5396㎡)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로, 수주가격이 4건 중 최고액인 2360억 원이나 됐다.

차량기지 외 전통적 강점 분야인 철도 노반에서는 이 시기 대표적으로 중앙선 원주~제천 복선전철 3공구, 수도권고속철도 수서~평택 7공구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11년 7월 착공, 2017년 2월 준공 예정인 원주~제천간 3공구 노반 건설공사는 충북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와 봉양읍 연박리 일원에 위치해 있으며, 총 연장 12.034km에 NATM공법의 터널 및 사갱 시공, 소교량, 토목공사, 신호장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수도권고속철도 수서~평택 7공구(2012.1~2014.12)는 포스코건설 최초 고속철도 프로젝트였다. 경기도 평택시 장안동과 지제동에 위치해 있으며, NATM 터널 3.52km, 개착터널 380m, U-TYPE 360m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 울릉도 동방파제, 피날레 장식하며 턴키 분야 1위 등극

이 시기 주요 부지조성 사업으로는 영흥화력 5·6호기 부지조성공사, 새만금 방수제 동진 4공구, 포스코건설 최초 댐공사였던 장성댐 둑높이기사업, 구미 하이테크밸리 1단계 조성사업, 민자 택지개발사업이었던 목포 대양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 등이 있었다.

한국남동발전이 발주한 사업비 1083억 원 규모의 영흥화력 5·6호기 부지조성공사(2009.6~2014.5)는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외리에 870MW급 2기 건설을 위한 착수대비 공사로, 포스코건설은 부지조성공사를 비롯해 원료수송을 위한 부두, 방파제 등 기반시설 구축 공사를 맡았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성과를 달성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날씨였다. 섬의 특성상 겨울철 찬바람이 매서웠으며, 2011년 5월부터 9월까지는 장마철 폭우와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작업 일수가 고작 70일에 불과했다.” (정병대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건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일정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성공 요인은 완벽한 시공계획이었다.

영흥화력 5·6호기 건설공사는 20개 건설사가 동원된 대규모 프로젝트로, 포스코건설이 맡은 부지조성공사가 선발주자였다. 따라서 부지조성공사에서 일정이 뒤틀리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모든 공정에 차질이 빚어질 게 뻔했다.

포스코건설은 시의적절한 장비투입 노하우가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판단하고, 무려 11차례 수정을 통해 완벽한 시공계획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주설비가 들어설 파워블록 지역의 부지정지를 계획보다 앞당겨 발주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이로 인해 ‘신재생에너지 진입도로’, ‘접근 수로’ 등을 추가로 수주할 수 있었다.

2012년 4월 착공, 2016년 5월 준공 예정인 구미 하이테크밸리 1단계 조성사업은 경상북도와 구미시가 발주했으며, 부지조성공사로는 대형급(2880억 원)이어서 수주전에 33개나 되는 건설사가 몰려들었다. 포스코건설은 포장공사 전문업체 웅진개발을 부계약자로 끌어들여 수주에 성공했다.

구미 하이테크밸리는 총 면적 934만 ㎡ 규모로서 구미시 해평, 산동면 일원에 1조 8082억 원을 투입해 첨단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며, 포스코건설은 1단계 조성사업에서 연면적 375만 ㎡에 교량 13개소를 비롯해 부지조성공사를 수행하고 있다.

항만 분야에서는 신양항 정비공사, 새만금 신항만 방파제 1단계 2공구 축소공사, 군산항 유연탄 전용부두 축조공사, 울릉도 사동항 2단계 동방파제 축조공사등을 수행했다.

울릉도 사동항 2단계 동방파제 축조공사는 2013년 피날레를 장식하며 포스코건설을 토목환경 턴키 분야 1위로 올려놓은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본사가 있는 경북 포항 지역에서 발주된 사업을 첫 수주하기까지의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포스코건설은 2010년 포항 영일만 2단계 1공구 수주 실패에 이어 2011에도 두 건의 프로젝트를 안방에서 경쟁사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특히 2011년에 놓친 두 건의 프로젝트로 포스코건설은 큰 좌절감에 빠졌다.

포항 영일만 남방파제 1단계 2공구 축조공사의 경우 설계심의에서 1위로 통과해 수주가 유력했으나, 경쟁업체의 예상치 못한 가격 제시로 결국 수주에 실패했다. 대림산업과 경합한 울릉도 일주도로 역시 루머에 휘말려 다 잡은 고기를 놓치고 말았다.

실패 요인은 지역기업이란 이미지가 오히려 부담이었다. 지역기업에 일감을 몰아준다는 식의 루머와 의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따라서 사업비 1561억 원 규모의 울릉도 사동항 동방파제 축조공사 발주가 임박했을 때 많은 건설사들이 관심을 보였으나, 포스코건설은 먼 산 구경하듯 바라만 보았다.

그러나 이 사업이 지자체 사업이 아닌 국가사업으로 바뀌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지역기업이란 족쇄에서 풀려난 포스코건설이 의욕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당시 울릉도 일주도로를 수행하고 있던 대림산업 역시 텃밭임을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양측의 사활의 건 불꽃 튀는 자존심 경쟁에 나머지 건설사들은 주눅이 들어 하나, 둘씩 수주 경쟁에서 발을 뺐다.

2013년 12월말 해양수산부 포항지방해양항만청입찰심의 결과는 4.88점차의 포스코건설 승리를 확정지었다. 승리 요인은 설계의 우수성이었다. 1만 4000톤급의 케이슨 14함을 210km까지 해상 운반하는 고난이도 항만공사 설계에서 포스코건설이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해 대림산업을 따돌렸다.

2014년 2월 착공, 2017년 1월 준공예정인 이 프로젝트는 6000톤급 해군 함정 2척, 해경 함정 1척을 정박할 수 있는 해군·해양경찰청 전용부두와 5000톤급 여객선 3척이 정박할 수 있는 여객부두를 조성하는 사업이며, 포스코건설은 동방파제 640m 축조공사와 해수소통구 1식, 부대시설 1식 건설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 환경 분야, 신사업 해수담수화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다

토목 분야가 장대교량과 차량기지에 역량을 집중하고 성과를 냈다면, 환경 분야는 물산업 중에서도 해수담수에 역량을 집중했다.

물산업 육성은 포스코의 미래 전략 중 하나였다. 전 세계적으로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물산업은 석유의 ‘블랙골드(Black Gold)’와 맞먹는 ‘블루골드(Blue Gold)’로 각광받기 시작했고, 이를 포스코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목한 것이었다.

포스코건설은 물산업을 육성할 가장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최신 기술인 Bio-SAC공법을 적용한 하수처리 프로젝트를 비롯해 각종 첨단공법을 바탕으로 하수재이용과 전처리 기술의 핵심역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같은 역량을 바탕으로 2010년 7월 포스코건설은 물환경본부를 신설했다. 출범 직후 물환경본부는 4가지 측면에서 향후 사업추진 방향을 정했다.

먼저 해수담수화, 하폐수 재활용 등 맑은 물 정수사업에 주목했다. 둘째, 정부의 물산업 민영화 계획에 관심을 가지고 상수도 진출을 모색했다. 셋째, 싱크포워드 비전의 핵심인 펩콤(PEPCOM)의 모델로서 포스코 국내외 제철소의 용수공급, 폐수처리 시설의 EPC 및 O&M(Operation & Maintenance) 참여를 계획했다. 마지막으로 포스코플랜텍, 포스코ICT, 포스코E&E, 포스코엔지니어링 등 포스코 패밀리 시너지 창출을 통한 해외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모하기로 했다.

물사업 운영관리(O&M)와 관련해서는 2011년 12월 O&M 전문기업으로 블루오앤엠을 설립했다. 설립 이후 블루오앤엠은 포항 하수관거 BTL, 김포시 하수도 민간투자사업, 파주 하수관거 BTL, 광양 동호안 해수담수화사업,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배수종말처리 및 재이용시설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상수도의 경우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반대에 부딪쳐 정부의 민영화 계획에 별 진전이 없었다. 상수도 민영화는 먹는 물을 민간에 맡기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논리와 민간이 운영하면 요금이 오른다는 인식 때문에 계속 발목이 잡혔다. 이 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포스코건설은 포항시에 정수장 민자사업을 제안하는 등 상수도 진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나갔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물산업 중에서도 해수담수화 사업에 역량을 집중했다. 포스코건설이 해수담수를 선택한 이유는 사업성 때문이었다.

해수담수는 댐 건설과는 달리 민원 발생에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었다. 댐은 산과 강 생태계 훼손 우려 때문에 환경단체 반대가 많았으나, 해수담수는 바다 물을 이용하는 만큼 그럴 염려가 없었다.

우리나라 3면이 바다에 닿아 있다는 점도 사업화에 좋은 여건이었다. 따라서 포스코건설은 우리나라가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고 있는 시점에서 향후 해수담수화의 사업성을 높게 평가했다.

2011년 3월 포스코건설은 21명의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해수담수 조직을 신설했다. 그러나 실적 부족으로 사업추진이 쉽지 않았다. 이 같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통한 컨소시엄 참여를 희망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이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던 두산중공업이나 그밖의 국내업체들은 포스코건설의 진출을 원하지 않았다. 강력한 라이벌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전략적 제휴가 여의치 않자 포스코건설은 M&A를 통한 시장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2011년 8월경 역삼투압 방식으로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수처리 기술을 갖고 있던 스페인 담수플랜트기업 이니마 인수에 나섰으나, GS건설과의 가격경쟁에 뒤져 M&A에 실패했다.

이후 포스코건설은 기술개발과 자체 사업추진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기술개발 과정에서는 글로벌 수준의 기술자립화를 위한 연구개발에 나서 환경신기술 인증 1건과 환경신기술 검증 1건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광양과 제주도에 연구검증단지도 구축했다.

사업화 추진 과정에서는 광양제철소 인근 동호안에서 해수담수화 사업을 추진했으며, 국토교통부에 여수산업단지 해수담수 민간투자사업을 제안했다.

광양 동호한 해수담수화 용수공급시설

광양 동호한 해수담수화 용수공급시설

광양 동호안 해수담수화 용수공급사업(2012.12~2014.7)은 국내 최초로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를 이용한 해수담수화 사업이었다. 담수화 시설 인근의 SK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를 담수화해 공업용수로 다시 제철소에 공급하는 시스템이며, 1일 용량 3만 톤 규모였다. 담수화 시설 준공 후 30년간의 운영관리는 블루오앤엠이 맡기로 했다.

광양 해수담수 프로젝트 추진으로 자력 설계능력과 운영기반을 확보한 포스코건설은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국토교통부에 ‘여수산단 해수담수 활용 맞춤형 공업용수공급 민간투자사업’을 제안했다.

제안의 발단은 정부가 2017년경 여수산단의 물 부족을 예측하고 고민에 빠졌다는 정보를 입수하면서 출발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자면 통상 댐을 건설해서 해결해야 하나, 정부로서는 예산 부족과 환경단체 반발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포스코건설의 제안에 국토교통부는 크게 반색했으며, 이에 한국수자원공사와 공동 출자를 통한 제3섹터 개발방식의 사업추진에 청신호가 켜졌다.

“광양 해수담수 프로젝트로 우리는 일약 빅3로 도약했다. 겨우 이만한 실적을 가지고 정상급으로 도약할 만큼 아직 국내 해수담수 분야는 초기 단계인 셈이다. 우리는 빠른 시장 선점에 이어 앞으로도 적극적인 기술개발과 사업발굴을 통해 미래 블루골드 물산업 분야를 선도해나갈 것이다.” (장성식 Director, 담수사업그룹리더)

 

# 안양 박달하수처리장, 환경사업 사상 최고 수주액 달성하다

신사업이었던 해수담수 외 이 시기 환경 분야는 수처리 부문에서 전주시 상수도 유수율 제고사업, 대구하수처리장 총인처리시설 설치공사, 안양 박달하수처리장 지하화사업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하수관거 부문에서는 김포시, 파주시, 포항시 등의 하수관거정비 임대형 민자사업(BTL)을 수행했으며, 자원재이용 부문에서는 충남도청 이전신도시 자동집하시설 건설공사등을 수행했다.

전반적으로 이 시기 환경 분야의 실적은 저조한 편이었다. 물사업의 흐름이 하수처리와 하수관거 분야가 마무리되면서 상수도로 넘어왔으나, 그 물량이 적은 데다 포스코건설의 상수도 분야 실적이 전무한 것도 한 요인이었다.

포스코건설로서는 회사 출범 이전 이미 상수도사업이 끝나 경험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 큰 아쉬움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시 상수도 유수율 제고사업은 포스코건설 역사상 첫 상수도사업이었다. 국내 최초 유수율 제고사업이란 남다른 의미를 가진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유수율 제고사업은 새는 물을 막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막대한 사업비가 들어가는 정수장 건설에 앞서 노후 급배수관 정비를 통해 새는 물만 막아도 정수장 하나 짓는 것보다 낫다는 발상에서 이 사업이 탄생했다.

전주시의 경우 2007년 기준 유수율이 63.5%에 불과했고, 그 손실을 환산하면 연간 95억 원 규모였다. 누수의 원인은 역시 급배수관의 노후화였다. 이에 전주시는 10개 급수구역을 대상으로 유수율 제고사업을 추진했으며, 상수도 실적에 목말랐던 포스코건설이 의욕적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2009년 3월 착공에 들어간 이 프로젝트의 임무는 급수구역 관망 정비이며, 아울러 관망의 효율적인 운영관리를 위해 블록시스템과 관망 감시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최종 목표는 유수율 85% 달성이었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는 민원으로 많은 곤혹을 치렀다. 그 원인을 분석해보니 공사 후 포장복구 지연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았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해결방안을 도출해냈다. 특히 기존 아스콘 대신 리바콘으로 교체한 결과 신속한 복구가 이루어져 민원이 크게 줄었다. 또 9억 원 상당의 원가절감도 달성했다.” (신흥섭 전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적자 운영의 아픔이 있었다. 발주처의 예산부족으로 공기가 지연되면서 준공 시점이 2016년 12월로 미뤄졌다. 무엇보다 사업경험 부족으로 적자를 예측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패 요인이었다.

비록 적자 운영의 고통이 있었지만, 상수도와 유수율 제고사업에 대한 경험을 기반으로 향후 유사 프로젝트 수주의 자신감을 얻었다는 점은 나름의 성과였다.

2013년 4월 착공, 2017년 1월 준공 예정인 안양시 박달하수처리장 지하화사업은 중앙선 도담~영천 복선전철 11공구, 지도~임자 장대교량, 울릉도 사동항 동방파제 축조공사와 함께 2013년도 토목환경 턴키 분야 1위를 이끈 1등 공신이었다.

당초에 박달하수처리장은 지하화보다는 이전사업을 모색했다. 원래 인적이 드문 도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던 박달하수처리장 지역은 인근에 광명KTX역사가 들어서고 역세권개발까지 추진되면서 점차 주택가로 변모해갔다. 그러자 혐오시설에 대한 민원이 제기됐고, 이에 안양시는 2002년부터 하수처리장 이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하수처리장 이전과 기존 부지 재개발은 인허가와 재원조달에 발목이 잡히면서 오랫동안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이 사업이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 건 2011년이었다. 당시 안양시, LH공사, 광명시는 하수처리장의 지하화 재설치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재원은 국고와 LH에서 원인자 부담금으로 조달하기로 했다. 이후 안양시는 환경사업 전문성 확보를 위해 환경공단을 사업자 선정 평가기관으로 발탁했다.

2012년 8월 마침내 박달하수처리장 지하화사업 입찰공고가 떴다.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은 기존 1일 30만 톤 규모의 시설을 철거하고 25만 톤 규모의 고도처리시설을 설치해 지하화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분뇨처리시설(400톤/일), 음식물폐기물시설(360톤/일), 슬러지처리시설(80톤/일) 등의 신설도 포함돼 있었다.

사업비 2660억 원의 대규모 입찰공고가 나오자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쏙쏙 모여들었다. 시공능력 1위의 현대건설, 토목 턴키 분야 강자인 SK건설에 이어 상하수도 환경사업 1위인 포스코건설의 면면도 만만치 않았다.

그 중에서도 포스코건설의 적수로는 대우건설이 가장 큰 라이벌이었다. 대우건설은 지하화 시설 이전 박달하수처리장 건설의 주인공이었고, 2002년 하수처리장 이전이 논의될 때부터 박달하수처리장과 오랜 유대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2013년 3월 환경공단은 포스코건설의 손을 들어주었다. 승리 요인은 상하수도 환경사업 1위의 찬란한 업적에 걸맞은 설계능력이었다.

“연간 운영비가 평가의 핵심인 입찰에서 우리는 대우건설보다 2배 이상의 운영비를 제시했으며, 현대건설이나 SK건설보다도 더 높은 운영비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는 우리가 제시한 운영의 적정성, 객관성을 설계심사에서 발주처가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김민선 Sr.Manager, 물환경영업그룹 근무)

한편 상수도 실적이 전무한 포스코건설이 경북 포항에서 의미 있는 사업 하나를 발굴해냈다. 2013년 8월 포항시에 ‘남구 통합정수장 민간투자사업’을 BTO방식으로 제안했다.

당시 포항시는 상수도경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남구에 위치한 유강, 제2수원지, 택전, 병포 등 4개 정수장의 건립연도가 30~60년이 지나면서 시설 노후화와 시설용량 부족으로 운영 효율성이 크게 떨어져 연간 유지관리 비용이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이에 정수장 신설을 계획했으나, 재원 마련이 쉽지 않았다.

더욱이 먹는 물의 사유화, 민영화 논란 속에 중앙부처인 환경부에서도 6년 이상 물산업 육성을 위한 상수도 시장을 개척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때 포스코건설은 포항시, 의회, 경실련 등 이해관계자와의 접점을 찾아 PPP(Public Private Partnership, 정부-민간 합동 프로젝트 방식) 형태를 제안하고 ‘남구 통합정수장’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통합정수장의 규모는 총 15만 2000톤으로, 1단계에서 제2수원지와 택전 정수장을 통합해 9만 톤의 규모를 갖추고, 2단계에서는 유강과 병포 정수장을 통합해 6만 2000톤 시설을 갖춘다는 계획이었다. 본 사업제안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산하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의 사업타당성조사 및 적격성조사 과정을 약 8개월 이상 거쳤다. 그 결과 2014년 6월, 사업내용이 양호하다는 판단에 따라 최초제안자의 가점 획득과 함께 법적 추진 근간이 마련됐다.

특히 포항시는 제안서 내용 중 운영관리 조건에 크게 반색했다. 포항시가 70%의 운영권을 확보함에 따라 인력 구조조정 없이 조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포스코건설에게도 이득은 있었다. 단순한 내용만 파악하면 사회공헌의 성과밖에 없지만, 국내 최초로 정수장의 민자사업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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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7. 국내에너지 화공분리, 발전에너지 개발사업에 역량 집중하다

# 포스코에너지 광양 부생복합, 공기단축 신기록 세우다

국내 에너지 분야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 시기 포스코엔지니어링과 역할 조정에 나섰다.

먼저 2012년 12월 포스코건설 에너지사업본부 내 화공사업을 분리해 포스코엔지니어링에 이관했다. 오일과 가스 분야를 이관함에 따라 포스코건설 화공조직은 석탄 분야만 남게 됐다. 이어 2013년 8월 포스코건설은 포스코엔지니어링이 발전사업 부문을 분할해 신설한 뉴파워텍을 흡수 합병함으로써 발전에너지 경쟁력을 강화했다.

이 시기 국내 발전에너지 분야는 포스코 패밀리 물량으로는 대표적으로 포스코에너지 광양 부생복합발전소, 포스코에너지 인천 LNG 복합화력발전소 7, 8, 9호기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대외사업으로는 입찰사업보다는 개발사업에 집중해 안산과 춘천에서 복합화력 프로젝트를 개발해내 사업화에 나섰다. 그 외 경쟁입찰 프로젝트로는 양주 집단에너지 발전사업, 서울복합화력발전소 등을 수행했다.

포스코에너지 광양 부생복합발전 1, 2호기(2009.2~2010.12)는 포스코그룹 최초의 상업용 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였다. 광양제철소의 조강 증산으로 인한 잉여 부생가스를 회수, 재활용 연료로 사용해 142MW 용량의 친환경 가스터빈 복합발전소 2기를 건설하는 이 프로젝트에서 포스코건설은 EPC 일괄 턴키를 맡았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가장 큰 성과는 공기단축이었다. 통상 발전소 표준 공기가 30개월임에도 포스코건설은 사업착수 전부터 발주처에 2개월 공기단축을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더욱 놀라웠다.

당초 1호기를 2010년 11월에, 2호기를 2011년 5월에 준공하기로 약속했으나, 포스코건설은 1호기를 2010년 8월에, 2호기를 2010년 12월에 준공하면서 계약공기 대비 무려 5개월이나 단축하는 놀라운 능력을 과시했다. 이는 발전소 건설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이었다.

공기단축의 성공요인은 시행착오의 사전 차단과 정확한 일정 예측이었다. 1호기 건설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2호기 건설 때 완전히 차단했고, 준공 일정을 정확히 예측해 기자재 공급이 적기에 이루어지도록 철저히 관리함으로써 기록적인 공기단축을 달성할 수 있었다.

“VP 활동도 공기단축에 기여했다. 공종간 간섭사항이 무엇인지, 문제점은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 VP 활동을 통해 공기지연 요소를 사전에 제거해나갔다. 건설노조 파업을 사전에 정확히 예측하고 주기기 설치 일정을 앞당긴 것도 공기단축에 큰 도움이 됐다.” (고한주 상무, 당시 현장소장)

 

# 안산 복합화력 수주, 적은 투자로 최대 성과 달성하다

대외사업에서 이 시기 가장 큰 성과는 개발사업을 통한 안산과 춘천 복합화력의 사업화 성공이었다. 서울복합화력의 수주도 나름대로 큰 성과였다. 그 동안 입찰사업에서 계속 회원사로만 참여하다가 2004년 남제주화력 3, 4호기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주간사를 맡았던 프로젝트가 서울복합화력이었다.

안산 복합화력은 국내 발전에너지 분야 최초의 개발사업 성공작이었다. 2012년 1월 포스코건설은 ㈜에스파워와 총 공사비 6788억 원, 발전용량 834MW 규모의 복합화력발전소 건설공사(2012.11~2014.10)에 대한 EPC 계약을 체결했다. 에스파워는 포스코건설(10%), 삼천리(50%), 한국남동발전(40%)이 세운 합작법인이었다.

이 사업은 경기도 안산시 초지동 소재의 ‘시화 멀티테크노밸리(MTV) 5공구’ 내에 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로,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하는 친환경 발전시설이며, 발전용량 834MW는 약 30만 가구가 동시에 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당시 포스코건설은 최소의 자본투자를 통해 EPC 전부를 수주하는 최대 성과를 달성했지만, 수주 성공에 이르기까지 4년이란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4년 전인 2008년 4월 포스코건설은 안산시와 복합화력 개발사업 공동추진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정부가 2년마다 발표하는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이 사업을 신청했다. 이어서 그해 12월말 안산 복합화력 개발사업이 국가 전력계획에 반영됐다. 이는 실질적인 사업권 획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업권 획득 이후 첫 번째 시련은 환경단체와의 협상이었다. 사업부지로 선정된 시화지역에는 ‘시화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라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민관합동협의체가 있었다. 한 마디로 강성의 환경단체였다.

“이 협의체와의 협상이 1년 6개월이나 이어졌다. 다양한 분야의 구성원 개개인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의 노고가 많았다. 강성의 환경단체 때문에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았고, 환경단체의 승인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사업자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차태선 상무)

협상의 성공 요인은 끊임없는 설득과 인고의 시간을 이겨낸 지혜였다. 환경단체 설득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청정시설과 지역사회 발전을 강조했다. 친환경적이고 최신의 발전설비를 사용하는 고효율 발전소임을 강조했으며, 발전소에서 생산한 열을 지역주민에게 저렴하게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고용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실천의지를 지속적으로 알렸다.

강성 환경단체의 고비를 넘어서 새롭게 등장한 시련은 파트너와의 사업성에 대한 입장 조율이었다. 첫 번째 파트너와는 갈수록 입장차이가 너무 벌어져 결국 결별하고 말았다. 이후 나타난 파트너가 삼천리와 한국남동발전이었다.

새 파트너와의 협상도 쉽지 않았다. 건설비용과 운영비용에 대한 견해 차이가 컸다. 사실 포스코건설로서는 투자지분이 적어 파트너사들을 리딩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건설은 에너지사업본부 국내영업그룹을 중심으로 금융그룹, 법무그룹, 그린에너지그룹 등 전방위적으로 지혜를 짜내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조건을 수용시킬 수 있었다.

그 시간이 환경단체 협상을 포함해 4년이 걸렸고, 인고의 세월을 잘 견뎌낸 결과 2012년 1월 ㈜에스파워 설립과 함께 안산 복합화력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할 수 있었다.

 

# 춘천 열병합과 서울 복합화력으로 국내에너지 정상을 넘보다
1.E-D-130-07

2007.10.04 춘천시와 MOU 체결

춘천 프로젝트의 출발은 2007년 7월이었다. 당시 춘천은 미군부대 이전 등 개발 호재가 많아 포스코건설이 먼저 접근했고, 장기적인 도시발전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 포스코건설-춘천시 간 MOU를 10월에체결됐다.

이때 다양한 개발사업 논의 과정에서 나온 프로젝트 중 하나가 열병합발전사업이었다. 그러나 안산과 마찬가지로 춘천 프로젝트 역시 많은 인내를 요구했다. 오히려 안산보다 더 갈등이 많았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춘천시장의 동의를 쉽게 얻어 출발은 산뜻했으나, 곧바로 장애물이 등장했다. 지역의 도시가스 사업자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사실 도시가스 입장에서는 포스코건설이 텃밭을 침범해와 생계를 위협하는 것처럼 비춰졌다. 열병합발전소가 들어설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사업자가 도시가스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역 도시가스 사업자의 반발에 포스코건설은 상생을 제의했다. 먼저 기존 영업구역을 침범하지 않고 신규사업만 하겠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그들은 포스코건설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사업 파트너를 제의했다.

이마저도 성사되지 않자 결국 단독 추진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이후 정부에 집단에너지사업 허가를 신청하고 사업권을 획득한 것이 2010년 8월이었다. 결과적으로 도시가스 사업자와의 갈등으로 발목을 잡힌 기간이 무려 3년이었던 셈이다.

사업권 획득 이후 춘천 프로젝트는 잠시 순항했다. 지방의회 동의에 이어 춘천시 석사동 시부지로 부지선정까지 마쳤다. 그런데 막 사업추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려던 순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사업추진 재점검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취득한 200MW의 시설용량이 그 동안 여러 상황의 변화로 사업성이 나오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스코건설은 시설용량을 460MW로 정정해 다시 허가 신청을 냈고, 다행히 순조롭게 변경 허가가 통과됐다. 이로써 사업자간 협의를 통해 합작법인 설립과 함께 프로젝트의 발주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춘천 프로젝트는 또 한 번 암초에 부딪쳤다. 이번 암초는 주민 반대였다. 석사동 인근 부촌 주민들이 반대하자 춘천시는 사업추진을 의결해놓고도 추진공고를 발표하지 않았다. 결국 2년간 주민 반대로 발목에 묶이자 포스코건설은 사업부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사업부지가 춘천시 동산면 봉명리 동춘천산업단지로 변경됐다.

사업부지가 확정됨에 따라 2013년 12월 포스코건설 및 한진중공업 등은 SPC법인을 설립했으며, 이어서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은 총 공사비 5780억 원 규모의 춘천 열병합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춘천을 찾아간 지 7년 만에 이룬 인고의 성과였다. 2014년 5월에는 한국동서발전도 정식으로 춘천 프로젝트 사업자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서울 복합화력(2013.3~2016.9)은 이 시기 대표적 입찰사업 성공작이었다. 2013년 1월 포스코건설은 한국중부발전이 발주한 총 사업비 1조 181억 원 규모의 서울 복합화력 1, 2호기 건설공사에서 토건공사 사업자로 선정됐다.설계는 한국전력기술이 맡았고, 주기기공급은 두산중공업이 선정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력발전소인 옛 당인리발전소 자리에 들어서는 이 사업 역시 안산과 춘천처럼 사업 준비기간이 길었다. 2006년 제3차 전력수급계획에 반영된 사업이었으나, 지역주민 갈등으로 지연되다 지하화로 최종 합의를 보면서 7년 만에 비로소 빛을 보게 됐다.

400MW급 2기를 건설하는 서울 복합화력의 가장 큰 특징은 도심 지하화 건설로서, 이는 세계 최초의 사례였다. 특히 기존 운용 중인 4, 5호기를 포함한 지상 발전소 부지는 복합화력 1, 2호기 준공 시기에 맞춰 생활체육시설, 도서관, 박물관, 공연장 등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으로 조성된다. 전 세계적으로 지상 화력발전소를 문화 공간으로 개조하는 사례는 영국 템즈강변의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해 탄생한 ‘테이트 모던 미술관’ 이후 두 번째였다.

“서울 복합화력은 서울 유일의 전력공급시설이며, 서울지역 전체 전력사용량의 9.8%를 공급하게 된다. 우리는 최선의 역량으로 과업을 완수할 것이여, 이를 계기로 향후 발주 예정인 기전공사 수주를 기대하고 있다.” (곽종술 Sr,Manager, 국내발전영업그룹 근무)

 

# 화공 분야, SNG 플랜트 이어 침상코크스 프로젝트 수행

화공 분야는 이 시기 비록 화공 분리로 그 기능이 크게 축소됐지만, 석탄 베이스의 주요 사업으로 SNG 플랜트, 침상코크스 프로젝트 등을 수행했다.

SNG 플랜트는 국가적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청정석탄에너지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저가의 석탄을 가스화 한 후, 이를 원료로 메탄가스를 제조해 청정에너지인 합성천연가스 SNG를 생산하는 프로젝트였다. 사업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2009년 7월이었다. 당시 정부는 SNG를 저탄소 녹색성장 실현의 신사업으로 지정하고, 포스코와 SK이노베이션을 연구개발기관으로 선정했다.

연구개발기관으로 선정된 포스코는 곧바로 청정석탄에너지 개발에 착수했다.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이 사업은 1조 488억 원 규모의 사업비를 투자해 광양제철소 내에 50만 톤급의 SNG 생산설비를 구축하는 프로젝트였다. SNG 플랜트 구축을 통해 포스코는 수입에 의존하던 광양제철소 가동 연료인 LNG를 전량 SNG로 대체, 연간 2000억 원 규모의 수입대체 효과를 기대했으며, 아울러 국내 사업화와 함께 해외진출을 모색했다.

SNG 플랜트 구축사업에서 포스코건설은 EPC 공급사로 활약했다. 설계 과정에서는 전단 공정인 가스화공정 기술사로 미국 에너지기업 코노코필립스사를 선정했으며, 후단 공정인 가스정제 및 SNG 합성공정 기술사로는 독일 가스메이커 린데와 덴마크 청정에너지기업 할도톱스를 선정했다. 기본설계는 영국의 제이콥스가 맡았고, 상세설계는 포스코엔지니어링이 맡았다. SNG 플랜트는 2011년 6월 모든 설계를 완료하고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가 2014년 6월 성공적으로 준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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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7 광양 SNG플랜트 착공식

침상코크스 프로젝트는 제철소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콜타르를 고부가가치로 상품화하는 사업이었다.

콜타르는 부산물 형태로도 판매가 가능하지만, 고도의 기술로 정제 가공하면 반도체, LED, 태양전지 등의 고부가가치 기초소재인 침상코크스를 생산할 수 있었다. 즉 침상코크스는 고부가가치 기초소재인 전극봉의 원료였다.

포스코는 제철소 부산물의 고부가가치화를 도모하고,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전극봉 산업의 국내 육성을 위해 침상코크스 제조사업을 추진했다. 사업추진 과정에서 포스코켐텍(60%), 비쓰비시화학(20%), 비쓰비시상사(20%) 합작으로 PMC가 설립됐다.

합작 조건에서는 포스코가 콜타르를 제공하고, 비쓰비시화학이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 침상코크스 제조공장 준공 후에는 국내 판매와 함께 비쓰비시상사를 통해 해외 판로를 개척하기로 합의했다.

사업비 2953억 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에서 포스코건설은 EPC 공급사를 맡아 광양제철소 내 동호안 매립지에 6만 톤 규모의 침상코크스 제조공장을 건설했다. 침상코크스 제조공장은 2012년 12월 착공에 들어가 2014년 8월 성공적으로 준공됐다.

 

# 그린에너지, 최초로 한전 발전자회사 EPC 수행하다

그린에너지 분야는 이 시기 태양광에서 전라남도, 전북 군산시 프로젝트를, RDF 분야에서는 부산, 경북 포항, 광주 프로젝트등을 수행했다. 특히 동해 목질계 바이오매스 발전설비 EPC 공사를 수행함으로써 그린에너지 역량을 과시했다.

전라남도 태양광 프로젝트는 2015년까지 1200억 원을 투입해 전남 도내 공공건물 옥상과 주차장, 상하수도시설, 유휴용지 등에 설비용량 90㎿ 규모의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하는 사업이었다. 이를 위해 2011년 12월 포스코건설은 전라남도 및 도내 각 시·군을 비롯해 한국남부발전, 한국지역난방공사, KB자산운용 등과 함께 공공기관 태양광발전사업 추진을 위한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군산시와는 2013년 4월 ‘저탄소·녹색성장 도시구현’을 위한 태양광 발전사업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이 프로젝트는 군산시내 18개소의 시유지 공공건물과 유휴부지에 25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11㎿급 규모의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이었다.

부산

부산 RDF 발전시설 전경

2010년 10월 착공, 2013년 11월 준공한 부산 RDF는 생활폐기물 연료화 및 발전시설로, 단순 매립 또는 소각 처리되던 종이, 비닐, 헝겊 등의 생활폐기물을 연료로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신재생에너지 회수시설이었다. 특히 국내 최초 RDF로, 민간투자사업(BTO)으로 추진됐다.

이 시설이 완공되면 포스코건설은 부산광역시에서 수거한 하루 평균 900여 톤의 생활폐기물 중 금속류는 재활용하고, 나머지 가연성 폐기물로 하루 평균 500톤의 고형연료를 생산, 이를 발전소 연료로 활용해 시간당 25MW의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 이는 연간 기준으로 평균 4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었다. 무엇보다 폐기물 연료화로 연간 15억 원의 탄소배출권 확보와 340억 원 가량의 원유 수입대체 효과가 기대됐다.

광주 RDF는 민관합동법인(제3섹터) 방식의 사업이었다.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은 청정빛고을㈜을 설립하고 2013년 11월 조달청이 발주한 총 사업비 1154억 원 규모의 광주 가연성폐기물 연료화사업 수주에 성공했다. 수주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조달청의 사업제안서 평가에 이어 수요처인 광주광역시 평가에서 우위를 점했으며, 특히 조달청이 처음으로 설계 심의한 환경플랜트를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동서발전이 발주한 30MW급 ‘동해 목질계 바이오메스 발전설비’ 프로젝트(2011.8~2013.7)는 발주처와 시공사 모두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포스코건설로서는 한전 발전자회사 프로젝트 중 처음으로 EPC를 수행한 사업이었으며, 국내 최초의 목질계 바이오메스 발전설비여서 한국동서발전에서도 기대가 컸던 프로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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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9 동해 목질계 바이오메스 계약식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은 동해화력발전소 내에 CFB 보일러, 증기터빈발전기, 환경설비, 보조설비 등을 설치하는 공사였다. CFB 보일러(Circulating Fluidized-Bed)란 발전 용량을 크게 늘리고, 대기 배출가스의 양을 크게 줄이는 친환경 연소기술이 적용된 설비를 일컬었다. 특히 목질계 바이오매스는 우드칩, 우드펠릿, 목재 등을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시설로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존의 화력발전시설에 비해 대기 오염물질 배출량이 현저히 낮은 점이 특징이었다.

더욱이 2012년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도(RPS, Renewable Portfolio Standards) 도입을 앞두고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바이오매스 발전설비시장을 선점하려는 수주경쟁이 치열했다. 포스코건설은 국내외 에너지플랜트 시공경험에서 입증된 세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유수의 건설사들과 경합한 끝에 2011년 1월 이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이제까지 국내 바이오매스 발전소들은 대부분 자가 발전시설로 활용하는 소형급이었다. 그러다 보니 공정계획 수립이나 계통 설계 등 참고할 수 있는 동일 규모의 발전소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주기기 공급사와 긴밀히 협의하면서 설계를 차근차근 진행해나갔다.” (이문재 Director, 당시 현장소장)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참고 모델이 없다는 것이었다. 고압스팀 생산에 사용되는 연료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프로젝트 수행팀은 설계 기준을 처음부터 새롭게 마련해야 했다.

무엇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기준을 위해 좀 더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기존 석탄화력에서 참고할 수 있는 사항들을 추려냈고, 전북 익산까지 직접 내려가 공업단지 내 소형 발전소 현장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뿐만 아니라 대구 열병합발전소 내 바이오매스 발전설비 등을 견학하며 관련 자료를 두루 수집했다. 특히 각 공정 담당자들은 착공 3달 전부터 현장에 상주하면서 공정과 원가 등에 대해 사전에 치밀하게 연구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성공적 준공과 함께 많은 성과를 달성했다. 우선 이 프로젝트에 적용된 스팀 제너레이터는 순환유동층 보일러(CFB)인데, 열효율이 낮은 저급 연료를 송풍기로 불어 올리면서 연소시키는 장치를 적용함으로써 탁월한 경제성을 확보했다. 공기단축도 큰 성과였다. 일반적으로 7개월가량 걸리는 연돌공사를 슬립폼(Slip-foam) 공법으로 변경해 예상 공기를 4개월이나 단축했다.

 

<생각하는 페이지>
글로벌 Top 10 잘되고 있나? 성장둔화 속 빛바랜 빅4 달성

2010년 싱크포워드 비전을 수립하고 2020년 글로벌 Top 10을 향해 도전에 나섰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갈 길 바쁜 포스코건설의 발목을 잡았다. 2011년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를 수주하면서 수주액 14조원과 빅4 진입의 정점을 찍더니, 이후 계속 성장이 정체됐다.

정체의 주요 요인은 철강경기 하락과 건설경기의 침체였다. 철강경기 침체로 포스코 발주 물량이 급감하면서 플랜트사업본부의 수주가 크게 줄었다. 건설경기 침체는 건축부문의 수주를 급감시켰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수주사업의 시행이 지연되는 현상도 성장 정체를 가중시켰다. 대표적으로 카자흐스탄 신도시 프로젝트가 계속 지연되고 있으며, 바하마 오일탱크 프로젝트는 아예 취소됐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적자 프로젝트가 계속 늘어났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언급한 아부다비 담수, 사우디아라비아 얀부하수처리장, 베트남 카이맵 항만공사 외에도 페루 칼파 복합화력, 이스라엘 R 프로젝트 등에서도 손실이 발생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4대강 사업에서 맡은 낙동강 살리기 30공구의 손실 규모도 컸다.

견적과 설계기술 부족으로 발생한 손실은 반드시 개선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였다. 페루 칼파 복합화력, 포항 4선재 신설, 전주 상수도 유수율 제고사업, 노화-구도 연도교, 대구도시철도 3호선 1공구 등에서 설계와 견적 오류로 손실이 발생했다.

성장 정체에다 수익성까지 악화되는 이 같은 현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격경쟁이었다. 고도의 기술력과 기획력을 요구하는 기술제안형보다는 손쉬운 가격경쟁 입찰에 치중하다 보니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견적이나 설계 오류까지 발생하게 되면 고스란히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포스코건설 내부에서는 기술력 강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리스크관리 소홀도 손실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따끔하게 지적을 받았다. 과천주공1단지 재건축은 RM에서 지적한 간접비 누락분을 반영하지 않고 그대로 사업을 추진했다가 손실이 발생했으며, 다렌IT센터 프로젝트 역시 공사비 적정성 검토의견을 이행하지 않아 결국 손실이 발생했다. 가로림 조력발전은 출자금 미회수 리스크에 대한 대응방안을 수립하지 않아 매년 금융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리스크관리 역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여러 가지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야 전반적인 시스템 개선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개선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중기 경영전략을 수립했으며, 이 같은 전략은 매년 점검과 롤링을 통해 개선해나가기로 했다. 중기 경영전략의 요점은 기본에 충실한 본원경쟁력 확보로, 이 같은 목표는 EPC부터 제대로 확보하자는 조직 전체의 뼈를 깎는 자성에서 나왔다.

이 시기 실패사례로는 에너지 분야를 소개하고자 한다. 200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선 에너지 분야는 그린에너지 사업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으며, 해외사업 성장의 첨병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프로젝트 가지 수가 늘어나고, 사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실패사례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페루 칼파 복합화력 실패사례는 중남미 조기준공 성공신화에 누가 될까봐 본문에 소개하지 못했다.

페루 칼파 준공 지연은 바이패스 밸브라는 주요설비 부품의 결함 때문이었다. 하자보수와 준공 지연에 대한 책임으로 지체 보상금까지 물면서 손실을 떠안았지만, 정작 설비업체로부터는 제대로 보상을 받아내지 못했다. 결국 이 사건의 반성점은 클레임에 대한 조치 미흡이었으며, 더구나 주요설비 견적누락이라는 뼈아픈 실수도 있었다.

페루 칼파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회사 산토스CMI였다. 포스코건설이 70% 지분으로 인수한 산토스CMI는 베트남법인과 마찬가지로 해외사업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현지화 성공이란 관점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2011년 인수 직후 포스코 브랜드 덕으로 페루, 브라질, 에콰도르 등지에서 포스코건설 발전사업과 패밀리사 물량을 석권하며 매출이 급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손실이 늘어나는 등 부채비율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근본 원인은 사업관리 능력 부족이었다. 포스코건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산토스CMI는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그 미천한 실력이 드러나고 말았다.

포스코건설도 잘못이 있었다. 사전 테스트 후 프로젝트에 투입했어야 했는데, 사업 참여 성과에만 급급해 리스크 점검 프로세스를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다. 사태수습에도 문제가 있었다. 현장이 지구 반대편이다 보니 수습 대응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산토스CMI 사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위탁경영이었다. 인수 당시 포스코건설은 인력을 파견해 직접 경영할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산토스CMI측 경영진의 경영성과가 좋아 그들을 믿고 위탁경영 조건으로 인수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태 발생 후 경영진단을 실시해보니 문제가 많았다. 사업관리 능력 부족도 큰 문제였지만, 인력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경영진단 결과 인수 당시 주요 인력 대부분이 퇴사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각각 15%씩의 지분을 가진 산토스와 CMI측 주주 간 갈등도 심각했다. 이에 직접 경영에 나설 것인지, 부실을 털어내고 정리 수순을 밟을 것인지, 향후 산토스CMI 회생 방안을 놓고 포스코건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본문에서 러브콜에 의한 이스라엘 첫 진출작이라고 화려하게 포장했던 R 프로젝트의 실상은 들추고 싶지 않은 실패사례였다. 먼저 현지조사가 늦어 설계가 지연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이를 만회하고자 무리하게 한국 근로자를 투입했다가 공항에서 무비자가 발각돼 강제 출국조치와 함께 상당액의 과태료를 지불했다.

더욱이 공기 만회를 위해 막대한 돌관공사 비용을 지불하고도 준공 약속을 지키지 못해 지체 보상금까지 물었다. 현지 국가 리스크 등 사전 준비부족과 법규를 무시한 성급한 판단이 주요 패인이었다.

부산 RDF는 국내 최초 사업이었던 만큼 경험부족으로 상당액의 수업료를 지불했다. 먼저 설계변경에 있어 인허가 검토 등 관련 법규 미숙지로 공기가 지연됐다. 그 바람에 시공업체에게 손실 보존금을 물어주었다. 더구나 설비의 성능 미달로 준공이 지연됐으며, 이에 막대한 페널티와 개보수 비용이 소요됐다. 결국 첫 경험의 수업료 치고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가장 치명적인 상처는 2013년 말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던 여직원 사기 사건이었다. 사건의 전모는 2013년도 결산 내부감사에서 드러났다. 일부 현장의 숙소 임차보증금 잔액이 과다한 사실을 발견하고 진상조사에 나서 안양박달하수처리장 현장 여직원 김모 씨가 임차보증금을 유용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심층조사 결과 여직원의 횡령이 2009년부터 무려 4년 동안 이어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내부통제시스템 부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는 국민기업 포스코 브랜드에 대한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창립 직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윤리경영을 강조하고, 어떤 기업보다 높은 투명성을 자랑해왔지만, 뒤주 속의 쥐 한 마리를 찾아내지 못하는 부실한 내부통제시스템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포스코건설은 뼈를 깎는 윤리경영 혁신에 들어갔다. 2014년 3월 취임한 황태현 사장은 ‘임직원 모두가 함께 이루고자 하는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지름길을 가기 위한 어떠한 편법이나 타협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실패를 교훈 삼아 앞으로 포스코건설이 강력한 경영관리시스템을 구축해보다 깨끗하고, 보다 성숙한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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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8. 창립 20년, 혁신과 도전으로 백년기업의 토대를 닦아나가다        

# 2PI 구축, 글로벌 경쟁력 강화하다

싱크포워드 비전 수립 이후 창립 20주년까지 포스코건설은 해외사업에서 눈부신 성과를 달성했지만, 전반적인 건설경기 침체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메가와이(Mega-Y), cQSS, 파이(π) 이노베이션 등 강도 높은 혁신활동을 추진했다. PI 시스템은 2기 PI로 진화했다.

2011년 7월 킥오프 이후 2013년 7월 개발을 완료한 2기 PI의 목표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PLC(Project Life Cycle) 관리 플랫폼 구축이었다.

과업 수행기간 동안 포스코ICT를 비롯해 10개 협력회사가 참여했으며, 피크 시기에는 195명이나 투입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55회에 걸쳐 2500명을 대상으로 교육이 실시됐으며, 전직원 대상의 설명회도 14회나 개최됐다. 데이터 이행 물량도 1기 때는 1400만 건이었으나, 2기에는 1기의 10배인 1억 4000만 건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전체 62개 시스템 중 11개 시스템을 개선했는데, 가지 수로는 20%에 불과하나 전체 용량의 90%를 개선하는 등 대단한 실적을 달성한 프로젝트였다. 자체 개발 물량만도 3817건이나 됐다.

2기 PI의 목표는 글로벌 시스템 구축이었으나, 실제 추진배경은 1기 시스템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1기 PI는 빅뱅 방식으로 구축했고, 투명성을 강조했으며, 오라클 ERP를 사용했다는 특징이 있었다. 특히 처음으로 프로세서를 정립했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좋은 시스템에 비해 통합과 표준화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떨어졌다.

“1기는 통합화와 표준화에 실패하면서 업무 전산화 수준에 머물렀다. 이 같은 반성에서 의욕적으로 2기 PI 구축에 나섰으나, 달리는 자동차를 수리하는 것처럼 어려움이 많은 작업이었다. 신설이 아닌 개선이다 보니 포스코ICT SM과의 긴밀한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석성욱 Sr.Manager, 당시 PI추진반 그룹리더)

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기 PI는 많은 성과를 달성했다. 우선 수주영업시스템이 크게 개선됐다. 1기 PI는 영업사원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해 수주영업시스템이 무용지물이었다. 사후관리에도 문제가 있었다. 1기 PI 구축과 함께 추진반이 해체되다 보니 컨트롤러 기능이 사라져 현업의 요구사항을 수용할 수 없었다.

2기 PI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추진반을 계속 유지했다. 더욱이 2기 PI의 가장 큰 장점은 실시간 관리였다. 또 개인이 액셀로 만들어 사용하던 양식들도 표준화했다. 이후 영업부서에서 문서가 사라지는 등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사업관리시스템도 크게 개선됐다. 1기에서는 포스코의 설계, 시공 분리 발주 관행 때문에 EP와 C를 따로 관리했다. 그러나 갈수록 EPC 일괄 턴키가 많아지면서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돼 2기에서는 EPC를 하나로 통합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사업에서도 EPC 통합관리가 가능해지면서 설계와 시공간 협업이 활기를 띠었다. 이로 인해 편리성과 함께 프로젝트 수행 기간이 크게 단축됐다.

1기 재무시스템의 경우 사용자 편의성이 부족했다. 2기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회계업무를 웹 기반의 150가지 거래유형으로 정형화해 전표 입력을 간소화했다. 전자 증빙 첨부로 회계 투명성도 확보했다. HR시스템은 부서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개선했다.

해외법인관리시스템에서는 본사 수준의 표준화를 달성했고, 통합시스템으로 업무 효율화를 도모했다. 경영자 의사결정 지원시스템인 EIS에서는 기존 획일화된 시스템을 개선해 경영진별 맞춤형 정보를 제공했다. 또 주요 리스크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을 구축하는 등 경영 콘텐츠 보강과 EIS 사용자 편의성을 향상시켰다.

빠른 안정화도 큰 성과였다. 2013년 9월말까지 총 5만 4864시간 가동 결과 단 3시간의 장애만 발생해 99%의 가동률을 기록했다. 응답속도도 빨라졌다. 3초 이내의 응답률이 97% 수준이었다. 시스템 오류 조치율도 95%를 기록하며 PI 가동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고, 시스템간 데이터 정합성률도 99%를 기록하며 평상시 수준 이하로 안정화가 완료됐다.

무엇보다 2기 PI는 본사 수준의 표준화와 통합화를 글로벌 시스템에 성공적으로 구현해냈고, 투명성과 권한이 강화된 것이 대표적 특징이었다.

 

# 영업이익률 7% 달성 위한 수익성 제고 Mega-Y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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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7.5 수익성 제고 메가와이 킥오프

2기 PI 시스템 구축과 함께 이 시기 메가와이(Mega-Y), cQSS, 파이(π) 이노베이션 등의 혁신활동이 추진됐다.2009년경 6시그마를 도입한 포스코건설은 2010년 7월 수익성 제고 메가와이 킥오프 행사를 가졌다. 메가와이는 최고경영자의 의지로 전사 차원의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임원이 협업팀을 만들어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메가와이 특징은 우선 과제 영역이 전사의 비전 및 전략과 직결돼 있으며, 대형 과제인 만큼 여러 개의 실행 과제로 구성돼 있다. 아울러 과제 수행자가 임원이라는 점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메가와이의 효과로는 각 실행 과제마다 목표 기여도를 정량적으로 분명하게 산출할 수 있으며, 임원의 적극적 참여로 과제 몰입도와 추진동력이 강력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빅와이(Big-Y)든, 실행과제든 메가와이 과제의 목표를 따라 한 방향으로 진행하므로 전체 최적화를 달성할 수 있는 개선안을 도출해낼 수 있다.

포스코건설이 메가와이 과제를 추진하게 된 배경은 저조한 영업이익률 때문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여건이 악화되고, 경쟁이 심화돼 건설업종의 수익성이 계속 하락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포스코건설의 영업이익률이 타사 대비 저조한 실적을 나타냄에 따라 수익성 개선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수익성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는 기존의 제안제도나 동아리활동을 활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 팀이나 개인 차원에서 업무 개선을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지만, 노력 대비 성과가 미흡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또 제안제도나 동아리활동을 통해 혁신 과제를 진행하면서 변화의 필요성과 인재육성 등의 정성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기업의 손익과 직결되는 과제로서는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수익성 개선 방안으로 메가와이 체계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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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4 수익성 제고 메가와이 2차 웨이브 킥오프

메가와이 과제의 목표는 2012년까지 영업이익률 7% 달성이었다. 목표 달성을 위해 포스코건설은 임원을 빅와이 과제의 책임자로 하고, 공사관리 프로세스 개선, 프로젝트 설계 및 실행관리 강화, 설비별 소싱체계 기반구축, 에너지사업 이익률 향상, 양질의 사업수주 및 마케팅 역량강화, 경쟁력 있는 협력업체 발굴 등 수익성 제고를 위한 12개 분야별 빅와이 과제를 선정했다. 아울러 빅와이 과제 아래 70개의 실행과제를 추진했다.

2012년까지 수익성 제고 메가와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포스코건설은 2013년부터는 해외 수주경쟁력 향상과 프로젝트 원가절감을 위해 메가와이 과제를 설계·시공, 구매, 사업생애주기(PLC) 등 3개 영역으로 확대해 전사적 차원에서 추진해나가고 있다.

한편 포스코건설은 메가와이 과제를 추진하면서 원가혁신 기법인 VE(Value Engineering)를 도입해 많은 성과를 달성했다. VE 기법은 고객의 입장에서 프로젝트를 분석해 원가절감 및 기능 향상을 통해 최상의 가치를 이끌어 내는 기법으로, 2009년 3월 첫 시범 운영에 들어가 23억 원의 원가절감에 성공했다.

2010년부터는 300억 원 이상 규모의 사업장에 이 기법을 적용했다. 그 결과 당초 목표 금액인 256억 원보다 30%를 초과 달성했다. 플랜트와 건축 등에서 각각 186억 원과 146억 원의 원가절감에 성공하며 목표 대비 각각 188%, 111% 초과 달성했다. 특히 2012년 11월 포스코건설은 국토해양부가 주최한 ‘설계 VE 경진대회’에서 최고의 영예인 민간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VE 기법 적용의 성공적인 사례로는 ‘양재동 업무시설 신축공사 현장’과 ‘광양 4열연 연주설비 신설공사’가 있었다.

양재동 업무시설 신축공사 현장은 암반제거 비용과 기초 보강재를 활용해 기본 단면 매트를 줄이는 아이디어 등을 적용해서 5000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줄였다. 이 현장의 경우 설계 VE와 지속적인 시공 VE 워크샵을 통해 원가절감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해낼 수 있었다.

광양 4열연 연주설비 신설공사에서도 설계 VE를 도입해 많은 성과를 거뒀다. 국내 제철소 열연공정에 적용해오던 외국기술을 배제하고 순수 국내기술을 기반으로 자력설계를 이뤄냈다. 또 VE활동에 300여 건의 아이디어를 적용해 열연설비 성능을 기존 대비 10% 이상 향상시키는 한편, 국산 설비 도입을 확대하는 성과를 올렸다.

 

# 현장 중심의 cQSS 혁신활동과 파이(π) 이노베이션 추진

메가와이 과제 추진과 함께 포스코건설은 cQSS, 파이(π) 이노베이션 등의 혁신활동을 추진했으며, 혁신활동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혁신마스터 제도를 도입했다.

2010년 8월 도입된 혁신마스터 제도는 혁신부서 중심의 혁신활동에서 현업 주도형 활동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혁신마스터 제도 도입에 따라 경영혁신그룹은 혁신활동의 지원과 관리로 역할을 전환하고, 그 대신 현업 자체 특성에 맞도록 실행력을 강화하기 위해 매년 본부 단위로 혁신마스터를 선발·양성했다. 이들은 혁신활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전문지식 및 경험을 갖춘 혁신전도사 역할을 맡았다.

cQSS는 현장 개설부터 준공까지 4대 성과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공현장 혁신활동이었다. 현장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원가(Cost), 품질(Quality), 공기(Speed), 안전(Safety)이란 4대 성과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포스코건설 고유의 혁신브랜드이기도 했다. 따라서 cQSS의 슬로건은 ‘최소의 원가로, 최고의 품질을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였다. 단기 목표는 4대 KPI 달성과 실행이익률 증대였으며, 장기 목표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였다.

cQSS 활동은 2010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각 사업본부별 총 10개 현장을 시범운영 현장으로 선정했다. 초창기 cQSS는 표준화가 최우선 과제였다. 이에 외부 컨설턴트와 내부 직원들로 구성된 TFT가 구성됐다. 이어서 2011년 3월 표준화 작업을 마치고 컨설턴트와 혁신마스터가 현장을 돌면서 교육과 코칭을 실시했다. 이후 약 100개의 국내 현장은 물론이고, 해외 현장에서도 cQSS 활동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파이(π) 이노베이션은 ‘2020 비전’ 달성을 위한 포스코 패밀리 차원의 혁신활동이었다. 2012년부터 추진된 이 혁신활동은 무한대의 원주율 파이(π)처럼 혁신을 지속해 피자 파이처럼 미래 성장사업을 늘려가자는 것이 핵심 취지였다.

파이 이노베이션의 주요 키워드는 창의적인 혁신의 BI(Breakthrough Innovation), 지속적인 개선의 CI(Continuous Improvement), 프로세스 최적화의 PO(Process Optimization)였다. 포스코패밀리는 이 같은 파이 이노베이션의 3대 키워드를 빵집 성공스토리를 통해 은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잘나가던 빵집이 미래 먹거리를 걱정해 아이디어를 짜낸 끝에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개발했는데, 결국 이 상품이 히트를 쳤다면 이것이야말로 BI의 성공인 셈이다. 따라서 BI는 철강으로 잘나가던 포스코가 ‘스마트원자로 사업’이나 ‘에탄올 생산기술 사업화’ 등 그 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분야에서 성장사업을 발굴해내듯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해 획기적인 경영성과를 창출하자는 의미이다.

CI는 신제품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출시만으로 히트상품이 될 수 없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관리능력과 어디서나 상품의 가치가 변하지 않는 표준화가 성공비결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포스코패밀리의 상향평준화를 위해 운영적 혁신활동을 표준화해 확산, 체질화하는 것이 CI이다.

PO는 주문량이 폭발해 빵집에 과부하가 걸린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과부하로 제품을 적기에 공급하지 못하자 빵집 사람들은 제작과정을 재점검해 불필요한 공정을 제거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해나갔다. 따라서 낭비와 윤리 리스크가 없도록 프로세스를 진단 피드백하는 것이 PO이다.

파이 이노베이션을 비롯해 메가와이 과제 추진, cQSS 활동 등 이 시기 포스코건설은 다양한 혁신활동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경기 침체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해나갔다. 성장경영과 내실경영이라는 갈림길에서 때로는 해외사업 총동원령으로 지속성장을 이어갔으나, 한편으로는 수익성 제고를 위해 뼈를 깎는 혁신활동을 추진했다.

 

# 4 진입과 국내·해외 수주1, 수주액 14조원 달성하다

준비는 불안했지만, 출발은 좋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 경기침체가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이를 마인드 콘트롤하고자 포스코건설은 제2도약의 글로벌 전진기지로 송도를 선택했고, 펩콤(PEPCOM) 실현의 싱크포워드(Think Forward) 비전을 수립했다. 그만큼 비장한 각오로 ‘도약과 번영’의 시기를 마감하고 ‘미래를 향한 재도약’을 준비했다.

다행히 첫 출발이 좋았다. 2010년 포스코건설은 2009년 부진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수주액 11조원 시대를 열었다. 수주 11조 3731억 원, 매출 6조 2380억 원을 달성했다.

특히 해외사업이 크게 성장했다. 전체 수주액 중 약 43%인 4조 8976억 원을 해외에서 수주했다. 이는 2009년 달성한 2조 2505억 원을 2배 이상 초과한 기록으로, 당시로서는 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이 같은 성과의 배경은 플랜트 분야의 선전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잠시 위축됐던 포스코의 설비투자가 확대됐으며, 무엇보다 초대형 프로젝트인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가 서막을 알렸다.

조직에서는 물환경사업본부가 신설되고, 건축사업본부에서 개발사업 관련 조직이 분리 독립했다. 이에 개발사업본부가 신설됐는데, 산하에 사업기획, 마케팅, 건축설계, 디자인, 개발영업, 민간건축영업, 송도개발영업 등의 조직을 두었다.

“칭기즈칸은 ‘한 사람이 꿈을 꾸면 이상이 되지만, 만인이 꿈을 꾸면 반드시 현실이 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꿈이 있다. 2020년 수주 50조원, 매출 30조원의 글로벌 TOP E&C기업 실현이 바로 그것이다” (정동화 전 부회장)

2010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2011년에도 포스코건설은 비장한 각오로 시작했다. 국내외 경쟁사 대비 성장세는 높지만, 수익성에서 다소 미흡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에 ‘일류 수준의 원가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내걸었다. 그리고 원가절감 30%, 공기단축 30%를 달성하자는 의미에서 3.3운동을 추진했으며, 포스코건설형 현장혁신 모델인 cQSS도 전 현장으로 확대 시행했다.

조직에서는 해외사업 역량을 강화했다. 수주영업실을 글로벌마케팅실로 명칭을 변경했다. 아울러 베트남사업단을 신설하고 그 산하에 IBC법인, 베트남법인, 인카잉법인, 캄보디아 지사를 두었다.

이 같은 내실경영과 해외사업 역량 강화의 결과, 2011년 포스코건설은 창사 이래 최대 경영실적을 달성했다. 수주액이 2010년보다 3조 316억 원이 신장된 14조 4047억 원을 달성하며 국내 건설업계 가운데 수주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시공능력평가에서도 처음으로 빅4에 진입했다.

최대 경영실적의 배경은 해외사업이었다. 2010년 해외 수주금액인 4조 8976억 원보다 65% 가량 늘어난 8조 926억 원을 해외에서 수주했다. 이는 전체 수주액 중 약 56%를 차지한 것으로, 종합건설사 가운데 해외부문 수주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특히 2009년부터 2년 연속 해외 실적이 2배씩 성장하면서 이 시기 해외사업이 회사의 성장을 견인했다. 해외 실적을 끌어올린 주인공은 플랜트였다.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에 이어 브라질 CSP 일관제철소까지 수행하면서 플랜트가 수주한 금액만도 7조 7328억 원에 이르렀다. 이는 4년 전인 2007년도 회사 전체 수주액과 맞먹었다.

그러나 대외 여건은 여전히 불안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삭감으로 공공건설 발주물량 축소가 전망됐고, 주택시장은 아직까지 최저점을 통과하지 않았다. 해외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의 재정위기와 중국의 경기침체 리스크에다 예측할 수 없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도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따라서 포스코건설은 사상 최대 경영실적을 달성하고도 웃을 수 없었다. 오히려 최고경영층은 이 같은 상황을 ‘상시 위기의 시대’로 규정하고 2012년 시작부터 전 직원들에게 스피드와 상상력, 그리고 열정을 주문했다.

조직에서는 해외사업이 더욱 강조됐다. 글로벌마케팅실이 본부급으로 격상됐다. 플랜트사업본부 내에는 브라질CSP사업단과 인도네시아사업단을 신설했다. 반면에 토목과 물환경본부를 토목환경사업본부로, 건축과 개발사업본부를 건축사업본부로 통합했다.

우려했던 대로 2012년도 경영실적은 다소 부진했다. 수주액이 11조 33억 원에 머물렀다. 부진의 원인은 해외사업과 플랜트 분야의 실적 하락이었다. 그나마 위안이었던 점은 매출액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7조 413억 원을 달성하며 처음으로 매출액 7조원 시대를 열었다.

 

# 중기 경영전략 수립, 펩콤 완성 기반을 다져나가다

2012년 11월, 포스코건설은 펩콤 체계 구축의 싱크포워드 2020 비전을 재점검했다. 점검 결과 業의 진화, 場의 확대, 動의 혁신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다. SNG플랜트, 해수담수, 마이닝인프라 등 신사업에 적극적인 진입을 추진했으며, 인도 엔지니어링센터 설립, 에콰도르 산토스CMI 인수, 폴란드 진출 등 해외시장도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갔다.

그러나 반성할 점도 많았다. 펩콤 체계 완성의 핵심 성공요인인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일등상품 확보가 부족했다. 또 아직까지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리스크가 크고 수익성이 낮은 ‘C’(시공)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더욱이 프로세스나 인력 면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크게 뒤떨어졌다.

경영환경도 좋지 않았다. 세계 경제는 신흥국발 경제위기 우려로 지속적인 L자형 저성장이 전망됐다. 건설시장의 경우 국내는 시장규모의 지속적인 축소 우려가 제기된 반면, 해외는 6~7%대의 성장세가 전망됐다. 가장 큰 문제는 포스코 투자 급감으로 인한 안정적 캡티브 마켓의 축소였다. 무엇인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우선 포스코건설은 펩콤에 앞서 EPC부터 갖춰나가기로 했다. 이에 켑티브 마켓 없이 생존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을 대비해, 차별적 기술과 글로벌 사업 수행 역량을 가진 E&C기업 변신의 비장한 각오로 ‘2015 중기 경영전략’을 수립했다.

중기 경영전략은 매년 하반기에 점검을 통해 롤링해나가기로 했으며, 2015 중기 경영전략에서는 ‘핵심을 강화하라’를 슬로건으로 정했다. 또 일등상품 및 해외시장 확대, 글로벌 수준 EPC 역량 확보, 재무 건전성 강화를 과제로 삼았다. 아울러 철강, 화력발전, 철도, 개발사업을 4대 주력 사업군으로 정했고, 마이닝(광산), 화공, 신성장에너지, 항만, 물환경을 5대 강화 사업군으로 선택했다.

2015 중기 경영전략 수립 이후 맞이한 2013년 역시 2012년 못지않게 출발이 불안했다. 국내외 주요 언론들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일컫는 표현으로 2013년의 경영환경을 ‘퍼펙트 스톰’에 비유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리얼 옵션 전략을 기반으로 시나리오경영을 추진했다. 이는 체격을 키우는 외형 성장보다는 체질과 체력을 강화하는 내실 성장에 주력할 것임을 강조한 것이었다.

조직에서는 글로벌마케팅본부에 속해 있던 국내영업 조직을 분리해 국내영업실을 신설했다. 해외사업 조직은 중국사업단, 동남아사업단, 남미사업단, 호주사업단 등 사업단 중심으로 재편했다. 이는 본사 글로벌마케팅본부의 기획 능력과 해외사업단의 사업추진 역량을 유기적으로 연계함으로써 시너지 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시나리오경영 결과 2013년 포스코건설은 내실 있는 경영실적을 달성했다. 수주, 매출, 영업이익 모든 부문에서 2012년 실적을 초과 달성하는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을 기록했다. 수주액 12조 756억 원, 매출액 8조 283억 원, 영업이익 4043억 원을 달성했다. 매출액은 창사 이래 최고 수준이었다. 성과의 원동력은 해외사업의 선전이었다. 수주액 5조 9293억 원을 달성하며 전체 수주액의 50%선에 근접했다.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시점에 포스코건설은 2015 중기 경영전략을 점검하고 ‘2016 중기 경영전략’을 수립했다.

2013년도 경영환경 분석에서는 해외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함에 따라 국내 건설사들의 글로벌 성장전략이 다소 주춤했으며, 국내 건설시장의 침체는 더욱 가속화됐다. 반면에 포스코건설은 다소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주액이 2012년에 비해 크게 늘었고, 매출액은 계획대비 초과 달성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2015 중기 경영전략 방향성을 유지하는 대신, 내실경영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 파부침선의 각오로 창립 20주년을 도약의 원년으로 삼자!

장기 목표인 펩콤과 중기 목표인 E&C를 위해 우선 내실경영을 강화하는 가운데 2014년 3월, 정동화 부회장이 퇴임하고 황태현 전 부사장이 신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황태현 사장은 포스코에서 재무담당 임원으로 재직하고, 2004년 3월 포스코건설로 자리를 옮겨 재무, 경영, 구매, 해외영업 담당 부사장으로 두루 경력을 쌓은 CFO형 CEO로서 내실성장을 바탕으로 펩콤을 달성할 적임자로 평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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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7 황태현 사장 취임식

황태현 사장은 취임사에서 어떠한 경영환경에도 불구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네 가지 추진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본원경쟁력 강화를 통한 미래시장 창조를 강조했다. 이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경쟁을 통해 수주할 수 있는 최고의 상품을 육성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철강, 화력발전, 친환경 신도시 사업을 집중 육성하는 한편, 해외시장 진출 지역 다변화와 기술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둘째, 리스크 관리에 기반한 수익성 중심의 내실경영 추진의지를 밝혔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철저한 시장분석과 전략 수립, 그리고 치밀한 사업성 검토를 통해 검증된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또 재무구조의 지속적인 안정화를 실현하고, 이를 통해 기업 가치를 극대화할 예정이다.

셋째, 조직과 제도, 조직문화 등 경영인프라를 한층 업그레이드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성과 창출이 가능한 현장 중심의 가치 창출형 조직으로 변화시켜, 국내 건설사 최고 수준의 인당 생산성을 지닌 회사로 변모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또 현장과 본사 스텝간의 유기적인 협업체제를 위해 스텝 조직의 현장지원 기능을 고도화하는 한편, 자율과 창의가 넘치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마지막으로, 포스코건설의 핵심 가치 중의 하나인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임직원 모두가 함께 이루고자 하는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지름길을 가기 위한 어떠한 편법이나 타협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 강조하면서, “빠르고 쉬운 길은 윤리경영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험천만한 유혹임을 잊지 말고 윤리경영을 적극 실천해 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황태현 사장은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꿈꾸는 초일류 글로벌 건설리더로 성장하느냐, 아니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패배해 퇴보하느냐가 결정될 것”이라는 의미심장을 표현을 구사하면서, “임직원 모두가 파부침선(破釜沈船)의 비장한 마음과 무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창립 20주년인 2014년을 도약의 원년으로 삼아 업계 최고의 회사로 성장하자”고 새롭게 각오를 다졌다.

 

청년기업 포스코건설의 창립 20주년! 지난 20년간 포스코건설은 많은 성과를 달성했다. 업계 순위를 가늠하는 시공능력평가에서는 출범 당시 불과 37위였으나, 2014년 현재 빅4로까지 뛰어올랐다. 순위에서만 9배나 성장한 셈이었다.

수주액에서는 1995년 1조 6000억 원에서 2011년 기준 14조 4000억 원으로, 대략 14배의 성장률을 달성했다. 인력은 출범 당시 1893명에서 2014년 9월 기준 4087명으로 2배가 넘게 늘어났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1인당 능력의 향상이었다. 1인당 수주액 기여도가 출범 당시 8억 원에서 20년 후 36억 원으로 늘어나 4.5배나 성장했다.

기록적인 성장의 비결은 우선 유전자가 좋았다. 포스코로부터 국가적 사명인 제철보국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우향우 정신을 계승했다. 더욱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성공 DNA였다.

좋은 유전자의 계승과 함께 10년 앞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비전 수립 과정에서 성장 모멘텀을 제대로 잡아나간 것도 성공비결이었다. 제철 플랜트라는 안정적인 캡티브 마켓으로 출발했지만, IMF 위기 때 주택사업을 성장 모멘텀 삼아 지속성장을 이어갔다. 2000년대 들어서는 도시개발에 역량을 집중, 송도국제업무단지라는 걸출한 작품을 남겼다. 이후 에너지사업과 해외사업으로 창립 20주년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렇다면 창립 20주년 이후의 성장 모멘텀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싱크포워드 비전의 목표인 펩콤이었다. 그러나 경영환경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펩콤 달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래서 중기 경영전략이 등장한 것이었다.

중기 경영전략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펩콤에 앞서 본원적 경쟁력과 E&C를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내실을 다져나갈 때 안정적인 캡티브 마켓이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생존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며, 마침내 기회가 왔을 때 생존경쟁력을 기반으로 펩콤을 달성하고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지속 성장해나갈수 있을 것이다.

 

 

<황태현 사장 창립 20주년 비전 인터뷰>

“3년 내 국내 건설사 최고 수준의 인당 생산성 달성하겠다!”

2014년 포스코건설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20년 전 부정적 건설문화를 확 바꿔보자는 당찬 포부로 출발한 포스코건설의 앞길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제철소 일만 하는 건설사’라는 딱지를 떼야 했으며, 건축과 토목 분야의 건설업체 따돌림도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갖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포스코건설은 놀라운 성장기록을 달성했다. 출범 당시 건설업계 순위 37위에서 빅4까지 뛰어올랐으며, 수주액 규모도 출범 당시보다 14배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히 송도국제업무단지와 일관제철소 건설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2011년 이후 포스코 투자 축소와 건설경기 부진으로 성장의 정체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위기의 순간, 황태현 사장이 포스코건설 새 사령탑에 올랐다. 황태현 사장은 취임사에서 ‘파부침선의 각오로 창립 20주년을 도약의 원년으로 삼자!’고 굳은 의지를 밝혔다. 본원경쟁력 확보를 통해 펩콤의 기초를 닦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자 하는 황태현 사장을 만나 창립 20주년의 비전을 들어보았다.

 

수익성 중심과 리스크관리의 내실경영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내실경영과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인지요?

“부임을 해서 보니 지난 3년간 다소 과속한 느낌이 있었다. 더구나 올해 역성장이 전망되고, 리스크 발생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들도 눈에 띠었다. 따라서 성장성도 중요하지만, 수익성도 중요한 경영관리의 툴로 삼을 계획이다. 이에 EVA(경제적 부가가치)에 의한 조직 평가와 재무상태를 강화할 계획인데, 즉 이익의 질을 철저히 따지고 부채를 줄여 신용등급을 상향시킬 계획이다.”

 

조직과 제도, 조직문화 등 경영인프라 확충에 힘쓰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치 창출형 조직, 자율과 창의가 넘치는 조직문화 달성을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지요?

“수익성 위주의 내실경영과 능동적인 조직으로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향후 해외사업을 확대하고, 고성과 창출을 통해 3년 내에 국내 건설사 최고 수준의 인당 생산성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해외사업 추진에 적합한 조직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성과 향상을 위한 경영인프라 개선으로 글로벌 사업수행 기반을 확충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현장과 부서 간 간담회와 교류회를 통해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피드백 하는 쌍방향 소통으로 신뢰를 증진해나갈 계획이며, 경영층이 직원 개개인에게 직접 응원하고 위로하고 당부하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감성적으로 다가가는 문화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꿈꾸는 초일류 글로벌 건설리더로 성장하느냐, 아니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패배해 퇴보하느냐가 결정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중기전략으로는 어떤 구상을 가지고 계시는 지요?

“건설업계 전반의 극심한 불황, 내수시장 포화, 그룹사 성장 둔화 등으로 2~3년 내 급격한 실적 저하가 전망되고 있고, 특히 포스코의 핵심 계열사로서 그룹 유동성 개선과 구조조정 차원에서 일정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중기전략으로는 ‘혁신 POSCO E&C 1.0’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리의 당면과제로는 수주 프로젝트의 잠재부실 진단과 리스크 조기 탈피, 신사업 발굴과 해외진출로 성장기반 마련, 자체 신용도 상승을 통한 자금조달, 프로젝트 라이프사이클 전반에 걸친 근원적 체질 강화, 투명경영 강화 등이 있다. 이에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해외 신시장 개척, 차별적 경쟁전략 도입, 경영 인프라 고도화, 조직의 전략 실행력을 강화 등 총 5개 중장기 전략 방향을 설정했다. 이 같은 전략방향을 통해 새로운 비전인 ‘2020년 글로벌 수익성 TOP 10’을 달성할 것이다.”

 

건설시장 여건변화와 경영전략 등을 반영해 E&C 핵심상품과 기술확보 로드맵을 재정립해 체계적인 기술개발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하셨습니다. R&D에 대해서는 어떤 구상을 가지고 계시는 지요?

“E&C 핵심상품에는 철강, 화력발전, 친환경 신도시 등 일류화 상품뿐만 아니라 SNG, 장대교량, 해수담수 등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주력·강화 핵심상품 등도 포함하고 있다. 우선 대형 국가 연구과제 적극 참여, 핵심상품 추진반 운영, 패밀리사 공동연구 등을 통해 핵심기술을 조기에 확보할 계획이다. 철강 플랜트에 대해서도 자력 엔지니어링 기술 확보와 원가 경쟁력 제고를 추진할 계획이며, 포스코패밀리 차원의 시너지 협의체를 통해서도 전통적인 철강 플랜트, 파이넥스 설비 등에 대한 자력 엔지니어링 기술을 확보해나갈 계획이다.”

 

해외시장 진출지역 다변화도 강조하고 계십니다. 해외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은 무엇인지요?

“해외수주확대를위해서는양질의수주풀(Pool) 확보가시급한상황이며, 이에새로운캡티브마켓발굴, 해외개발사업참여확대를통한중장기수주물량확보및수익률개선, 현지화를통한원가경쟁력확보등3가지전략을중점적으로실행해나갈계획이다. 새로운캡티브마켓발굴을 위해서는 이미 선점한 지역을 중심으로 현지 유력 발주처와 장기적인 파트너쉽 구축을 통해 공동 투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해외개발사업의 경우 건축중심에서벗어나자원개발, 발전IPP, 도로등인프라전반으로사업 분야를넓혀나갈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해외법인의 원가 경쟁력 강화를 통해 입찰경쟁 사업의 수주경쟁력을 강화하고 해외법인의 먹거리 확보로 자생기반을 강화해나가겠다.”

 

임직원 모두가 함께 이루고자 하는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지름길을 가기 위한 어떠한 편법이나 타협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윤리경영에 대해서는 어떤 구상을 가지고 계시는 지요?

“지난해 여직원 비윤리 사건으로 그 동안 쌓아온 윤리적 선도기업이라는 명성에 큰 손상을 입었다. 당시 사례는 개인의 비윤리 행위도 문제지만, 직원 각자에게 주어진 기본적 실천윤리인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주 원인이었다. 이후 포스코건설은 월 평균 30만 건 이상의 회계처리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등 전 현장 단계별 점검을 통해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 특히 준공예정인 주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재무담당 감사인이직접 참여해 점검하고 있다.”

 

최근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안전경영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전경영에 대해서는 어떤 구상을 가지고 계시는 지요?

“세월호 참사는 우리사회가 안전을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기업의 최우선 가치는 안전에 있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한 어떠한 경영실적도 의미가 없다. 포스코건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인명존중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모든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일을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본적인 책무를 다할 것이다.”

Story_8. 창립 20년, 혁신과 도전으로 백년기업의 토대를 닦아나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