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ries by POSCO E&C

9. BEST POSEC 운동 추진과 성장기반 구축

출범 당시 포스코건설은 시공능력 37위로 그 위상이 지금과 비교하면 많이 왜소했지만, 그 떡잎은 달랐다. 제철보국 신화의 후손으로 그 의지가 대단했고, 포스코의 후광으로 새내기 때 이미 중견기업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새내기의 이 같은 똘똘함은 시기를 불러왔고, 거듭되는 경쟁자들의 질투와 견제로 토목과 건축 분야에서는 오랜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출범 직후 포스코건설의 과제는 경영효율화와 조직의 화합이었다. […]

1. IMF 위기와 기술경영 강화

지난 30여 년 동안 급속 페달을 밟아온 우리나라 경제가 마침내 브레이크가 걸렸다. 1997년 말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면서 치욕적인 IMF 관리체제를 맞았다. 책상을 빼는 것만이 능사라는 논리가 횡행했고, M&A와 빅딜이 유행하는 등 전 국민이 고통 받았다. IMF 관리체제는 성장기반을 갖춰가던 포스코건설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을 안겨주었다. 수주가 격감하면서 구조조정 압박에 시달렸다. 1997년 1조 8340억 원에 달하던 수주액이 불과 […]

2. 시련의 제철 플랜트, 해외사업마저 고전

IMF 위기는 포스코건설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제철 플랜트 분야에 가장 큰 타격을 입혔다. 1조 5165억 원이던 수주액이 1998년에 2572억 원으로 뚝 떨어졌다. 포스코가 신규 설비투자를 미루거나 기존에 추진하던 사업을 중단함에 따라 포스코건설은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1997년 9월 착공한 광양 2미니밀 사업의 중단이 가장 아쉬웠다. 광양 2미니밀은 연산 200만 톤 규모의 프로젝트로, 수주금액이 설비와 […]

3. 건축과 토목, 고난의 행군

IMF 한파는 제철 플랜트뿐 아니라 건축과 토목 분야도 할퀴고 지나갔다. 그 중에서도 건축 분야의 출혈이 상당히 컸다. 출범 초기 포스코건설은 실적 부족과 경쟁업체들의 견제로 대외사업 진출에 어려움을 겪자 자체 개발사업으로 건축사업을 유지하고 있었다. IMF 위기 때는 서울 송파구 가락동 IT벤처타워, 대전 유성콘도 프로젝트, 경기도 성남시 분당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고 있었다. 1996년 10월 착공에 들어간 가락동 […]

4. 주택사업으로 위기 탈출

IMF 관리체제는 포스코건설에게 많은 시련을 안겨주었지만,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는 결코 이 사태가 끝날 것 같지 않았지만, 지나고 보면 IMF는 금방 지나갔다. 이후 우리경제는 성장가도를 달렸고, 부동산시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따라서 이 시기는 위기를 기회로 포착하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IMF 위기를 맞아 경쟁자들은 포스코건설에 대한 견제력을 상실했다. 연일 부도와 사업 중단이 이어지면서 불안한 소비자들은 건설사들의 […]

5. 주택브랜드 더샵, 인생의 반올림

도곡동과 삼성동 포스코트 분양 성공으로 주택시장에 진입한 포스코건설은 대치동 동아아파트를 수주함으로써 관련업계에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경쟁에 끼워주지도 않던 이들 업체들은 서서히 포스코건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유동성 위기로 견제력을 상실한 기존 대형업체가 러브콜을 보내오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이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 파크뷰 성공신화의 서막이었다. 2000년 말 현대건설이 유동성 위기로 분당 파크뷰 개발을 포기하자 시행사는 재무구조가 탄탄한 포스코건설에게 […]

6. 송도국제업무단지와 동탄메타폴리스 개발 추진

IMF 위기 극복 이후 주택사업의 선전에 힘입어 건축 분야가 크게 성장했다. 포스코건설은 공공건축 시장에도 과감히 도전, 2001년 경북 봉화군 청사 건설공사를 PQ로 수주했다. 같은 시기 경남 김해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 건설공사를 건축사업 최초의 턴키공사로 수주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포스코건설 최초의 병원 공사인 서울시립아동병원 증개축 공사를 역시 턴키로 수주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해외 프로젝트로는 하와이콘도 사업이 있었다. 하와이콘도 부지는 거양개발 시절 […]

7. 절치부심 토목사업 기지개

토목 분야는 포스코건설 출범 이후 5년간 죽 고난의 행군이었다. 부산 광안대교,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 외 그 실적이 너무나 초라했다. 그러나 건축 분야와 마찬가지로 IMF 위기 이후 봄날을 맞았다. 경영난의 가중으로 경쟁업체들의 견제력이 무뎌졌으며, 무엇보다 관급 토목공사의 발주제도가 PQ 방식이나 턴키 방식으로 전환되고 재무상태가 평가의 주요 잣대로 사용되면서 포스코건설의 입지가 넓어졌다. 포스코건설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999년 […]

8. 인천국제공항철도에 이어 김해경전철 수주

토목 분야는 도로, 항만, 부지조성 등 공종이 다양해지면서 철도에서도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수행했다. 철도 분야 국내 최초 민자사업이었던 인천국제공항철도 건설사업과 김해경전철 등의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인천국제공항철도 프로젝트는 1단계로 2001년 4월부터 2007년 3월까지 인천국제공항에서 김포공항까지, 2단계로 2004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김포공항에서 서울역까지 모두 61.5㎞의 철도와 역사를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포스코건설은 이 프로젝트에서 1단계의 2개 공구, 2단계의 1개 공구의 […]

9. 환경사업 분야 정상에 올라

항만, 부지조성과 마찬가지로 환경사업 분야도 포스코 환경관련 공사 경험을 바탕으로 대외사업에 진출했다. 특히 이 분야는 지속적인 기술축적으로 업계 최정상에 올라 그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 사실 설립 초기 환경 분야는 포스코 물량에만 집중했다. 광양 3배수 종말처리장 등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1997년을 기점으로 포스코의 조강증산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환경관련 공사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결국 환경 분야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